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15
415화 내 손자는 아니잖아
백효각을 빠져나오는 길. 독고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필요까지 있었느냐?”
“제가 괜히 일을 크게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엽현이 싱긋 웃으며 묻자 독고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효각은 그렇게 만만한 세력이 아니다.”
“이 세상은 강자만이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남을 찍어 누를만한 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중은커녕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멸시하겠지요.”
“그렇다면… 일부러 그런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여인이 무상지경 강자를 불러낸 것은 분명 저를 죽이려는 의도였습니다. 이는 백효각이 원한 것이 아닌 그녀의 개인적 일탈이었죠.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죽인 것뿐입니다.”
“무상지경 강자를 죽인 것은 백효각에게 겁을 주려 한 것이고?”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그들은 네게 분노할 것이 뻔한데 이 점은 두렵지 않느냐?”
“하하, 일을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일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하진 않습니다. 수많은 적들 중에 백효각 하나 추가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요. 우선 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시지요.”
말을 마친 엽현의 걸음이 빨라졌다.
독고훤이 낮게 한숨을 내쉰 후, 그의 뒤를 쫓았다.
* * *
엽현 일행이 막 객잔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한 노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노인의 안광은 곧장 엽현에게로 향했다.
“엽 공자, 노부는 백효각 당주인 막주(幕州)라 하오.”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막 당주께선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그대와 백효각은 아무런 원한이 없는 걸로 아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사람을 죽였소.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듯싶소.”
“자초지종은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만약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저와 안으로 들어가시고, 복수를 하러 오셨다면 이 자리에서 해결하시지요?”
“아주 자신만만하군, 그래!”
막주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소리쳤다.
이때 엽현이 막주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백효각이 독고가나 고가보다 강한가?”
순간, 막주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내게 협박하는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단지 선의로 주의를 준 것뿐이니 역정 내실 것은 없습니다. 단, 저와 싸우기 이전에 스스로의 실력을 헤아려 보라는 말이지요.”
말이 끝나자 엽현은 독고훤과 함께 객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제견이 잠시 막주를 차갑게 노려보더니 그들의 뒤를 쫓았다.
입구에 홀로 남은 막주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엽현과 적이 된다는 것.
비록 백효각의 전력이 만만치 않긴 하지만, 엽현과 적이 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백효각은 엽현의 보물을 탐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보물을 차지하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리란 것을 막주가 모를 리가 없었다.
현재 엽현을 노리는 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약한 자들은 당연히 실력이 없기 때문이었고, 강한 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효각은 결코 후자에 속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막주는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엽현과 막주가 마주 보고 앉았다. 독고훤은 엽현 곁에 자리했다.
“백효각을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건 우리 역시 마찬가지오. 엽 공자를 공격했던 자들은 자의로 그런 일을 벌였던 것이고, 우리 백효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엽현이 그제야 미소를 보였다.
“이걸로 둘 사이에 오해가 풀림 셈이군요.”
“그럼 원만하게 해결된 듯하니, 노부는 이만 물러가겠소.”
“잠시 기다리십시오.”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막주를 불러세웠다.
“귀 각에게 사람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여자아이를 말하는 것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라면 내 이미 손을 써 두었소. 늦어도 삼 일 안에는 기별을 넣어 주겠소.”
그 말에 엽현이 벌떡 일어나 포권을 취해 보였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후후, 별말씀을. 다른 볼 일이 없거든 이만 물러가리다.”
“조심히 가십시오.”
막주가 떠난 뒤, 엽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찻잔을 들이키던 그가 문득 독고훤을 바라보았다.
“예상 밖이지 않습니까?”
“의외로구나. 자기 사람을 죽였는데도 일을 도와준다고 하고 거기다 예의까지 차리다니.”
이에 엽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은 실력이 전부인 곳이라고. 제가 윽박지를수록 저쪽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들은 제 뒤에 어떤 배후가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요. 실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엽현이 실소를 터트렸다.
실제로 간자재가 떠난 후, 그에겐 아무런 패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한번 계옥탑을 사용하는 것은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제견이 강하다곤 하지만 성경 강자들 몇이 동시에 달려들면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는 실정. 지금 그의 실력 또한 스스로를 노리는 자들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 세력이 잠잠한 이유는 엽현의 배후에 거대한 세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었다.
이런 대치 상황은 오래 지속되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개중에는 참을성이 약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그때가 오기 전까지 반드시 실력을 끌어올려야만 한다.
‘검이 필요해! ’
엽현의 현재 경지는 기변경. 심경(心境)에 있어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흡수할 검이 필요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던 엽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독고훤과 제견을 데리고 막 객잔을 나선 엽현은 순간 눈썹을 치켜세웠다.
“미행하는 자들이 있군. 해치울까?”
제견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따라오게 내버려 둬.”
잠시 후, 엽현 일행은 만보상회를 찾았다. 만보상회의 건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백이 느껴졌다. 장장 십이 층으로 된 건물은 높이뿐만 아니라 넓이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자니, 얼마나 사업이 번창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만보상회에 들어서자 청초한 용모의 여인 하나가 응대를 위해 다가왔다. 이때 제견을 발견한 여인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 죄송하지만 애완견은 상회에 데리고 들어오실 수 없답니다.”
“…….”
순간 화가 난 제견이 앞발을 높이 치켜들자, 엽현이 재빨리 붙잡았다.
“참아, 네가 참아.”
이때 깜짝 놀란 여인이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소리쳤다.
“어머, 얘 성질 좀 봐. 생긴 건 귀여운데 왜 이리 포악하니?”
제견이 다시 발작하려 하자 엽현이 재빨리 그를 끌어안았다.
“진정하라니까. 그러지 말고 잠시 탑에 들어가 있는 게 어때?”
계옥탑!?
그 말에 제견이 안색이 변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
신족의 신수였던 그는 계옥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바가 있었다.
무간연옥도 무서운데 그보다 더한 계옥탑에 들어가라니.
이는 제견의 입장에선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엽현이 웃으며 여인에게 말했다.
“저기, 소저. 그러지 말고 들여보내 주시오. 소란 피우지 않도록 내 단단히 주의 시키겠소. 부탁드리오.”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 표시를 하려 할 때, 그녀 앞에 납계 하나가 반짝이며 날아들었다. 납계 안을 확인하니 자원정 오백 개가 들어있었다.
순간 안색이 하늘의 태양보다도 더 찬란해진 여인이 황급히 납계를 품에 넣었다.
“공자 들어가시지요. 단, 아무 곳에나 풀어 놓으시면 안 됩니다.”
“하하하, 여부가 있겠소!”
“물건을 구입하고 싶으시면 이 층으로, 팔고자 하신다면 삼 층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고맙소.”
여인이 정중하게 예를 차린 후, 그들을 떠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견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천하의 무지몽매한 인간 같으니라고!”
“진정하라구. 신족의 신수씩이나 된 자가 평범한 여인과 실랑이를 벌일 순 없잖아.”
“으으…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게…….”
“워워, 도량이 넓은 네가 참아.”
잠시 후, 엽현 일행은 건물 이 층으로 올라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은 어린 소녀가 함박웃음으로 그들을 맞았다.
“공자께선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검을 좀 보고 싶소만.”
“어떤 급의 검을 찾으시나요?”
“성계 검.”
그 말을 듣자 소녀가 황급히 엽현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공자,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소녀는 엽현을 데리고 매우 호화스러운 방으로 데리고 갔다. 자리에 앉자, 누군가 차와 과일을 내어놓았다.
소녀가 엽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성계 검 한 자루가 필요하신 건가요?”
“몇 자루나 팔 수 있소?”
“금액만 맞춰주신다면 원하시는 만큼 구해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엽현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단 말인가?
“…성계 검 한 자루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줄 수 있소?”
“최소 자원정 천만 개부터 시작한답니다.”
엽현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본 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전 재산은 자원정 삼천 이백만 개 정도. 그녀의 말에 따르면 탈탈 털어도 성계 검 세 자루밖에 사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그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성계 검의 수는 최소 다섯 자루. 세 자루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엽현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우선 물건을 좀 팔고 싶소.”
그 말을 듣자 소녀의 눈이 번뜩였다.
“공자께서 어떤 물건을 가지고 계신지요?”
엽현이 대답 대신 팔을 휘두르자, 소녀의 앞에 네 점의 성계 보물이 나타났다. 이는 고가의 인물들을 죽이고 획득한 전리품이었다.
물론 다른 보물들도 더 있었지만, 그것들은 엽현이 쓰려고 남겨 놓았기에 여기서 팔 생각은 없었다.
눈앞에 쏟아진 보물을 본 소녀가 갑자기 목청 높여 소리쳤다.
“차를 내 오거라!”
곧, 시녀로 보이는 여인이 들어오더니 탁자에 영차(靈茶) 석 잔을 올려놓았다. 이는 방금 전 그가 마신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 차였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소녀는 우막(雨莫)이라 하옵니다.”
엽현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만약 보물을 내어놓지 않았더라면 상대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을 것 아닌가.
“공자, 이 보물들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경매로 판다면 더욱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자께서만 괜찮으시다면 소녀가 오늘 밤에 있을 경매에 올려놓았으면 하는데 어떠신지요? 물론 급하시다면 시장가인 자원정 천만 개에 지금 판매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공자께서 손해를 보실 것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물건들을…….”
“누군가 했더니, 엽 공자께서 친히 왕림하셨군! 오시는 걸 알았더라면 진즉 마중을 나갔을 것을!”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방 한쪽에서 젊은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를 보자 우막이 황급히 예를 차렸다.
“이(二) 공자를 뵙습니다.”
이공자라 불린 남자는 우막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엽현 앞으로 다가왔다. 이때, 독고훤을 발견한 남자가 음흉한 시선으로 그녀의 몸을 훑으며 입맛을 다셨다.
“과연 천역 미인방(美人榜)에 이름이 오른 여인답군……. 그대를 품을 수만 있다면 수명이 십 년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을 텐데……. 후후.”
이때, 독고훤 곁에 있던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화나게 할 목적이라면… 충분히 달성한 것 같군. 그 상으로 네 수명은 오늘로써 없다.”
“하하하하! 어이어이, 이거 기백이 살아 있잖아! 역시 고명하신 분이라…….”
순간 남자의 음성이 뚝 끊겼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한 줄기 검광이 그의 미간 사이를 노리고 있던 것이다.
이때, 한쪽에 있던 우막이 다급히 소리쳤다.
“엽 공자, 그분은 저희 만보상회 대장로의 손자 되십니다. 그러니 부디…….”
엽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내 손자는 아니잖아.”
말이 떨어진 순간, 엽현의 손가락이 두 번 움찔거렸다.
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두 팔이 힘없이 잘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