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22
422화 저 놈은 내가 너에게 양보할게
진존은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의 영혼을 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노부는 결코 네게 진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진존의 영혼은 완전히 소멸됐다.
이제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진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으리.
진존이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얼마간 엽현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만약 제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진존을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오 할 이상은 제견의 공이라 해야 옳았다.
물론 이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엽현이 이곳에 온 이유는 실력을 겨루기 위함이 아니라 살인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전쟁에서 자신보다 강한 자와 일 대 일을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엽현의 시선이 남아 있는 여천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여천이 깜짝 놀라며 대전 입구까지 뒷걸음질 쳤다.
“엽현, 우리 귀문은…….”
이때, 엽현이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여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여천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면서 머리 위로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대전 위에 붙어 있던 부적이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졌다.
엽현이 본능적으로 좋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 부적이 한 줄기 화광(火光)으로 변해 폭발했다. 이때, 붉은빛 사이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 나왔다.
엽현이 순간적으로 주춤하며 검으로 자신의 앞쪽을 방어했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엽현이 그대로 돌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엽현을 향해 그림자가 다시 돌진하려는 순간, 제견이 그의 옆구리를 들이박았다.
쾅-!
지면을 흔드는 충격과 동시에 제견이 엽현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몸을 추스른 엽현이 계단 위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돌계단 위쪽엔 상반신을 완전히 노출한 남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용모는 몹시 흉악했고, 상반신엔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붉은 상처로 가득했다. 게다가 그의 손엔 갈고리를 연상케 하는 긴 손톱이 존재했다.
남자의 시선이 제견에게로 향했다. 이때, 그의 입가에 경련이 일면서 입 밖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줄줄 새 나왔다.
엽현이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제견에게 말했다.
“저놈은 특별히 네게 양보하지.”
제견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으니까, 몸조리나 잘하고 있어!”
말과 동시에 제견이 솟구쳤다. 그러자 계단 끝에 서 있던 남자가 사자후를 터트리며 제견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정면승부!
쾅-!
요수 하나와 인간 하나가 충돌한 순간, 장내가 떠나갈 듯이 흔들렸다. 이와 동시에 두 존재가 각기 원래 있던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제견은 지면에 발이 닿자마자 다시 맹렬하게 솟구쳤다.
보아하니 육신의 강도에 있어서만큼은 제견이 상대보다 나은 듯했다.
제견이 우세하다고 판단한 엽현은 곧장 고개를 여천에게로 돌렸다. 여천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엽현이 오른발을 강하게 굴렀다. 순간, 엽현의 전신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여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참(斬)!
날카롭게 날아드는 엽현의 검을 보자 여천이 어금니를 깨물며 정면을 향해 일 권을 날렸다.
쾅-!
검과 권이 충돌하는 순간, 여천이 뒤편에 있던 대전 안까지 주르륵 미끄러졌다. 반대쪽의 엽현 역시 거의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때, 장내에 검은 검광 한 줄기가 번뜩였다.
여천이 정면으로 날아드는 검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반응이 조금 늦은 탓에 한쪽 어깨를 내어주고 말았다.
푸확-!
여천이 동작을 멈추고 황급히 자신의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음령기검이 뚫고 지나간 그의 어깨는 눈에 띄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표정이 사나워진 여천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엽현은 이미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에 여천이 재빨리 양손을 모았다.
“사(赦)!”
양 손바닥이 떨어지는 순간, 그 사이에서 도깨비의 혼체가 나타나 엽현을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엽현은 결코 피하거나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검을 깊숙이 찔러 넣을 뿐.
일검정혼(一劍定魂)!
검 끝이 닿은 순간, 혼체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밀려나더니, 이내 소멸됐다.
엽현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여천이 보이지 않았다.
도망?
엽현의 표정이 방금 전의 도깨비보다 더욱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네가 감히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말과 동시에 엽현이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자 한 줄기 검광이 검 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쾅-!
눈앞의 대전이 그대로 주저앉았지만, 엽현은 이에 멈추지 않고 검을 들고 대전을 향해 날아들었다. 대전 뒤편에 도착하자 몇몇 귀문 제자들이 황급히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순간, 엽현의 체내에서 무수한 기검들이 쏘아져 나갔다. 장내는 이내 참혹한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엽현은 계속해서 검을 든 채 귀문을 가로질렀다.
“귀문! 내 동생을 내놓아라!”
쉭-!
한 줄기 검광이 번개처럼 날아가자, 수십 장 밖에 있던 그림자 하나가 반으로 갈라졌다.
한동안 굶주린 늑대처럼 광기를 보이던 엽현은 곧 어느 음산한 무덤가에 도착했다. 주저하지 않고 발을 디디려는 순간, 누군가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망할 녀석! 그곳은 우리 선조들의 무덤…….”
방금 소리친 자는 말을 마칠 수 없었다. 어느새 정면에 나타난 엽현이 자신을 향해 검을 내리치고 있던 것이다.
이때, 한쪽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소리쳤다.
“피해라!”
하지만 이 말이 떨어지는 것보다 엽현의 검이 상대의 머리 위에 도달하는 것이 더 빨랐다.
서걱-!
상대의 몸이 마치 수박 쪼개지듯 두 부분으로 나뉘면서 피와 내장을 쏟았다.
엽현이 방금 전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몸의 대부분이 썩어 들어가 이제 반쪽밖에 남지 않은 여천이 서 있었다.
“엽현, 네 이놈…….”
“내 동생은?”
엽현의 검이 여천의 목을 향했다.
이에 여천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엽현, 한 번만 더 검을 휘두른다면 네 동생의 목숨은 없는 걸로…….”
쓸데없는 말을 모두 들어줄 엽현이 아니었다. 엽현은 곧장 여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공간도칙을 발휘한 그의 속도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엽현이 달려드는 것을 본 여천이 허겁지겁 육신을 버리고 영혼체인 상태로 탈출을 감행했다.
쾅-!
여천의 영혼이 막 빠져나간 순간 그의 육신이 일 검에 터져 나갔다.
이를 본 여천이 안색이 새하얘져 마구 소리쳤다.
“엽현, 네 누이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단 말이냐!?”
하지만 엽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시 여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여천이 손을 내밀며 다급히 소리쳤다.
“멈춰라! 네 동생은 아직 살아있다! 아직 귀체로 만들지 않았단 말이다!”
하지만 엽현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엽현이 멈추지 않자 여천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엽현, 이 정신병자놈아! 그 아이는 아직 살아있다고 내가 말하…… 헉!”
여천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엽현이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천은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은 벌어졌다.
여천은 더 이상 엽현과 싸울 마음이 없었다. 지금 상태로 싸움을 벌였다간 누가 죽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엽현의 검과 검기는 영혼체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것이다.
여천은 도망치면서도 억울한 심정을 떨칠 수 없었다. 만약 엽현의 검과 검기가 귀문의 무공에 상극이 아니었더라면 이러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귀문의 패배는 순전히 엽현의 실력이 아닌 그의 검과 검기 때문인 것이다.
여천을 맹렬히 쫓던 엽현은 거리가 점차 멀어지자 추격을 멈추고 장내에 남아 있는 귀문의 제자들로 목표를 변경했다. 잠시 후, 장내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생겨났다.
한편, 멀리서 한숨 돌리고 있던 여천은 쌓여 가는 시체들을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워졌다. 단 한 명의 검수에게 귀문이 이토록 처참하게 당할 줄이야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바로 이때,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사람의 형상 하나가 여천의 발밑에 떨어졌다. 그는 바로 앞서 제견과 겨루고 있던 남자였다.
여천이 고개를 들자 제견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제견이 여천 앞에 남자를 바라보더니 경멸에 찬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공법을 이용해 육신의 잠재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것이로구나. 어쩐지 이 몸의 공격을 몇 번 막아 낸 것이 이상하긴 했다.”
말을 마친 제견이 여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막 출수하려는 찰나였다. 여천이 한쪽에서 미친 듯이 살육을 하고 있던 엽현에게 소리쳤다.
“엽현! 네 동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겠다!”
그 말에 엽현이 멈칫하며 막 휘두르려던 검을 멈췄다. 그러나 다시 손에 있던 검을 휘둘렀다. 한 줄기 검광이 번뜩이고, 십여 장 떨어져 있던 귀문 제자 하나의 머리가 떨어졌다.
검을 갈무리한 엽현이 천천히 여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가오는 엽현을 바라보며 여천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견이 눈앞에 있는 이상 어차피 도망갈 길이 없던 것이다.
이윽고 여천의 앞에 야차(夜叉)의 모습을 한 엽현이 멈춰 섰다.
“어디로?”
“…따라오너라.”
여천이 어디론가로 몸을 날리자, 엽현이 그의 뒤를 따랐다.
홀로 남은 제견이 장내를 한 번 훑어보았다. 지면엔 온통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영혼마저 소멸된 상태였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시체들이 생전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훼손돼 있다는 것이었다.
제견이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이 순간, 그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평소 엽현은 종종 실없는 모습을 보이며 한없이 가벼운 듯했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면 그야말로 광견이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미친놈이야!’
제견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엽현이 사라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사실 제견 역시 마찬가지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예전에 그가 엽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이유는 엽현이 화도 낼 줄 모르는 간신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엽현의 욱하는 성질은 제견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여천의 인도하에 엽현과 제견은 어느 산기슭에 이르렀다. 여천의 시선을 따라가자 산허리에 둥둥 떠 있는 십여 개의 관들이 보였다.
“저 중에 령이가 있는 건가?”
“…우리가 처음 그 아이를 데려왔을 땐, 원래 곧바로 혼체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체질이 하나 이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이러한 체질은 만 명 중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희귀한 것이라 우리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결정할 순 없었다. 때문에 문주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려 했던 것이지. 그런데 설마하니 이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곤…….”
바로 이때, 엽현의 검이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여천의 한쪽 팔이 허공을 날았다.
뒤이어 당황해하는 여천의 목에 엽현의 검이 들이닥쳤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어디 있는지 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