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거래는 없던 걸로 하시죠
여인이 잠시 멈칫하더니 앞섬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순간 엽현은 그녀가 말한 ‘봉사’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이때, 여인의 앞으로 납계 하나가 날아갔다. 납계 안에는 자원정 삼백 개가 들어 있었다.
여인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건…….”
“가지고 나가시오. 나는 봉사따윈 필요 없소.”
그의 말에 여인이 얼굴을 화끈거리며 납계를 받아 넣었다.
“실례했습니다.”
여인이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간 후, 엽현은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여럿 느껴졌다.
‘혹시, 이상한 곳은 아니겠지?’
엽현이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 봤던 미부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현재 저희 상회에는 성계 검 세 자루가 있습니다. 금액은 각각 자원정 천이백만 개로 책정…….”
“천이백만 개?”
엽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습니다. 성계 검은 매우 구하기 어려운 터라 부득이하게…….”
“천만 개!”
미부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일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듯싶습니다.”
“그럼 거래는 없던 걸로 하겠소.”
엽현은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난 번 만보상회에서는 검 한 자루당 자원정 천만 개를 불렀다. 그러나 이곳에선 그보다 이백만 개를 더 높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덤터기를 씌우는 것이 분명했다.
“잠시 멈추세요!”
미부가 막 방을 빠져 나가려는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엽현이 걸음을 멈추자 미부가 요염한 미소를 보이며 다가왔다.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가격은 얼마든지 흥정하면 그만인 것을요.”
“피차 바쁜 사람끼리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자원정 천만 개, 아니면 나는 만보상회로 가겠소.”
“…….”
“무슨 생각을 그리하시오? 설마 나를 아무도 모르게 해치워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순간 미부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소매 안으로 이미 주먹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엽현이 가볍게 웃었다.
“어디 한 번 시험 해 봐도 상관없소.”
이 순간, 미부가 다소 굳어 있던 표정을 풀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태원상회는 그런 나쁜 일은 결코 저질러 본 적도 없습니다! 말씀대로 천만 개로 하시지요.”
말과 함께 미부가 손을 휘두르자, 기다란 목함이 엽현 앞에 나타났다.
목함 안에는 과연 세 자루 검이 들어있었다.
세 자루의 성계 검이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자원정 삼천만 개가 든 납계를 미부에게 건넸다.
납계를 확인한 미부가 웃으며 말했다.
“두 시진 후에 물건을 더 들여올 예정인데 별일 없으시면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두 시진 후에 다시 오리다.”
그렇게 엽현이 방을 나선 후, 홀로 남은 미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자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이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없다.”
미부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 때, 조금 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느낌이 좋지 않다. 내 생각엔 건들지 않는 것이…….”
“저자는 성계 검 세 자루 외에도 최소 자원정 이천만 개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요?”
“하지만 아직 놈의 정체도 모르는데…….”
“흥, 성경 강자 둘이서 죽이지 못할 자도 있단 말입니까?”
“…알았다. 네 말대로 하지.”
“좋습니다. 그럼 우선 그자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렸…….”
바로 이때, 여인의 음성이 멈추더니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녀의 목 중앙은 언제 그랬는지 길게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로 선혈이 꿀렁꿀렁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한 흑의인이 미부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미부가 간절한 눈빛으로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사, 살…….”
흑의인이 미부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영혼에까지 타격을 입었으니, 가망이 없다.”
그렇게 절망감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미부는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암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막 숨을 거두기 직전이 되어서야 방금 전 방 안에 있었던 중년인을 떠올렸다.
미부가 죽고 나서 방안을 지키고 있던 중년인이 주변을 경계하며 소리쳤다.
“이번 일은 우리 태원상회의 실수였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아무런 반응도 없자, 중년인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부탁이니 모습을 드러내 주십시오!”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중년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방은 이미 떠난 것이 틀림없었다. 이때, 중년인이 문득 미부의 손안을 확인했다. 손안에는 있어야 할 납계가 보이지 않았다.
당했다!
순간 화를 이기지 못한 중년인이 눈앞의 탁자를 후려치자 탁자가 그 자리에서 가루로 변했다.
* * *
태원상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골목. 엽현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손 안의 납계를 보며 씩 웃고 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성계 검 세 자루를 얻은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미부가 흑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엽현은 우선 밖으로 나가는 척했다가 혼돈지기를 이용해 방 안에 잠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미부가 누군가와 음모를 꾸미는 것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나쁜 마음을 품은 이상, 엽현 역시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 약했더라면 그들은 엽현을 통째로 집어삼켰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은 원래 잔혹한 법이니.
몸을 일으킨 엽현은 곧 미앙성을 빠져나갔다. 이번에 그는 제견과 독고훤을 보러 가지 않았다. 지금 당장의 급선무는 경지를 끌어 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견이 보호하고 있을 테니 독고훤의 안전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미앙성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에 들어온 엽현은 어느 조용한 동굴을 찾아 들어갔다. 이 동굴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엽현 자신 역시 기운을 숨기고 있었으니 남에게 발각될 염려는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엽현은 곧장 계옥탑에 진입했다. 혹시라도 동굴에서 수련했다가 소음이 밖으로 흘러나갈 것을 우려한 탓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적이 있는지 항시 잊지 않고 조심하려 노력했다.
계옥탑에 들어 온 엽현은 곧장 세 자루 성계 검을 꺼냈다. 현재 그의 단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영선검, 하지만 영선검은 지금의 그에겐 조금 부족했다.
때문에 엽현은 진혼검을 단전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엽현이 손을 휘두르자 진혼검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소혼, 내가 너를 단전으로 삼길 원하는데 허락하겠느냐?”
잠시 후, 소혼이 대답했다.
[제게 어떤 금제가 가해지는 것입니까?]“전혀 없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소혼의 허락에 엽현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게 잘 맞춰줘야 한다.”
엽현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자신보다 한참 높은 경지에 있는 소혼이 협조하지 않으면 큰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주인.]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진혼검을 자신의 복부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격렬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순간 엽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혼검의 경지가 너무 높은 탓에 그의 육신이 터져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엽현은 황급히 무적금신을 펼쳤다.
그러자 다행히 그의 육신은 곧 안정을 되찾았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정확히 하루가 지났을 때, 엽현의 체내에서 강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어기경(御氣境)!
엽현의 경지는 기변경을 돌파한 어기경이 되었다.
크게 숨을 몰아쉬며 몸을 살피던 엽현은 이전과는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을 느끼고 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던 엽현이 소혼에게 물었다.
“소혼,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느냐?”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단지, 주인과 더 연결된 것 같은… 주인의 기분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신경 쓰이느냐?”
[아닙니다. 주인이 강해진 건 제게도 좋은 일이니 상관없습니다.]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엽현이 눈앞의 성계 검을 보더니 주저 없이 단전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한 줄기 정순한 기운이 강처럼 그의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때, 기운의 절반은 엽현의 몸으로, 나머지 절반은 진혼검이 흡수했다.
순간 소혼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주인, 저 역시 이 검을 흡수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
“오오! 이렇게 되면 주인과 저의 실력이 동시에 상승하겠군요!”
“하하, 이 검이 네게 많은 도움이 되느냐?”
“음… 지금 제 상태로는 큰 도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래 실력을 회복하고 난다면 별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군.”
“주인, 이럴 게 아니라 제가 빨리 회복하도록 더 많은 검을 흡수하십시오!”
소혼이 흥분하며 말하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소혼이 검의 맛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성계 검을 흡수한 것은 엽현 뿐 아니라 소혼에게도 큰 이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소혼이 저 정도로 흥분하지는 않았으리라.
엽현은 계속해서 몸 안에 들어오는 역량에 집중했다.
이튿날, 또 한 자루의 검이 엽현의 몸속에 미친 듯이 흡수됐다.
기운이 몸 안에 들어옴에 따라 엽현의 육신에도 천천히 변화가 생겼다. 뿐만 아니라, 그의 기운도 점점 강성해지는 것이 곧 경지를 뚫을 듯했다.
이를 느낀 엽현이 황급히 스스로의 기운을 짓눌렀다.
그는 아직 경지를 돌파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어기경의 심경(心境)을 극한으로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돌파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엽현은 자신의 역경 수행에 조금의 흠도 생기길 원치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노력 끝에 엽현은 몸을 뚫고 나오려는 기운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기운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혼, 나를 도와다오!”
[알겠습니다, 주인!]소혼의 대답과 동시에 강대한 혼력(魂力)이 엽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혼력의 도움 아래 엽현의 기운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잠시 후, 기진맥진한 엽현이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던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은 그토록 경지를 돌파하길 원하는데, 나는 반대로 억누르고 있으니… 하하… 하하하하…….”
바로 이때, 소령이 얼굴이 창백해져서 엽현에게 달려왔다.
“무, 문… 무무무무무무문!!”
“무슨 문?”
엽현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소령아, 더듬지 말고 똑바로 말 해봐. 무슨 문? 귀문?”
엽현이 고개를 드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거대한 폭발음이 계옥탑 오 층에서부터 울려 퍼지면서 이내 탑 전체가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