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45
445화 놈이 버릇이 좀 없어서…
엽현은 곧바로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은 물론 마음까지 너덜너덜해져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단하다…….
방금 전투에서 그는 정말로 마지막 기력까지 쥐어짠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시원하게 싸운 전투라 할 수 있었다.
통쾌하다!
엽현은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도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열심히 수련을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진정한 고수를 상대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결국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엽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더이상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눕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편, 주생생이 청삼남에게 다가가자, 천살과 지살이 나와 청삼남 양쪽에 섰다.
주생생이 걸음을 멈추고 청삼남을 내려다보았다.
“막사?”
청삼남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미안하군, 실망시켜서. 나는 그가 아니다.”
“…아쉽게 됐군.”
“후후, 그와 붙지 못하게 돼서 아쉽다는 건가?”
주생생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내가 보기엔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것 같은… 쿨럭…….”
“…그런가?”
청삼남이 말없이 웃기만 하더니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이에 주생생의 시선이 천살과 지살에게로 향했다.
“둘 중 누가 덤빌 텐가?”
이에 천살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곧, 지살이 청삼남을 한쪽으로 옮겼고, 전군 등 역시 황급히 엽현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천살은 쓸데없는 말을 삼간 채, 주생생을 향해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강대한 권세가 마치 사나운 파도처럼 몰아치니,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러자 주생생이 무표정한 얼굴로 창을 잡고 정면으로 찔러 들어갔다.
쾅-!
두 사람은 곧장 양분되어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로써 두 번째 대전의 막이 올랐다.
한편,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어느 나무 위, 백 선생이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 아귀가 자리했다.
백 선생의 눈빛은 처음부터 엽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법 잔재주가 있습니다. 다만 기운이 거친 것이 흠이니, 안으로 갈무리할 수만 있다면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허허, 아귀 너의 눈에 들다니. 이건 흔한 일은 아니군.”
“확실히 이전까지는 놈을 그저 운이 좋은 놈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보물의 힘을 빌려 쉽게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그 패기와 죽음을 각오하는 자세를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네가 한 번 지도 해보겠느냐?”
“적합하지 않습니다.”
백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가장 적합하다.”
아귀가 백 선생을 바라보자, 백 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놈의 검도는 주류에 속한 것이 아니다. 너도 보았듯이 그의 비검은 마치 살수의 점살(點殺)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니 그의 검도는 너의 살도(殺道)와 잘 결합할 수 있을 것이다.”
“…….”
“놈에겐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만약 너의 지도 아래 그 부분을 깨닫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아귀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직접 그를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까?”
그의 물음에 백 선생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놈이 좀 버릇이 없어서… 백이면 백 내게 맞아 죽을 것이다…….”
“…….”
한편, 이 와중에도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천살과 주생생 모두 어느 하나 우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호각을 이뤘다.
지살과 전군 등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물러서라!”
그 목소리를 듣자 천살이 손을 멈추고 지살의 곁으로 돌아갔다.
전군 등이 목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백 장 밖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하얀 장포를 입고 한 손을 허리 뒤로 뒷짐 진 남자는 전신에서 서생(書生)의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검은 기린 한 마리가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그를 보자 주생생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막사?”
백의 남자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순간, 장내를 내려다보고 있던 백 선생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 남자의 시선은 바로 그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귀하께서는 명성이 자자한 백 선생 되시겠군요.”
백의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백 선생이 일 보를 내디뎠다.
그 순간, 이미 그는 백의 남자 바로 앞에 도달해 있었다.
남자를 가만히 훑어보던 백 선생의 눈썹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어찌 된 일인지 상대의 깊이를 꿰뚫어 볼 수 없던 것이다.
“후후… 당시 백 선생께서 혼자의 힘으로 우리 마가족의 산문을 뚫을 뻔했다는 일화는 익히 들어 왔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 영광입니다.”
“…네가 막사란 아이로구나.”
“그렇습니다, 선생.”
백 선생이 고개를 돌려 검은 기린을 바라보았다. 기린이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흥분한 기색을 보이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막사가 기린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니 다시 순한 양이 되어 자리에 엎드렸다.
백 선생의 시선이 다시 막사에게로 향했다.
“흑기린… 내이역(乃異域)의 고대 요수. 보아하니 너를 주인으로 삼은 듯하군.”
“후후… 우리 둘은 친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막사가 누워있는 엽현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저 친구가 그 소문의 엽현인가 보군요. 몸에 보물을 지니고 있다는…….”
막사의 시선이 마찬가지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청삼남에게로 옮겨갔다.
“좌청(左青)을 저렇게나 몰아붙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
백 선생이 잠시 막사를 뚫어져라 바라본 후, 등을 돌렸다.
“장성으로 돌아간다!”
명령에 전군 등이 황급히 엽현을 들쳐업고서 백 선생의 뒤를 따랐다.
주생생은 다소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지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백 선생.”
이때, 막사가 백 선생을 불러 세웠다.
고개를 돌린 백 선생을 향해 막사가 웃으며 말했다.
“마가족은 이번에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기대하고 있으마.”
그 말을 끝으로 백 선생이 모습을 감췄다.
막사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 후, 좌청이라 불린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으냐?”
“견딜만 합니다만… 놈의 검이 너무나도 빨랐습니다.”
막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조차 피하지 못할 정도라면 알만하다. 너희들도 그를 다시 만나거든 조심해야 한다.”
천살과 지살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천살이 주저하듯 물었다.
“대형, 그럼 장천장성엔 언제 진군하는 것입니까?”
“후후… 서두르지 마라. 우리 마가족은 이미 천 년을 기다려 왔다. 조금 더 기다린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천살이 고개를 끄덕이곤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때, 막사 앞에 웬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공자, 다른 성역에서 온 몇몇 강자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바로 그 검수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미앙성역과 전면전을 펼치길 꺼려한다며 우리 마가족과 손을 잡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실력은 어떻지?”
“두 명은 천살과 지살 정도였으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공자보다 아래인 것 같습니다.”
“후후후… 재밌군.”
막사가 가볍게 웃으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미앙성궁의 궁주가 강하긴 강한가 보구나. 다른 성역의 강자들도 그렇게 두려워하는 걸 보면 말이다.”
미앙궁주!
그 이름을 들은 노인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노인 연배의 무인들은 그녀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럼, 가보자. 가서 그 이역(異域)에서 왔다는 천재를 만나보고 싶구나.”
* * *
한편, 장천장성에 돌아온 백 선생은 아귀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가서 설백의에게 돌아오라고 전하거라.”
아귀가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자리에서 사라졌다.
방 안에 가만히 누워있는 엽현. 그의 몸은 주생생이 준 설련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이 층 주민… 거기 있나?”
잠시 후, 이 층 존재가 엽현에게 대꾸했다.
[왜 불러?]“다른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난 같은 연배들 중에서 무적인 줄 알았어.”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그는 동년배 중에서 적수라 부를만한 자를 만난 적이 많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안란수정도?
[흥! 세상에 무적이라 불릴만한 자는 극히 소수뿐이다. 전에 내가 한 말 잊었느냐? 이 넓은 우주에는 최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더 강한 자만 있을 뿐!]“…네 말이 맞아.”
[너와 싸운 자보다는 그다음에 나타난 자가 대단했다. 그는 신족과 명족에 비교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그 흰색 옷을 입은 남자 말인가?”
[그렇다. 훗날 그를 만나게 되거든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확실히 이번에 마가족의 두려움을 똑똑히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속은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에 많고 많은 천재들, 엽현도 그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흑기린은 상고시대 때나 볼 수 있던 이수(異獸)다. 악념과 사람의 약한 마음을 잡아먹는 것을 즐기지. 흑기린 혈족은 제견과 비교해서도 결코 약하지 않다.]‘제견만큼 강하다?!’
“…….”
잠시 침묵에 빠져있던 엽현이 물었다.
“그럼 너는? 너는 무슨 혈족의 요수인가?”
엽현은 잊지 않고 있었다. 이 층 존재가 나타났을 때마다 요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때 이 층 존재가 대꾸했다.
[내가 언제 너더러 내가 요수라 했지?]“왜… 요수 아냐?”
[시끄럽다. 더 이상 할 말 없다!]“…….”
이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홀연히 방안에 나타났다. 이에 엽현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아귀였다.
아귀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도는 살도(殺道)와 귀도(鬼道)다. 나에게 배우길 원하느냐?”
“…….”
갑작스런 아귀의 제안에 엽현의 머릿속이 일순 하얘졌다.
“싫다는 뜻인가?”
순간, 엽현의 정신이 돌아왔다.
“아, 아닙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따라 오너라.”
아귀는 곧 엽현을 데리고 어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숲 한가운데 멈춰선 아귀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네가 가진 약점을 파악하고 있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우선 나를 향해 덤벼 보거라.”
“하지만… 어찌…….”
잠시 주저하는 척을 하던 엽현이 갑자기 검지와 중지를 튕겼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검광이 빛과 같은 속도로 아귀를 향해 날아들었다.
쉭-!
하지만 검광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고, 어느새 엽현의 뒤를 점한 아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순간 엽현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아귀가 엽현을 번쩍 들어 올려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았다.
쾅-!
땅속 깊이 파묻힌 엽현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