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55
455화 나는 오래 살고 싶다고!
제단 상공. 수많은 요수들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은 미앙천과 엽현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실 뿐, 더 이상 다가오지는 않았다.
제단 중앙에 서 있는 미앙천은 눈을 감고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녀의 뒤엔 엽현이 자리했다.
미앙천은 그 후로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막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참이 지난 후, 막우가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분신이었나?”
분신!
그 말에 미앙천이 눈을 뜨고 막우를 바라보았다. 순간 막우를 비웃듯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바보는 아니었나 보군.”
의혹이 실제가 되는 순간, 막우의 표정이 흉악하게 변했다. 이에 미앙천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불러 놓고 이렇게 세워만 둘 건가? 자, 어서 덤벼 보아라!”
막우가 차가운 얼굴로 미앙천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등을 보이며 떠나갔다.
“막우 형, 이렇게 가버리면…….”
기둥 위에 서 있던 노인이 다급히 그를 잡아 세웠다. 그러자 막우가 걸음을 멈추고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해 놓고 그냥 가버린다는 것이오?”
“후후, 물론 아니오. 마가족은 혈맹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네 개의 기둥 뒤에서 한 무리의 흑의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대략 이십 대의 젊은 무인들로 모두 손에 화살이 장전된 검은 활을 들고 있었다.
“고악(古岳) 형, 그녀는 단지 분신에 불과하니 그대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손을 빌리고 싶다면 엽현의 보물 중 절반은 우리 마가족에게 넘겨야 할 것이오!”
고악이라 불린 노인이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대 말이 맞소. 분신 정도야 우리 선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 굳이 마가족이 수고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소!”
“하하, 그럼 그렇게 하시오. 나는 장천장성 쪽의 일이 급해서 먼저 가보겠소!”
“살펴 가시오!”
그 말을 끝으로 막우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막우가 사라진 후, 검은 옷을 입은 궁사들 역시 활을 놓고 물러났다.
이제 고악의 시선은 제단 위에 있는 미앙천, 아니, 그녀의 분신에게로 향했다.
“궁주, 노부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소. 엽현만 넘겨준다면 우리 이역은 즉시 이곳에서 퇴각할 것이오.”
미앙천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악을 한 번 바라보고는 엽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때 그녀가 엽현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고는 그대로 움켜쥐었다.
그러자 엽현 주변의 공간이 응축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엽현 주위로 하나의 공간막을 형성해 그를 보호했다.
이 모습을 본 고악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바로 이때, 미앙천이 빠른 속도로 앞에 있는 기둥으로 달려가 일장을 뻗었다.
쾅-!
그녀의 손에 맞은 기둥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일순간 제단 전체가 그 충격에 격렬히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무수히 많은 요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때, 엽현의 몸으로부터 검은 그림자 하나가 출현했다.
제견이었다!
제견은 밖으로 나온 직후, 다짜고짜 너부러져 있는 요수들을 미친 듯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이러는 동안, 미앙천은 또 순식간에 다른 기둥 앞에 나타나 맹렬한 일격을 가했다. 기둥이 무너지면서 요수들이 섬뜩한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이들 요수들은 겁을 먹은 것인지 미앙천 근처에는 다가가지 않았다.
미앙천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다른 기둥을 향해 이동했다.
한편, 공중에서 이를 보고 있던 고악은 매우 당황한 상태였다.
미앙천의 분신이 이렇게나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고작 분신일 뿐이지 않은가!
이때 또다시 기둥이 무너지자, 고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미앙천의 시선에 고악이 들어왔다.
“감히 도망을 쳐? 꿈도 크구나!”
미앙천이 고악을 향해 손을 뻗는 동시에 허공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순간, 달아나던 노인의 육신이 마치 고기 조각처럼 산산조각이 나 땅으로 흩어졌다.
“그, 그대는 미앙천이 맞소?”
엽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미앙천을 향해 묻자, 미앙천이 차가운 얼굴로 엽현을 돌아보았다.
“돌아가거라!”
미앙천이 말과 동시에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엽현 바로 앞의 공간이 크게 찢겨 나갔다.
엽현이 미앙천을 한 번 쳐다보고 공간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바로 이때였다.
“기다려! 너무 많이 먹어서 빨리 못 뛰겠단 말이다!”
엽현이 뒤를 돌아보자 배를 움켜잡고 뒤뚱뒤뚱 뛰어오는 제견이 보였다.
그리고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엽현은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죽은 듯이 잠만 자고 있던 제견이 깨어난 것은 그에겐 매우 좋은 소식이었다. 특히 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있는 지금, 제견의 존재는 천군만마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미앙천의 분신은 더 이상 엽현과 제견에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렸다.
엽현이 잠시 그녀를 쫓아갈까 고민했지만, 역시 그만두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있어 봐야 그녀에겐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엔 미앙천에 대한 의혹이 점점 쌓여 갔지만, 이는 장천장성에 돌아가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씩 미앙천이 당시 청창계에서 만났던 아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제견은 이미 그 많던 요수들의 시체를 깨끗이 먹어치운 후였다.
제견이 만족스러운 듯 볼록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더니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엽현의 면전에 시원하게 트림을 게워냈다.
“…….”
“흠, 오랜만에 보니 어째 좀 더 강해진 것 같군!”
“하하하, 물론이지! 시간 없으니 돌아가서 이야기하자고!”
“돌아가서 뭐 할 건데?”
“그럼 안 돌아가면 여기서 뭐할 건데?”
엽현의 물음에 제견이 주위를 한 번 훑어보며 대답했다.
“이 주변에서 수많은 요수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어때, 가기 전에 한탕 하고 가지 않겠나?”
“어이, 확실해?”
“완전 확실하다!”
“뭐해? 그럼 얼른 해치우자고!”
이역의 존재들에 의해 난생처음 납치된 엽현. 이대로 순순히 돌아가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달갑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억울해서 이대로 갈 수가 없었다.
이때 제견이 계옥탑으로 쏙 들어왔다. 그러자 엽현이 혼돈지기로 자신의 기운을 숨겼다.
남의 땅에 들어온 만큼 얼굴을 내놓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혼돈지기의 비호 아래에서라면, 최정상급 고수가 아니면 그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앙천이 이역 땅을 헤집고 있을 것이 분명한 지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엽현은 곧 미앙천이 사라진 방향을 따라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엽현은 어느 오래된 성 앞에 도착했다. 이때 상공에서는 누군가 다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보나마나 미앙천과 이역의 강자들이 맞붙은 것이리라.
엽현은 긴 생각 할 것도 없이 성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성안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대전 앞에 도착했다. 대전 위에는 검은 글자로 크게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영이궁(靈異宮)]엽현은 숨을 죽이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살펴본 결과, 어떠한 강자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나 당연히도 미앙천을 상대하느라 자리를 비운 것이 틀림없었다.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엽현은 곧바로 약탈을 감행했다.
대략 일각 가량이 흐른 뒤 엽현이 대전을 빠져나왔다. 그가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제견이 갑자기 소리쳤다.
“오른쪽으로 가보자!”
“왜?”
“이쪽에서 요수의 기운이 느껴진다.”
엽현이 잠시 고민 끝에 그가 말한 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직 완전히 회복한 것이 아닌 제견은 더 많은 요수들을 흡수해야 했던 것이다.
엽현은 곧 어느 제단 앞에 도착했다. 제단은 앞서 엽현을 가둬 놓았던 것과 똑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기둥 위에는 마찬가지로 무수히 많은 요수의 석상이 존재했다.
“저 상태로는 흡수하기 어렵겠는걸?”
“어리석긴, 내가 어떻게 하나 잘 보라고!”
순간 엽현의 가슴 부근에서 한 줄기 흑광이 빠져나왔다. 흑광이 네 개의 기둥 중 하나에 들어가자, 기둥이 격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엽현이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역의 강자들이 몰려온다면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제견이 기둥에서 튀어 나왔다. 제견의 몸집은 들어갈 때보다 다소 불어난 상태였다.
엽현이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제견이 이번에는 반대쪽 기둥으로 달려갔다.
제견의 끝을 모르는 식탐에 보고 있던 엽현이 혀를 내둘렀다.
이때, 먼 하늘에서 진동이 일어났고,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미앙천이 피가 떨어지는 머리를 들고 있었고, 그녀의 정면엔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마주하고 있었다. 노인의 주변엔 네 마리의 흑룡이 그를 호위하듯 감싸고 있었다.
미앙천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 속에는 냉정함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미앙궁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엽현뿐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이때 미앙천이 상대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노인이 안색이 변하며 재빨리 양손으로 인을 맺었다. 순간, 그의 곁에 있던 네 마리 흑룡이 미앙천을 향해 거칠게 울부짖었다.
콰콰콰쾅-!
천지가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엄청난 충돌이었다.
잠시 후, 하늘이 원래 모습을 되찾았을 때, 노인은 이미 수백 장 뒤로 밀려나 있었다.
노인이 미앙천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미앙천! 마가족의 강자들이 모두 장천장성을 공격하고 있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네 본체의 실력만으로 그들을 막아낼성 싶으냐? 정말로 노부와 여기서 뼈를 묻길 원하느냐?”
미앙천은 대답 없이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노인이 다급히 말했다.
“미앙천! 네 본체가 여기 있다면 모를까, 고작 분신 하나로 나를 죽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화사가 출수하지 않는 한, 네가 없는 장천장성을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이냐?”
이때, 미앙천이 들고 있던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더니, 노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무려 천 장 밖으로 밀려났다.
미앙천은 더 이상 출수하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눈빛으로 오른편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내 뒤로 돌아 장내를 떠나갔다.
잠시 후, 그녀의 시선이 머물러 있던 곳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대단하군, 대단해!”
그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공간이 열리더니, 검은색 화염으로 몸을 뒤덮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미앙궁주인가?”
“그렇습니다!”
그의 말에 노인이 재빨리 다가와 대답했다.
“확실히 강하긴 강하구나.”
“바로 출수하시겠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영허성궁에 기별을 넣어 두었다. 답변을 받을 때까진 기다리도록 한다.”
남자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금쯤이면 우리 사람들이 그곳에 도착했겠구나.”
* * *
미앙성역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성공 깊은 곳, 영허성궁 궁주가 자신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엽현?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보물은 바로 엽현에게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대답하는 남자.
순간 궁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어두워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나는 오래 살고 싶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