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58
458화 생사를 결정짓자!
장창을 든 남자가 천천히 엽현 앞으로 다가갔다. 엽현 앞에 다가온 그가 막 출수하려는 순간, 엽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잠깐! 좀 쉬었다 하자!”
“…….”
남자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쉬, 쉰다고?”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방금 이역의 초절정 고수와 싸운 것을 보지 못한 건가? 설마 지친 사람을 상대로 치사하게 계속해서 덤비려는 건 아니겠지?”
“나, 나 야계(夜季)는 결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
“아니면 됐고. 그럼 난 간다!”
엽현이 그대로 돌아서더니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버렸다.
“……”
순간 장내 무인들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야계 역시 엽현이 이렇게 가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이때, 우두커니 서 있는 야계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으니, 바로 주생생이었다.
주생생이 야계를 훑어보며 손에 쥔 창을 빙글빙글 돌렸다.
“나도 창을 쓰고 그대도 창을 쓰니 해볼 만하지 않는가?”
“그거 흥미롭군.”
야계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생생이 씩 웃으며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시끄러워진 장내.
이를 지켜보던 좌청이 막사를 향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막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치자!”
그 말과 동시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천살과 지살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바로 이때, 성벽 위에 서 있던 무인 중 둘이 나와 천살과 지살을 마중했다.
이렇게 양측 진영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엽현은 계옥탑 안에 앉아 미친 듯이 자원정을 흡수하고 있었다.
제견 역시 계옥탑으로 들어가 앞서 집어삼킨 요수들을 차분히 소화시켰다.
모두가 바쁜 와중에 가장 한가한 것은 역시나 소령이었다. 영과 나무를 돌보는 것이 소령의 일과였다. 계옥탑 삼 층과 사 층은 이미 영과 나무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삼 층은 원래 사람이 없었고, 사층에 있던 간자재마저 떠났으니 이 두 개의 층은 소령의 차지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 층 존재였다. 그녀는 사 층에 물을 주러 갈 때마다, 매우 민첩하게 일을 마치고 냅다 도망치곤 했다.
소령은 엽현이 상처를 돌보는 것을 보자 살금살금 다가와 턱을 괴고 그를 지켜보았다.
한 시진 후, 엽현이 기력을 완전히 회복하자, 소령이 그의 앞에 얼른 얼굴을 디밀었다.
엽현이 소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 층 존재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소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아!”
“하하, 우리 소령이가 역시 담이 크구나!”
소령이가 엽현을 향해 눈을 깜박거리더니, 어디선가 붉은 과일 하나를 가져왔다.
“이거 먹어!”
그 말에 엽현이 과일을 살펴보았다. 짙은 향을 뿜어내는 투명한 과일은 겉보기에도 평범한 물건은 아닌 듯했다.
과일을 받아 든 엽현이 그대로 한 입 베어 물자, 달고 아삭아삭한 느낌이 기분 좋게 전달됐다.
순간, 어떤 청아한 기운이 그의 몸 안으로 들어오더니, 체내 구석구석에 자연스레 흡수됐다.
‘굉장한 영과다!’
과일의 효능에 감탄한 엽현이 소령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소령아!”
소령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헤헤’ 웃고는 영과 몇 개를 챙겨 이 층으로 올라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령은 엽현과 이 층 존재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던 것이다.
영과를 모두 소화한 엽현은 제견 곁으로 다가왔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제견의 몸에서는 강대한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를 본 엽현은 제견이 곧 경지를 돌파할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이역 땅에서 배 터지게 요수를 집어삼킨 보람이 있던 것이다.
이역.
이역에서의 일을 떠올린 엽현은 곧장 품 안을 뒤져 납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역에서 얻은 물건들이 담긴 납계였다.
사실 그가 얻은 물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계 보물 몇 점, 그리고 자원정 삼천만 개가 전부였다.
비록 살짝 실망한 엽현이었으나, 어찌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본래 가장 귀한 보물은 장롱 속이 아닌, 품 안에 지니고 다니기 마련이니까. 어쨌거나, 수확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실 최근 엽현은 치료 목적이나 경지를 돌파하기 위해 수많은 자원정을 소모해야 했으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엽현은 집중하는 제견을 놔두고서 계옥탑을 나서려 했다.
바로 이때, 이 층 존재의 음성이 들려왔다.
[올라와!]엽현이 이 층을 흘끔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계옥탑 이 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을 마주한 이 층 존재가 입을 열었다.
“길어야 이주다.”
“이주? 그게 무슨 말이야?”
엽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말은… 오 층 녀석이 나올 때까지 최대 이주가 남았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자 엽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네가 그놈을 막을 순 없어!?”
이 층 존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간자재가 돌아온다 해도 막을 수 없다.”
“거짓말!”
일 층에 있던 제견이 돌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 층에 도대체 어떤 놈이 있기에 그녀마저 막지 못한다는 건가?”
제견이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하자, 이 층 존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대꾸했다.
“네가 아직 그자에 대해 몰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흥! 너 역시 우리 신족에 대해 모르지 않느냐!”
바로 이때, 이 층 존재가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쿵! 퍽! 쾅! 켁! 흡!
이 층에서 들려오는 제견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견이 아무리 강하다 하지만, 결국 이 층 존재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계옥탑에 갇힌 존재들은 모두 초월적인 존재들이었다. 이 층 존재가 비록 간자재보단 약하다고는 하지만, 신족의 수문장 정도는 복날 개 패듯 패버릴 수 있었다.
잠시 후, 비명 소리가 잠잠해지고 이 층 존재가 손목을 털며 엽현 앞에 나타났다.
“무슨 문제 있어?”
이 층 존재의 질문에 엽현이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다행히 엽현은 이 층 존재의 성깔이 간자재보다 결코 아래가 아님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때 이 층 존재가 엽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이주, 그 안에 도칙을 찾던가, 검이 그녀를 데려오던가 둘 중 하나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유서라도 써 놓던가.”
“…내게 정말 조금의 승산도 없는 건가?”
“승산? 상대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너는 죽는다.”
“최악의 경우 놈과 함께 동귀어진하는 수도 있어!”
“뭐, 계옥탑을 폭파시키기라도 하려고?”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층 존재가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탑을 폭파시킨다는 거냐? 네가 백날 탑을 두들긴다고 하더라도, 탑엔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을.”
“그렇다면 결국 내가 죽어야 이 빌어먹을 굴레도 끝난다는 말이지?”
“글쎄, 그럴지도.”
“젠장! 그럼 나 역시 탑을 다른 놈에게 줘 버릴 수밖에 없다!”
“후… 인간아, 인간아.”
“…….”
“정말로 너의 운명을 다른 사람 손에 넘길 생각이냐?”
이 층 존재가 고개를 흔들며 묻자, 엽현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어차피 이 주 후엔 오 층 녀석한테 맞아 죽을 운명인데!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놈이 나올 때에 맞춰 육 층, 칠 층 녀석들도 꺼내서 모두 신명 나게 한판 벌여 보자고!”
“…….”
이 층 존재가 멍하니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엽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난 진심으로 말하는 거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 앞에서 엽현이 선택한 것은 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음가짐이었다.
어쨌든 죽게 된다면 혼자 죽을 순 없지 않은가!
적어도 지금은 상대를 이길 수 없으니…….
이때 이 층 존재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이제 나가 봐.”
엽현 역시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을 섞지 않고 등을 돌렸다. 이 층 문 앞에 다다른 엽현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 층 주민, 너는 지금까지 충분히 많이 도와줬다. 그러니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언제든 떠나도 상관없어. 진심이야.”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계옥탑을 빠져 나갔다.
말은 다소 차갑게 하긴 했지만, 엽현은 항상 이 층 존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그녀에게 번번이 신세를 졌던 엽현은 차마 오 층 존재와 맞서 싸워 달라고 할 면목이 없던 것이다. 오 층 존재의 목표는 오직 엽현과 탑이었다. 그러니 이 층 존재가 일단 탑에서 떠나기만 하면 오 층 존재는 굳이 그를 찾아가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될 대로 되라지, 기껏해야 죽기 밖에 더하겠어?’
계옥탑을 빠져나온 엽현은 탑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둔 채, 장천장성으로 복귀했다. 성 아래쪽에는 야계와 주생생이 여전히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같은 창을 사용하는 무인들답게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천살과 지살이 미앙성역의 다른 두 무인과 겨루는 중이었다.
두 무인은 엽현이 아는 얼굴들은 아니었다. 단지, 한눈에 봐도 무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지살과 천살을 상대로는 수비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승부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엽현은 막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엽현은 그에게서 깊이를 파악할 수 없는 바다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기운은 전대 고인들이나 풍길 수 있다는 점에서 엽현은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낀 막사가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발견하곤 싱긋 웃어 보였다.
이때, 그의 곁에 있던 붉은 머리 여인이 엽현 쪽으로 한 발 내디뎠다.
“가서 저자와 한 번 붙어봐야겠어!”
“아봉!”
막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부르자 아봉이 걸음을 멈추고 막사를 쳐다보았다.
“왜, 내가 질 것 같아?”
막사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너의 적수가 있다. 저자는 좌청이 맡을 것이다.”
막사가 좌청을 바라보자, 좌청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엽현에게로 다가갔다.
“흥! 그냥 내가 하게 두면 안 돼? 난 정말 저놈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아봉, 개인적인 감정은 잠시 접어두거라. 지금은 대국(大局)이 우선이다.”
대국(大局)!
그 말에 아봉이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한편, 좌청은 이미 엽현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도착해 있었다. 좌청의 얼굴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지난번엔 비겼던가?”
“아마도!”
좌청의 질문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번에는 확실하게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승부를 보고 싶군!”
말이 끝남과 동시에 좌청이 오른손을 천천히 감아쥐었다. 찰나의 순간, 천지 사이의 무수한 영기가 그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보던 엽현의 얼굴에 흉흉한 미소가 드리웠다.
“승패를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번에는 생사를 결정 지어 보자!”
엽현의 말이 끝난 순간, 한 줄기 검명 소리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구름을 뚫고 하늘 끝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