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죽고 싶으면 어디 내려가 봐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 주먹으로 산치기였다.
살다보면 상상도 하지 못하던 것들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엽현에겐 지금이 바로 그 때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엽현은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산을 부수지 못하면 창란학원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엽현은 동생을 위해서라도 창란학원에 꼭 남아있어야 했다.
기 원장은 엽령을 치료해 줄 능력이 있었다. 끝을 할 수 없는 기 원장의 실력 또한 그가 남아야 할 이유였다. 아무 의지할 곳이 없는 엽령 남매에겐 기 원장의 비호가 필요했다.
그러니 반드시 이 곳에 남아야 했다!
그는 엽령을 위해서라면 산 하나, 아니 열 개라도 부술 수 있었다!
산에 주먹질을 하고 있는 엽현을 보며 기안지가 말했다.
“저들을 여기에 둬서는 안 돼요.”
“지금 내 보내면 저놈들은 창목학원 놈들에게 죽는다.”
“그러게 애초에 왜 저들을 데려오셨어요?”
“그래, 저들은 이 곳에 오게 되면서 창목학원과의 일 전을 피할 수 없겠지.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저들에게도 하나의 기회가 생긴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저 놈들 하나하나는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했을 것이야.”
기안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기 원장이 엽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이유로 이 곳에 왔던 지간에 저들은 지금 모두 창란학원의 학생이다. 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을 마친 기 원장이 기안지를 남겨두고서 걸어갔다. 그러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발이 꼬여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술에 만취한 상태였던 것이다.
기안지는 그를 부축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미 습관이 된 것이다.
그녀가 산을 때리고 있는 엽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미친 듯이 주먹질을 하곤 있지만 산은 당연하게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반면 그의 주먹은 이미 피로 물들어있었다.
기안지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
기 원장의 말대로 창란학원의 학생이 된 이상, 강해지지 않으면 창산에 시체로 걸릴 수밖에 없다.
깊은 밤, 여전히 주먹질을 하던 엽현이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천녀님, 이 방법이 효과가 있습니까?”
천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엽현이 그 후로도 두어 번 질문을 했지만 천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엽현은 아팠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무 아팠다.
금신경을 수련했기에 엽현은 확실히 남들보다 몇 배로 튼튼한 육체를 갖고 있긴 했다. 그것이 무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파도 참고 했다. 단순히 창란학원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함은 아니었다. 원장이 이런 일을 시키는 데는 필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때리다 보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엽현은 산을 때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윽고 아침 해가 밝아왔다. 엽현은 주먹질을 멈췄다. 그때, 기 원장이 나타나 그의 앞에 한 보따리의 약초를 던져 놓았다.
“잘 으깨서 주먹과 팔에 골고루 바르거라!”
달랑 그 한 마디만 남겨놓고 기 원장은 사라졌다.
엽현은 그의 말대로 약초를 잘 으깨서 그의 팔에 발랐다. 그런데 약초가 팔에 닿자마자 그는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앗, 따가워!!!”
엽현은 마치 팔에 뜨겁게 달궈진 쇠를 올려놓은 것처럼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현은 억지로 약초를 발라갔다.
왜냐하면 조금씩 상처가 아물어 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 고통은 엽현에게 별 게 아니었다.
그가 숨겨진 경지를 수련할 때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가! 엽현은 그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잠시 후, 엽현은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팔은 마치 타들어 가는 강철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그는 그렇게 다시 산을 향해 걸어갔다.
퍽, 쿵, 쾅!
산을 울리는 격파음은 점심 때까지 계속 됐다.
밥 할 시간!
이 곳에서 요리는 엽현에게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엽현이 식사 준비를 위해 폭포에 몸을 씻으러 갔다. 그때 폭포 아래에서 사람의 형상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백택이었다.
백택의 상반신은 이미 껍질이 다 벗겨져 있어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광경이었다.
암석 위로 겨우 헤엄쳐 온 백택이 엽현을 향해 약봉지를 하나 던졌다.
“조, 좀 발라줘…….”
엽현은 약봉지 안에 있는 약초를 으깬 후 백택의 상반신에 슥슥 발랐다.
백택은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그의 온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엽현은 백택의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것을 보았다.
“이 약, 잘 듣네!”
백택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당연하지! 한 개에 금화 오십 개짜리 우령초(優靈草)니깐!”
“지, 진짜?”
“거짓말 아니야!”
엽현이 동작을 멈추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엔 아직 바르다 만 약초가 들려 있었다.
“그럼 남은 거 가져가서 팔아볼까?”
“…농담 하지마…….”
“수익을 반씩 나누면 되잖아?”
“빨리 바르기나 해…….”
“알았다. 칠할을 주마!”
“죽여줘?”
“…….”
잠시 후 엽현과 백택은 창란전으로 돌아갔다. 계단 입구에 뭔가 시커먼 것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묵운기였다.
땅을 보고 만세를 부르고 있는 그의 전신에서는 끊임없이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젯밤 내내 마랑을 피해서 달아나야 했던 것이다. 그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뛰어다녔다.
엽현이 묵운기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반 시진 후, 식당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엽령이 음식을 내려놓자 묵운기와 백택은 정신없이 쓸어 담기 시작했다. 엽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밤을 꼴딱 샌 수련 후에 오는 것은 고단함과 배고픔이었다!
엽현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입에 담는 모습을 보자 엽령은 마음이 아파왔다. 엽현의 그릇에 국을 덜어 준 엽령이 엽현의 등을 어루만져 주며 말했다.
“오빠, 천천히 먹어, 체할라….”
이 장면을 바라보던 묵운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여동생들은 다 저렇게 착한데 왜 내 여동생은…, 에휴…….”
묵운기가 말을 잇지 못하고 접시에 고개를 묻었다.
이때, 기 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이후로는 함부로 산을 내려가선 안 된다!”
말을 마친 기 원장이 문을 향해 걸어갔다.
“왜 안 됩니까?”
묵운기의 물음에 기 원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죽고 싶으면 어디 내려가 봐!”
이때, 젓가락을 핥고 있던 기안기가 말했다.
“산 아래에 창목학원 놈들이 죽치고 있어. 너희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묵운기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놈들 하나도 안 무섭다!”
“하나는 요행으로 이길 수 있다 쳐자. 열이 덤비면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번에 온 놈은 내원(内院)의 제자들이야. 어쨌든, 창목학원을 가볍게 보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거야.
지난번엔 너희 실력을 얕잡아 봤다가 큰코다쳤지만 이번에도 그럴까? 분명 더 강한 놈들이 대기하고 있겠지.
물론 산에서 수련만 하는 게 지루하면 내려가서 한바탕 해도 되고!”
기안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을 향했다.
왜냐하면 엽현은 그녀를 위해 항상 주방에 음식을 남겨놓기 때문이었다.
식사 후 엽현은 옷을 갈아입고서 다시 뒷산으로 향했다.
백택 역시 폭포로 돌아갔다.
묵운기? 물론 그 역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마랑의 격렬한 환영을 받으며.
“으아아악-!”
산을 치는 엽현의 주먹에는 전의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산이 조금씩 패여 갈 때 쯤 그는 전의가 점점 강해져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붕권의 위력 역시 한층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에, 엽현은 마음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이런 수련 방식이 효과가 있을 줄이야! 엽현은 매 주먹마다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원장님이 허튼 일을 시킨 건 아니었구먼’
이렇게 그들은 며칠이고 계속해서 수련을 반복 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무공은 점차 무르익어갔다.
그들이 수련하고 있을 때 창목학원의 제자들도 매일 같이 창란학원의 산길을 방문하고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들은 엽현 일행이 결코 하산할 마음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그들은 아예 창란학원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면도전을 하려는 태세였다.
선두에 있는 자는 비단 옷을 입은 이십 대 남자였다. 큰 덩치에, 허리에는 두 자루의 단도를 차고 있었다.
그는 바로 창목학원 외원(外院)의 삼대천재 중 하나인 진염(陳琰)이었다!
그의 뒤로 예닐곱 명의 창목학원 학생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모두 어기경 절정의 경지였다. 중후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그들은 외원의 정예들이라 할 수 있었다.
진염의 곁으로 한 무인이 다가왔다.
“진염님, 그들 세 명의 실력은 약하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검수인 엽현은 안 국사마저 높이 평가하는 인물이라니, 방심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진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좌립은 방심하다가 변을 당했지. 상대가 창란학원 학생이었던 만큼, 나 역시 얕잡아 봤을 것이다. 좌립의 죽음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라 할 수 있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상대를 얕보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창목학원 역시 천년의 역사를 가진 뿌리 깊은 학원이었다. 그 곳에서 배출되는 제자들의 실력은 당연히 출중했다.
어느덧, 진염 일행은 창란전 앞까지 도달했다.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온 것은 그 앞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여자 아이!
바로 엽령이었다.
엽령은 웬 무인들이 나타나자 그대로 빨래를 내팽개치고서 기 원장의 숙소까지 뛰어 갔다.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그의 몸에선 언제나와 같이 술 냄새가 진동했다.
엽령의 그를 흔들며 소리쳤다.
“할아버지! 일어나세요! 그들이 쳐들어왔어요!”
그러나 기 원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혀 당황하지도 않았다. 마치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이때, 진염 등이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엽령은 겁에 질려 기 원장의 뒤로 숨었다.
진염이 여전히 비몽사몽 누워있는 기 원장을 향해 예를 차리며 말했다.
“창목학원 외원의 진염이라 합니다. 창란학원 학생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 왔습니다.”
순간, 진염의 눈이 번뜩였다.
“목숨을 걸고 말입니다.”
생사도전!
현재 황성의 모든 이들이 창목학원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좌립의 복수를 하지 못하고 이대로 넘어간다면 창목학원의 명성은 추락할 것이다. 반대로 창란학원의 이름은 높이 치솟을 것이 분명했다.
오랜 세월동안 창목학원은 창란학원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이번 치욕에 대해서 복수를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세대의 학생들은 창목학원의 치부로 남고 말 것이다
기 원장이 실눈을 뜨고 그들을 지켜봤다. 그러고는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드러누었다.
“뒷산으로 가봐.”
그 말을 들은 진염 일행은 기 원장에게 예를 갖춘 후 재빠르게 뒷산으로 이동했다.
창란학원 대 창목학원. 생사를 건 대전.
오늘이 지나면 한쪽 학원의 학생들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창란산 전체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