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64
464화 싸우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꼽추 노인에게 가로막히자 미앙천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미앙 궁주, 애들 싸움에 우리 같은 어른이 끼어들어서야 쓰겠소?”
노인의 말에 미앙천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출수하려는 순간, 갑자기 손을 멈추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노인 역시 무언가를 느낀 듯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엽현 주위의 공간은 분명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엽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엽현을 중심으로 왜곡됐던 공간이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순간, 노인의 눈가가 살며시 흔들렸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미앙천 역시 스스로를 향해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공간.
이때 엽현은 공간도칙을 사용한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공간지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역경의 수행을 거친 후, 공간지력에 대한 그의 이해는 크게 상승해 있었다. 그렇기에 엽현 역시 막사와 마찬가지로 강대한 공간지력을 확보해 상대의 공간지력에 대항할 수 있던 것이다.
공간이 점점 회복할수록, 막사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져갔다.
그리고 잠시 후, 철저하게 뒤틀려가던 공간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막사는 엽현을 향해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정말 의외로군. 공간의 운용 능력이 이 정도에 달하다니.”
공간지력을 거둬들인 엽현이 검을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까도 말했지만… 싸우는데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엽현이 갑자기 발을 강하게 굴렀다.
쾅-!
순간 지면이 박살나는 동시에 엽현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뻗어 나갔다.
막사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정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둘 사이의 공간이 다시 한번 세차게 요동쳤다.
바로 이때, 엽현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되더니, 한 줄기 검광이 막사에게로 떨어졌다.
막사가 다시 주먹을 뻗어 대응하려 했으나, 황급히 공격을 멈추고 십 장 밖으로 물러났다.
방금 전의 공격 역시 일검정혼이었다. 막사는 일검정혼을 정면으로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영혼을 노리는 일검정혼 앞에 그의 천지법신은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한 번의 후퇴는 엽현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막사가 막 걸음을 멈춘 순간, 몇 개의 검광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엽현 자신 역시 그의 정면으로 달려들어 날카롭게 검을 찔러 넣었다.
막사의 미간을 노리는 엽현의 검.
다시 한번 일검정혼!
막사가 이번에는 물러나는 대신 양손을 합쳐 검 날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어깨로 엽현의 몸통을 들이박았다.
퍽!
미끄러지듯 뒷걸음질 치는 엽현.
막사가 여세를 몰아 추격하려는 순간, 두 줄기 검광이 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퍼퍽-!
두 개의 검광이 막사의 손에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막사 역시 주춤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이때 막사 앞에 나타난 엽현이 상대의 목을 향해 영선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검이 목에 닿기 직전, 막사의 주먹이 먼저 엽현의 복부를 강타했다.
퍽-!
엽현이 성벽 바로 밑까지 주르륵 밀려나고 말았다.
막사가 연이어 몰아붙이려 할 때, 몇 줄기 검광이 어지럽게 날아들어 그의 발을 묶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검광을 쳐낸 막사는 빛과 같은 속도로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엽현이 황급히 오른발을 빼며 몸을 비트는 순간, 막사의 발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쾅-!
엽현 뒤에 있던 성벽이 크게 갈라져 나갔다. 하지만 진법의 보호를 받는 성벽은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복구됐다.
뒤이어 막사의 빈틈을 노린 검이 주저 없이 그의 복부로 향했다.
퍽-!
막사의 단단한 육체에 가로막힌 검이 크게 휘어졌다. 막사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엽현의 머리를 향해 직선으로 주먹을 뻗었다. 엽현이 허리를 뒤로 젖혀 공격을 흘려낸 순간, 몇 줄기 검광이 막사의 목과 미간 등으로 날아들었다.
퍼퍼퍼퍽……
검광은 모두 막혔으나, 막사 역시 십여 장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도 잠시, 막사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몸을 날렸다.
엽현 역시 물러날 마음은 없었다.
엽현이 양손으로 검을 단단히 잡고는 사선으로 힘껏 내리쳤다.
일검정혼(一劍定魂)!
이에 막 엽현의 앞에 도달한 막사가 다급히 뒤로 신형을 물렸다. 이 한 번의 후퇴로 둘 사이의 간격은 순식간에 삼십여 장으로 벌어졌다.
막사는 일검정혼을 정면으로 받아칠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그의 빠른 움직임은 엽현의 검을 피해내기에 충분했다.
엽현이 검을 들고서 천천히 막사를 향해 발을 뗐다. 그는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답답한 상태였다.
막사. 그는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 본 무인들 중 단연코 가장 강한 자였다. 일검정혼이 그를 상대할 유일한 검기였지만, 상대의 빠른 속도 앞에는 별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나마 일검정혼도 없었더라면,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소모가 큰 일검정혼을 무한대로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엽현이 기회를 얻으려면, 어떻게든 상대가 정면승부를 하도록 유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둘 사이의 거리가 십여 장 남은 상황.
엽현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폭발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막사 역시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내 두 사람은 또다시 하나로 뒤엉켜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는 미앙천. 반면 꼽추 노인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애당초 쉽게 승부가 갈릴 줄 알았건만, 이렇게 대등한 상황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노인의 눈에 비친 엽현은 어쩐지 점점 더 강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엽현과 막사의 전투는 근접전 양상으로 전환됐다.
막사의 육신은 가히 무적이라 할 정도로 단단했고, 그 속도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빨랐다.
반면 엽현은 상대의 허점을 골라 집요하게 공략했다. 특히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그의 비검들이 나타날 때면, 제아무리 막사라 할지라도 수비에 집중해야만 했다.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수많은 비검들. 이를 보는 무인들은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만약 막사의 천지법신 정도 되는 비술을 수련하지 않은 무인이라면 결코 엽현과의 근접전을 견뎌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만큼 지근거리에서의 엽현은 굉장히 날카롭고 매서웠다.
쾅-!
거대한 폭발음이 흘러나오며, 두 사람이 순간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 순간에도 엽현의 비검들은 여지없이 막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막사가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 비검들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순간 장내에 여러 차례 폭음이 울려 퍼졌다.
막사가 검광들을 모두 쳐낸 순간, 엽현은 어느새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때, 막사가 회심의 일격을 엽현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일 권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 엽현의 검 끝 역시 막사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일검정혼!
막사는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엽현 역시 자신의 가슴으로 향하는 주먹을 보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이번 일 합으로 승부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언제까지 엽현의 검을 피할 수만은 없었다. 이번에도 피한다면 점점 엽현을 죽일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엽현 역시 막사의 주먹을 피하는 순간, 그다음 공격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전투에서 상대의 기세에 밀리는 것은 곧 패배를 의미하기에 더더욱 피할 수 없었다.
절제절명의 순간. 무인들은 이제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일 합.
이번 일 합으로 어쩌면 승부가 갈리리라!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엽현의 검이 마침내 막사의 목에 닿았다. 순간 막사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었다. 일검정혼에 가격당한 그의 영혼이 땅에 박힌 듯 고정돼 버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막사의 영혼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이 막사를 가격한 순간, 막사의 주먹 역시 이미 엽현의 복부를 강타한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엽현이 마치 활처럼 굽어져 뒤로 날아갔다.
푸확-!
엽현의 전신 곳곳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 갈라지며 엄청난 붉은 선혈을 쏟아냈다.
이윽고 엽현의 신형이 성벽에 크게 부딪혔다.
쾅-!
장내가 지진이라도 난 듯 요란하게 흔들리며, 성벽이 크게 갈라져 나갔다.
성벽 아래로 떨어진 엽현은 그대로 축 늘어졌고, 그의 상처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순식간에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순간 엽현은 오장육부를 포함한 자신의 몸 전체가 완전히 박살 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억지로 움직여보려 했으나,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점점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 엽현.
그 와중에 머릿속에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엽령, 안란수, 묵운기, 강구, 백택…….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
안 돼!
이 순간, 반쯤 혼절해 있던 엽현이 돌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자원정을 한 뭉텅이 꺼내 들고는 미친 듯이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아직 더 살고 싶어!’
마음 한구석에 있던 생에 대한 의지.
이것이 죽음이 임박했던 그를 억지로 깨우고 있던 것이었다.
엽현이 입술을 깨물더니, 젖 먹던 힘까지 탈탈 털어 주먹에 힘을 주었다.
‘살아남아야 해! 나를 위해서, 령이를 위해서!’
한편, 막사의 영혼은 천천히 소멸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손안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그의 영혼은 계속해서 희미해져만 갔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완전히 소멸될 것이 분명하다.
영혼의 소멸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정적이 흐르는 장내.
모두의 시선은 바로 막사와 엽현, 두 천재에게로 향해 있다.
이때, 백 선생이 공중의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걸었다.
“이쯤에서 끝내는 게 어떻겠소? 피차 양쪽 모두 출혈이 심각한 상태니.”
백 선생의 말에 노인이 막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영혼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막사를 보자, 노인의 눈빛에 순간 잔물결이 일었다.
이대로 마가족의 미래를 잃을 것인가?
짧은 시간. 하지만 영겁처럼 느껴진 시간이 지난 후, 노인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대로 막사를 잃는 것은 마가족에게 큰 손해였던 것이다.
바로 이때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울려 퍼진 음성에, 모두가 막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의 막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지만, 엽현을 향해 고정된 시선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때, 막사의 바로 옆 공간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은 생명체 하나가 튀어 나왔다.
흑기린이었다.
흑기린의 등장에 백 선생 등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 요수는 내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이니, 결코 규칙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막사가 엽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