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68
468화 오지 않으면 내가 간다!
조심스레 연만리를 벽에 기대어 놓은 엽현.
죽은 듯 축 늘어져 있는 연만리를 보자 엽현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갔다.
청성에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적들이 그의 목숨을 노렸던가. 이들의 공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하나가 죽으면 또 다른 하나가 곧바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매번 고통을 받는 것은 친구들과 동생 엽령이었다. 엽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진 연만리를 보며 가슴이 찢어짐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귀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엽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잘 보고 계시오. 내가 분풀이를 해줄 테니!”
연만리 입가의 피를 닦아낸 엽현이 거인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거인의 주먹이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부웅-!
거대한 주먹이 공간을 가르자 장내가 넘실넘실 춤을 췄다.
엽현은 주먹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삼장, 이장, 일장……
이때, 비로소 엽현의 검이 빛을 머금고 번뜩였다.
윙-
시간이 멈춘 듯 검과 권이 서로에게 닿는 순간,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쾅-!
산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인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이와 동시에 돌로 이루어진 거인의 주먹에 균열이 일었다.
엽현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차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오른손을 상하게 한 분노였을까. 거인이 괴성을 지르며 왼손을 힘껏 휘둘렀다.
손바닥 안에 휩쓸리는 공간이 그대로 뜯겨져 나갔다.
이때, 엽현이 양손으로 검을 잡고서 크게 내리쳤다.
퍽-!
거인의 팔뚝이 순식간에 잘려나감과 동시에, 몇 줄기 검광이 거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검광은 거인의 단단한 육체를 뚫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시간벌기용일 뿐. 거인이 비검에 정신이 팔린 순간, 엽현의 검은 어느새 상대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서걱-!
순간 거인의 목이 매끈하게 잘려나갔다.
이와 동시에, 지면에 추락한 엽현이 입으로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다.
앞서 막사와의 일전에서 죽을 위기까지 갔던 엽현이었다. 아무리 자원정으로 기운을 회복했더라도 완전한 몸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해!’
엽현은 기어서 연만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때, 정신을 차린 연만리가 엽현을 향해 물었다.
“방금 전 그대의 검… 왜 평소보다 강해진 것이오?”
일검정생사.
엽현이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검정생사는 그의 분노와 관련 있는 검기였다. 화가 난 상태에서 사용하면 상상도 못 한 위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평소 상황에선 그저 평범한 위력에 불과하니, 엽현은 매우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엽현!”
바로 이때, 공중에서 제견의 음성이 들려왔다.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들자 제견과 흑기린이 수많은 요수들에 포위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제견과 흑기린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쪽수 앞에 장사 없는 법!
이때, 제견이 짐짓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자식아! 뭘 보고만 있어! 빨리 와서 도와줘!”
제견의 다급함에 왠지 웃음이 터져 나온 엽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연만리를 향해 말했다.
“이대로는 위험하니, 일단 그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겠소.”
엽현은 연만리를 계옥탑 안에 넣어 두고서, 곧장 요수들을 향해 솟구쳤다.
같은 시각, 계옥탑 안.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탑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연만리. 이때, 그녀의 앞에 소령이 나타났다. 그 순간 연만리의 눈이 반짝였다.
“어머 얘, 너 귀엽다!”
“…….”
엽현이 가세하고 나서는 장내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비검이 날아오를 때마다 요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한편, 거인과 상대하고도 살아남은 엽현을 보자, 신법사 우두머리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이때, 미앙천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화들짝 놀란 신법사가 양손을 뻗자, 그의 몸 주변에 맴돌던 화염이 파도처럼 미앙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쾅-!
미앙천의 주먹에 화염이 소멸된 순간,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 둘이 위기에 빠진 신법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앙천을 앞에 두고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
미앙천의 실력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만약 그녀의 몸 상태가 정상이었더라면 그들이 감당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마가족 꼽추 노인 역시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우주사선을 막아내고 있었는데, 만약 그가 아니었더라면 미앙천이 이렇게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 두 노인이 잠시 시선을 교환하더니, 신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언생(言生), 아직도 결정하지 못한 것이오?”
한 노인이 우두머리로 보이는 신법사에게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언생이라는 노인이 마침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지비술을 사용한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여섯 사람이 동시에 수인을 맺고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들 앞에 거대하고 붉은 법진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멀리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미앙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 순간, 법진 중앙에서 붉고 거대한 눈알 하나가 나타났다. 거대한 눈이 미앙천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기둥처럼 두꺼운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갔다.
모든 공간을 검게 그을리며 날아오는 붉은 광선!
이때, 미앙천이 손바닥을 뻗어 가볍게 회전시켰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에서 강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쾅-!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장내 무인들의 고막을 뒤흔들어 놓는 순간, 미앙천의 신형이 족히 천 장 밖으로 밀려났다.
이때, 두 흑의 노인이 미앙천을 향해 출수하려 했으나, 언생이 그들을 막았다.
“먼저 엽현부터 해결하시오!”
두 노인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엽현의 보물을 빼앗은 것이었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두 사람이 아래쪽의 엽현을 향해 빛처럼 날아갔다.
아래쪽,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두 줄기 신형을 발견한 엽현이 황급히 출수를 준비했다.
그 순간, 거대한 붉은 낫 하나가 두 노인을 향해 솟구쳤다.
아귀!
아귀가 달려드는 것을 본 한 노인이 일 장을 뻗어냈다.
쾅-!
공간의 변형이 일으키며 떨어진 장력이 아귀를 밑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이때 아귀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한 노인의 목에 낫을 걸었다.
쉭-!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
하지만 노인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이때, 아귀가 자신의 측면을 향해 낫을 내리쳤다.
쾅-!
아귀가 다시 한번 튕겨 나가는 순간, 자신을 공격한 그림자를 향해 낫을 날렸다.
쾅-!
노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의 가슴엔 기다란 혈흔이 생겨나 있었다.
이를 확인한 노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때 아귀가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도망쳐!”
엽현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두 노인은 이미 엽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에 아귀가 황급히 낫을 들고 몸을 날렸다.
엽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검을 들고 솟구쳤다.
쉭-!
한 줄기 검광이 공간을 뚫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검광은 이내 산산이 흩어지고, 오히려 그의 앞에 나타난 흑의 노인이 엽현에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주먹에 닿기도 전에 엽현이 서 있던 공간이 거미줄처럼 갈라져 나갔다.
엽현이 입술을 깨물며 들고 있던 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눈부신 검광이 뿜어져 나왔지만, 이것도 잠시, 노인의 일 권 앞에 엽현과 검광 모두 튕겨져 날아갔다.
엽현이 아직 멈춰 서기도 전, 그의 앞에 나타난 노인이 다시 일 장을 날렸다.
엽현이 무너진 자세에도 검을 쭉 뻗어냈다.
퍽-!
엽현이 그대로 지면으로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이 순간, 노인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눈동자는 급격히 커지고 얼굴은 경악에 물들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 그의 눈빛이 점차 사그라지더니 순식간에 그 빛을 잃었다.
정혼(定魂)!
엽현의 검은 이미 노인의 영혼을 베고 지나갔던 것이다.
이때 추락한 엽현이 검에 의지한 채, 부들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 있을 힘도 없는 그는 입과 가슴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엽현은 처음부터 정면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인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린 후, 진혼검으로 기습을 가했던 것이다.
물론 진혼검과 일검정혼의 힘이 동시에 펼쳐지지 않았더라면, 상대의 영혼을 묶어 놓기에는 한참 부족했을 것이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실패했더라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엽현의 상태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방금의 격돌 이후, 그는 몸 전체가 텅텅 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소혼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역시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이때, 소혼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 진혼검으로 방금전의 검기는 다시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만 좀 쉬도록 하겠습니다…….]이를 마지막으로 소혼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러자 엽현의 안색이 다소 어둡게 변했다. 진혼검과 일검정혼의 조합은 매우 강력했으나, 엽현과 소혼 둘 모두에게 심각한 소모를 야기했던 것이다.
사실 엽현은 아직 진혼검을 완전히 다룰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진혼검을 사용할 때마다 소혼이 나서 그 부족분을 자신의 영기로 채워야 했으니, 소혼이 지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바로 이때, 아귀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아귀를 튕겨낸 흑의 노인이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더니, 엽현에게 크게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
엽현이 침묵하자 성이 난 노인이 곧바로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쥐고 있던 진혼검을 노인을 향해 치켜들었다.
“장난은 여기까지. 이 검이 떨어지는 순간 너도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엽현의 협박에 노인이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은 완전히 엽현의 진혼검에 고정된 상태.
검을 보는 노인의 눈가가 순간 파르르 떨려왔다.
“조화경의 신물!”
“훗, 늙어서 그런지 안목이 꽤나 좋군.”
엽현이 여유롭게 미소를 드러냈다.
“불가능하다! 아무리 조화경의 신물이라 한들 단 한 번에 그를 죽일 수는 없는 법이다! 도대체 무슨 암수를 쓴 것이냐!”
그 말에 엽현이 오히려 더욱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는 암수 따윈 쓸 줄 모른다. 어서 덤비기나 해라!”
“흥! 내가 네 검은 속을 모를 줄 알고?”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지!”
그러자 엽현이 분한 기색을 드러내며 검을 들고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깜짝 놀란 노인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엽현과 백 장가량 거리를 벌렸다.
엽현은 곧바로 이를 추격하려 했으나, 이내 제자리에 멈춰 섰다.
흥분한 나머지 자기가 상대방보다 훨씬 약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흑의 노인은 엽현을 향해 끊임없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때, 공중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언생이 화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뭐 하고 있는 것이오? 어서 죽이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