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73
473화 일단은 가지고 있자
장천장성, 엽현의 숙소.
방으로 돌아온 엽현은 마가검을 계옥탑에 던져 놓고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죽겠다…….’
엽현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일 힘도 없었다.
조금 전 마가검을 휘두를 때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끊임없이 전신을 채우는 기운 덕에 영원히 지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요물.
마가검이 주는 유혹은 대단히 위험했다.
검을 곧바로 던져버린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잘못하다간 정말로 마가검이 주는 달콤한 힘에 빠져 노예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검을 지배하는 검수가 검의 노예가 될 순 없는 일이다.
엽현의 곁에는 독자와 전군도 있었다.
엽현이 쓰러지듯 몸을 누이자 전군이 걱정스런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 괜찮은 거요?”
“괜찮소. 이 정도로 죽진 않소.”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때, 전군이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후… 생각지도 못하게 마가족과 손을 잡을 줄이야.”
이때 곁에 있던 독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나 역시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누워있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 차디찬 바닥이었겠지. 엽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엽현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서로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소.”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손에 수많은 형제들이 죽어 나가지 않았소?”
독자가 짐짓 흥분하자 전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나 역시 마가족 놈들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만 같다.”
이때 엽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독자와 전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한을 잊으라는 말이 아니오. 설령 잊는다고 해도 마가족도 그러하리라는 법은 없소.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욱 큰 적을 앞에 두고 있지 않소?”
엽현이 석실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들과 손을 잡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원한?
마가족과 미앙성역 간의 원한에 대해선 엽현도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도 완고한 자세를 취한다면 둘 다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전군과 독자 역시 이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원수와 손을 잡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그 말이 맞소. 마가족도 싫지만, 내가 당장 죽이고 싶은 자들은 바로 천하성역과 이역 놈들이오!”
전군의 말에 독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놈들이 더 나쁜 놈들이야!”
“우선 생각은 나중에 하고 상처부터 돌봅시다.”
엽현이 웃으며 말하자 전군과 독자는 곧 치료에 들어갔다.
엽현 역시 자원정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탑 안으로 의식을 내려보냈다.
계옥탑.
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마가검이 탑 이 층에 들어왔다. 마침 영과 나무에 물을 주고 있던 소령이 마가검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이때, 마가검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영과 한 알을 꿰뚫고는 그대로 시원하게 기운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순간, 소령이 흰자를 드러내며 검신을 내려치려 했다. 하지만 마가검은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소령을 향해 날아들었다. 소령이 당황해하며 출수하려는 순간, 탑 위의 검 한 자루가 검광으로 변해 이 층으로 들이닥쳤다.
쾅-!
마가검이 그대로 벽면에 강하게 팽개쳐졌다.
순간 이를 지켜보던 엽현이 깜짝 놀랐다. 탑의 검이 움직일 줄이야?
이때, 소령이 탑의 검을 쥐어 들고는 마가검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세 대……
처음에는 마가검도 반격을 하며 반항해 보려 했지만, 이는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탑의 검에 몇 차례 가격당한 후, 마가검엔 길게 균열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소령이 조금 더 힘을 주었더라면, 이미 박살 났을지도 모른다.
이에 마가검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마가검은 이때부터 소령을 피해 탑 안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에 소령이 고함을 지르며 그 뒤를 쫓았다.
속도가 느린 탓에 마가검을 따라잡기는 요원해 보였으나, 그래도 그녀는 탑의 검을 끌어안은 채 죽을힘을 다해 검을 추격했다.
뒤뚱거리며 뛰어다니고 있는 소령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 엽현은 곧 의식을 거둬들이고 치료에 집중했다.
한 시진이 지났다. 엽현은 방문을 나서 성벽을 향했다. 성벽 아래에는 몇몇 무인들이 장내를 정리 중이었다.
장내엔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무인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강이 되어 흐르는 핏물에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때, 여인 하나가 엽현을 향해 다가왔다. 바로 화사였다.
“무슨 생각이 드는가?”
엽현의 곁에 선 화사가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잠시 간의 침묵 끝에 엽현이 대답했다.
“세상은 참 잔인한 것 같소.”
“그리고?”
“전쟁은 더욱 잔인하오.”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한 법이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엽현이 화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러자 화사 역시 엽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전쟁은 계속되면 안 된다.”
“쉽지 않소.”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맞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 최근 몇 년간 나는 미앙성역과 마가족 사이를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건만, 소득은 전혀 없었다.”
“전쟁을 멈추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만 할 것이오.”
“…….”
“그대는 강하오. 만약 그대가 지금보다 열 배, 백 배 더 강해진다면? 그땐 그대의 한 마디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오.”
엽현의 말에 화사가 웃으며 대꾸했다.
“네 말은 틀렸다. 나는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힘을 가졌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과 욕심을 막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 속에 거대한 진법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저들은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소.”
“조만간 전쟁이 벌어지면 나와 미앙천은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스스로를 지켜야 할 텐데, 무슨 대책이 있느냐?”
“…….”
“네가 가진 선택지는 두 개다. 첫째는 보물을 내어주는 것. 둘째는 도망치는 것.”
“후후… 둘 모두 불가능한 일이오.”
“어째서?”
화사가 묻자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첫째로, 나는 그 물건을 꺼낼 수 없소. 그것은 이미 내 정신과 연결된 상태로,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한 내가 억지로 제거할 수 없소.”
그의 말대로 계옥탑은 그의 능력 밖의 물건이었다. 통제는 커녕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게다가 이 층 존재가 언젠가 말했듯, 탑이 엽현을 선택한 이유는 천녀와 어떤 관련이 있었다.
그가 천녀의 의지를 거슬러 탑을 제거한다?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엽현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 화사가 엽현의 앞에 얼굴을 들이댔다.
“제거할 수 없다면 어찌하여 도망치지 않는 것인가?”
“내가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야 쉽진 않겠지.”
“여기 있는 모두가 도망친다 해도, 나는 불가능하오. 내가 저들의 최우선 목표이니만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오. 차라리 여기에서 그대들과 함께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오. 만약 그것이 부담스럽다면…….”
엽현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떠날 수밖에.”
이에 화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떠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저들은 미앙성역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 말대로 우리 모두 공통의 적을 두고 있으니, 서로 힘을 합쳐 싸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구나.”
엽현이 싱긋 웃더니 말없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나는 가 볼 곳이 있다. 네가 여기 남아 백 선생과 미앙천을 보좌해 주거라. 특히 미앙천… 그녀는 직선적이고 과격하니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잘 보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겠소.”
엽현의 말에 화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화사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도 네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는가?”
순간 엽현은 당황했다.
몸 안을 들어가다니, 혹시 그녀가 계옥탑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
엽현의 멍한 표정을 보자 화사가 웃으며 말했다.
“네 안에 다른 공간이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이 들렸나?”
“그렇소. 하지만 그대는 들어갈 수 없소.”
“어째서?”
“그것이…….”
엽현이 망설이듯 대답했다.
“위험하기 때문이오.”
화사는 분명 강했다. 엽현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그의 직감이 말하길, 화사는 결코 오 층 존재의 상대가 아니었다.
만에 하나라도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면 가장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바로 엽현 자신인 것이다.
“음…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게 조용해지면… 내게 한 번 보여줄 순 없겠는가?”
“정 그대가 원한다면 생각해 보겠소.”
“후후, 기대하고 있으마.”
그 말을 끝으로 화사가 어디론가로 걸음을 옮겼다.
홀로 남은 엽현이 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가족이 거주하는 방향이었다.
마가검……
“돌려주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은 내가 갖고 있자.”
* * *
마가족의 한 대전 안.
“검을 빌려주었다고?”
대전 아래쪽에 서 있던 막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질문한 이는 꼽추 노인이었다. 노인이 근심스러운지 연신 턱을 만져댔다.
“놈이 다시 돌려주려 하겠느냐?”
“그것이… 미앙성역 최고의 검수이니만큼 그 정도 양심은 있지 않겠습니까?”
“흠… 내가 알아본 바로는 놈은 돈 몇 푼만 쥐여주면 양심도 팔아넘긴다고 하던데?”
“…….”
대전을 나선 막사는 곧 어느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는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얼마 전 있었던 전투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치열했던 전투 후에 막사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깨달음 또한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엽현과의 일 전은 그에게 있어 복기할 것이 아주 많은 중요한 경험이었다.
얼마 후, 막사는 점점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가족과 미앙성역의 무인들은 한시 바삐 부상을 회복하고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역과 천하성역이 조만간 다시 쳐들어올 것임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땐 오늘 있었던 전투보다 훨씬 더 치열한 장면이 펼쳐질 것이 분명하다.
* * *
엽현의 숙소.
엽현의 눈앞엔 문제의 마가검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마가검이 영과를 훔쳐 먹다 걸린 후로, 소령은 우주 끝까지 따라갈 기세로 마가검을 쫓았다. 이에 보다 못한 엽현이 결국 마가검을 밖으로 끄집어냈던 것이다.
마가검(摩柯劍).
엽현은 말없이 마가검을 바라보았다.
마가검에 깃든 힘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너무 강력한 힘에 엽현조차 하마터면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이 마가의 힘은 끊임없이 엽현의 의식을 잠식하려 시도했다.
즉, 이 검을 사용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때, 소혼의 음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