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85
485화 신무성이라고?
‘사유계가 아니라고?’
엽현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지금까지 막연히 탑에 갇힌 존재들이 사유계 출신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실제와 틀렸던 것이다.
‘사유계가 아니면, 오유계란 소린가? 오유계라니…….’
엽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 층을 해결하니 육 층이… 그것도 실체가 무엇인지 감도 오지 않는 오유계의 인물이라니……. 젠장, 이거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이때, 그의 곁으로 미앙천이 다가왔다.
“괜찮은가?”
“후… 괜찮소. 당장은…….”
“그럼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라.”
엽현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천장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전쟁 종료.
마가족과 미앙성역 무인들은 서로 각자의 진형을 향해 흩어졌다.
환호도 기쁨도 없었다.
양측 모두 셀 수 없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이는 패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이때, 지면으로 내려선 막사가 조금 전 좌청이 자폭한 장소로 다가왔다. 좌청이 평소 착용하던 의복의 찢어진 조각을 발견한 순간, 막사는 제자리에서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그의 곁으로 다가온 꼽추 노인이 가만히 막사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는 좋은 무인이었다.”
이에 막사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우리 마가족은 여기서 안주해선 안 됩니다.”
“그럼 뭘 하고 싶으냐?”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복수해야 합니다!”
“…….”
“저는 너무나 약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벗의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강해질 것입니다. 저 성주만큼, 아니, 그자보다 더! 더 강해져야만이 마가족이 오늘과 같은 수모를 겪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막사가 그대로 장내를 떠나갔다.
노인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한편, 장천장성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온 엽현 앞에 전군이 나타나더니,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잠시 후, 전군은 엽현을 데리고 어느 빈 석실로 들어왔다.
석실 안에는 독자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이… 이런…….”
그제야 전군이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반 시진 전, 중상을 입은 녀석을 이리로 데려왔소. 그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는데…….”
엽현이 독자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차갑게 식은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비록 그들이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것은 아니었지만, 엽현은 진심으로 그를 형제처럼 대했던 것이었다.
‘성공질서자! 이놈들!’
“형제여, 부디 평안히 가시오. 이 엽현의 이름을 걸고 그대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겠소!”
복수!
엽현은 이미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탑을 지니고 있는 한, 오늘과 같은 일이 무한히 반복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싸우게 될 거라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여 앞으로는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겠노라고 다짐한 엽현이었다.
전군과 함께 독자의 시신을 안치한 엽현이 장내를 떠나려 했다.
이때, 전군이 뒤에서 소리쳤다.
“녀석은 날 구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오.”
“…….”
“바보같은 놈……. 나 때문에 친구를 죽게 만들다니… 이런 머저리…….”
전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전군, 앞으로 그대의 목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오. 잊지 마시오.”
엽현이 떠나고 홀로 남은 전군.
그는 독자의 무덤 앞에서 오랫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엽현은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한적한 숲속으로 향했다. 우거진 숲에 막 도착한 순간, 엽현이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단전 역할은 지금까지 진혼검이 해 오고 있었다. 그런 진혼검이 파괴됐다는 말은 즉, 단전이 사라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엽현은 정말이지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힘의 근원이던 단전검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그의 경지와 의경(意境)은 여전히 살아 있기에, 완전히 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어찌어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엽현이 양손을 펼치자,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진혼검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소혼…….”
불러도 대답 없는 소혼.
엽현이 조각들을 양손에 쥐고 기운을 응집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두 개의 검의가 진혼검을 감싸기 시작했다.
‘붙어라!’
엽현은 얼마 전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 검수와 제형이 한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 한 시진이 지나도록 검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 되는 건가?’
엽현이 심호흡을 들이키며 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방금처럼 서두르지 않고 더욱 천천히 진행해 나갔다.
그는 검의를 마치 손처럼 사용하며 소혼의 파편들을 세세히 느끼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다시 한 시진 정도가 흐르자, 진혼검으로부터 아주 미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흥분한 엽현이 하마터면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내 마음을 다잡는 데 성공한 엽현은 검의를 마치 실처럼 사용하여 조각난 검을 조금씩 이어 나갔다.
이 개념은 그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었고,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두 시진이 지나자, 진혼검은 엽현의 검의에 의해 완전히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엽현이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진혼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소…혼?”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는 소혼.
엽현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혹시 실패한 걸까?’
바로 이때, 바람 소리보다 더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소혼!”
[설마… 검의로 나를 회복시킨 것입니까?]“그래! 지금 상태는 어때? 우선 좀 쉬어야 하지 않나?”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동안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그래, 그래! 어서 좀 쉬도록 해!”
엽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때, 소혼이 말했다.
[주인… 이 검의의 효용은 저와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매일 조금씩 주입해 줄 수 있습니까…?]“그럼! 그렇게 하고말고!”
[헤헤… 역시 주인밖에 없습니다……. 그럼 전 잠시…….]소혼의 음성이 끊기자, 엽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영영 떠나버릴 줄로만 알았는데, 살아난 것만 해도 어디인가!
이때 엽현이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안란수가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엽현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괜찮아?”
안란수의 물음에 엽현이 씩 웃어 보였다.
“당연하지!”
“다행이네…….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야?”
“아무래도 이곳을 떠나게 될 것 같아.”
“떠나?”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주는 반드시 나를 찾아올 거야. 그때 또다시 오늘처럼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칠 순 없어. 그러니 그 전에 떠나야만 해.”
그는 성주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비록 성주가 데려온 대군은 모두 전멸했지만, 이대로 성주가 물러날 리가 없었다.
설령 성주가 더이상 공격의 의사가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엽현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원수는 반드시 갚는다. 이것이 청성 시절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의 신념이었다.
이때 안란수가 문득 성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네 말이 맞아……. 우리는 이곳에서 나갈 때가 됐어.”
“음? 너도 떠나려고?”
엽현이 묻자 안란수가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 돼?”
“하하! 안 될 것 있나? 나와 함께 떠나자!”
순간 엽현의 표정에서 잠시 음흉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지만, 안란수는 못 본 척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그들을 향해 검은 장포 차림의 무인이 다가왔다.
그는 다른 흑의인들을 이끌고 엽현을 도우러 왔던 바로 그 무인이었다.
엽현 앞에 선 흑의인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집어 던졌다. 그 순간,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신은!”
그의 정체는 바로 영허성궁의 임종운이었다.
“하하, 엽 공자, 오랜만입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번에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엽현이 임종운을 향해 양손을 모았다.
“별말씀을요. 엿들으려 했던 것은 아니나, 곧 이곳을 떠나신다고요?”
“그렇소.”
“그렇다면 추천할 만한 곳이 있습니다.”
“그게 어디요?”
엽현이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신무성(神武城)!”
“신무성?”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자, 임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무성은 이쪽 성역에서 성주가 함부로 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지역입니다. 막 전투가 끝난 지금이라면 그의 눈을 피해 이동하기 알맞을 것입니다.”
“신무성이라면 그 무신(武神)이라는 여인이 세운 지역 아니오?”
안란수가 끼어들며 묻자 임종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소저. 이쪽 세계에선 전설로 통하는 인물을 알고 계시는구려.”
임종운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엔 무신이 세운 무원(武院) 외에도 검종이 존재하니, 공자의 수련 장소로도 매우 적합합니다.”
“검종? 검수종문을 말하는 건가? 그들은 강하오?”
엽현의 질문에 임종운이 미소를 지었다.
“성주마저 함부로 할 수 없는 곳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곳에 있는 종문이 약할 리가 있겠습니까?”
엽현이 안란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안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무성으로 가겠소!”
바로 이때, 전군이 그들을 찾아왔다.
“엽현, 궁주가 그대를 찾고 있소.”
엽현이 전군을 향해 고개를 끄떡이고는 임종운을 향해 다시 한번 포권을 취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소.”
그 말을 끝으로 엽현은 전군과 함께 숲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임종운이 떠나고, 안란수 역시 자리를 뜨려는 순간, 그녀의 앞에 연만리가 나타났다.
“한 판 붙을까?”
다짜고짜 비무를 신청하는 연만리.
안란수가 그런 연만리를 보며 물었다.
“그를 좋아하는 건가?”
“조, 좋아해? 내가, 엽현을?”
당황해하는 연만리를 향해 안란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좋아하는 거.”
어쩐지 도발의 기색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이에 연만리가 물러나지 않고 소리쳤다.
“그래, 좋아한다!”
“…어디가 좋은데?”
그 질문에 연만리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 음탕한 엉덩이랄까……. 꺄악!”
“…….”
엽현은 전군과 함께 미앙천을 찾았다.
미앙천의 석실 안에는 다른 사람도 있었는데, 다름 아닌 화사였다.
불러놓고 말이 없는 미앙천.
이때 화사가 대신 말을 꺼냈다.
“너는 혹시 미앙성역을 통치하는 데 관심이 있느냐?”
엽현이 가볍게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간단하오. 첫째로 나는 어디 묶여 있는 것보단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오. 더욱이 미앙성역의 세력들이 내 부족한 실력을 보고 따라줄지도 의문이고.”
“정말 그 이유 때문인 게냐?”
이번엔 미앙천이 묻자 엽현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나는 이곳을 떠나려 하오.”
“우리에게 부담을 줄까 봐서?”
미앙천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그런 것도 없진 않소. 그 물건이 내게 있는 한, 그들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오. 게다가 나 역시 다른 곳을 경험해 보고 싶기도 하고.”
미앙천이 잠시 화사와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결정이 끝난 것인가?”
“…그렇소.”
미앙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엽현 앞으로 다가섰다.
“그래, 어디로 가는 게냐?”
“신무성.”
신무성이라는 말에 미앙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이라면 확실히 네게 괜찮은 곳이지. 그래서 언제 가려느냐?”
“이틀 후로 생각하고 있소. 처리할 일도 있고 해서.”
“알았다. 나가 보거라.”
엽현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