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488
488화 여인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전군과 짧은 작별을 고한 엽현은 곧 미앙성역을 떠나 어두운 우주로 향했다.
성공 한 가운데, 출발은 멋지게 했건만 엽현은 한동안 미앙성역 근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제성함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엽현은 무려 반나절이나 낑낑댄 끝에 겨우 사용법을 알아냈다.
그가 제성함을 손에 쥐고 몇 마디 주문을 외우자, 제성함이 흔들림과 동시에 한 줄기 빛으로 변했다.
잠시 후, 빛이 잦아들고 엽현의 앞에 나타난 것은 장장 천장 길이의 거대하고 광채가 흐르는 운선이었다.
‘기품이 흐르는구나!’
이것이 제성함에 대한 그의 첫인상이었다.
엽현은 곧 제성함에 올랐다. 제성함은 겉으로 흘러나오는 외관만으로도 평범한 운선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갑판과 바깥쪽에는 빼곡하게 진법이 설치되어있어, 공격과 방어가 가능했다. 물론 진법을 사용하려면 자원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때, 제견이 엽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출발!”
“얻어 타는 주제에… 네가 운전해!”
“…….”
결국 제견의 조작 하에 제성함이 성공 깊숙한 곳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제성함이 가속하기 시작하자 장천장성이 순식간에 점으로 변해갔다.
마침내 점으로도 보이지 않게 된 장천장성.
마침내 제성함의 속도가 절정에 이르자 엽현은 깜짝 놀라며 난간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거대한 제성함이 무려 그의 검광보다도 훨씬 빠르게 날아갔던 것이다.
‘뭐 이런 물건이 다 있어?’
잠시 후, 엽현과 제견을 태운 제성함은 어두운 우주 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 * *
엽현과 제견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무인들이 장천장성을 찾았다.
거대한 성벽 아래 멈춰선 무리.
그중 가장 앞에 있는 것은 한 여인이었다. 은색 갑옷을 입고 머리를 뒤로 단단히 묶은 것이 웬만한 사내보다 더 늠름했다.
그녀의 양옆에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있었다.
이 네 사람의 정체는 바로 강구, 묵운기, 백택 그리고 기안지였다.
장성 위를 바라보던 묵운기가 입을 열었다.
“구 공주, 우리와 엽 강도 그놈의 실력 차이가 그렇게 큰가?”
“그건 그를 만나서 한 판 붙어보면 바로 알 수 있겠지.”
강구의 대답에 묵운기가 무안했는지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그래.”
묵운기가 이번엔 백택을 바라보았다.
“야, 덩어리. 형님이 특별히 네게 먼저 기회를 주겠다.”
“덩어리…?”
백택이 험악한 얼굴로 묵운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엽현을 이길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지.”
“크크크, 네가?”
“지금 한 번 붙어볼까?”
묵운기가 뭐라고 대꾸하려는 순간, 강구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전군이었다.
전군이 강구 일행을 한 번 훑어보며 말을 걸었다.
“그대들은 뉘시오?”
“엽현이 이곳에 있다 해서 왔소만…….”
‘엽현?’
강구의 대답에 전군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정체를 먼저 밝히시오!”
“긴장할 것 없소. 우리는 그의 오랜 친구들이오.”
그 말을 들은 순간 전군의 경계가 눈 녹듯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리 말씀하실 것이지. 애석하게도 엽현은 이미 떠나고 여기 없소.”
“떠났다고? 어디로 떠났단 말이오?”
묵운기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전군을 향해 물었다.
“구체적인 것은 나도 듣지 못했소. 그러나 그의 마지막 목적지는 신무성이 될 것이오.”
신무성!
묵운기 등이 처음 듣는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소?”
강구의 질문에 전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꽤나 멀다고 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 그는 찾아서 뭐 하려는 것이오?”
“흠씬 두들겨 주려 하오!”
묵운기의 말에 전군이 그를 기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묵운기가 다소 불만인 얼굴로 말했다.
“그 표정은 무엇이오?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이오?”
“…하하하! 전혀 그럴 의도는 없었소! 다만… 지금의 엽현은 매우 강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소.”
“어허, 그대는 내가 누군지 아시오?”
묵운기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엽현 그놈은 매일 같이 나에게 얻어맞아 바닥에 누워있는 게 일상이었소. 아마 지금도 그때 묻은 모래가 얼굴에 붙어 있을걸?”
“멍청한 놈! 입 닥치지 않으면 내가 틀어 막아버리겠다!”
백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자, 묵운기가 눈치를 보며 입을 닫았다.
이때 곁에 있던 강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 이쯤 하고 어서 신무성인가 하는 곳으로 가자고!”
기안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노닥거릴 시간 없어. 그런데 그곳엔 어떻게 가지?”
기안지 등이 전군을 바라보자, 전군이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성공을 가로질러서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할 텐데……. 그럼 이렇게 합시다. 이곳을 주관하고 있는 백 선생이란 분이 있소. 그분께 말하면 아마 호위를 붙여 주실 것이오.”
“그렇게 해 준다면야 감사드리겠소.”
강구의 말에 전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엽현의 친구는 나의 친구도 되는 셈이니 너무 예의 차릴 것 없소. 그럼 백 선생께 가봅시다.”
강구 일행은 전군의 인도 아래 백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시진 후, 장천장성 상공에 성운함 한 척이 떴다.
성운함에는 강구 일행 외에도 전군이 함께 탑승했다.
목표는 신무성이었다.
이때 묵운기가 갑판 위에 발을 올리더니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신무성, 내가 간다. 모두 머리를 조아려라! 하하하… 컥!”
뒤에서 날아온 백택의 발길질에 묵운기가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 * *
어두운 성공을 쏜살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한 척의 제성함. 이 엄청난 속력에 흑동이나 운성은 제성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뱃머리 위에서 먼 우주를 바라보던 엽현이 문득 물었다.
“제견, 신족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겠지?”
“보통이 아니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놓아야 할 거다.”
“음… 그건 그렇고… 신족이나 되는 사람들이니만큼 귀한 보물도 많이 있겠지? 아니, 탐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거야 하하…….”
“역시… 나를 도와주는 척하더니 목적은 따로 있었군!”
“아니, 이봐.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나? 나 엽현이 그렇게 쓰레기로…….”
“보여.”
“…….”
“그러나… 확실히 한 가지 보물이 남아 있긴 했었지.”
제견의 말에 엽현이 귀를 쫑긋 세웠다.
“그게 뭔데?”
“신왕좌(神王座).”
“그게 뭔데?”
“말 그대로 하나의 의자다.”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지?”
“그건 몰라.”
“엥? 그걸 왜 몰라? 신족의 보물이라며?”
“아! 나도 앉아본 게 아니니까 모르지! 궁금하면 네가 직접 찾아봐!”
“…….”
엽현은 순간 자신의 욱하는 성질은 제견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제견이 말을 이어갔다.
“신왕좌는 신족이 가지고 있던 물건 중에 최상위에 있던 보물이다. 오직 족장만이 그 위에 앉을 수 있었지. 그게 무슨 효과를 내는지는 나도 들은 바가 없다.”
“설마하니 내 탑보다 더 대단하진 않겠지?”
엽현이 콧대를 높이며 말하자 제견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탑을 만든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우쭐대? 게다가 만약 네가 죽게 된다면 분명 그 탑 때문일 거다.”
“…….”
“그런데… 그 탑은 어디서 얻은 거야?”
“응, 몰라도 돼.”
“…….”
잠시 잡담을 나누던 엽현은 제성함을 제견에게 맡겨놓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엽현은 곧장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최근 대지도칙, 공간도칙 그리고 몽지도칙에 대한 연구에 힘을 쓰면서, 조만간 세 도칙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특히 그중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단연 최근에 얻은 몽지도칙이었다.
그 이유는 비검과 결합 시 너무나 완벽한 위력을 보여주리라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몽중일검(夢中一劍)!
과연 그가 이 꿈 같은 검을 펼치게 될 날이 올까?
그 이후로 엽현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다.
닷새째 되던 날.
제성함 전체를 뒤흔드는 커다란 진동에 엽현은 곧장 갑판으로 뛰어 올라왔다. 주위를 둘러본 엽현은 자신들이 흑동을 지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 사방에서 강대한 기운들이 끊임없이 제성함에 부딪혀 오는데, 이 엄청난 충격에 제성함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만약 일반 성운함이었더라면 그대로 먼지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제견, 이게 뭐야!”
“흑동!”
“지금까지 흑동을 지날 땐 이러지 않았잖아?”
“흑동에도 강하고 약하고가 있다. 아무리 강한 흑동이라도 이 배는 견딜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얼마나 남았지?”
“흠… 글쎄, 잘 모르겠는걸?”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네 고향인데 그걸 왜 몰라?”
“히히, 나도 가본지 하도 오래돼서 잘 기억이 안 나. 어쨌든 방향은 맞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
그렇게 한 시진 가량이 지난 후, 흑동을 빠져나온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한 이름 모를 성역이었다.
눈앞의 성역을 두리번거리며 뚫어져라 살펴보던 제견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뭐가 있어?”
“아무래도 익숙한 곳 같다.”
“여기가 신족의 땅인가?”
“우선 한 번 들어가 보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의 성역을 향해 제성함을 몰았다.
주변의 성공은 깊은 바닷속에 들어온 것처럼 매우 고요했고, 아무런 생명체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성역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할 영기마저 극도로 희박했다.
“당시 신족에게 변고가 발생한 직후에 명족이 들이닥쳤고, 그 이후로 나는 쭉 무간연옥에 갇혀있었지. 그 억겁의 시간이 흐를 동안 신역(神域)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야. 부디 생존한 자들이 남아 있기를…….”
“변고라 함은 간자재 누님의 사건을 말하는 거지?”
제견이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족장이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하지만 않았어도 간자재가 신족을 미워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에 의해 대부분의 고수가 죽임을 당하고 심지어 조사를 모신 사당마저 파괴되고 말았지… 에휴…….”
“그러게 애당초 여인을 천시 여기는 풍토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본다. 여인 중에서도 강한 자들은 얼마든지 많은데.”
엽현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중 대부분은 여인들이었다.
특히 천녀는 비교할 대상조차 없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신족의 장로들은 너무나 보수적이어서 문제였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려는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검. 어림잡아도 족히 천 장 길이는 될 법한 거대한 검이 성공 중간에 둥둥 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검 끝이 보통 검과 다르게 뭉툭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사람의 손에 의해 깎여 나간 것처럼.
그리고 검신엔 커다랗게 검은색 글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검종(劍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