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00
500화 나는 더 심하게 복수했을 것이오
노인이 그대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사인은… 화병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엽현은 진혼검으로 노인의 영혼을 취한 후 자리를 떠났다.
그는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방금 전 그는 처음으로 몽지도칙을 이용해 몽환경을 만들어냈다.
혹시나 해서 몽환경을 두 겹으로 설치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는 것은 자신이 되었을 것이다.
노인의 무력이 어찌나 강했던지, 첫 번째 몽환경을 무력만으로 깨버렸던 것이다.
방금 전 엽현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적절한 기습과 노인의 방심 덕분이었다.
혹시라도 정면 대결을 할 상황에 있었다면 그의 승률은 삼 할도 채 되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엽현은 몽환도칙과 공간도칙 그리고 진혼검을 앞세워 웬만한 강자들을 초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까지 눈치가 빠른 무인들은 즉시 육신을 버리고 도망가곤 했지만, 몽환도칙으로 눈속임을 한 후에 진혼검으로 육신과 영혼을 한 번에 꿰뚫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영혼체와 상극인 일검정혼과 진혼검이 있기 때문이다.
“영차!”
엽현이 제견의 등 위로 올라타며 물었다.
“어땠어? 방금 끝내줬지?”
“쯧쯧… 검수에서 살수로 전직하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하하하하!”
검수? 살수?
이 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모두 상대를 죽이는데 특화된 존재들이 아닌가.
살수도 살인을 하고, 검수도 살인을 한다.
엽현의 눈에는 검수로 불리든 살수로 불리든 별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둘이 숲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붉은 그림자 하나가 그들이 있던 숲속에 내려앉았다.
그림자는 노인의 시체 앞에 우두커니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천재로구나…….”
이때, 바람이 불고 그림자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편, 다시 길을 나선 엽현과 제견.
엽현이 문득 물었다.
“그래서, 네 실력은 다 회복된 거야?”
“그렇다. 이미 본체로 변신할 수 있지.”
“얼마나 더 강해지는데?”
“후후, 알아 맞혀 보거라.”
“음… 글쎄다?”
엽현이 궁금해하자 제견이 여유 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방금 전 그 노인, 나는 정면승부로 이길 수 있었다.”
“…….”
“그런데 도대체 얼마나 남은 거지?”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고마족.
그가 신왕좌의 환영에 빠져 있을 때, 신왕이 이미 고마족의 위치를 알려준 바 있다. 물론 아주 자세하지 않은, 대략적인 위치긴 했지만.
문제는 고마족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신왕 역시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이제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고마족을 만나 그의 약점인 육신을 강화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한 실력을 갖게 될 것이니 포기할 순 없었다.
그렇게 한 시진 여를 더 달린 후, 제견이 멈춰 섰다.
그들이 서 있는 대지는 영기가 희박하고, 하늘빛마저 어두침침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엽현이 말했다.
“여기가 정말 고마족이 살던 곳일까?”
“흠… 나도 모르겠다.”
“동시대에 존재했던 네가 모르면 누가 안다는 거야?”
“할 수 없지. 당시 나는 그들과 교류한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나 역시 고마족의 육신은 독보적인 부분이 있다고 들은 바 있다.”
엽현은 말하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이미 멸망해 버린 느낌인데?”
“우리 신족과 명족조차 이 꼴이 됐는데, 고마족이라고 멀쩡할 리는 없겠지.”
“가자, 좀 더 안쪽을 봐야겠어.”
그렇게 다시 반 시진 가량을 달린 엽현과 제견.
이때, 이들 앞에 오래된 성 하나가 나타났다. 성은 꽤나 규모가 있는 편이었지만, 왠지 모를 고약한 냄새로 가득했다.
성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예상대로 매우 황량했고, 곳곳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아무도 없나 본데?”
제견의 말에 엽현이 신식을 퍼트려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생기도 감지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성문을 나서려는 순간, 엽현이 뭔가를 감지하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성안에 있는 어느 대전 앞이었다. 대전 주변은 이미 잡초가 우거져, 겨우 지붕만 보일 지경이었다.
엽현이 두 자루의 비검을 날리자, 무성하던 풀들이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그러자 대전 밑에 나체로 앉아있던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 있나?’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년인을 향해 접근했다.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에 올려놓은 중년인에게선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었나?”
“아직 몰라.”
대답과 함께 엽현이 중년인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보시오?”
불러도 대답 없는 중년인.
엽현이 고민 끝에 아무 말이나 뱉기 시작했다.
“안녕하시오, 나는 청창계에서 온 엽현이라 하오. 듣자 하니 고마족에 육신을 단련하는 특수한 방법이 있다 하여, 한 수 배움을 청하러 왔소.”
그래도 반응이 없는 중년인. 엽현이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만약 고마족의 전승을 이어받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거든, 이 엽현 만한 인재는 없을 것이라 장담하오.”
그 말을 들은 제견이 혀를 찼다. 엽현이 또 ‘뻔뻔신공’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엽현이 무슨 말을 해도 중년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던 엽현은 결국 돌아서고야 말았다.
“가자.”
“왜, 이렇게 포기하려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반응이 없으니 할 수 없지.”
“네 말이 맞다.”
그렇게 엽현과 제견이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인간!”
누군가의 음성에 엽현과 제견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중년인의 위에 잠잠히 떠 있는 한 영혼이 보였다. 이는 다름 아닌 중년인의 영혼이었다.
그들이 눈을 마주친 순간, 중년인이 손가락으로 엽현을 가리켰다. 그러자 엽현은 마치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어느샌가 엽현의 미간에 나타나 있던 계옥탑이 격렬히 흔들리더니, 중년인을 향해 검은 광선을 뿜어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중년인이 황급히 주먹을 뻗어냈다.
쾅-!
흑광이 흩어짐과 동시에 탑은 다시 엽현의 체내로 돌아갔다.
이때 옥죄던 힘이 느슨해진 것을 느낀 엽현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반대편에 있던 중년인의 영혼은 타격을 입은 것인지 눈에 띄게 희미해진 상태였다.
엽현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계옥탑의 출수.
방금 전의 공격은 엽현이 조작한 것이 아닌, 계옥탑이 스스로 출수한 것이었다.
‘뭐지? 설마 탑이 깨어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엽현은 신물인 계옥탑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때, 중년인이 말을 걸어왔다.
“너는 누구냐?”
엽현이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때의 중년인의 안색은 지극히 어두워 보였다.
“우선 좀 진정하시오.”
이때 엽현은 중년인이 자신의 이마에 나타난 계옥탑을 보고 출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중년인은 계속해서 경계를 풀지 않았다.
“방금 네 이마에 있던 것은…….”
이때 엽현이 중년인의 말을 끊어냈다.
“먼저 내 말을 좀 들어 보시오. 나는 고마족의 육신지도(肉身之道)를 배우러 온 사람이오.”
“육신지도… 우리 고마족은 외부인에게 전승을 넘겨주지 않는다.”
중년인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엽현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제견, 가자!”
엽현이 제견과 함께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중년인이 엽현을 불러 세웠다.
“인간. 네게 신족의 신왕검과 명족의 진혼검이 있구나.”
순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 엽현.
그는 잠시 말없이 중년인을 응시했다.
‘어떻게 알아본 거지?’
이때 중년인이 그의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는 우리 고마족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망기술(望氣術)이라는 비술이다. 상대방을 꿰뚫어 보며, 천지의 기현상을 관측할 수 있지.”
중년인의 말을 이해한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진혼검과 신왕검이 있는 것을 보니, 필시 신왕과 명왕을 만났겠구나.”
“그렇소.”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느냐?”
“그건… 알 수 없소.”
엽현은 헤어진 이후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살아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엽현을 바라보던 중년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로 고마족의 육신 수련법을 배우고 싶으냐?”
“그렇소!”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하나 있다.”
“조건이라면, 어떤…….”
“복수!”
그 말에 엽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이때 중년인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고마족이 멸망한 까닭은 외부의 적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부에 배신자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배신자 때문에 고마족이 멸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만약 네가 정말로 고마족의 전승을 얻고자 한다면, 훗날 우리의 복수를 해 주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는 강하오?”
“매우 강하다.”
“얼마나…”
“차라리 지금은 모르는 게 나을 정도로 강하다.”
“…….”
“선택은 너의 몫이다. 단, 네가 전승을 이어받는다면, 네가 그녀를 죽이든, 그녀가 너를 죽이든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째서 말이오?”
“왜냐하면 그녀는 고마족의 전승이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방금 그자 역시 고마족이라 하지 않았소?”
엽현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묻자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굳이 그렇게 한단 말이오?”
“그것은…….”
중년인이 다소 눈빛을 흐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우리 고마족의 원수와 눈이 맞아 남매를 출산했다. 이것을 알게 된 족장이 분노하여 그 아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지…….”
말을 하던 중년인의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점점 어두워져 갔다.
순간 엽현은 머릿속에 간자재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간자재의 경우보다 더욱 심각했다.
만약 죽은 것이 자신의 자식이었더라면…….
엽현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혈육이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여야만 하는 것이다.
“저… 주제넘은 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은 그대들 족장의 잘못인 듯싶소…….”
엽현의 말에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어쨌든 고마족을 멸망에 이르게 한 죄인인 것은 변함이 없다…….”
중년인이 엽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만약 고마족의 전승을 원하거든, 반드시 그녀를 제거해야 한다!”
“미안하게 됐소. 더이상 고마족의 전승은 원하지 않소.”
“어째서?”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그녀에겐 잘못이 없기 때문이오. 만약 내가 똑같은 일을 당했더라면 더 심하게 복수했을 것이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엽현은 돌아섰다.
바로 이때, 그들의 뒤편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엽현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이 웃음소리는 중년인의 것이 아닌 여인의 웃음소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