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03
503화 이렇게 쉽게 떨어진다고?
몽경(夢境).
방금 전 엽현은 여인의 경지를 생각해 삼중으로 몽경을 설치했다. 그 효과는 지금 보는 바와 같이 탁월했으나, 그만큼 많은 기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소모가 너무 컸던 까닭에 하마터면 몽경을 깨뜨릴 뻔했던 것이다.
엽현의 앞, 여인이 구멍이 난 목을 부여잡은 채, 엽현을 노려보았다.
“바… 방금은…… 쿨럭!”
여인은 넘쳐나는 선혈 탓에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사실 조금 전 상황에서 여인은 곧바로 육신을 포기하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녀의 영혼은 땅에 박힌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후후, 내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오? 미안하지만 그 비밀은 저승에 가서 풀어 보도록 하시오.”
“너, 너를…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서걱-!
엽현의 검은 더이상 그녀의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목이 잘린 그녀의 몸은 이내 바닥에 쓰러져 온갖 내용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때 계옥탑에서 들려오는 제견의 목소리.
[이봐, 아무리 그래도 여자한테 너무 심한 거 아냐?]“흥!”
엽현이 여인의 손가락에 걸린 납계를 뽑아내며 대꾸했다.
“내 여자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그저 시뻘건 고깃덩이에 불과하지!”
“…….”
그렇게 엽현은 달빛을 피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름 모를 성역의 숲속, 어두운 동굴 안.
엽현은 바닥에 앉아 미친 듯 자원정을 흡수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펼쳐본 삼중 몽경은 그에게는 아직 벅찬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에 좀 더 무리를 한다고 하면 사중 몽경까지는 어찌어찌 펼칠 수는 있을 것 같긴 했다. 사중 몽경 이상은 힘들었다.
이제 그는 신왕검과 신왕좌를 사용하지 않고도 조화경 강자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물론 조화경 사이에서도 실력 차인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으니, 누구를 만나든 방심은 금물이었지만.
그렇게 한 시진 가량이 지난 후, 엽현은 대부분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엽현은 곧바로 여인을 죽이고 얻은 납계를 꺼내 들었다.
납계 안을 확인 한순간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납계를 떨어뜨릴 뻔했다.
납계 안에는 달랑 검은색 영패 하나만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렇게 가난할 수가’
실망한 엽현은 납계를 대충 계옥탑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더이상 실망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한시라도 빨리 신무성에 도착하고자 하는 생각뿐이었다.
동굴을 나선 엽현은 곧바로 혼돈지기를 펼쳐 기운을 숨겼다.
자신을 쫓는 자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노닥거리며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신무성에는 사랑하는 여동생과 친구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여인 이후로는 그의 앞길을 막는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 외에는 엽현의 기척을 발견한 자는 없는 듯 했다.
그렇게 망망한 우주에서 하루의 시간을 더 보낸 엽현은 마침내 신무성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신무성역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다.
아니, 미앙성역과 비교하자면 매우 작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얕볼 순 없었다. 신무성역은 그 강력한 성주조차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다.
성역에 진입한 엽현은 곧 오래된 성 하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성은 꽤 큰 규모였는데, 그 상공엔 두 개의 거대 조각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하나는 긴 창을 든 여인, 나머지 하나는 검을 든 남자의 조각상이었다.
남자의 조각상을 발견한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낯이 익는 건 왜일까?’
바로 이때, 장내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그의 앞 공간이 길게 찢어졌다.
잠시 후, 그 공간 사이로 거대한 바둑돌 네 개가 튀어나오더니 엽현의 사방을 에워쌌다.
‘진법!?’
이를 본 엽현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신무성을 코앞에 두고 결국 적에게 발각되고 만 것이다!
이때, 찢어진 공간 사이로 노인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엽현 앞에 선 노인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엽현의 신형이 사라짐과 동시에 두 줄기 검광이 노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속전속결!
엽현이 기습을 할 줄 몰랐던 노인은 선수를 빼앗기긴 했으나,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쾅-!
노인이 내민 손바닥에서 강대한 힘이 쏟아져 나오자 두 개의 검광이 튕겨 나간 것은 물론, 엽현 또한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났다.
멀찌감치 밀려난 엽현을 보자 노인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바로 이때였다.
노인의 눈동자가 갑작스레 쪼그라드는가 싶더니, 그의 목이 피를 뿜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엽현은 어느새 노인의 뒤편에 도달해 그를 처치했던 것이다.
노인을 처치한 엽현은 멈추지 않고 들고 있던 진혼검으로 정면을 내리쳤다.
쾅-!
커다랗게 구멍이 난 공간. 그 사이로 재빨리 몸을 던진 엽현은 공간도칙의 도움을 받아 천 장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그를 에워싸고 있던 진법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진법을 탈출한 엽현은 곧장 눈앞의 신무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그의 앞으로 창 한 자루가 공간을 부수며 날아들었다.
쾅-!
엽현은 황급히 검을 휘둘러 창을 막아내긴 했으나, 그 때문에 또다시 신무성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고개를 들자 한 손에 창을 들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년인이 보였다.
“제법이구나,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걸 그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엽현이 그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에 중년인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쾅-!
검이 창에 가로막힌 순간, 엽현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는 엽현.
그러자 검을 쥔 손이 길게 갈라져 선혈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엽현의 시선이 다시 정면의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상대는 이미 자신보다 몇 단계 이상 높은 경지였다. 기습이 아니라면 쉽지 않아 보였다.
한편, 엽현을 바라보는 중년인 역시 그 눈빛에서 경계의 기색이 느껴졌다.
방금 전 노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똑똑히 지켜본 그는 엽현을 이미 자신과 동일 경지로 여기고 있었다.
이미 죽은 노인의 경지는 자신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중년인이 말했다.
“보물을 내놓고 사라져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정말인가?”
엽현의 물음에 중년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무슨 꼼수를 부리려는 게냐?”
“하하, 꼼수라니? 방금 네 말이 진짜냐고 묻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믿을 놈이 있어야 말이지. 정말 보물을 주면 목숨을 살려 주는 거냐?”
그 순간 중년인이 입을 다물고 엽현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아는 한, 엽현은 그리 쉽게 보물을 내어 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때, 엽현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말을 해!”
“…못 믿겠으니까 물건부터 보여줘라.”
“훗, 보여줄 테니 나중에 가서 딴소리하지 말아라!”
엽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이마 가운데서 계옥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반쯤 투명한 계옥탑은 정말로 엽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천천히 중년인을 향해 날아갔다.
탑에 시선이 향한 순간, 중년인의 눈빛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탑을 네게 주겠다. 이제 더이상 날 쫓아오지 마라!”
짧은 한마디와 함께 탑을 버리고 도망치는 엽현.
엽현은 정말로 이렇게 도망가는 것인가?
이때, 계옥탑 안에 있던 제견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탑을 이렇게 버린다고? 나는 어쩌고!?]한편, 잠시 머뭇거리던 중년인은 더이상 볼 것도 없이 탑을 향해 달려들었다.
바로 이때, 몇 개의 강대한 기운이 사방으로부터 날아들었다. 그러자 천지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막 탑을 향해 손을 뻗고 있던 중년인이 수백 장 밖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이와 동시에 계옥탑 주위로 나타난 노인 하나와 흑의인 둘,
그리고 붉은 그림자 하나.
이들을 본 순간 중년인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다시 계옥탑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콰쾅-!
곧 거대한 폭발을 시작으로 계옥탑을 둘러싼 강자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편, 엽현은 어둠 속에 숨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그도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계옥탑이 이렇게 쉽게 분리될 거라고는 엽현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탑은 쉽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계옥탑은 이미 엽현이 고마족을 방문했을 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확신할 순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잠에서 깨어난 탑이 그의 의도를 읽고서 순순히 몸 밖으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었다.
엽현은 떨어져 나간 탑에 대해서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계옥탑이 깨어났다면, 탑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한, 저들의 손에 들어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군가 계옥탑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제 그는 더이상 탑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탑 안의 존재들은 그에겐 굉장한 부담이기 때문이었다.
현재로서는 외부의 적보다 탑 안의 죄수들이 더욱 신경 쓰이는 상황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사실 엽현은 이번 기회에 계옥탑과 이별을 고하고 싶었다.
일단 생각을 접어 둔 엽현은 전투가 한창인 상공을 바라보았다. 공간이 끊임없이 진동하는 것이 한눈에 봐도 모두 대단한 고수들이 틀림없었다.
만약 저 안에 들어간다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기습을 한다면 어떨까?
바로 이때, 조금 전 엽현과 싸우던 중년인이 튕겨져 날아갔다.
그의 왼팔은 이미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천 장 밖에 멈춰 선 중년인이 매우 어두워진 표정으로 무인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탑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일각 가량을 날아간 중년인은 마침내 어느 성공에 멈춰 섰다. 그런데 그가 막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한 줄기 검광이 날아와 그의 미간을 꿰뚫었다.
푸욱-!
“컥… 어떻게…….”
이때, 엽현은 중년인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간에 박힌 검을 뽑아낸 엽현은 중년인의 죽음을 확인한 후, 그의 납계를 챙겨 그대로 사라졌다.
엽현이 장내로 다시 돌아왔을 때, 계옥탑은 여전히 누구의 차지도 아닌 상태였다.
잠잠히 허공에 떠있는 계옥탑과는 대조적으로 무인들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엽현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잠시 후, 또 하나의 무인이 장내를 이탈하자, 엽현이 기다렸다는 그를 추격했다.
엽현은 결코 다른 무인들이 보는 앞에서는 암살을 시도하지 않았다. 만약 상대가 이를 눈치챈다면 싸움을 멈추고 연합을 하려 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성역 밖까지 쫓아간 엽현은 이번에도 암살에 성공했다. 진혼검과 몽지도칙, 그리고 공간도칙까지 적절하게 배합한 그의 기습은 상대의 영혼이 탈출할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
이제 계옥탑을 두고 다투는 자는 모두 세 사람.
한 명의 노인과 붉은 그림자, 그리고 이름 모를 흑의 여인이었다.
여인은 보기 드물게 검을 쓰는 무인이었는데, 그 실력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여인과 붉은 그림자가 합심해서 노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셋 중에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던 노인은 황급히 몸을 빼려 했으나, 집요하게 날아든 여인의 검에 의해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