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06
506화 드디어 네가 임자를 만났구나
이에 엽현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과 친구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엽현은 이때 검종을 떠나 무원으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검술을 배우는 것 역시 중요하긴 하나, 혹시라도 친구들과 적으로 만나게 되는 상황은 결코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반드시 여기서 검을 배울 필요는 없어! 무원으로 가자!’
엽현이 봉우리를 내려가려 뒤로 돌아선 순간, 노인이 순식간에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순간 엽현은 노인의 빠른 속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는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노인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엽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못 간다! 너는 이미 검종의 사람이다!”
“하지만, 저는 아직 검종에 가입하지도 않았…….”
이때 노인이 벼락같은 손놀림으로 엽현의 가슴 부위를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 작고 검은 글씨로 ‘검(劍)’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자, 됐느냐? 더이상 입 아프게 하지 말거라.”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본 엽현이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아니, 영감. 이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저는 원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흥! 우리 검종의 제자가 되는 일이 그리 원망스런 일이더냐?”
“그런 말이 아닙니다. 단지 여동생이 지금 무원에 있으니, 저는 그리로 가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엽현이 노인을 지나치려는 순간, 노인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될 말! 너는 이미 검종의 사람이다. 만약 그 꼴로 무원에 가게 된다면 그들은 너를 받아줄 리도 없을뿐더러, 험한 꼴을 당하고 말게다. 다시 한번 생각 해 보거라!”
“…….”
“고민할 것도 없다. 검종은 결코 너를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다.”
“후…….”
엽현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다시 노인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어차피 제가 가고자 한다면 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인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노인의 말에 엽현이 살짝 웃는 듯하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 노인이 가볍게 지면을 밟았다. 그러자 그의 발밑에 있던 나뭇가지가 검광으로 변해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갔다.
쾅-!
수백 장 밖으로 날아간 검광이 갑자기 폭발하더니 그 사이에서 사람의 형상이 산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이는 엽현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엽현이 고개를 돌려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이때 산봉우리에 있던 노인이 한 발을 내미는가 싶더니 그대로 엽현 앞에 도달했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노인은 실력을 숨기고 있던 것이다.
노인은 평온한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을 뽑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두 개의 검광이 노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검광은 결코 목표물에 도달할 수 없었다. 두 개의 검광은 이미 노인의 두 손가락 사이에 가볍게 막혀버렸던 것이다.
헛!
엽현은 순간 헛숨을 켤 수밖에 없었다.
천녀를 제외하고 이런 경지의 검수를 본 적이 있던가?
이때 노인이 손가락에 가볍게 힘을 주자, 두 개의 검광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마, 말도 안 돼!”
“벌써부터 놀라서야 쓰겠느냐? 자, 다시 덤벼 보거라.”
노인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가 졌습니다!”
엽현은 눈앞의 노인이 계옥탑 안에 둔 목인보다 훨씬 강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 두 개의 손가락으로 비검을 막아낸 것에서 이미 승부는 끝났던 것이다.
이때 노인이 차가운 시선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요즘 놈들은 조금만 실력이 생기면 그저 기고만장할 줄이나 알지. 제 실력을 제대로 아는 놈은 하나도 없구나!”
“…….”
그 말을 들은 엽현이 다소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흥! 꼴에 자존심은 있구나. 좋다! 지금부터 한 손으로 상대해 주겠다. 단, 나를 여기서 반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게 한다면, 노부는 너를 스승으로 섬길 것이다!”
반보!
엽현이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그대로 일 검을 뿌렸다.
이에 노인이 콧방귀를 뀌며 소매를 뿌리쳤다.
노인의 소매가 펄럭인 순간, 엽현의 검이 튕겨 나갔다. 그러나 이때, 노인의 좌우에서 두 개의 검광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노인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남은 왼손으로 좌우를 후려치니 두 개의 검광은 힘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고작 이 정도로 노부를…….”
바로 이때, 노인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환경(幻境)!”
환경을 눈치챈 노인이 지체없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원래라면 그의 목이 있어야 할 자리였다.
노인이 아래쪽의 엽현을 향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다시 한번 표정이 급변했다.
“아직도 환경인 것이냐!”
말과 동시에 노인이 손가락으로 일 획을 그었다.
쉭-!
그의 바로 앞 공간이 길게 찢어졌지만,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를 본 노인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도대체 몇 겹이나 친 것이냐!”
노인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가 물러나기가 무섭게 노인의 눈앞으로 한 줄기 검광이 스치듯 지나갔다.
노인이 이번에는 손을 들어 자신의 발밑을 향하여 일 장을 내리쳤다.
콰쾅-!
엄청난 힘에 의해 그를 둘러싼 공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공간은 무너진 것보다 더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노인이 고개를 들어 정면의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의 입가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엽현은 기력을 많이 소모한 탓에 안색이 지극히 어두워져 있었다.
삼중몽경(三重夢境)!
과연 노인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설치한 세 개의 몽경을 전부 무너뜨려버린 것이다.
노인이 다소 심각해진 표정으로 엽현을 주시했다.
“환경과 검도를 결합할 생각을 하다니, 제법 잔재주가 있었구나.”
“…노인장께선 환경이 세 겹이란 걸 어찌 아셨습니까?”
“흥! 검수가 되어서 환경 따위에 속아 넘어간다면 어찌 검수라 할 수 있겠느냐!”
검수!
엽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노인의 경지라면 분명 검신통명(劍心通明)을 깨달았을 터. 환영으로 속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검종에서 저의 환경을 간파할 이는 몇이나 있겠습니까?”
“음… 솔직히 말한다면 넷을 넘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엽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모든 검수가 환경을 깰 수 있다면, 환경은 반쪽짜리 무공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네 비검과 환경의 조합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습니까!?”
엽현이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묻자 노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형편없기 짝이 없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인정하지 못하겠느냐?”
“물론입니다!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너는 아직 무엇이 부족한지 알지 못하는구나.”
‘부족한 점이라고?’
순간 엽현의 눈이 번뜩였다.
“도대체 어디가 부족한 것입니까? 알려 주십시오.”
이에 노인이 천천히 엽현을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
“네 검의 속도는 이미 극한에 이르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는 정말이지 노부조차 놀랐을 정도다. 허나, 힘과 속도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있더구나.”
“한 가지 중요한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의경(意境)!”
의경!
“나의 속도와 힘은 네게 미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허나 의경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우위에 있다. 그렇기에 너의 검은 내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혹시 너의 비검이 절대적인 경지에 이른다면 또 모르는 일이지만, 이조차도 의경의 성장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던 엽현이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부디, 제게 부족한 점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지만 너는 무원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더냐?”
“…무원은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 더욱 급합니다.”
잠시 엽현을 바라보던 노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서 밭매기부터 시작하거라.”
“예!”
엽현은 고개를 힘껏 끄덕이고는 노인의 채소밭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한편 엽현이 사라지자, 굳어있던 노인의 표정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노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휴… 원래는 반보 이상 움직였으니 내가 진 것인데. 까닥하면 이 나이에 새 사부를 맞을 뻔했군.”
밭매기!
엽현은 노인이 시킨 대로 힘차게 밭을 매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매우 흥분된 상태였다. 드디어 자신의 결점을 지적해 줄 귀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과 속도.
확실히 엽현의 검은 이 두 부분에 대해서 경지 대비 최대치에 근접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인의 말대로 의경 방면에 있어서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편, 노인 역시 속으로 엽현에 대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엽현의 실력이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다.
특히 환경과 비검의 조합은 조화경 강자라도 능히 떨어뜨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것이 기습이라면 효과는 배가 될 수 있었다.
‘썩 괜찮은 종자로구나!’
노인은 마음속으로 엽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 단점을 꼽자면 엽현의 성격이 너무나 완고하다는 것이었다.
검을 배움에 있어서 이는 결코 단점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종문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금 달랐다.
엽현의 성격은 어딜 가나 적을 만들기 딱 좋은 성격인 것이다.
노인은 엽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사고를 몰고 다니리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때, 밭을 매던 엽현이 갑자기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어르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말해 보거라!”
“방금 전에 분명히 한 발 물러나시지 않았습니까?”
“…….”
순간 노인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엽현은 결코 바보 천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게 그리 불만이더냐? 불만이 있으면 바로바로 해결해야지. 덤벼라! 무인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꾸나. 이번에는 공력을 좀 더 올려보도록 하겠다!”
“…….”
그 말을 들은 엽현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자신만큼이나 뻔뻔했던 것이다.
“하하… 뭐 그냥 그렇다는 말이었습니다. 농담이니 신경쓰지 마시지요.”
이때, 계옥탑에서 제견의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드디어 네가 임자를 만났구나! 심지어 너보다 낯짝이 두꺼워 보이는구나!]“…….”
이때 멍하니 있던 엽현의 귀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밭 하나 매는데 무슨 시간이 이리도 걸린단 말이냐? 궁둥짝을 걷어차 버리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이거라!”
“아, 예! 지금 갑니다요!”
노인의 성화에 엽현이 다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얼마 안가 그는 다시 손을 멈추고 말았다.
“아니, 왜 또 그러느냐? 하기 싫으냐?”
“그게 아니라…….”
엽현이 낮게 한숨부터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