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10
510화 그게 뭐 어쨌다고?
‘죽였어?’
‘정말로 이렇게 죽인다고?’
눈앞에서 남자의 죽음을 목격한 방설과 청년은 머릿속이 텅 비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황한 것은 엽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사고 치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은 금세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죽을 만했다.
엽현에게 있어 엽령이란 이름 두 글자는 감히 누구도 더럽혀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이다.
이때 육 층 존재의 목소리가 엽현의 귀에 들려왔다.
[마음에 든다! 이게 바로 남자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목을 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남자의 표상이란 말인가!]엽현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엽령.
그녀가 엽현의 마음속에 어떤 크기로 존재하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이 세상에 없었다.
엽 가에 있을 때에도 엽령은 그가 살아남아야 할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죽어도 이미 오래전에 죽어 지금쯤 문드러졌을 것이다.
누구든 자신을 모욕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동생을 모욕하는 것은 결코 허락할 수 없었다.
바로 이 순간, 중년인 하나가 엽현 앞에 나타나더니, 별안간 그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에 깃든 위력에 엽현이 있던 공간이 그대로 일그러져 간다.
이에 엽현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쾅-!
검광이 떨어지고 중년인이 순식간에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
이때 중년인이 자리에 멈춘 순간, 이미 한 자루 비검이 그의 미간을 살포시 짓누르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던 중년인은 더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멈춰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비검이 그의 머리를 꿰뚫어버리리라.
한편, 주변에는 소란을 듣고 몰려온 무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검을 들고 있는 엽현을 본 무원 무인들은 모두 적대적인 눈빛을 드러냈다.
검종의 검수가 무원의 무인을 죽였다!?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인 것이다.
이때 엽현이 돌연 뒤를 돌아보았다. 찰나의 순간, 엽현을 향해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엽현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앞을 막았다.
쾅-!
순간 엽현의 신형이 멀리 백 장 밖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정면에 모습을 드러낸 삼베옷을 입은 노인.
노인의 차가운 시선이 엽현의 얼굴에 닿았다.
“언제부터 검종의 제자가 이리도 건방지게 굴었단 말이냐? 감히 백주대낮에 무원의 사람을 죽이다니!”
이에 몸을 추스른 엽현이 표정 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방금 전 일은 화를 주체하지 못해 생긴 것으로 내 본래 목적은 아니었소. 하지만 죽어 마땅했기에 죽인 것뿐, 후회는 없소. 만약 저자가 다시 살아 돌아온대도 다시 목을 날려버릴 것이오!”
그 말을 들은 무원 무인들의 눈에선 점점 더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엽현의 이 건방진 한 마디가 그들의 자존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흥!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강아지 새끼로구나! 어떤 자신감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노부가 친히 확인…….”
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 그의 얼굴 앞으로 한 자루 비검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노인이 황급히 몸을 비틀어 검을 피해내는 동시에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강대한 기운을 본 엽현이 주저 없이 검을 쥐고 횡으로 그었다.
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엽현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이때, 멈춰서 있던 노인의 뒤편으로 두 자루 비검이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막 엽현을 향해 반격을 가하려던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양손을 들어 비검을 튕겨냈다.
퍼퍽-!
비검이 반대쪽으로 튕겨 나갔지만, 노인 역시 그 충격에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비검은 계속해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퍼퍽…….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인이 미친 듯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비검의 속도가 지독히도 빠른 탓에 노인은 피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막기에 급급했다.
게다가 비검에 깃든 힘마저 강력하니, 노인의 몸엔 얼마 가지 않아 십여 개의 검상이 생겨났다.
이를 보고 있는 무원의 무인들 또한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매우 젊어 보이는 엽현의 실력이 이다지도 강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노인이 비록 학술을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학생을 지도하는 원사(院士)의 신분이었다.
무원의 원사가 고작 검종의 제자에게 이렇게 밀린단 말인가?
노인은 이미 수백 장 밖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이때, 엽현의 비검이 공격을 멈췄다.
장내에 또 한 명의 중년인이 나타나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사(林師)!”
누군가 소리치자, 모든 무인들이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무원에서 전문적으로 무학을 가르치는 무사(武師)였다. 일반 원사와는 결을 달리하는 실력자였다.
임사는 잠시 엽현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곧장 달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때, 엽현이 웃으며 소리쳤다.
“이제 보니 무원의 늙다리들은 젊은 무인을 겁박하는 것도 모자라 차륜공격까지 하는 게 취미인가 보구려! 오늘 무원이 어떤 집단인지 똑똑히 알겠소!”
그 말에 임사가 자리에 멈춰 섰다.
“놈! 감히 무원에 쳐들어와 살인을 저지른 주제에 공손한 대접을 바란단 말이냐?”
이에 엽현이 진혼검을 꺼내 들고는 검 끝으로 임사를 가리켰다.
“그럼 들어와 보던가!”
말과 동시에 그의 발끝이 지면을 박찼다.
쉭-!
엽현의 신형이 한 줄기 검광이 되어 뻗어 나가자, 주변 공간에 금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정면에 있던 임사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에 들고 있던 자(尺)로 엽현의 머리를 내리쳤다.
쾅-!
임사가 서 있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때, 그의 뒤통수와 뒷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두 자루 비검!
순간 안색이 변한 임사. 그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고 사라지더니, 이내 십여 장 밖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순간, 그의 정수리를 향해 한 줄기 검광이 떨어져 내렸다.
눈을 크게 뜬 임사가 검광을 향해 자를 후려쳤다.
쾅-!
임사의 신형이 뒤로 미끄러졌다. 그가 채 자리에 멈춰서기 전 이번에는 두 줄기 검광이 그의 눈앞에 번뜩였다.
퍼퍽-!
황금히 자를 들어 방어하긴 했지만, 임사의 신형은 수백 장 밖까지 밀려나고야 말았다.
엽현이 마무리를 지으려 다가서는 순간, 임사가 그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엽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수없이 많은 긴 자들이 어느새 그의 주위를 빼곡히 에워싸고 날아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도 잠시, 두 줄기 검광이 번뜩이자 장내는 다시 깨끗이 정리됐다.
바로 이때, 엽현의 정면으로 날아드는 임사의 자가 날아들었다.
엽현이 지체없이 검을 휘둘렀다.
쾅-!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엽현의 신형이 땅을 가르며 밀려났다.
임사가 재차 출수하려는 찰나, 그의 앞에서 번쩍이는 두 줄기 검광!
검광을 쳐낸 임사는 제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치열했던 공방을 증명하듯, 돌계단 주위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 있었다.
임사에게 있어 이 싸움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첫째로 그는 엽현을 죽일 자신이 없었고, 둘째로 이미 여러 차례 검상을 입은 자신에 비해 엽현은 별 피해가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열세에 놓여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행여나 이런 상황에서 그가 패하게 된다면 자신은 물론 무원 전체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니, 더 이상의 전투는 현명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원의 사부가 일개 검종 제자에게 패한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면 무원의 제자들은 더 이상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한편 상대가 더 이상 대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자 엽현 역시 검을 거두었다. 임사의 실력이 약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를 죽이고자 한다면 엽현 역시 패를 노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엽현의 뒤편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엽…현?”
익숙한 목소리였다.
엽현이 뒤를 돌아보자 과연 그곳엔 전군이 서 있었다.
전군 역시 엽현을 확인하고는 크게 웃으며 달려왔다.
“엽현, 언제 왔소?”
“바로 방금 도착했소.”
“하하하 무사하니 다행이오. 그대도 무원의 제자가 되길 원하는 것이오?”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군이 뭔가 더 말하려다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졌다.
“방금 듣자 하니 웬 검수가 와서 살인을 하고 있다던데…… 그게 다름 아닌…….”
“그게 나요. 하하하!”
엽현의 대답에 전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미앙성역에서도 일단 죽이고 보더니, 여기서도 또 그러는구려.”
“하하, 이번엔 그런 게 아니오. 난 그저 동생을 찾으러 왔을 뿐인데 뭔가 오해가 생겼소.”
“저런…….”
“걱정 말고 한쪽에 잠시 비켜나 있으시오. 이 일은 내가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소.”
전군은 무원의 사람이니, 자신과 가까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면 필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군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 세상에 피를 나눈 전우 형제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그러시오?”
“그래서 하는 말이오. 괜히 곤란하게 할 순 없으니 잠시 물러나 있으시오.”
이에 전군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반대쪽의 임사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임사, 이 일엔 필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임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해? 다짜고짜 무원에 쳐들어와 사람을 죽여 놓고 오해라 하면 끝나는 게냐?”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만! 너는 물러나 있거라!”
“임사, 여기 있는 엽현은 저의 형제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그의 성품은 제가 보증하오니…….”
이때 임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쳤다.
“물러나란 말을 듣지 못한 게냐!”
전군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곁에 있던 엽현이 나섰다.
“저자의 말이 맞소. 이번 일은 내가 스스로 풀어야 하니 일단 지켜보시오. 그리고…….”
엽현이 전군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런 일로 부담을 주고 싶진 않소.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려 하오.”
그 말에 전군이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말로 잘 풀어 보시오. 후드려 패는 것은 그다음에 해도 좋으니.”
“하하하! 누가 들으면 내 성격이 무슨 개차반인 줄 알겠소.”
이때, 멀리서 임사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대화? 무슨 대화? 하려거든 내 제자의 복수가 끝나고 이야기해 보자꾸나!”
임사는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말을 들은 전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보아하니 이번 일은 더 이상 대화로는 해결이 안 될 정도로 틀어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엽현 쪽이었다. 돌이 길을 막고 있다면 돌아가는 대신 가루가 될 때까지 부숴버리는 것이 그의 성격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임사의 말을 들은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임사, 만약 누군가 그대의 가족을 모욕한다면 참을 수 있겠소?”
“그게 무슨 말이냐?”
임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적의를 드러냈다.
이에 엽현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나는 여동생을 찾으러 이곳을 방문했소. 하지만 그대의 제자는 검수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무시한 것에 이어,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을 더러운 입으로 모욕……”
말을 이어가는 엽현의 표정이 점점 흉악하게 일그러져 갔다.
“누가 감히 내 동생을 함부로 해도 된다고 허락했는가…… 무원이? 아니면 그대가?”
“그게 뭐 어쨌다고 지껄이는 게냐!”
“하하하하하! 그럼 내가 놈을 죽인 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떼거리로 달려들기라도 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