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19
519화 장님이 따로 없구나
육 층 존재의 말에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었다.
“그럼 파도(破道)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육 층 존재가 물었다.
[지금 네 경지가 어디쯤이냐?]“통유, 이제 곧 만법이 됩니다.”
[통유경이라……. 나는 네가 무슨 증도경쯤 되는 줄 알았다.]“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놈아! 지금 네 코가 석 자인 놈이 무슨 벌써부터 중도니 파도니 하는 것을 궁금해한단 말이냐? 그렇게나 할 일이 없느냐?]“…….”
[조금 멀리 보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하지만 먼저 네 발밑을 살피며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알겠느냐?]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육 층 존재의 말대로 지금은 현재의 길을 확실히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정도니 파도니 하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때 엽현은 문득 뭔가 떠올랐다.
“선생, 방금 저와 겨룬 그 검수 노인 말입니다. 그는 도경의 경지였는데 증도와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도경?]육 층 존재가 잠시 침묵했다.
[그런 경지도 있었나? 도경 같은 건 내 기억엔 없는데……]“…….”
엽현은 더 이상 물어봤자 좋은 답이 안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바로 산맥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바로 이때,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상공에서 몇 개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설마 날 발견했나?’
그럴 리는 없었다. 그의 육신은 여전히 혼돈지기와 하나였다.
이때, 몇 줄기 신식(神識)이 내려오더니 그가 숨어 있던 곳 부근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엽현이 긴장하며 출수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신식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때, 세 명의 무인이 엽현이 위치한 곳 상공에 나타났다. 분명 엽현이 그들 바로 아래에 있었음에도 그들은 엽현을 발견하지 못했다.
세 사람 중에 중년인 하나가 섞여 있었는데, 그자는 바로 검종의 종주인 이현풍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검을 품에 안고 있는 한 노인.
이 자는 다름 아닌 방금 전 엽현과 대결했던 그 검수 노인이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몸집이 우람한 남자였는데, 등 뒤에 거대한 검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때, 한참 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이현풍이 말했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군.”
“은신술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놈입니다.”
노인의 말에 거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허노(何老), 어쩌다가 놈을 놓친 것이오?”
“놈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소”
“그대가 초살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오?”
허노라 불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결을 길게 끌고 간다면야 내가 패할 일은 없겠지만, 단시간에 승부 보는 것은 불가능했소. 물론 곧바로 추격을 했다면 반드시 죽일 수 있었을 테지만…….”
노인의 말에 이현풍이 고개를 저었다.
“추격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오. 우리 검종이 그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되오. 만약 그렇게 되면 보물을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세력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소.”
“저 역시 그런 우려 때문에 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검을 등에 지닌 거한이 끼어들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 말에 노인 역시 이현풍을 바라보았다.
“후후, 서두를 것 없소. 분명 우리보다 급한 자들이 곧 그를 찾아낼 테니까 말이오.”
이현풍이 멀리 있는 신무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우리가 당장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엽현의 동생과 친구들이 있는 무원이오. 과연 그들이 저들 세력들과 타협을 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오.”
“그들이 타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노인의 말에 이현풍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저들 세력들은 엽현의 동생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무원이 타협하지 않으면 곧 전면전이 일어날 거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 검종이 어부지리를 취할 기회도 생길 것이오.”
이번엔 거한이 나섰다.
“그들이 타협할 경우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된다면 무원은 유망한 무인들을 한꺼번에 잃게 될 것이고, 제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지고 말 것이오. 즉,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우리 검종에게는 유리할 수밖에 없소.”
“하지만 조사님의 유지가 있지 않았습니까? 절대 무원과 다투지 말라는…….”
“흥!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오? 시대가 변했소! 그대들도 기억하시오. 우리 검종은 더 이상 이 작은 성역에 만족하며 살아가지 않을 것이란 것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공중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엽현의 표정은 심각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저 검종 종주란 자는 악독하기 짝이 없군…….’
엽현은 곧 자리를 이동했다.
얼마 후, 그가 도착한 곳은 신무성 안이었다.
그가 애써 탈출한 신무성을 제 발로 돌아간 것은 까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수 때문이었다.
검종이 비호 해주지 않은 것?
엽현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애당초 검종과 그는 아무 사이가 아니었으니, 서로에 대해 책임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종이 사람을 보내 자신을 죽이려 하고, 이제 자신의 동생과 친구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려 하는 것은 명백히 적으로 돌아선 행위였다.
기왕 검종과 적이 된 이상 그들의 선택지는 단 두 개뿐이었다.
검종이 사라지던가, 아니면 엽현이 죽음을 맞이하던가.
엽현은 검종으로 정면으로 쳐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간자재나 천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몰래 검종에 잠입했다.
그의 목표는 바로 신검각(神劍閣)이었다.
신검각은 검종의 보고(寶庫)로, 각종 신병들을 모아 둔 곳이었다.
엽현은 곧 신검각에 도착했다. 이런 백주대낮에 도둑이 들 리 없다고 생각했는지, 보고를 지키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신검각 안에 들어간 엽현은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고 안에는 백 자루도 넘는 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는데, 하나같이 훌륭한 검들이었다.
이때 엽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검들을 지키고 있는 진법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진법으로는 그를 막을 순 없었다.
공간도칙!
공간도칙의 힘을 이용하면 어지간한 진법들은 그냥 통과할 수 있다. 물론 얼마 전 검종의 노인과 싸울 때 그를 가두었던 것과 같은 상급 진법들은 예외였지만.
얼마 후, 보고 일 층에 가득했던 검들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물론 이 순간에도 진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엽현은 곧 계단을 따라 보고 이 층으로 올라섰다. 이 층에 보관되어 있는 검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엽현은 이곳에서 무려 서른여섯 점의 선기 급 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분이 째질 듯이 좋아진 엽현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닥치는 대로 계옥탑 안에 쓸어 담았다.
어느새 삼 층으로 올라선 엽현. 이곳엔 단 세 자루의 검뿐이었다. 하지만 이 세 자루는 모두 조화경 급의 검이었다.
엽현은 볼 것도 없이 검을 수거한 후, 빠르게 사 층으로 이동했다.
보고 사 층으로 올라온 엽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검이 그려져 있는 한 장의 그림이었다.
검집 안에 들어있는 한 자루 검.
이 검을 본 순간, 엽현이 깜짝 놀라며 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오래전 엽현은 제견의 부탁으로 신족의 땅을 찾아가던 중, 길을 잃고 어느 버려진 성역에 들어선 적이 있었다.
엽현은 그곳에서 ‘검종’이란 동명의 종문을 발견했고, 평범하지 않은 검 한 자루를 얻었다. 검집 안에 있던 검은 당시 엽현의 능력으로는 뽑을 수 없었기에, 그저 계옥탑 안에 보관해 오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눈앞의 그림과 매우 닮아있는 것이다.
‘어떻게 된 걸까? 혹시 그때 그 멸망한 검종과 신무성의 검종이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건가?’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아래층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당황한 엽현은 다급히 공간 속에 몸을 숨겼다.
“도둑! 도둑이다! 보고가 털렸다!”
일 층에서 들려오는 소리.
신검각 전체가 갑자기 떠들썩해지는가 싶더니, 사방에서 여러 개의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엽현이 있는 사 층에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이현풍과 검을 안고 있는 노인이었다.
차가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이현풍. 그의 눈빛이 엽현이 숨은 곳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현풍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누가 이런 짓을……. 설마 엽현이?”
“그놈 말고 또 누가 이런 짓을 벌이겠소.”
노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어떻게 진법을 뚫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걸 누가 알겠소…….”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테니, 제자들을 동원해 수색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인이 황급히 사라졌다.
홀로 남은 이현풍은 마지막으로 장내를 한 번 훑어보고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진 후, 사 층은 다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그렇게 대략 반 시진쯤 지났을 때, 돌연 이현풍이 다시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다시 한번 장내를 샅샅이 둘러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에는 신식을 모두 개방해 장내를 구석구석 살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이현풍은 결국 신식을 거두고 사라졌다.
얼마 후, 엽현이 방에 걸려 있던 그림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뭔가 고민하던 그는 그림 아래쪽에 무언가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장내를 떠났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신검각을 수색하던 검종의 장로가 사 층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곧장 이현풍을 불러왔다.
잠시 후, 장내에 도착한 이현풍은 그림 밑에 적혀 있는 글귀를 보고서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현풍 멍청한 놈. 바로 앞에 있는데도 보질 못하다니. 장님이 따로 없구나!]“…….”
딱딱하게 굳어 있던 이현풍의 표정은 이내 붉게 달아올랐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오냐, 네 놈이 언제까지 숨을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이현풍이 노기 띤 표정으로 소매를 펄럭이자, 글귀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 * *
한편 검종을 빠져나온 엽현은 신무성을 떠나지 않았다.
등하불명(燈下不明).
가장 위험한 곳이 어떤 경우에는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되는 법이다. 오히려 그는 신무성 안에 머물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적들을 대비하고자 했다. 저들이 조만간 엽령과 친구들을 향해 마수를 뻗치리란 것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곧 성 외곽에 있는 한 폐가를 찾았다. 방에 들어온 엽현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방금 거둔 수확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가 검종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조화경 급의 검 세 자루, 선기 급 검이 서른여섯 자루, 그리고 성계 검이 무려 육십 자루였다.
‘횡재했다!’
싱글벙글 눈앞의 검들을 살펴보던 엽현은 문득 신검각에서 보았던 그림을 떠올리고는 봉인된 검을 꺼내 들었다.
“선생, 이 검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모른다.]“그러면 이 검에 무슨 특징 같은 것이 보이십니까?”
육 층 존재가 한참을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봉인된 검이로군.]“그, 그리고?”
[검이로군.]“…그리고?”
[…길이가, 그리 길지는 않군.]엽현은 질문을 멈췄다. 육 층 존재가 생각보다 쓸모없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검을 뽑고 싶은 게로구나.]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사롭지 않은 검이다. 음… 천지를 파괴해 버릴 정도의 살상력이 느껴진다. 그 검을 뽑는 순간 너는 하늘로부터 배척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