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25
525화 검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무슨 일 있어?”
안란수의 물음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서 가자.”
안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내를 떠나려 할 때, 갑자기 그들 앞에 혁련천이 나타났다.
“란수, 잠시 자리 좀 물러줘야겠다. 엽현과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혁련천의 말에 안란수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 그는 이미 엽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자 혁련천이 미소를 보였다.
“걱정할 것 없다. 정말로 이야기만 나눌 것이다.”
그러자 안란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쪽으로 물러났다.
엽현과 마주한 혁련천이 먼저 말을 꺼냈다.
“검종은 지금 모든 제자들을 총동원해 너를 찾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게냐?”
“글쎄 말이오. 왜 나를 찾는 것일까…….”
엽현이 멋쩍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물론 검종이 저리 미쳐버린 이유가 계옥탑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이번만큼은 저들도 결코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하하! 그럼 진짜지, 가짜로 저런 짓을 하겠소?”
엽현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혁련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까지 저들은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 저들이 전력을 쏟기로 작정한 이상, 검종에게 발각되는 즉시 네게는 아무런 기회도 없을 것이다.”
“…….”
“검종은 수천 년의 전승을 이어 온 자들이다. 그들의 저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조차 측량하기 어렵다.”
“걱정해 줘서 고맙소. 유념하도록 하겠소.”
“아니, 조심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지금 당장 신무성을 떠나거라.”
“하지만 내가 떠나게 되면 무원이 공격을 받을 텐데?”
이때 혁련천의 눈빛이 번뜩였다.
“아니, 오히려 저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할 수도 있지.”
엽현은 혁련천의 의도를 곧바로 이해했다.
그가 신무성에 있는 한, 적들의 관심은 신무성 전체에 쏠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무성을 떠나게 되면 저들 세력 또한 엽현을 따라 이동할 것이다.
물론 전제는 엽현이 어디로 떠났는지를 저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장소에 가서 사건을 일으킨다면 자연히 성주 등의 시선은 그쪽으로 쏠릴 것이고, 무원은 안전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결국 그들의 목표는 엽현인 데다, 혹여 엽령들을 노린다고 하더라도 무원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터였다.
간단히 말해 엽현을 희생해 화력을 돌리는 전략이었다.
혁련천이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지금 있는 신무성은 검종의 영역이기도 하다. 네가 검종을 전멸시키지 못하는 이상에야 칼자루는 저들이 쥐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혁련천의 생각에 동의한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무원이 이번 일에 휩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오. 그리고 내 동생과 친구들은…….”
“그건 걱정할 것 없다. 그들은 우리 무원에서 안전하게 데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세 좀 지겠소. 나는 지금부터 저들의 관심을 밖으로 옮기겠소.”
엽현은 혁련천에게 포권을 취하고는 장내를 빠져나갔다.
안란수 역시 혁련천을 한 번 바라보고는 엽현을 따랐다.
미묘한 표정으로 엽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혁련천.
이때, 그의 곁으로 진산이 조용하게 다가섰다.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건… 스스로의 운에 달린 것이겠지.”
“듣자 하니 엽령이 오라비에 대한 정이 매우 깊다고…….”
“앞으로 입단속을 해야 할 것이오. 그녀가 결코 이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진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혁련천은 말없이 검종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종은 도대체 왜 엽현에게 저리도 집착하는 것인지…….”
* * *
무원 입구.
입구에 다다른 안란수가 걸음을 멈췄다.
“원장이 무슨 말을 했어?”
“뭐, 별말 아니었어. 조심하라는……. 아무튼 나는 별일 없을 테니, 너도 잘 지내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엽현은 무원을 떠났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안란수가 가만히 눈을 들어 검종 쪽을 바라보았다. 점점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변해갔다.
무원을 떠난 엽현은 곧장 성문 밖을 나섰다.
[어디로 가려는 게냐?]육 층 존재의 물음에 엽현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막연하다.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하나?’
엽현의 표정은 해 질 녘 산등성이와 같이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마침내 뭔가 결심한 엽현은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그의 모습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 * *
같은 시각.
검종은 엽현을 찾기 위해 신무성 전체를 이 잡듯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엽현은커녕 머리카락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무원 입구.
몇 줄기 검광이 하늘에 번뜩이더니, 이현풍이 산문 앞에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검을 품에 안은 노인과 검을 등에 진 거한이 지면에 떨어졌다.
이현풍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혁련천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이현풍을 본 혁련풍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현풍의 전신은 검은 장포로 둘러져 있었으며, 얼굴의 반쪽은 검은 면구가 가리고 있던 것이다.
이때 이현풍의 싸늘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혁련천, 나는 엽령을 원한다.”
“이현풍…….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그런데 네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잊은 것은 아니겠지?”
혁련천의 말에 이현풍이 표정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딴 건 상관없다! 당장 내놓지 않으면 오늘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흥! 동귀어진이라도 할 셈인가? 우리 무원이 그렇게 호락호락했던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혁련천의 등 뒤에 진산이 나타났다.
그 외에도 세 명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들은 모두 도경에 이른 강자들이었다.
이 모습에 이현풍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네가 그 아이를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게냐?”
“이현풍, 정신 차려라. 네가 미쳐버린 건 상관없지만, 이대로 가면 검종에도 전혀 득 될 것이 없다.”
“후후, 정 그리 나온다면 할 수 없군. 오늘부로 검종은 무원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끝으로 검종의 무인들은 자리를 떠났다.
검종이 무원에게 선전포고한 사실은 곧 신무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검종과 무원은 신무성이 생긴 이래로 동고동락해 온 사이였다. 이 수천 년 동안 그들은 티격태격한 순간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전쟁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검종 조사와 무원 조사와의 특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어쨌든 검종의 선전포고로 신무성 안은 순식간에 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지금까지 검종 제자와 무원 제자가 서로 마주칠 때면 기껏해야 말로 도발하거나 주먹질을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럼없이 상대의 목숨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검종은 아예 십 인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만들어 신무성 안에 있는 무원 제자들을 무참하게 쓸어버리고 다녔다.
이에 곧 무원도 반격에 나섰다.
무원.
조사의 조각상 앞에 선 혁련천. 조각상을 올려다보는 그의 표정이 자못 비장했다.
“당신께서는 검종과 화합하며 지내라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검종이 전쟁을 선포한 까닭에 부득이 조사의 유지를 지키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말을 마친 혁련천이 뒤로 돌아섰다.
이때, 그의 앞에 안란수, 연만리, 막사 그리고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이 청년은 무원이 자랑하는 천재, 소진(蕭塵)이었다.
네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던 혁련천이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 넷은 무원에서 가장 강한 제자들이다. 알다시피 검종이 선전포고를 한 상황이니 나 같은 늙은이나 너희 같은 젊은 제자들이나 모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부터 너희는 무원의 다른 젊은 제자들을 지휘하면서, 검종의 무인을 닥치는 대로 격살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때 소진이 질문했다.
“사부, 정녕 타협점은 없는 것입니까?”
“이미 검종 제자들이 날뛰고 있는 시점에서 무슨 타협을 한단 말이냐? 지금 저들은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 너희도 주저 말고 살수를 펼치도록 하거라!”
그러자 소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내 안란수 등 사인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들이 사라진 후, 혁련천이 어딘가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는 저들을 몰래 따라다니면서 보호하도록 하거라.”
그 순간, 어둠 속에 있던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물러났다.
* * *
신무성 외곽.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음험한 눈으로 신무성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자는 얼마 전 도망치듯 신무성을 떠난 야란이었다. 그의 뒤편에는 네 명의 도경 강자도 있었다.
당시 계옥탑을 눈앞에 두고도 이현풍에게 밀려난 그는 여전히 탑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때 야란의 앞에 흑의인 하나가 나타나더니, 야란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한 후 사라졌다.
“하하하! 검종 네놈들이 결국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한 도경 무인의 질문에 야란이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검종이 무원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정말입니까!? 하늘이 돕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우선 대기한다. 두 진영이 서로 양패구상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가 들어가 단번에 쓸어버린다!”
질문한 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엽현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엽현은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다. 물건은 이미 이현풍에게 넘어갔으니, 우리는 검종에만 집중하면 될 것이다.”
말을 마친 야란이 신무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현풍… 네가 과연 보물을 지켜낼 수 있을지, 내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이때 무언가 생각난 야란이 곁에 있던 무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성주 쪽의 동정은?”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예의주시해야 한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보물을 원한다면 우리만으로는 버겁지 않겠습니까?”
성주.
비록 미앙성역에서 쓴맛을 맛보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 부근 성역의 최강자였다.
“걱정하지 마라. 그를 상대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이때, 야란이 갑자기 오른편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누구냐!”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엽현!”
야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소리쳤다.
“어이~ 그간 잘들 지냈소?”
엽현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야란이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엽현, 우리는 더 이상 너에게 볼일이 없다.”
지난 번 대결에서 순식간에 도경 강자 하나를 죽인 데 이어 자신에게 부상까지 입혔던 엽현이었다.
그런 엽현에게 야란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보물이 이현풍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더더욱 엽현을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 엽현이 걸음을 멈췄다.
“나와 동맹을 맺지 않겠소?”
‘동맹!?’
야란이 순간 눈썹을 움찔거렸다.
“동맹……. 우리와 네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동맹.”
이때, 태연하기만 하던 엽현의 표정이 점점 흉흉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종은 나에게 도둑놈이라고 거짓 누명을 씌웠고, 보물마저 강탈해 갔소. 게다가 하나뿐인 누이까지 위협하고 있으니, 어찌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있겠소?”
야란을 바라보는 엽현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나는 이제 보물 따위엔 관심 없소. 그저 검종을 멸망시키고 싶을 뿐이오! 잔챙이들은 내게 맡기시오. 다만 다른 도경 강자들이 나를 에워싸지만 못하게 막아 주시오. 하겠소?”
“…보물은 원하지 않는다고? 사실이더냐?”
의심 가득한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는 야란.
이에 엽현이 들고 있던 검을 야란의 눈앞에 치켜들며 외쳤다.
“우리 검수들은 결코 한 입 갖고 두말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