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26
526화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소?
야란은 엽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엽현은 아무 말 없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야란이 마침내 입을 뗐다.
“엽현, 정말로 보물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
엽현이 웃으며 야란을 바라보았다.
“포기하기 싫어도 어떻게 하겠소? 지금 내 상황은 보물이 문제가 아니라 나와 동생의 목숨을 건지는 것이 우선이오.”
“흥!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는구나.”
“다른 건 필요 없소. 나는 검종만 무너뜨리면 그걸로 만족할 것이오.”
야란은 마지막으로 신중을 기한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그거참 좋은 판단…….”
“그러나!”
이때 야란이 엽현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허튼수작을 부릴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걱정 마시오. 그대가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 한, 배신하진 않을 테니까.”
“…좋다. 그럼 계획을 말 해 보거라.”
“간단하오.”
엽현이 고개를 돌려 멀리 신무성을 바라보았다.
“지금 곧바로 검종을 치는 것이오.”
“음? 저들이 서로 힘이 빠질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하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오. 그대는 검종의 도경 급 강자들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소?”
야란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자 엽현이 말을 이어갔다.
“지금 신무성 안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젊은 제자들만 싸우는 상황이요. 그러나 도경 급 강자들이 맞붙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오고 있지 않소.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시겠소?”
“빙빙 돌리지 말고 말 해 보거라!”
“잘 한번 생각해 보시오. 검종은 이미 원하는 보물을 얻었소. 그런데 왜 갑자기 무원에게 전쟁을 선포했을까?”
야란의 두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네 말은 저들에게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이냐?”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
엽현이 야란을 향해 바짝 다가서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저들은 그대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고의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오.”
야란의 고개가 신무성 쪽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커졌다.
“놈들은 보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고 있거나, 그 힘을 완전히 얻을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것이구나!”
“바로 맞췄소!”
엽현이 맞장구치며 대답했다.
“제아무리 이현풍이라 해도 성제 현상방 일 위에 오른 물건을 한 번에 굴복시킬 순 없소.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오. 검종이 이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이현풍이 보물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여기까지 듣자, 야란의 표정은 이미 극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헌데 너는 보물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었던 것이냐?”
야란이 묻자 엽현은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내 경지가 너무 낮은 탓에 불가능했소.”
엽현이 신무성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소. 지금 이 순간에도 이현풍은 보물을 복종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오. 만약 그가 그 힘을 얻게 된다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소!”
야란은 신무성을 바라보며 다소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아직까지 엽현을 확실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전에 엽현에게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경계를 푸는 것은 매우 위험하게 여겨졌다.
이런 모습을 보자 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는 내가 어떻게 도경 강자를 단숨에 죽일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소?”
“…….”
야란이 엽현을 바라보자 엽현이 미소를 보였다.
“그건 바로 그 보물 때문이었소. 나는 물건을 복종시킬 순 없었지만, 그 힘의 일부를 빌려 쓸 순 있었소. 그 때문에 도경 강자를 단숨에 죽일 수 있던 것이오. 그리고 이현풍은… 나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자요. 그자가 보물의 힘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다면, 설령 성주의 본체가 온다고 할지라도 순식간에 살해당하고 말 것이오!”
야란은 말을 아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곁에 있던 한 노인이 그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놈의 말이 미심쩍긴 하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이현풍이 보물을 복종시키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야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엽현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출수하는 동안 너는 뭘 할 것이냐?”
“나는 숨어서 암습을 할 것이오.”
암습!
암습이란 말을 듣자 야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지난번 대결로 이미 그는 엽현의 압습실력을 똑똑히 파악한 상태였다. 정면 대결에 있어서는 그리 두려울 것은 없었지만, 귀신처럼 날아드는 비검에는 당시 그도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소. 지금 바로 가야 하오.”
“좋다. 우리가 검종을 휘젓는 동안 너는 도경 강자들을 암살하도록 해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현풍을 처리하는 것을 잊지 말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보였다.
“그럼 성안에서 봅시다!”
엽현이 성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야란의 곁에 도경 강자 하나가 다가왔다.
“놈의 말을 완전히 믿어선 안 됩니다.”
“알고 있다. 만약 놈이 정말로 복수만을 원하는 것이라면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면…….”
이 순간, 야란의 눈에 한 줄기 살의가 스쳐 지나갔다.
“부디 놈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정도로 총명하길 바라는 수밖에. 가자!”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그들의 모습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 * *
신무성, 검종.
이현풍은 대전 안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앞에는 이름 모를 검 한 자루가 놓여 있다.
이때, 대전 안으로 흑의인 하나가 들어왔다.
“찾았느냐?”
이현풍이 두 눈을 뜨며 물었다.
그러자 흑의인은 고개를 저었다.
“하늘로 솟은 것인지 도통 흔적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쓸모없는 놈들!”
이현풍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검종의 무인이라는 것들이 사람 하나도 찾지 못한단 말이냐!”
그 말에 흑의인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이현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전 입구에 섰다. 그의 반쪽만 남은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엽현!”
이현풍은 이제 보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엔 자신을 반병신으로 만든 엽현을 찢어 죽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무인에게 있어 육신의 절반을 잃는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이었다. 만약 정말로 육신을 회복할 수 없다면, 죽을 때까지 더 발전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찾아라! 지옥 끝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다소 겁에 질린 듯한 흑의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급하게 대전을 빠져나갔다.
바로 이때였다. 몇 개의 강대한 기운이 불현듯 검종 상공에 나타났다.
이를 본 이현풍이 안색이 변하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가 막 지면에서 발을 떼는 그 순간, 상공에 있던 기운들이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콰콰쾅-!
검종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림과 동시에 엄청난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이때, 몇몇 건물들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버렸다.
“습격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몇 개의 검광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공중에서 야란과 마주한 이현풍은 이미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야란! 드디어 미쳐버린 게냐!”
“이현풍, 잘 있었느냐? 내가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태연한 표정의 야란. 이를 본 이현풍이 야란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보물은 이미 내 수중에 없다!”
“흥! 네 놈은 노부가 저능아로 보이느냐!”
이현풍이 아직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야란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이현풍이 황급히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응전하라!”
이현풍의 음성이 떨어지자마자, 여섯 명의 도경급 검수들이 야란 등을 에워쌌다. 그들의 표정엔 일말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검종에는 총 열 명의 도경 강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십 인의 도경 강자!.
이번에 이현풍과 검종은 철저하게 전투를 준비했었다.
곧 상공에서 도경 강자들 간의 전투가 펼쳐졌다.
한편, 다른 쪽 상공에서는 두 명의 노인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우측에 하얀 장포를 입고 손에 검집이 달린 검을 쥐고 있는 인물.
이 사람이 바로 검종의 전대 종주인 목풍진(牧風塵) 이었다.
목풍진 정면에 있는 노인은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는데, 체구가 왜소하고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었으며, 주름이 가득한 얼굴 사이로 부리부리한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있던 목풍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감히 검종에 쳐들어오다니, 겁을 상실했구나.”
창을 든 노인이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검종이 두려웠다면 여기까지 왔겠는가?”
목풍진이 잠시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정면의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강대한 검세가 전신에 응축되어갔다.
이에 창을 든 노인이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오너라, 말로만 듣던 검성(劍聖)의 실력을 한 번 견식 해 보겠노라!”
말을 마침과 동시에 창을 든 노인이 공중을 박찼다.
쉭-!
공간을 가르며 날아드는 한 줄기 창망(槍芒).
창끝이 한기를 내뿜는 순간, 검종 하늘 전체가 어둠에 휩싸였다.
바로 이때, 목풍진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웅-!
중후한 검명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콰쾅-!
거대한 두 기운의 격돌에 검종 상공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한편, 이현풍과 야란의 전투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비록 이현풍은 육신의 절반을 잃은 상태였지만, 그 실력만큼은 여전히 가공할만했다.
쾅-!
이때 거대한 폭음과 함께 야란과 이현풍이 서로 튕겨져 나갔다.
공중에 멈춰선 이현풍이 분노어린 표정으로 야란을 향해 소리쳤다.
“정말로 내겐 보물이 없단 말이다!”
“헛소리하지 마라! 네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설마 엽현에게 있다는 소리냐!”
“그래! 바로 그놈이다! 그놈에게 있다!”
야란의 안색이 순식간에 흉흉하게 변했다.
“네가 아직도 노부를 바보 천치로 여기고 있구나!”
야란은 더 이상 이현풍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이얏-!”
이현풍이 어떨 수 없이 정면으로 일 검을 찔러 넣었다.
쾅-!
두 사람이 다시금 둘로 나뉘었다. 이현풍이 다시 대화를 시도하려는 찰나, 눈동자가 커지더니 황급히 뒤로 돌아 검을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 하나가 튕겨 나갔다.
이때, 이현풍의 미간 바로 앞에는 한 자루 검이 멈춰 서 있었다.
그의 미간을 뚫으려 했던 검은 어느새 나타난 손바닥만 한 황금색 방패에 막혔던 것이다.
암습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엽현.
그는 자신의 공격을 막은 방패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현풍이 저런 방어 장비를 갖추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방패는 최소 조화경 급으로 보였다.
엽현을 발견하자, 이현풍의 표정이 흡사 마귀처럼 일그러졌다.
“엽현, 네 놈! 네 놈이…….”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이현풍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이현풍! 이 악랄한 자식아, 당장 훔쳐 간 물건을 내놓거라!”
이현풍이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려는 순간, 뒤편에 있던 야란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현풍이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공중을 찌르는 순간 무수히 많은 검광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와 동시에 엽현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콰콰쾅-!
거의 스무 명의 가까운 도경 강자들의 전투.
이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하늘이 끊임없이 요동치고, 공간은 회복할 시간도 없이 무너져 내렸으며,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은 이미 지진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린 상황이었다.
이는 마치 세기말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막 야란을 튕겨낸 이현풍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이 멍청한 자식아! 보물은 이미 내게 없단 말이다! 너는 엽현에게 속고 있다!”
이에 야란이 주먹을 꽉 쥐고는 차가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현풍,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지겹지도 않나?”
“이 멍청한……!”
야란은 이현풍을 무시한 채 엽현을 향해 말했다.
“엽현, 내가 이 자를 막고 있을 동안 다른 자들을 처리해라!”
“알겠소!”
어둠 속에 있던 엽현이 대답과 함께 어디론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