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30
530화 그대들이나 비키시오!
원군?
엽현은 악로의 말을 듣고 그가 기다리는 것이 원군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현재 그들의 힘만으로 상대하기엔 검종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러면 기다릴 동안 저는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있겠습니다. 일이 끝나면 따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정 그래야 한다면 조심해야 한다. 목풍진이 근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을 마친 악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기이하게 생긴 부적이 엽현 앞으로 날아들었다.
“이건?”
“공간부(空間符)라는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 찢으면 언제든 너를 향해 달려가마.”
엽현은 악로를 잠시 바라보고는 공간부를 받아들었다.
이와 같은 호의는 그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래, 가 보거라.”
엽현이 악로를 향해 포권을 취한 후, 곧장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엽현이 떠난 후, 야란이 악로의 곁에 다가섰다.
“악로, 혹시 녀석을 회유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악로가 고개를 저었다.
“실력에 자신 있는 녀석이다. 저런 자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용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야란은 그제야 악로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엽현의 자질과 전투력은 이미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엽현이 스스로 남의 밑에 들어갈 리도 만무하거니와, 설령 한편이 된다 한들 다른 마음을 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럴 바에야 엽현과 서로 동등한 관계를 맺고서 최대한 그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함부로 기척을 흘리지 말도록.”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후, 악로는 그대로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무원.
몰래 무원에 잠입한 엽현은 안란수, 연만리 그리고 막사를 찾았다.
연만리가 기거하는 장원 안, 네 사람은 탁자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았다.
“그래서, 곧 전쟁이 펼쳐진다는 건가?”
막사가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지원군이 도착하는 즉시 곧바로 전쟁이 일어날 거야. 물론 검종 역시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무원 역시 검종을 칠 준비 중이야. 원장의 최종 결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오늘 방문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검종 전대 종주인 목풍진의 실력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야. 만약 무원이 전쟁에 참여하거든 최대한 몸을 사리도록 해.”
무원에게는 미안하지만, 엽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만리 등의 안위였다.
이때 안란수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너는 어쩔 셈이야?”
“당연히 검종을 무너뜨려야지!”
검종의 멸망.
이것이 바로 엽현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이었다. 이현풍과 목풍진은 계옥탑이 엽현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탑의 행방은 미궁에 빠지게 될 것이고 엽현의 운신 폭 역시 넓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 두 사람을 죽이지 못하면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고 말 것이다.
“어찌 됐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기별을 줘. 나는 이만 수련을 하러 가 봐야겠으니.”
그 말을 끝으로 막사가 방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연만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강구에게 알려주러 가야겠어.”
막 방문을 나서려던 연만리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엽현과 안란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가 가고 나서 둘이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
“…….”
연만리가 당황해하는 엽현을 향해 혀를 쏙 내밀고는 이내 사라졌다.
“저, 저 여자가 뭐라는 거야!”
“우리도 나가자.”
엽현과 달리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안란수가 엽현의 등을 떠밀었다.
인적이 뜸한 곳을 찾던 엽현과 안란수는 곧 무원의 뒷산에 도착했다.
이때 엽현은 기운을 감추지 않은 상태였다.
검종이 미치지 않은 이상 경계가 준엄한 이곳에 함부로 쳐들어올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청주에서 있던 일… 기억나?”
갑작스런 안란수의 질문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일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청성의 성문 앞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만난 일, 엽가에서의 비무, 황성에서의 재회 등등, 그는 안란수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 하나 잊은 것이 없었다.
당시의 그녀는 아직 강국의 국사였다. 자신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충만하던 풋내기 검수에 불과할 때였다.
“우리 둘 모두 그때보다 더 성장했겠지?”
이때 안란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너에게 가득한 열정과 패기를 좋아했어.”
“그럼 지금은? 내가 변했다는 말을 하려는 거야?”
엽현이 자신의 눈을 응시하자 안란수가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
이번에는 엽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복잡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야. 하지만 내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너를 향해 있다는 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해.”
안란수가 엽현의 뜨거운 눈빛을 잠시 바라보았다.
“청주에 있을 때, 너는 조국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줄 아는 사내였어. 그것이 큰일이든 혹은 작은 일이든.”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안란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엽현이 미소를 지었다.
“란수, 지금 내가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꼭 그런 건 아냐. 그저… 사람이나 음식이나 처음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구나, 라고…….”
그러자 엽현이 안란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단,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할 뿐이었지. 만약 지금 내 모습이 실망스럽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이 한 가지는 알아주었으면 해.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지금 이 모습이 바로 나 엽현이니까.”
잠시 안란수의 얼굴을 바라보던 엽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빠져 나갔다.
안란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때, 안란수 앞에 연만리가 나타났다.
“혹시 화가 난 걸까?”
안란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그게 신경 쓰여?”
연만리가 되묻자 안란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모습도 싫은 건 아니지만, 그의 모습이 점점 변하는 게 두렵다… 뭐 이런 건가?”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변했다는 거야?”
“그건… 콕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 들어.”
안란수의 대답에 연만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전보다 성숙해진 것을 수도 있잖아. 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봐. 정말 지금의 달라진 그의 모습이 싫은 건지.”
안란수가 고개를 젓자 연만리가 웃으며 말했다.
“반대로 네게 물어보자. 그가 청성에 있을 때는 강국을 위해 싸웠어. 창검종에 있을 때도 그랬지?”
안란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앙성역에 있을 때도 미앙성역을 위해 싸운 거 맞지?”
안란수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뭐가 변했다는 거야? 그는 원래부터 누가 자신에게 잘해주면 똑같이 잘 해 주고, 건드리는 자들에겐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 줄 뿐이었어. 그렇지 않아?”
“…….”
연만리가 곰곰이 생각하는 안란수를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왜 웃는 거야?”
“왜냐면 기쁘니까! 내가 너보다 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으니까! 하하하…….”
연만리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웃음을 터트리며 유유히 퇴장했다.
안란수는 그런 연만리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이 순간,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혁련천과 무문이었다.
무문이 막 안란수에게 다가가려는 혁련천의 어깨를 붙잡았다.
“혼자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거라.”
“하지만…….”
무문이 혁련천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정(情)이란 것은 무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극복한다면 장차 대성할 것이오, 그렇지 못한다면 그저 그런 무인으로 남게 되겠지.”
“저 두 아이들이 엽현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될 수 없습니다!”
혁련천이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무문이 담담한 표정으로 안란수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가 스스로 정이란 것을 끊어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제 이의 무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무신(武神)!
무신이란 말을 들은 순간, 혁련천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방금 무문의 말대로 그들의 조사를 제외하고는 무신의 칭호를 받는 이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마음을 다잡은 혁련천이 진지한 눈빛으로 안란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을 것입니다.”
이때 무문이 오른손 주먹에 힘을 주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만약 필요하다면 노부가 개입할 것이다.”
순간 혁련천이 놀란 눈으로 무문을 바라보았다.
“설마… 사부께서 강제로 둘 사이를 끊으시려는 것은…….”
무문은 조용히 눈을 들어 안란수를 바라볼 뿐 그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다.
* * *
무원을 떠난 엽현은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이때 육 층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화났느냐?]“조금 그렇습니다.”
[화낼 것이 뭐 있느냐? 오히려 기뻐할 일이지.]‘기뻐할 일이라고?’
엽현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육 층 존재가 다시 말했다.
[그 아이는 너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 무도를 걷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보느냐?]“잘… 모르겠습니다.”
[에이, 멍청한 놈. 그건 바로 본심을 유지하고, 초심을 변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본심과 초심의 유지?’
[노부가 보기에 그 여자아이는 지금 정체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심경(心境) 상의 정체 말이다. 만약 이를 돌파하게 되면 그 아이의 무도는 더욱 견고하게 되겠지. 그런데 그녀의 앞길을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네 녀석이다.]“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엽현이 의미를 알 수 없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 아이의 앞에는 지금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무도를 위해 인간의 정을 끊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의 머릿속에 너란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무(武)라는 한 글자만 남게 될 것이다.]“두 번째 길은 무엇입니까?”
엽현이 황급히 물었다.
“그럼 선생이 보시기에 그녀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 같습니까?”
[당연, 첫 번째!]“어, 어째서 말입니까!”
[이놈아, 그걸 몰라서 묻는단 말이냐? 방금 전의 네 태도가 모든 걸 말해주지 않았더냐?]“제가 뭘 어쨌단 말입니까?”
엽현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 그렇게도 잘못됐단 말인가?
[후… 조언컨대, 빠른 시일 안에 그 아이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쩌면 너는 이번에 그 아이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어째서 말입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잘 듣거라. 일단 그녀가 자신의 무도를 견고히 하기 위해 정을 꺾는 선택을 한다면, 그 순간 너는 남남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게다가 무원 녀석들 또한 그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왜? 자신들의 제자가 한 남자보다 무도를 택하는 것이 훨씬 이득일 테니까!]그 말을 들은 엽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엽현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새 이미 무원 앞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가 안란수의 거처 근처에 도착했을 때, 혁련천과 무문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라!”
무문이 엽현을 향해 차갑게 소리쳤다.
이에 엽현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대들이 비키시오!”
“떠나라니까!”
“너나 꺼져, 이 영감탱이야!”
엽현의 분노에 찬 음성이 터져 나온 순간, 그의 몸에서 강대한 기운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용혼, 용력, 그리고 마가지력.
뿐만 아니라, 엽현의 전신의 혈맥이 점점 팽창하더니, 일순간 피처럼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무문과 혁련천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이때, 탑의 육 층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혈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