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40
540화 남은 패가 무엇이냐
당족이 검종을 공격한 시각.
엽현은 무원의 서고에 있었다.
세상에 대한 이해!
지금까지 그는 이 세상이 매우 넓다는 것만 알았지 그 이상의 개념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원 안에는 그들의 세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고서들이 많이 배치돼 있었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관세계(觀世界)》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이 우주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크게 남황계(南荒界), 북황계(北荒界), 서황계(西荒界) 그리고 동황계(東荒界)로 나뉜다.
이 네 개의 성역은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것에 불과했다. 이 밖에는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하는 공간이 더 존재한다고 했다.
현재의 네 성역이 존재하는 지역을 아주 오래전부터 혼돈우주(混沌宇宙)라고 불렀다. 안타깝게도 혼돈우주 초창기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혼돈우주 초기에도 고도로 발달한 무도문명이 존재했다고 서술했다. 그것은 바로 역사상 가장 신비하고 오래된 종족인 태고족(太古族)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혼돈우주에 퍼진 무도문명은 모두 태고족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진 않았다. 태고족이 사라진 이후, 혼돈우주엔 신족과 명족이라는 강력한 부족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 두 부족에 대한 자료는 극히 적었고, 단지 비슷한 시기에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바야흐로 혼란의 시기였다. 이 시기 내내 우주엔 무수한 세력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서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치루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었다.
이 와중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질서맹(秩序盟)의 초대 성주였다.
그가 질서맹을 건립한 이후, 혼란스럽던 우주는 차차 진정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대 성주가 죽은 이후, 질서맹에서는 그만큼 강력한 성주를 배출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 이 세상은 몇 개의 강대한 세력이 서로 견제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질서맹.
썩어도 준치라 했던가. 비록 옛 영광이 많이 퇴색되긴 했어도, 그들은 이쪽 세계에서 명백히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질서맹을 제외하고도 다섯 개의 거대한 세력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일국(一國)이족(二族)양종(兩宗)이라 칭했다.
그중 일국은 바로 신국(神國)을 가리킨다. 동황계에 위치한 신국은 이 혼돈우주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다. 관리하는 성역만 해도 무려 천 개가 넘었고, 그들의 무도문명은 매우 화려했다. 신국의 무도문명은 질서맹의 시대 이후 이 혼돈우주를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전성기의 신국 역시 네 개의 성역을 통일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름 아닌 질서문의 견제 때문이었다.
삼천 년 전, 당시 질서문을 이끌었던 성주는 고답천(古踏天)이었다.
그는 질서문의 조사 이후로 가장 재능이 있다고 평가받았던 인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강자였다.
고답천은 당시 신국이 침입하자, 혈혈단신으로 신국에 쳐들어가 행방불명이 됐다.
그러나 이후 신국은 모든 병력을 물림과 동시에 다시는 동황계를 침범하지 않았으며,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강함은 서서히 잊혀졌다.
고답천의 최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이는 그가 신국의 신제(神帝)를 처치하고 혼돈우주를 떠난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그가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 자는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이족(二族), 요족과 당족이다.
요족은 서황계에 지반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초대 성주와 한가지 계약을 맺은 바 있는데 내용은 인간과 요족은 영원히 상호불가침 한다는 것이었다.
당족은 여러 세력들 중에서도 매우 신비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 남아 있는 기록도 단 한 줄에 불과했다.
육지무적(陸地無敵), 당족기병(唐族騎兵).
그다음은 엽현도 익히 알고 있는 두 세력, 무원과 검종에 관한 내용이었다.
책에선 신무성 전체를 하나의 특수한 지역으로 분류해 놓았다. 특히 검종을 언급하면서 검수들의 강대한 전투력을 집중 조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종은 지금까지 수백 명의 검성을 배출해 냈고, 그 이상의 검수들 또한 백 명 가까이 존재했던 괴물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전성기를 구가한 시절엔 한 번에 칠십여 명의 검성과 서른여덟 명의 초범검성 들을 보유한 적도 있었다.
이 시기가 소위 검종의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였다.
이때만 해도 혼돈우주에서 검종을 건드리는 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질서맹과 당족이라 할지라도 검종에겐 한 수 접어주는 등 강력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게다가 당시엔 무원과 검종의 사이가 나쁘지 않던 시절인지라, 신무성을 넘보는 자는 더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록 뒤로 갈수록 두 종문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었지만…….
한동안 자료를 살펴보던 엽현은 어느 순간 책을 덮었다.
잠시 후, 어두운 서고 안에선 더 이상 엽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 * *
무원, 무전(武殿) 입구.
검종 쪽을 바라보는 무문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당족이로군…….”
“검종은 스스로 자멸의 길을 택한 듯 보입니다.”
혁련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검종이 망하게 된다면 이제 신무성엔 우리 무원만 남게 된다.”
“사부, 혹시 저들을…….”
혁련천이 말끝을 흐리자 무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검종이 야심을 드러내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손 놓고 바라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네 말대로 자업자득인 셈이지.”
“…….”
무문이 말없는 혁련천을 바라보았다.
“무원의 종주로서, 너 역시 오늘의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너의 그릇된 한 번의 결정으로 인해 종문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매사에 더욱 신중을 기하도록 하여라.”
이에 혁련천이 진중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문이 다시 검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사의 분신은 이미 써 버렸고……. 이제 무엇이 더 남아 있는지 궁금하구나.”
* * *
검종.
당족기병의 등장과 동시에 검종 측에서도 대적을 맞아 모든 무인들이 뛰어나왔다.
검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지만, 그들의 눈빛에선 그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맞서는 십이 인의 당족기병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아래쪽을 향해 전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기병들의 앞쪽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악로가 큰아가씨라 불렀던 여인이었다.
그 뒤를 이어 그녀의 뒤편으로 삼 소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여인이 아래쪽의 목풍진을 바라보며 운을 뗐다.
“검성, 우리 당족은 언제나 검종을 존중해 마지않았습니다. 검성께서 보물만 내어 주신다면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사죄하고 곧바로 물러날 것을 약속합니다.”
그녀의 말에 목풍진이 코웃음을 흘렸다.
“육지무적 당족기병이란 말은 익히 들어왔다만……. 내 오늘 그 말이 사실인지 두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그러자 여인이 목풍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길을 택하셨군요.”
그녀가 말을 마친 순간, 열두 기의 기병이 지상으로 뚝 떨어졌다.
이에 목풍진 역시 뒤지지 않고 검을 쥔 손을 번쩍 들었다.
“지금이다, 검진을 펼쳐라!”
그러자 한 줄기 검명 소리가 창공에 울려 퍼지더니, 도합 열두 자루의 검이 검광을 휘날리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를 본 여인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필시 자신이 있는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열두 기의 기병은 눈앞으로 날아오는 검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지나는 곳마다 환하게 빛나던 검광이 사그라질 뿐이었다.
심지어 기병들은 아직 무기도 뽑지 않은 상태였다.
검진이 조금씩 무너져갈 때쯤, 아래쪽에 있던 목풍진이 검을 들고 기병들을 향해 솟구쳤다. 그의 뒤에는 여덟 명의 도경 검수들이 함께했다.
이를 본 악로가 출수하려 했으나, 여인이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그를 제지했다.
이윽고 하늘 높이 올라선 목풍진.
이때, 기병 중 하나가 도를 뽑음과 동시에 목풍진을 향해 크게 내리쳤다.
목풍진의 검 역시 상대를 향했다.
쾅-!
기병의 신형이 순식간에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목풍진 역시 수십 장 밀려났다.
한편 여덟 명의 검수들은 한순간에 기병들에 에워싸여 열세에 놓인 형국이 되었다.
이를 본 목풍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애당초 도경 정도로는 당족기병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이때, 한쪽에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목풍진이 고개를 돌리자 검수 하나가 두 명의 기병에 둘러싸여 잔혹하게 살해되는 장면이 들어왔다.
이를 본 목풍진이 안색이 변하여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어서!”
그 말에 검수들이 황급히 지상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열두 기의 기병들은 멈추지 않고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비록 열둘이었지만, 검종 무인들은 천만 대군이 오는 압박감을 느꼈다.
목풍진의 안색이 굳어졌다. 눈앞의 기병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이때 뭔가 결심한 목풍진이 뒷산에 있는 검묘(劍墓)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검성들을 모셔라!”
목풍진이 외치자 검묘가 있는 곳에서 열 개의 검명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열 자루의 검광이 전장으로 날아들었다.
장내에 등장한 것은 열 명의 검수!
모두 영혼체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검성의 경지를 넘긴 검수들의 영혼들로, 검종이 숨겨놓은 패 중의 하나였다.
검성들의 등장에 지면으로 돌진하던 기병들은 일단 제자리에 기수를 세웠다.
열두 명의 기수들과 대치하게 된 열 명의 검성들.
이때, 가장 앞에 있던 검성 하나가 아래쪽의 목풍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목풍진이 고개를 숙여 예를 차렸다.
“제자가 무능하여 선조들의 단잠을 깨웠으니, 이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조사께서 다녀가셨느냐?”
검성의 물음에 목풍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녀가셨습니다.”
“조사…….”
천천히 눈을 감으며 회상에 잠긴 검성. 잠시 후, 눈을 뜬 검성이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검종이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순간 목풍진은 안색이 어두워져 고개를 푹 숙였다.
“출수!”
가장 앞서 있던 검성의 외침과 함께 십 인의 검성이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악로와 여인은 반대편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가씨, 저들은 이미 검성을 초월한 자들입니다.”
“호들갑 떨 것 없소. 그저 한 줌 영혼에 불과한 자들이니.”
여인이 무덤덤하게 대꾸하자 악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여인의 말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열두 기의 기병들은 십 인의 검성들에 의해 순식간에 압도당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자 악로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때, 여인이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했다.
“본래 영혼체는 전투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쉽게 지치기 마련이오. 조금 더 지켜보시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검성들의 영혼은 빠르게 희미해져 갔다.
이 장면을 보자, 아래쪽에 있던 목풍진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십 인의 검성이 기병들을 상대로 단시간에 승부를 짓지 못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비록 검성들이 압도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마음먹고 방어를 하는 기병들을 해치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간 흘렀을 때, 검성들이 갑자기 공격을 멈췄다.
그들의 영혼은 상당 부분 소멸된 상태였다.
이때 앞서 목풍진과 대화를 나누던 검성이 검종 전체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이 전투가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라! 검종은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그 말과 동시에 십 인의 검수들이 기병들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그들의 영혼!
이것은 그들이 펼치는 최후의 일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