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42
542화 미안한데, 배가 아파서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이 문구는 검종에게 있어서 신앙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검은 구부러지지 않는다. 다만 부러질 뿐.
제 아무리 강한 적이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검을 뽑아 들 용기를 내는 것이 바로 검수!
항복도, 화친도, 타협도 없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전쟁뿐.
이것이 바로 오래전 검종이 지니고 있던 정신이었다.
당시 검종은 다른 세력들과 이익을 다투지도, 신무성 밖을 나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히 검종을 무시하는 자들이 있었던가?
비록 절대적 열세에 놓여 있는 상황이지만, 검종 무인들의 눈에선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검종 내부에서 무수히 많은 검의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내 공중에 짙게 깔린 검의는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이 장면을 공중에서 지켜보고 있는 당족의 여인.
그녀의 표정에서 차가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고? 과연 숨이 넘어갈 때가 돼서도 그런 말이 나올지 두고 보겠다!”
여인이 군통이 있는 방향에 대고 소리쳤다.
“군통! 절대 저들을 봐주지 말고 몰아붙이세요.”
공중.
군통이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는 몸을 웅크렸다.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그의 도가 순식간에 십여 차례 번뜩였다.
쾅-!
매번 도가 떨어질 때마다 월무진은 백 장씩 밀려났고, 마지막 공격이 끝났을 땐 무려 천 장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변해 있었다.
군통의 패도 넘치는 난도질로 인해 공간이 모두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잠시 후, 검종의 하늘이 다시 제 모습을 회복했을 때, 월무진의 입가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를 보자 검종 제자들의 안색이 한없이 어두워졌다.
진 것인가!?
무원에 있던 엽현 역시 근심 어린 표정으로 검종 상공을 바라보았다.
월무진은 말없이 정면의 군통을 응시했다. 이때 군통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속하시겠소?”
“원한다면 얼마든지!”
월무진이 크게 한 발을 내디디며 검을 미간 위치에 가져갔다. 그 순간, 엄청난 양의 검의와 검기가 체내로부터 흘러나오더니 그의 검 끝에 모조리 집중됐다.
콰득-!
순간 검 주변의 공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이때 월무진이 다시 한 발을 내디디며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참(斬)!”
우렁찬 외침과 함께 눈부신 검광이 공간을 관통하며 날아갔다.
치이이이잇-!
장내에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소리!
그러자 반대쪽에 있던 군통이 양손으로 도를 부여잡고서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의 도가 반원을 그리는 순간, 굵직한 도기가 검광을 향해 떨어졌다.
적막감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쾅-!
천지가 크게 흔들리면서 검광과 도광의 파편이 사방으로 흘러내렸다.
이때 그림자 하나가 검종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군통이었다.
이에 지켜보고 있던 당족 여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때, 꼿꼿한 자세로 서 있던 월무진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참(斬)!”
다시 한번 날아드는 검광!
신무성 밖까지 물러나 있던 군통이 재빨리 반격하려는 순간, 검광이 그의 도를 강타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다시 천 장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검종 상공, 월무진이 마찬가지로 다시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그의 검이 검광을 머금고 직접 날아들었다.
쉭-!
마치 유성처럼 하늘을 가르는 한 자루 검. 검은 마치 태양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열기에 일반인은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신무성 밖, 군통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윽고 그의 도에서 끝도 없는 도광이 방출됐다. 하지만 그의 도기는 검에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터져 나갔다.
이제 월무진의 검은 군통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군통이 황급히 도를 세워 자신의 앞을 막았다. 잠시 후, 검이 군통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진 장내.
신무성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군통에게 쏠렸다.
이때였다.
빠각!
군통의 손에 있던 도가 갑자기 균열을 일으켰다. 이와 동시에 군통의 미간 사이서 방울방울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져, 졌다!
당족 무인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러나 당족 여인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군통이 몸이 굳은 채로 정면의 월무진을 향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역시… 초범 검성…….”
그 순간, 군통의 체내에서 무수히 많은 검기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찰나의 순간, 그의 육신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지면으로 흩어졌다.
“됐다!”
“이겼다-!”
검종의 제자들이 손을 번쩍 들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겼다!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목풍진 역시 겨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검종이 멸망하는 것만큼은 그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월무진이 멀리 당족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때 그녀가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과연 초범검성이군요. 만약 검종에 그대와 같은 고수가 몇 명만 더 있었더라면 당족 역시 후퇴를 고려해야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계집… 양패구상이라도 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양패구상?”
당족 여인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재밌는 말이군요. 검종이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까요?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보물을 내어 주시지 않으면 검종은 결국 멸망할 것입니다.”
이때, 목풍진이 여인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정녕 아무것도 없다. 믿기 힘들다면 영혼기서(靈魂起誓)라도 해 주겠다.”
그 말에 여인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목풍진을 바라보았다.
영혼기서(靈魂起誓).
이는 영혼을 걸고 서약을 하는 것으로, 만약 서약자가 양심에 반해 거짓을 말하는 순간 영혼이 소멸되는 비술이었다.
한 종문의 종주가 영혼기서를 언급할 정도라면, 이는 더 이상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정말로 검종이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당족 여인의 마음속에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 목풍진이 말을 이어갔다.
“설마 엽현처럼 교활한 자의 말을 모두 믿고 있던 건가?”
여인은 점점 더 머리가 아파져 옴을 느꼈다.
기회라 생각한 목풍진이 쐐기를 박으려 할 때, 두 사람의 오른편에 엽현이 나타났다.
순간, 장내 무인들의 시선이 전부 엽현에게로 몰렸다.
“엽현!”
목풍진이 살기 어린 눈으로 엽현을 쏘아보았다.
“검종에 누명을 씌워 이 지경까지 만들다니, 이제 속이 좀 시원 하느냐!”
“하하하! 목 종주, 누가 들으면 그대가 피해자인 줄 알겠소. 검종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그대와 그대 손자의 합작품 아니오?”
그 말에 검을 들고 있던 목풍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엽현은 그를 무시한 채 당족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당족 첫째 아가씨.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 알겠지만, 나 엽현은 볼품없는 실력일지라도 친구를 배신하는 짓 따위는 결코 해 본 적이 없소. 그러나 검종은 어떻소? 저들은 제자였던 나의 물건을 뺏은 것도 모자라, 나를 도둑으로 모함하기까지 했소!”
“이익-! 헛소리 하지 마라, 엽현! 그건 네가…….”
목풍진이 목이 새빨개져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엽현이 그 말을 잘랐다.
“그뿐인가! 그대들은 비열하게도 내 동생과 친구들을 인질로 삼으려 무원에 침입하기까지 했소. 필시 내 입을 막으려는 속셈이었겠지. 그리고 그곳에서 그대들이 한 일이 무엇이오? 경지를 뚫고 있던 한 여인을 향해 무참히 공격하지 않았소!”
“엽현! 그 입 닥쳐라!”
목풍진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엽현이 아니었다.
“닥치긴 뭘 닥쳐! 이 늙은 쥐새끼! 너와 네 손자의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검종 제자들이 죽은 줄 모르는 것이냐! 양심의 가책은 어디로 갔느냐! 종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잘도 선조들 볼 낯짝이 서겠구나!”
“놈!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보물이 네게 있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하! 내게 있다고? 당시 내가 야란에게 둘러싸였을 때, 너희들이 그들을 위협하여 쫓아버리고 보물을 가져가지 않았느냐?”
엽현이 당족 여인 곁에 있던 야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란 선생, 말해 주십시오. 당시 저 검종의 횡포가 어떠했는지 말입니다. 당시 저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서 보물이 검종의 것이라며 박박 우기던 것이 기억나십니까?”
이에 야란이 목풍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어찌 기억이 나지 않겠느냐! 우리더러 당장 떠나지 않으면 영영 신무성을 떠나지 못하게 하겠노라고 협박하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말을 듣자 목풍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또 엽현 차례였다.
“목 종주! 자꾸만 내가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반대로 내가 묻겠다. 그날 보물은 분명 너희 손에 떨어졌다. 그런데 내가 검종의 수많은 강자를 따돌리고 훔쳐 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혹시 보물이 발이라도 있어서 혼자 도망친 건가?”
“그렇다! 놈은 스스로 도망쳤다!”
목풍진이 말하자 장내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보물이 제 발로 도망쳤다고?
엽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더 이상 무슨 논쟁이 필요한가? 그래, 나한테 있다 치자, 쳐. 더 이상 말 섞을 가치도 없다!”
“놈-!”
목풍진은 이미 얼굴이 시뻘게져 피를 토하기 직전이었다.
엽현이 더 이상 목풍진을 상대하려 하지 않을 때, 목풍진이 돌연 말을 뱉었다.
“엽현, 혓바닥으로는 너를 이길 자신이 없구나.”
“그럼?”
엽현이 목풍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설마 검으로 해 보자는 건가?”
“네 놈이 원한다면!”
목풍진이 서슬 퍼런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가 막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엽현이 소스라치듯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너, 이 영감탱이……. 나하고 일대일을 하자고? 너 양심은 있는 거냐?”
“…….”
목풍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 엽현이 고의적으로 감정을 자극하여 실수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월무진이 엽현 앞에 나타났다.
두 사람의 논쟁을 지켜보며 그는 마음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엽현의 자질과 잠재력을 크게 보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검종은 제 발로 들어온 원석을 걷어차고야 말았다.
더 나아가 검종이 엽현을 죽여 입막음을 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월무진 역시 적잖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볼 때, 엽현과 검종은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었다. 검종이 행한 짓이 너무나도 악랄했기 때문이었다.
“후… 이제 와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 너무 나를 원망하지 말거라. 나도 결국은 검종의 사람인 것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충분히 이해합니다.”
엽현이 대답하자 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족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종주의 말을 믿지 못하거든 노부가 영혼기서를 맺어서라도 결백을 증명하겠다.”
“후후, 정녕 엽 공자가 보물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시나요?”
“영혼과 의식을 가진 신물이니만큼, 스스로 몸을 숨겼을지라도 그리 믿기 힘든 일은 아니지 않겠느냐? 너는 지혜로운 여인이 틀림없으니 내 말뜻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러자 당족의 여인이 엽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엽 공자,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소?”
엽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흥! 한참 떠들어대더니, 왜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냐? 뭐라도 말 해 보거라!”
목풍진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이때, 당족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 보물은 엽 공자가 아니라 바로 그대들 검종에 있는 것이 확실하오.”
목풍진이 경악에 찬 얼굴로 여인을 바라볼 때, 그녀의 손에서 전음부 하나가 하늘로 솟구쳤다. 잠시 후, 검종 상공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서, 그곳에서 무수히 많은 기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계집… 준비를 단단히 했구나.”
월무진의 말에 당족 여인이 입가를 실룩였다.
“검종을 상대하면서 어찌 빈손으로 올 수 있었겠습니까? 엽 공자, 그대도 한 팔 거들어 주겠소?”
여인이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 엽현이 갑자기 배를 부둥켜 잡고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했다.
“윽… 당연히 거들어 줘야 하는데 이거 배가 아파서 말이오. 아… 아침에 뭘 잘못 먹었나? 일단 개인 용무(?)부터 해결 합시다!”
말을 마친 엽현이 말릴 새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이를 본 무인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배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 치고 그 속도가 빛처럼 빨랐던 것이다.
엽현은 당족 여인이 검종을 처리하고 난 후, 자신까지 죽이려 할 것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영리한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