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44
544화 저런 멍청한
투항?
월무진의 사전엔 그런 단어는 없었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앞서 말했듯 검수로서의 존엄과 기개, 그에 더하여 오기 때문이었다.
검종 수천 년의 역사 동안,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고개 숙여본 적이 있던가?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다.
월무진이 목풍진을 죽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지금까지 목풍진은 비록 사심이 섞여 있었다고는 하나 종문을 위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에게 무릎을 꿇으려는 행위는 종문을 배신한 것이기에 월무진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만약 검종이 정말로 투항했더라면, 지하에 있는 수많은 선조들의 혼백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다.
“죽여라!”
월무진이 가장 먼저 당족 무인들을 향해 솟구쳤다.
그러자 나머지 검수들이 일제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이와 동시에 검종에 설치된 모든 검진들이 개방됐다.
마지막 전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 했던 것이다.
이윽고 검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자, 무수히 많은 검광들이 장내에 빗발치듯 쏟아졌다.
일순간, 검종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원인은 검진의 존재 때문이었다.
수천 년 동안 개선되며 전해져 내려온 검진들은 도경 강자쯤은 손쉽게 죽일 수 있을 위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 검진마다 엄청난 양의 자원정과 검을 소모하는 것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곧 종문이 멸망할 마당에 그런 것을 신경 쓸 처지는 아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장내 상황을 지켜보는 당족 여인. 그녀의 곁엔 흑갑을 입은 남자가 지키고 서 있다.
“큰 아가씨, 이렇게 가다간 손실이 막대할 것입니다!”
“…….”
악로의 말에 여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병력을 더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제야 여인이 차가운 얼굴로 악로를 바라보았다.
“왜, 기왕 하는 거 아버님까지 모셔오지 그러시오?”
“아가씨,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하는 수 없군. 그대가 가서 검성을 좀 막아 주시오.”
여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곁에 있던 흑갑인이 월무진에게로 달려들었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작된 두 강자의 전투.
이와 동시에 악로와 야란 등도 전장으로 몸을 날렸다.
“기검(起劍)!”
이때, 장내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검종 제자들의 손에 있던 검들이 각각 검광을 뿜으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에 공중에 있던 십여 명의 당족 기병들이 나란히 서서 도를 내리쳤다.
콰콰쾅-!
한 무더기의 도광이 떨어진 순간, 검종 상공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검수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궁수!
아홉 궁수가 쏜 화살은 매우 빠르고 정교해서, 도경 급 강자가 아닌 이상에는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족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교전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미 다섯 기의 기병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검종 검수들의 전투력은 원래 약하지 않은데다가, 검진에서 끊임없이 검광까지 쏟아지니, 제아무리 육지무적 당족 기병이라 할지라도 만만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전세는 조금씩 당족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무원.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무문에게 혁련천이 다가와 섰다.
“아무래도 결국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구나. 만약 검종이 무너지면 다음은…….”
“사부…….”
“저 당족 계집의 야심이 보통이 아니다. 만약 검종이 정말로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족은 필시 엽현을 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엽현은 비록 우리 사람은 아니지만, 무원과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지. 즉, 당족은 이를 구실 삼아 무원으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과연 우리가 막아낼 수 있을까?”
순간 혁련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말은 검종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까? 하지만 그리하면 당족을 적으로 삼게 됩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저들은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무원을 공격하려 들 것이다.”
이때 무문의 두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때를 놓쳐선 안 된다. 지금 당장 병력을 이끌고 검종으로 간다!”
이 말을 끝으로 무문이 잔상을 남기며 검종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러자 혁련천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의 뒤를 쫓았다.
잠시 후, 무원의 강자들이 속속들이 무원을 빠져나왔다.
무문은 당족 여인의 야심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검종이 망하면 그다음은 보나 마나 무원이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땐 무원을 도와줄 세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무원 강자들이 합세함에 따라 장내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됐다.
특히 무원 역시 그들이 가진 진법을 개방하자, 당족 기병들은 더욱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당족 여인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퇴각한다! 모두 이곳에서 물러나라!”
명령이 떨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당족의 모든 무인들은 신무성 밖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검종과 무원은 굳이 그들을 쫓으려 하지 않았다.
이내, 성벽을 가운데 두고 두 무리가 대치하기 시작했다.
“무원은 도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건가요?”
당족 여인이 무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묻자, 무문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이 신무성은 당족의 영역이 아니니, 그대들은 속히 벗어나길 바라오!”
그 말을 듣자 여인의 표정이 점점 흉악하게 일그러져갔다.
“결국 검종과 함께 묻히겠다는 소리군요. 그렇담 할 수 없지!”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 장의 전음부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한편, 신무성 안에선 월무진과 무문이 조우하고 있었다.
무문을 바라보는 월무진의 표정에선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렇게 볼 것 없소. 우선 지나간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급한 불부터 먼저 끕시다.”
무문의 말에 월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 당족이 서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음부가 올라가는 걸 보니 당족의 여인이 또 원군을 요청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종 상공이 길게 갈라지며, 한 무리의 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무려 스무 기의 당족 기병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뒤엔 원숭이와 닮은 하지만 그 크기가 거의 작은 산만한 두 마리의 요수도 함께였다.
두 요수가 지면을 밟는 순간, 신무성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이때, 당족 여인이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왜 이렇게 손이 작은 것이냐? 한 번에 많이씩 보내면 어디 덧나느냐?”
잠시 후, 하늘에 갈라진 틈 사이로 남자의 모습을 한 환영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당족 여인 향해 시선을 보냈다.
“누님, 이번이 마지막이오. 만약 이번에도 실패했다간 곧바로 문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그리 알고 계시오.”
짧은 한마디와 함께 남자의 환영이 사라졌다.
“제기랄… 나라고 무원까지 나설 줄 알았겠느냐…….”
당족 여인이 차가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족의 우수한 제자들은 모두 당족 기병의 일부를 대동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엔 한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반드시 당족에 이익을 안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익을 내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출이 수입보다 많을 시, 큰 문제가 생길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전투로 이미 몇 기의 당족 기병들을 잃은 상태였다. 이 기병들은 굉장히 강한 대신, 전투에 투입할 때까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다.
물론 기회는 있다. 만약 여기서 검종과 무원을 굴복시키고 그들이 가진 재물을 빼앗는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손해를 상쇄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여인. 그녀가 한껏 한기 어린 얼굴로 무어라 외치려 할 때, 성안에 있던 무문이 갑자기 소리쳤다.
“신무성에는 검종만 있는 것이 아니오. 지금부터 무원의 강력함을 감상해 보시길!”
그 말이 끝나자, 그의 뒤에 있던 혁련천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무원 중앙에서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솟구치더니, 곧 모든 이의 눈에 거대한 석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족 괴수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석상의 크기였다.
모두가 석상을 보고 놀라는 사이, 어디선가 세 명의 백발노인이 날아와 석상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들은 모두 영혼체의 모습이었다.
“무성(武聖)!”
세 노인의 등장을 확인한 순간, 당족 여인의 표정이 극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때, 이번에는 월무진이 소리쳤다.
“출검(出劍)!”
그의 음성이 떨어짐과 함께, 검종 뒷산에 위치한 검묘에서 총 열여덟 자루의 검이 날아와 신무성 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검 모두 무려 조화경 급의 보물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검에는 모두 강대한 검도 의지(意志)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 검은 검종 선대들이 남긴 것으로, 그들이 죽고 난 후 전인이 거두지 않으면 저절로 검묘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검종은 이런 검들을 규합 해 강력한 검진을 배치해 놓았다.
이 검진이야말로 검종이 가진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열여덟 자루의 검이 나타난 후, 극에 달하는 검세가 당족 여인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흑갑인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동시에, 당족 기병들이 재빨리 달려와 주변을 에워쌌다.
위험하다!
그들은 모두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극도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당족 여인은 평안한 얼굴로 공중의 검을 바라보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 두었던 것을 보면 아마 한 번 사용으로 소멸하는 검들이겠군요. 그렇지 않나요?”
여인의 질문에 월무진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단 한 번이라 할지라도, 너의 목을 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여인의 예상은 맞았다. 검진은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이 검들이 특별한 이유는 검종 선조들의 검도의지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검진이 사라지면 검도의지는 사라지고, 그때부터 평범한 조화경 급 검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때, 당족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내 목을 노리신다니, 자신만만하시군요.”
“흥! 검안에는 각각 초범검성의 검도의지가 담겨 있고, 각각 하나씩, 총 열여덟 개의 검진이 들어 있다. 일단 작동한다면 귀신이라도 능히 죽일 수 있는데, 네깟 것이라고 피할 수 있겠느냐? 정 원한다면 당장 시험해 보자꾸나!”
“저 역시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오시지요!”
바로 이때, 여인 곁에 있던 흑갑인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가씨, 저 검들은 막을 수 없습니다.”
당족 여인이 고개를 돌리자, 흑갑인이 재차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가씨, 더 이상 도발해선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여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잠시 장내에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무문이 앞으로 나섰다.
“이보시오, 어린 아가씨. 내가 한마디 해야겠소. 노부는 승리를 장담하지 않겠소. 하지만 검종과 무원이 연합한다면 설령 그대들이 이긴다고 하더라도, 최소 팔 할, 어쩌면 그대들 전부가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오.
그리되면 당족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겠소? 물론 당족의 병력은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지만…… 과연 병력을 더 동원할 여력이 있겠소? 게다가 그대들 역시 적이 없는 것을 아닐 텐데…….”
그 말을 들자 당족 여인이 잠시 고민에 잠겼다.
잠시 후, 여인이 나지막이 한숨을 뱉고는 소리쳤다.
“전군 해산!”
명령이 떨어지자, 당족 무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려 퇴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족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신무성을 돌아보았다.
“이것으로 끝이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조만간 다시 방문할 테니, 보물과 함께 기다려 주십시오.”
“그 물건은 엽현에게 있다는 것을 왜 아직도 모르시오?”
무문의 말을 들은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발뺌할 생각 하지 마세요. 검종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었으니까.”
“저, 저런 멍청한 년을 봤나…….”
월무진이 다소 억울한 듯 중얼거렸지만,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엽 공자,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당족의 대문은 그대를 위해 활짝 열려있으니,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언제든 찾아오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