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45
545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엽현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당족 무인들은 이내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무문과 월무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녀가 강공을 선택했더라면 검종이든 무원이든 끝장을 볼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편, 여인의 예상대로 어둠속에 숨어 있던 엽현.
그는 당족 무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지독한 여자구나…….”
사실 여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간질하기 위함이었다.
검종과 무원, 두 종문과 엽현에 대한 이간질.
아닌 게 아니라, 두 종문은 돌아가는 즉시 엽현에 대한 방비부터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천하의 엽현이 이런 잔꾀에 걸려들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검종 상공에선 월무진과 무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무 형, 일전에 우리 검종에서 무원에 저지른 일은 정말이지…….”
월무진이 말할 때 무문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
“지나간 일은 더 이상 언급하지 맙시다. 이제 검종을 이끄는 사람은 바로 월 형이니, 이제라도 지난날의 은원은 잊고 서로 협력하도록 합시다!”
무원이나 검종이나 모두 조사의 분신이라는 최강의 패가 사라진 이상, 손을 맞잡지 않으면 매우 위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신무성의 주인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
이에 공감한 월무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시오. 오늘부터 검종과 무원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게 될 것이오!”
두 사람은 모두 똑똑히 알고 있었다. 당족의 표적이 된 지금,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자연히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양측이 손을 잡게 되면 어떤 세력이 쳐들어온다 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두 종문의 극적인 화해가 있은 후, 월무진이 뭔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당족 계집이 떠나면서 했던 말은…….”
“이간질이오. 그 여인은 우리가 그들 대신 엽현을 상대해 주길 바라고 있소. 혹은 엽현이 이쪽에 붙을 수 없도록 견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엽현.
그의 이름을 듣자 월무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엽현을 보내는 대신 목풍진과 이현풍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두 사람을 제거하려면 그들의 추종자들까지 함께 처리해야 했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검종을 장악해 온 두 사람의 위치는 절대적인 상태. 자칫 잘못하다간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둘째, 그토록 위험한 보물을 지니고 있는 엽현을 계속 검종에 두는 것은 그로서도 꺼려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도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목풍진과 이현풍이 엽현을 쫓아낸 후, 몰래 그를 죽이고 보물을 빼앗으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땐, 형국은 이미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더 이상 엽현과 연루되어선 안 될 것이오.”
무문의 말에 월무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것은 당족 계집의 뜻대로 되는 것 아니오?”
“그래도 어쩔 수 없소. 태풍의 눈인 엽현을 가까이했다간, 무원과 검종이 많은 피해를 보게 될 것이오. 하지만 엽현이 신무성에서 사라진다면, 저들 또한 계속 우리를 노리는 게 이익일지 고민하게 될 것이오.”
“허면 무원에 있는 그의 동생과 친구들은…….”
이때, 월무진은 자신이 하던 말에 스스로 놀랐다.
검종을 장악한 후, 그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엽현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검종을 새로이 이끌어나가야 하는 위치에 선 지금, 무의식적으로 검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 검종을 위해서라면 지금까지 해 보지 않은 일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안위를 위해 엽현의 동생과 친구들을 신무성 밖으로 내 치는 일 말이다.
한순간이었지만, 방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순 없었다.
월무진은 다소 복잡한 눈빛으로 검종을 바라보았다.
당시 그는 검종 제일의 재능으로 인정받는 무인이었다. 실력 측면에서도 다른 자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의 사부는 자신이 아닌 목풍진에게 종주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는 언제나 이 일을 의아하게 생각해왔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명확히 깨달았다.
그의 사부가 자신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그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만약 그가 종주가 되었다면 과연 초범 검성이 될 수 있었을까?
한 종문을 이끄는 자는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 매우 계산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은 검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월 형, 가서 엽현을 좀 만나봐야겠소.”
무문의 말에 월무진이 생각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 녀석이 과연 협조를 하겠소?”
“그러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오. 동생과 친구들을 극진히 생각하는 놈이니 말이오. 참, 그리고 지금부터 검종이든 무원이든 경계를 더욱 단단히 해야 할 것이오. 언제 또 당족이 쳐들어올지 모르지 않소.”
월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오. 당장 외부에 나가 있는 무인들을 불러들여야겠소.”
검종 무인 중 일부는 외지에 나가 수련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도경 이상의 검수들도 적지 않았다.
단지, 어떤 자들은 검종을 떠난 지 백 년도 넘은 터라, 생사가 불분명할 뿐이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자들은 반드시 부름에 응답하리라.
곧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향해 헤어졌다. 검종은 이미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하지만 검수들의 마음속은 여전히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이번 전쟁으로 검종이 본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다. 도경 강자 여섯이 죽은 것도 모자라, 그동안 모아 놓은 축적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으니까.
다시 말해, 당분간 자원정의 소모가 큰 검진은 사용할 수 없게 돼 버린 것이다.
“모두 잘 묻어 주어라. 그리고 앞으로 신무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한다.”
이때 월무진의 눈에 목풍진의 시신이 들어왔다. 다소 억울한 표정으로 죽어 있는 목풍진을 보자, 월무진의 눈에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도록 하거라.”
목풍진에게서 시선을 뗀 월무진이 검묘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당족이 물러간 후, 신무성 역시 잠잠해졌다. 아니, 텅 빈 것처럼 고요해졌다.
검종과 무원 사이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성을 빠져나갔는데, 이번 당족과의 싸움으로 나머지들마저 피신을 떠났던 것이다.
살육이 끊이지 않는 곳에 머물길 원하는 이가 어디 있으랴.
그렇게 신무성은 귀신의 성이 되었다.
신무성 외곽의 어느 산맥 중.
어느 편편한 바위 위, 당족 여인이 눈을 감고 앉아 있다. 그녀의 주위로는 한 무리 당족 기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고, 그녀의 곁엔 흑갑인이 호위를 서는 중이다.
한참이 지난 후, 눈을 뜬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신무성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아가씨,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냐고?
악로의 물음에 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 생각을 한번 들어보고 싶소. 이제 어찌해야 할까?”
악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검종과 무원이 연합을 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족장께서 더 이상 병력을 보내지 않는 한, 신무성을 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아마… 병력을 더 보내주시진 않을 것이오.”
“어째서 말입니까?”
악로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당족 안에서 누군가 의견을 내었소. 지금 이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보물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그럼… 신무성은 포기하는 겁니까?”
“…….”
“아가씨, 보물이 엽현 손에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열에 아홉은 그럴 것이오. 처음부터 그의 간계에 놀아났던 것이오. 우리뿐만 아니라 검종도, 무원도! 강하기도 하지만 제법 잔머리를 쓸 줄 아는 자요.”
그 말에 악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약삭빠른 검수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놈은 이미 몸을 숨긴 상태이니, 할 수 없이 무원의 있는 동생을 공략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무원과 검종이 연합을 한 상태이니…….”
악로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지금 상황에서 엽현을 끌어낼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족 여인 마찬가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속은 이미 천불이 난 상태였다.
만약 생각대로 검종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그다음 엽현을 잡는 것은 매우 순조로웠을 것이다. 물론 무원을 집어삼키는 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무원이 검종을 돕는 데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고, 특히나 엽현은 그녀의 계획을 눈치채고 곧바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이때, 여인의 눈빛이 번뜩였다.
“성주와 한 번 접촉 해 봐야겠소.”
“아가씨, 과연 그가 응하겠습니까?”
“밑져야 본전이오. 그는 여전히 미앙성역에서의 원한을 잊지 못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오.”
악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노부가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수고 좀 해 주시오.”
그렇게 악로가 떠난 후, 여인은 야란을 향해서도 뭔가 명령했다.
“연락해 줘야 할 사람이 있는데…….”
잠시 후, 야란 역시 어디론가로 신형을 날렸다.
두 사람이 떠나고 여인은 신무성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볼까?”
말을 마친 여인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
무원.
한 전각 앞에 서 있는 엽현. 그의 앞에는 무원과 혁련천이 그를 향해 서 있다.
엽현을 바라보던 무문이 먼저 말을 꺼냈다.
“노부가 널 부른 이유를 알고 있느냐?”
“그야… 나를 쫓아버리려고 부른 것이 아닙니까?”
무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네가 여기 있으면 무문은 다른 세력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찾기 위해 반드시 무원으로 몰려올 것입니다.”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하다.”
엽현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스스로가 미끼가 되는 것이었다.
즉, 은신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어당긴 후, 그들과 함께 신무성이 아닌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족은 굳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신무성을 공격하는 대신, 곧장 엽현을 쫓아갈 것이다.
“미안하구나. 우리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
“후후, 그건 걱정하지 말고 그저 동생과 친구들을 잘 보호해 주십시오.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만에 하나 무원의 안위를 위해 그들을 넘겨준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차라리 지금 모두 데리고 떠나겠습니다.”
계옥탑.
엽현은 여차하면 그들을 모두 계옥탑에 집어넣고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왜냐하면 탑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죽게 되면 탑 안에 있는 자들도 몰살하게 되니, 가능하면 선택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는 안위를 위해 제자들을 팔아넘길 정도로 파렴치한 자들이 아니다.”
“그 말을 기억하겠습니다. 허나,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무원을 멸망시켜 버릴 것입니다. 반대로 약속을 지켜주신다면 저 역시 무원 쪽에 설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엽현이 돌아섰다.
“아, 그리고 제 동생에게 이 한 마디만 전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털끝 하나 다치는 일 없도록 해 주겠노라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내가 죽은 줄 알라고.”
그렇게 엽현은 무원 밖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