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47
547화 도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말없이 바둑판의 대국을 응시하는 여인.
먼 길을 날아온 검은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여인의 곁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여인이 웃음을 보이며 대국에서 눈을 뗐다.
“인생이란 한 판의 대국 같은 것. 바둑돌이 될 것인지, 그 돌을 옮기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원래부터 정해져 있겠지만…….”
여인이 섬섬옥수를 들어 바둑판 위를 가볍게 훑었다. 그러자 바둑판 위의 돌들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러자 한참 동안 그녀 곁을 지키던 검이 그녀 앞으로 날아들더니, 뭔가 이야기를 하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잠시 후,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 올렸다.
“그래서, 그는 잘 지내고 있는 게냐?”
검이 다시 한번 몸을 떨더니 부드러운 검명 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여인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떨기 아름다운 매화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때, 검이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마 자신을 따라오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소복 차림의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의 역할은 그에게 길을 제시하는 것까지다. 앞으로 나오는 길은 그 홀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여인이 다시 방금 보았던 꽃송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꽃은 비바람에 모두 스러지기 마련이지.”
이에 검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가볍게 울었다.
그러자 여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도(道)란 사람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지, 부른다고 달려오는 것은 아니란다.”
말을 마친 여인이 검 자루를 쥐고 하늘을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응? 어디 가냐고?”
검의 물음에 여인이 먼 성공을 향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죽여야 할 자들이 있어서.”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여인의 모습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이때, 그녀가 바둑을 두던 바둑판 위에 검은 돌들이 하나씩 올라오더니 하나의 문장을 만들었다.
도(道)는 어떤 단어로도,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 도는 그저 도일뿐…….
* * *
혼돈우주, 질서성.
질서성은 북황계에 위치한 성으로, 질서문의 세력범위 안에 있었다.
엽현은 신무성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황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는 신무성 안에 있던 성공전송진(星域傳送陣)을 이용한 덕분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혼돈우주도 이 성공전송진이 있다면 매우 작아지는 것이다.
또한 엽현은 검종 서고에서 보았던《관세계》를 통해 성공전송진의 상위 개념인 초시공전송진(超時空傳送陣)의 존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전송진의 효용은 두려울 정도였는데, 남황계에서 북황계까지 반 각이면 도달할 정도였다.
당시 당족 무인들이 신무성에 그토록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전송진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송진을 운용하는데 드는 엄청난 자원은 일반 세력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엽현은 멀리 질서성을 바라보며《관세계》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상기했다.
질서성은 질서문의 옛 수도로 한때 북황계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진 상태인데,
왜냐하면 질서문은 이미 북황계 북쪽의 등천산맥(登天山脉)이란 곳으로 도성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질서문의 새 도읍을 신비로운 등천성(登天城)이라 불렀다.
‘신비로운’이란 형용사가 붙은 이유는 외부인은 일절 등천성에 접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질서성은 더 이상 예전의 도성이 아니지만, 그 번화함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성안에서 본 질서성의 거리는 역사의 숨결이 충만한 고성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수천, 수만 년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
이것이 엽현이 질서성에 대해 처음으로 느낀 인상이었다.
성안으로 들어온 엽현은 얼굴을 숨긴 상태였다. 그가 당족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질서맹도 그가 홀로 상대하기엔 너무나 커다란 적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질서성에서도 자신이 이곳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전해 들었을 테니, 더욱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이들 거대 세력들의 정보력은 결코 얕볼 수 없는 것이다.
천천히 도성 한복판을 걷는 엽현.
검은 장포에 검은 면사, 게다가 혼돈지기로 검수의 기운을 싹 지웠으니, 일반 무인들은 절대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거리의 양쪽을 오가는 행인들은 대부분 무인들이었는데, 그중엔 기운이 꽤나 강한 자들도 눈에 띄었다.
그밖에도 엽현은 성안 곳곳에 은밀히 숨어 있는 몇몇 강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대충 성안을 둘러본 엽현은 어느 한적해 보이는 객잔을 찾았다. 방 하나를 얻은 엽현은 곧바로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옥탑으로 진입했다.
수련.
분명 그의 실력은 예전에 비해 대단히 발전했다. 하지만 상대해야 하는 적도 그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결코 멈춰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엽현은 곧바로 목인을 붙잡고 수련을 시작했다.
목인의 강점은 정교하면서도 강하게 압박하는 근접전에 있었다.
그리고 현재 엽현의 취약점은 바로 이 근접 전투.
그동안 비검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 반면에, 검술 자체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한 결과였다.
엽현은 목검을 통해 목인과 대련을 시작했다.
이미 만법경에 이른 엽현이지만, 검기를 제외한 순수 교전에서는 목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련에 집중했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샌 다음 날 아침.
엽현은 결국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엽현은 문득 청성에 있던 시절, 별다른 기술 없이 근접전으로만 적을 상대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별다른 장비도 없이 투박하게 전투를 치렀던 그때는 공격 한 번 한 번이 생명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야말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긴장감이 넘쳤던 것이다.
그리고 엽현은 목인을 상대하면서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한 번의 부주의로 큰 부상이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그런 전투 말이다.
심장이 멈추질 않는다!
더 미친 듯이,
더 격렬하게 싸우고 싶다!
결국 얼마 쉬지도 않은 엽현은 곧바로 다시 일어나 수련을 재개했다.
이 시각 계옥탑 이층.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생명체가 있었으니, 바로 제견이었다.
원래 날 때부터 강하게 태어난 요수들에겐 수면이 최고의 수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소령은 오늘도 어김없이 영과를 돌보느라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현재 그녀가 키우는 영과만 해도 수백 그루였다. 이 나무들에서 따낸 영과들을 가져다 팔면 성이라도 살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조화경 급 보물들을 제외하면 엽현보다도 더 부유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당분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소령에게 영과들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만약 엽현이 몰래 몇 개 가져가 팔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탑의 검을 휘두르며 쫓아 올 것이 분명했다.
한편 탑 오층까지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에 물을 준 소령은 육층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멈춰 섰다.
턱을 쓰다듬으며 뚫어져라 입구를 바라보는 소령.
잠시 후, 어디론가로 뛰어가더니 어디서 검 한 자루를 뽑아 들고 왔다.
소령은 검을 들고서 잠시 문 앞을 왔다 갔다 하더니 결국 포기한 듯 돌아섰다.
물론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사라진 후, 육층에서 탄식이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 망할 년이 날 쫓아낼 수 있을지 가늠하고 있구나……. 제기랄, 말년에 쫓겨나면 어디로 갈꼬…….”
셋째 날.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는 엽현.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수십 개의 상처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이때 소령이 붉은빛을 띠는 과일 두 알을 들고 나타났다. 소령이 내밀자 엽현은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순간, 정순한 영기가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더니, 상처 난 부위가 빠르게 회복됐다.
엽현이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영과를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뭐야?”
소령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웅, 붉고 달콤한 과일.”
“…….”
“맛있어?”
“맛있어! 엄청!”
엽현의 반응에 신이 난 소령.
“더 줄까? 아직 많은데!”
엽현은 한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손안의 과일은 자원정, 아니 선정보다도 훨씬 효과가 좋았던 것이다.
이때, 소령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슬쩍 엽현에게 기대왔다.
“저기 있잖아. 육층 할아버지는 언제쯤 나가는 거야?”
“그건…….”
소령이 여전히 육층 존재를 쫓아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엽현은 가볍게 입술을 실룩거렸다.
동시에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언제쯤 나오는 걸까?
“저, 선생. 혹시 탑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까?”
잠시 후 육층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나갈 수 없다.”
“어째서 말입니까?”
“집 밖은 위험하니까! 여기 있는 편이 내게는 훨씬 안전하다.”
“…지금 저랑 농담하시는 겁니까?”
엽현이 장난으로 받아들이자 육층 존재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너랑 농담 따먹기 하려는 게 아니다. 탑 밖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물론 나 역시 영원히 여기서 뭉개고 있을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잠시 망설이던 엽현이 다시 말을 꺼냈다.
“선생, 이렇게 오랜 세월 탑에 갇혀 오셨는데, 화나거나 하진 않으십니까?”
“하하하! 왜 내가 널 죽이려 들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냐?”
“뭐, 대충 비슷합니다.”
이에 육층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녀석아, 나를 가둔 것은 빌어먹을 탑이지 너랑은 상관없지 않느냐. 복수를 해도 탑에다 하지, 네게 하진 않을 것이다.”
“음… 탑을 차지하고 싶진 않으십니까?”
“하하하!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이겠지. 그러나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다. 지금보다 강했을 때도 실패했는데, 지금은 오죽 하겠느냐? 앞으로도 탑에 관심 보일 일은 없으니 안심하거라.”
“선생 같은 강자가 그런 겸손한 말을 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엽현이 생각하기에 사람은 모름지기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포기할 줄 아는 모습은 얼마나 현명한 것인가.
물론 엽현 스스로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계옥탑이 그에게 딱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을 뿐.
육층 존재 역시 이 점을 명확히 집었다.
“사실, 이 탑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네 배후에 있는 자가 너를 대신해 대부분의 인과를 억누르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후후, 어찌 됐든 간에 함께 하는 동안은 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비록 서로 연배는 다르지만, 너와는 합이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하…….”
엽현이 말을 멈추자 갑자기 대화에 공백이 생겼다.
“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육층 존재의 말에 엽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생이 보시기에… 아홉 개의 도칙을 다 모으면 정말로 탑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어렵다.”
“어째서 말입니까?”
“실력. 탑이 인정하는 실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영원히 놈을 굴복시킬 수 없다. 물론 도칙을 다 모으면 탑의 몇몇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또 나 같은 수감자들에 제재를 가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였다.
“칠층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갑작스런 질문에 엽현은 다소 당황했다.
“제, 제가 안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칠층의 봉인은 매우 헐거워진 상태다. 내가 조금의 재주를 발휘한다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때, 소령이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빨리 보여 달라 그래! 빨리!”
엽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령이 눈을 크게 깜빡이며 소리쳤다.
“내가 말 했잖아, 보물이 있다고!”
“그래, 그게 무슨 보물인데?”
“그건 몰라! 일단 보기나 해!”
소령이 그의 소매를 붙잡고 펄쩍펄쩍 뛰자 엽현이 빙그레 웃으며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폐 좀 끼치겠습니다.”
“그런 말 할 것도 없다. 나도 뭐가 있는지 궁금하던 차였으니까.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본마(本魔) 머리 위에 있는 것인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