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53
553화 발을 빼지는 않겠지?
도망쳐!
육층 존재의 음성을 들은 순간 엽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장 당청을 옆구리에 끼고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얼마 되지 않아, 장내에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청색 장포를 입은 노인은 왼손에는 귀갑(龜甲)을, 오른손에는 엽전 한 묶음을 들고 있었다.
이때, 그의 곁에 검은 장포를 입은 또 다른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천사(李天师), 놈들은?”
흑의 노인이 묻자 장내를 한 바퀴 둘러본 이천사가 대답했다.
“미리 알고 도망친 것 같소. 보통내기가 아니오.”
“놈이 아무리 영민하다 하지만, 어찌 그걸 미리 알 수 있단 말이오?”
흑의 노인의 물음에 이천사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어떤 고인이 있어 놈을 돕는 것 같소.”
‘고인?’
흑의 노인이 의문을 품자 이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말대로 그같이 젊은 무인이 노부의 추연지술(推演之術)을 간파할 리가 없소. 이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오.”
순간 흑의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가 그를 돕고 있는지 특정할 수 있겠소?”
“흠… 한 번 시도는 해보리다.”
말을 마친 이천사가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가 들고 있던 엽전 꾸러미가 솟구치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졌다.
잠시 엽전의 모양을 바라보던 이천사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주변 공간에 어떤 기류가 흐르듯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이 시각, 수천 장 멀리 떨어진 어느 장소.
엽현의 머리에 육층 존재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멈춰!]순간 엽현이 움직임을 멈췄다.
[누가 너를 점치고 있다.]“또 말입니까?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탑으로 들어가거라.]“그러면 상대가 저를 찾을 수 없습니까?”
[멍청한 소리를 당연하게 하는구나. 점괘로 탑을 찾을 수 있다면 네가 아직까지 생존할 수 있었겠느냐?]“히히…….”
엽현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계옥탑 안으로 쏙 들어갔다.
엽현이 사라진 순간, 수천 장 떨어진 산속에선 이천사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천사, 무슨 일이오?”
흑의 노인의 대답에 이천사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오! 조금 전 거의 놈의 기운을 잡을 수 있었는데, 그 찰나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소.”
“그게 가능하단 말이오?”
이천사는 말없이 바닥에 흩어진 엽전들을 바라보았다. 힘차게 공전하고 있던 엽전들은 이미 힘없이 멈춰 있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소. 하나는 상대가 죽어 신혼이 소멸된 경우. 다른 하나는 어떤 신물을 사용해 기운을 완전히 지워버린 경우요.”
“흠… 그렇다면 두 번째일 가능성이 높겠구려.”
이천사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먼 하늘을 응시했다.
“그렇다곤 해도, 결국은 내게 들키고 말 것이오.”
“그렇다면 다행이오. 그나저나 당분간은 우리의 호위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소. 어둠 속에서 펼치는 놈의 암습은 도경 강자라 해도 막아내기 어려운 것이니 말이오.”
“후후, 간덩이가 붓지 않은 이상 놈이 제 발로 찾아오겠소?”
흑의 노인이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이천사의 두 눈이 급격히 커졌다.
그가 몸을 돌린 순간,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검 한 자루가 어느새 그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이천사의 앞에 동전 하나가 나타나 날아오는 검을 막아냈다.
흑의노인의 대응 역시 빨랐다.
동전이 검을 막아내는 순간, 흑의노인의 일 장이 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향했다.
콰쾅-!
두 사람 앞의 공간이 무너지며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정체를 드러낸 그림자는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흑의 노인이 재차 출수하려는 순간, 이천사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는 환영이오!”
말과 동시에 이천사가 손바닥 안에 빠르게 어떤 글자를 휘갈기더니 정면으로 뻗었다.
“파(破)!”
그 순간 그들의 주변을 덮고 있던 환영이 사라지고 원래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때 엽현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놈의 은신술이 생각보다 더 대단하구려!”
이천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이에 흑의 노인이 한층 어두워진 표정으로 물었다.
“이천사, 놈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겠소?”
“지금은 불가능하오.”
“어째서?”
“방금 전의 일격으로 심경에 타격을 입었소. 처음부터 목숨이 아니라 그것을 노렸던 것이오. 이것으로 놈의 배후에 신통술에 정통한 자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소!”
이천사는 어쩐지 다소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이게 얼마 만에 만나는 적수인지! 바로 성으로 돌아가겠소. 먼저 진법을 만들어야 하오.”
이천사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 뒤를 흑의 노인이 뒤쫓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 엽현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천사라는 노인은 결코 얼뜨기 점쟁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육층 존재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천사의 추연술은 매우 깊이가 있었다.
현재 엽현에게 유일하게 우세한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은신술이었다. 만약 은신술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상황이 매우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때 엽현의 귀에 육층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노부에게 도전을 하려 한다니, 멍청한 놈이로구나!]육층 존재의 등장에 엽현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 같은 하수가 어찌 선생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선생이 나서 주신다면 그의 추연술은 하등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이놈아, 혹시라도 내게 기댈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출수하지 않을 것이다.]“…….”
육층 존재의 음성이 이어졌다.
[추연술이란 본디 일종의 사문비술(邪門秘術)로 나의 시대에도 보기 드문 비술이었다. 이 비술의 가장 두려운 점은 바로 땅과 하늘과 만물의 눈을 빌려 본다는 것이지. 너의 혼돈지기가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운명의 인과까지 숨길 수 없는 법! 방금 그자의 겹지측산술(掐指測算術)과 귀갑추연술(龜甲推演術)은 네 운명의 인과를 빌려 너의 위치를 찾아내고 말 것이다.]엽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영 모르겠습니다.”
[정상이다. 너 같은 아이가 명도(命道)를 이해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지.]“그럼 선생, 저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걸 왜 나에게 묻느냐? 네 일은 네가 스스로 해결 하거라!]“…….”
[그만 한 숨 자야겠다. 이르면 열흘, 늦어도 십 년 안에 깰 것이니 그때까지 죽지 말고 살아 있길 바란다!]“선생님!”
엽현이 애타게 불러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잠을 잔다고 가 버리다니! 쓸모없는 늙은이 같으니!’
도대체 이천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엽현은 잠시 후 어두운 얼굴로 장내에서 사라졌다.
엽현은 멀리 도망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질서성으로 향했다.
도망만 다니는 것은 결코 그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다.
얼마 후 질서성에 다다른 엽현.
그런데 그가 막 성안에 발을 디뎠을 때, 성안 깊숙한 곳에서 강대한 힘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 힘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간 엽현은 얼마 후, 성 중앙에 놓인 제단을 발견했다. 그리고 제단 중앙엔 무언가를 조작하는 이천사가 있었다.
이천사를 발견한 엽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상대는 자신을 찾기 위해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엽현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운 성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단지 지난번 보았던 흑의 노인이 이천사 주변에 서 있을 뿐.
하지만 장내에 정말 저 둘 말고 없을까?
엽현은 보이는 그대로를 믿을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잠시 후, 엽현은 어둠 속으로 다시 몸을 숨겼다.
제단 위의 이천사는 목검을 들고서 무언가 써 내려가는 중이었다. 목검이 멈추자 그의 앞에 있던 쟁반 속의 모래들이 불에 달궈지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흑의 노인이 팔짱을 낀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신식은 주변 일대에 완전히 깔려있는 상태였다.
혹시라도 엽현이 제 발로 찾아 들어온다면 많은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이때, 이천사가 정면으로 목검을 내밀며 소리쳤다.
“현(現)!”
이천사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함과 동시에 쟁반 안의 모래들이 뭉쳐 금세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모래는 사람의 주변의 모습도 하나씩 형상화하기 시작했다.
모래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흑의 노인.
그는 곧 모래판 위에 엽현의 위치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형상이 완전히 만들어진다면, 그들은 반경 수십만 리 안의 어떤 곳이든 순식간에 도착할 준비가 돼 있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모래판 위의 형상들은 더욱 선명한 모습을 띠었다.
흑의 노인 역시 시선은 모래판 위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천사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져 있었고, 얼굴은 이미 땀에 절어 있었다.
바로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모래판에 있던 ‘엽현’의 형상이 갑자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에 당황한 이천사가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단 주변의 영기가 순식간에 고갈됐다는 것이었다!
제단 주변뿐만 아니라, 질서성 전체의 영기가 썰물 빠지듯 사라지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흑의 노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소리쳤다.
이천사 역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멍하니 모래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기가 없으면 그의 진법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문제는 어떻게 영기가 사라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좁은 범위도 아니고, 질서성 전체에서 영기가 사라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한편 영기가 사라진 질서성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사람이란 본래 끊임없이 영기를 흡수해야 하는데, 이것이 갑자기 끊긴다면 점점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단 앞,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 있는 이천사.
“이… 이 건 분명 놈의 짓… 아니지, 놈이 이 정도 능력이 있을 리가 없지. 놈의 배후에 있다는 자가 움직인 것이 틀림없소!”
이천사가 흑의 노인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질서문은 그자의 내력에 대해 아는 바가 있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중에선 성주만이 조금 알고 있는 듯하오. 하지만 우리에게 말 해준 적은 없소.”
그 말에 이천사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이대로 계속 진행된다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양도종에도 피해가 갈 수 있을 터였다.
“이천사,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놈의 배후는 우리 질서문에서 맡을 테니, 그대는 엽현의 위치만 확인해 주면 되오.”
흑의 노인이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지만, 이천사는 고개를 저었다.
“영기가 사라졌으니 진법을 완성시킬 도리가…….”
“신정(神晶)을 제공해 주겠소!”
“아니오, 일단 종문에 한 번 다녀오겠소. 내 직접 사부께 상황을 설명 드리고 우리 양도종이 놈을 상대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해야겠소.”
그 말을 듣자 흑의 노인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설마 이대로 발을 빼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