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54
554화 왜 나를 돕는 것입니까?
이천사의 고민이 깊어갈수록 그의 표정도 굳어갔다.
그가 원한 것은 그저 질서문에 그동안 진 빚을 갚기 위함이었다. 사람 하나 찾는 일은 그들에겐 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애당초 엽현이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엽현이 어떤 무인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조금씩 엽현과 접촉할수록 점점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의 배후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까지 있지 않은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진행되다간 자신은 물론 종문도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몰랐다.
이에 생각이 이르자 이천사는 곧바로 몸을 돌려 장내를 떠나갔다. 그리고 흑의 노인은 그를 붙잡지 못했다.
멀어져가는 이천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흑의 노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정말 이대로 떠난단 말인가!
다소 당황한 기색의 흑의 노인.
양도종의 도움 없이 은신한 엽현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계속 그들이 협조를 구하기 위해선 결국 양도종 종주의 허락이 있어야 하니까.
한편, 영기가 없어진 질서성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사람들의 탐욕이었다.
평소에 온화한 얼굴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일단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대부분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오래가진 못했다.
혼란을 주도하던 자들은 누군가에 의해 이내 목이 잘린 채로 거리에 버려졌던 것이다.
대략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 질서성 거리 곳곳에는 시체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중 조화경 급의 강자의 시체도 무려 십여 구나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피바람이 분 후, 질서성은 무덤가처럼 고요하게 변했다.
한편, 이 시각 어느 객잔 안.
악로와 임목이 마주 보고 앉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듣자 하니 이천사도 실패했다는군.”
악로의 말에 이목이 사방을 둘러보며 대꾸했다.
“성안의 영기가 사라진 것도 그놈 짓입니까?”
“그렇다. 검종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었지.”
“허… 놈이 어떻게 이런 재주를…….”
“낸들 알 턱이 있나.”
“참, 족내에서 소식이 전달됐습니다.”
순간 악로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 뭐라던가?”
“아무래도 진가에서 파혼을 요구한 것 같습니다.”
쾅-!
“놈들이 감히!”
악로가 분노하며 탁자를 내리쳤다.
“아가씨께서 엽현에게 납치된 이상 순결을 증명할 방도가 없으니 파혼함이 타당하다는 것이 저들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족장께서도 동의하셨는가?”
임목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족장께서 명하시길 만약 아가씨께서 돌아가셨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수를 할 것이고, 만약 아직 살아 계신다면…….”
임목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때 악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 되겠다. 내 본가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소용없을 겁니다. 이미 결정이 난 일이니까요.”
임목이 고개를 흔들자, 악로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 * *
무량산(無量山).
무량산은 북황계에 위치한 산으로, 질서성과는 수십만 리 떨어진 곳이다.
그 높이는 구천구백 장에 달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봉우리들이 마치 밤하늘에 별처럼 솟아 있는 듯했다.
무량산으로 돌아온 이천사는 곧바로 무량전을 찾았다.
마침 전 안에 있던 노인을 향해 이천사가 예를 차렸다.
“사존!”
삼베로 지은 장포를 입고서 긴 수염을 바닥까지 늘어뜨린 노인.
이 자가 바로 양도종 종주, 막무량(莫無量)이다.
“엽현의 일로 온 것이냐?”
“그렇습니다, 사존. 제가 구갑지술(龜甲之術)과 지지진(地知陣)을 펼쳤으나 상대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배후에 어떤 고인이 있는 듯한데, 우리 양도종이 계속 그들에게 죄를 지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막무량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하거라.”
순간, 이천사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사존, 대관절 엽현의 배후에 누가 있는 것입니까?”
막무량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전 입구로 걸어가 성공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자일 것이다.”
“그걸 어찌 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엽현이 어찌 지금까지 살아있었겠느냐? 더구나 그 보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긴 하지만, 동시에 가장 흉흉한 재앙이기도 하다. 연루돼 봐야 좋을 일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양도종은 보물을 포기하는 것입니까?”
그 말에 막무량이 침묵했다.
“혹시 망설이고 계신 것인지요?”
이에 막무량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망설일 이유도 없다. 그 강력한 검종도 거의 멸망할뻔하지 않았더냐? 그들보다 약한 우리가 어찌 해볼 물건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누군가 우리가 이 일에 끼어들도록 강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말을 하던 중, 막무량이 문득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중년남자 하나와 흑의노인 하나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막무량이 그 중 중년남자를 웃으며 반겼다.
“질서문의 진천(秦天) 호법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시오?”
“하하, 막 종주, 내가 불쑥 찾아와 방해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자, 안으로 드시지요.”
자리를 안내받은 진천이 먼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막 종주, 굳이 긴 말 하지 않겠소. 이번에 내가 온 것은 그대의 도움을 좀 얻고자 함이오.”
“질서문이 도움을 구할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니겠구려.”
“하하,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오. 허나, 강요하지는 않겠소.”
이에 막무량이 낮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진 호법, 내 빙빙 돌려 말하지 않겠소. 점을 보는 것은 천기를 훔치는 것이라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오. 만약 보통사람이라면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엽현은 보통사람도 아닐뿐더러, 그의 은신술은 노부도 탄복할 정도로 대단하오. 때문에 이번 일을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오.”
진천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 종주,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보시오.”
“그럼 첫째로, 진을 설치하기 위해 대량의 신정(神晶)이 필요하오. 적어도 오백만 개는 되어야 할 것이오. 둘째,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점을 칠 땐 반드시 천겁이 떨어지게 돼 있소. 그러니 나대신 천겁(天劫)을 짊어질 사람이 필요하오. 셋째, 나와 양도종의 안위를 위해 도경 강자 셋을 보내 주시오.”
“…….”
“왜 그러시오, 어려운 조건이오?”
진천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이대로 준비 해주면, 확실히 놈을 찾아 줄 수 있소?”
“물론이오!”
막무량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번 이상은 어렵소. 진을 펼친 후에는 한동안 소모된 원기를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니 엽현의 위치를 찾은 그 순간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을 붙잡아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최소 두 달을 다시 기다려야 할 것이오.”
이에 진천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놈을 찾아 주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준비하겠소! 가서 신정 오백만 개를 가지고 오시오!”
진천이 뒤편에 있던 노인을 향해 말했다.
신정 오백만 개!
이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혹의 노인은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났다.
노인이 떠난 후, 진천은 다시 막무량을 향해 미소를 띠웠다.
“막 종주, 듣자 하니 그대는 천기에 능통하다던데, 어찌… 이번에 엽현이 살겠소, 아니면 죽겠소?”
이에 막무량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 호법, 농담도 잘하시는구려. 그대 역시 소문을 믿는 것이오?”
통효천기(通曉天機).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통효천기에 이른 자는 천기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천기를 보고 미래를 꿰뚫어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적어도 막무량이 보기엔 불가능했다.
만약 그런 경지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 옛날 천문에 정통했던 태고족이 멸망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일정 경지에 이른 도인은 천기를 어느 정도 감응(感應)할 수 있다.
그래 봐야 바로 앞에 닥친 위기를 느끼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게다가 양도종이 자랑하는 추연술(推演術)조차 천지의 기운을 빌려 사람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뿐이지,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이 수단도 결코 얕잡아 볼 순 없는 것이다.
이때 앞서 자리를 떠났던 흑의 노인이 돌아왔다.
그가 노인이 손을 내밀자 막무량 앞으로 납계 하나가 날아들었다.
내용을 확인한 막무량은 납계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노부가 진을 설치하는 동안 두 분께서는 밖에서 기다려 주시오. 엽현의 위치를 확인하는 대로 알려 드리리다.”
“별문제 없겠지요?”
진천이 막무량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자, 막무량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놈을 찾는 것은 문제없을 것이오. 다만, 기억해 둘 점은 엽현을 잡지 못한다 해도 그 책임을 나에게 물을 수 없다는 것이오.”
“물론이오. 그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좋은 소식을 들려주시오.”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이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이 문을 닫고 퇴장하자 곁에 있던 이천사가 말했다.
“사존, 이번 일에 끼어들지 않겠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쩌겠느냐, 저들이 순순히 우리를 놔 주지 않을 것이다.”
“…….”
“다만 우리는 엽현을 적으로 돌리지도 않을 것이다.”
순간 이천사가 막무량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막무량이 대답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색 옥패가 이천사에게로 날아갔다.
“이 전송석을 이용하면 두 번은 백만 리 떨어진 곳까지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다. 가서 엽현에게 전해주거라.”
“사, 사존! 하지만 질서문에서 알게 된다면……”
“너와 나 그리고 엽현이 입을 닫는다면 세상천지에 이 일을 알 자가 누가 있겠느냐?”
“혹여 엽현이 말실수라도 할까 걱정됩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 없다. 놈이 배신한다고 해도 질서문이 유일하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우릴 칠 수 있겠느냐? 그때가 되면 우리는 철저히 질서문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울 테니 결국 입을 열면 엽현만 손해일 뿐이다.”
이천사가 말귀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놈은… 지금 이곳에 있다.”
순간 이천사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네가 들어올 때 네 뒤에 따라 들어온 걸 몰랐던 게냐?”
그 말을 듣자 이천사가 안색이 변하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엽현!
엽현이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막무량을 바라보았다.
“제법 눈썰미가 있으십니다.”
그 말에 막무량이 웃으며 대답했다.
“날 죽이려고 온 게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양도종이 과연 어떤 곳인지 살펴보러 온 것뿐입니다.”
“하하하! 역시 혼돈지기의 주인답게 매우 당돌하구나!”
순간, 엽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떻게 혼돈지기를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눈앞의 인물은 과연 보통 무인이 아닌 걸까?
이때 막무량이 말을 이어갔다.
“아이야, 그러지 말고 나와 연극을 해봄이 어떠냐? 너와 양도종 모두 위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말이다.”
“그 말은… 저를 돕겠다는 것입니까? 어째서…….”
엽현이 눈을 들여다보며 묻자, 막무량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네 보물을 빼앗으려 하지만 나는 반대의 생각이다. 오히려 네게 도박을 걸고 싶은 마음이다. 비록 승산이 크진 않겠지만, 만약 네가 이기게 된다면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구나.”
“그 부탁이 무엇입니까?”
막무량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노부는 일평생, 이 우주를 연구하며 살아왔다. 늘그막에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오유계가 어떤 모습일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인데… 만약 네가 살아남는다면 보물을 한 번 살펴보게 해줄 수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