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55
555화 어차피 인생은 한 편의 연극
오유계!
엽현은 눈앞의 노인이 계옥탑을 통해 오유계를 이해하길 원함을 알아차렸다. 과연 오유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계옥탑 만한 물건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고민 끝에 입을 연 엽현.
“왜 지금 보여 달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공짜로 보여 달라고 하면 네가 그리하겠느냐?”
“그도 그렇군요. 그럼 한 번 합을 맞춰보시지요.”
막무량이 웃으며 이천사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이천사가 엽현에게 전송석을 건넸다.
전송석을 갈무리한 엽현이 떠나려 할 때, 막무량이 붙잡았다.
“잠시 후, 저들에게 너의 위치를 알려 줄 것이다. 그때 그 전송석을 이용해서 이동하도록 하거라. 성주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발각 될 염려는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알겠습니다.”
엽현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엽현이 문득 제자리에 걸음을 멈췄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어떻게 제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까?”
“후후, 아이야. 혼돈지기는 확실히 대단한 것이지만 만능은 아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기인이사가 많으니 한시도 방심하지 않도록 하거라. 특히 질서문과 당족을 조심하거라.”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포권을 취해 보인 엽현은 곧바로 장내를 떠났다.
그가 원했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굳이 다시 묻진 않았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계속해서 캐묻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인 것이다.
그렇게 엽현은 대전 안에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때 이천사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존, 혼돈지기란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주가 처음 탄생했을 무렵 존재했던 세 가지 기운 중 하나가 바로 혼돈지기다.”
“그럼 나머지 두 개는 무엇입니까?”
“음(陰)과 양(陽)이다. 우주를 생성할 수도, 멸망시킬 수도 있는 거대한 힘이지.”
막무량이 이천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천사야, 사람이 야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허나 야심이란 언제나 양날의 검이란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한순간 실수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존,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좋다. 이제 그들을 데려오너라.”
이천사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천과 흑의 노인이 대전에 들어왔다.
이때 대전 중앙엔 기이한 수막(水幕)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 안에서 무언가 자라나고 있었다.
진천과 흑의노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수막 한가운데서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엽현의 주위엔 그가 현재 위치한 곳의 모습도 드러났다.
질서성!
순간, 수막이 사라짐과 동시에 막무량이 바닥에 피를 토했다. 이때 막무량의 얼굴은 매우 창백한 것이 산송장을 마주하는 듯했다.
진천이 황급히 그를 부축하려 할 때, 막무량이 힘겹게 손을 흔들었다.
“가시오. 지금을 놓치면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하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진천.
“그, 그럼 가보겠소. 부디 보중하시오!”
말을 마친 그는 흑의노인과 함께 황급히 장내를 빠져나갔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이천사가 달려와 막무량을 붙잡았다.
“사존!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막무량은 이천사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인생은 원래 한 편의 연극과 같은 것. 때로는 격하게 연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좀 쉬어야겠구나.”
말을 마친 말무량은 곧 대전을 떠나갔다.
* * *
질서성.
성의 한 모퉁이에 앉아있던 엽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때 그의 앞에 두 명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천과 흑의 노인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주변에는 어느새 일곱 명의 무인들이 사방의 방위를 점하고 있었다.
모두 도경의 강자들이었다.
“놀란 표정이구나.”
진천의 말에 엽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어떻게 이럴 수가! 감쪽같이 숨었거늘!”
“엽현, 쓸데없는 말 하고 싶지 않다.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보물을 내놓거나, 우리를 모두 죽이거나.”
“그, 그런…….”
“아, 물론 도망치는 것은 방법이 될 것 같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주변 공간은 이미 봉쇄되어 있으니 말이다.”
“…….”
진천이 침묵하는 엽현을 향해 주먹을 쥐었다.
“결정했느냐?”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했소. 세 번째 길을 택할 것이오!”
“하하,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재주를 부려 보거라!”
바로 이때, 엽현이 검은 돌멩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현기가 요동치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장내에서 사라졌다.
이를 본 장내 무인들은 동시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사라…졌다?’
무인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때, 진천이 다가와 엽현이 서 있던 자리를 살폈다.
공간이 온전한 것으로 보아 공간을 통해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도망쳤단 말인가?
이때 곁에 있던 흑의노인이 말했다.
“역시 언제나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는 놈이오. 놈을 보자마자 기회를 주지 말고 한 번에 덮쳤어야 하오!”
무인들은 모두 진천을 바라보았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는 불만이 드러났다.
이때 진천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실수는 없었다.
설령 날개가 달렸다 하더라도 도망칠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그러나 엽현은 보기 좋게 그의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양도종으로 돌아간다!”
잠시 후, 진천은 무인들을 데리고 다시 양도종을 찾았다.
진천이 돌아온 것을 본 이천사가 재빨리 그들을 맞이했다.
“진 호법, 엽현을 잡은 것이오?”
“…….”
진천은 얼굴을 붉힐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찌… 또 놓친 것이오?”
그제야 진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후… 사존께 부탁해 다시 한번 위치를 알아낼 수 있겠소?”
“이런… 지금 사존께서는 천기를 엿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계신 중이오. 만약 저 상태에서 한 번 더 진법을 펼쳤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소.”
“정말 그 정도로 위독하단 말이오?”
이천사가 손을 들어 피로 흥건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의 눈으로 직접 보시오. 저것이 바로 사존의 상태를 명확히 말해주는 것이오. 사존이 펼친 진법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소! 천기를 훔쳐본 자는 반드시 하늘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있소. 이런 것도 모른단 말이오?”
핀잔을 들은 진천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지만, 이천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 호법, 아무튼 사존께서는 당장 몸을 돌보셔야 하니 출수하지 못할 것이오.”
“언제쯤이면 회복할 수 있겠소?”
“두 달! 두 달은 필요하오.”
진천이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고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두 달 후에 다시 오리다!”
순식간에 무리를 이끌고 사라진 진천.
그들이 사라지자 이천사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들이 연기인 것을 눈치챘더라면 양도종은 그날로 간판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천사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에휴, 이거 어디 가서 연기 좀 배우든가 해야지 원…….”
한편, 양도종을 떠나던 중, 흑의노인이 말했다.
“진 호법, 내가 볼 때 이천사의 태도가 뭔가 이상해 보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들이 일부러 우리를 돕지 않는 거란 말이오?”
진천의 말에 흑의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느낌이 들었소.”
“근거는? 그들이 엽현을 돕는다는 근거는 어디 있소?”
“…….”
“질서문은 현재 당족과 경쟁 관계에 놓여있소. 이럴 때일수록 한 세력이라도 더 우리 편에 끌어 놓아야 하오. 그중에서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는 양도종은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처지요. 알고 있소?”
흑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소. 두 달만 지나면 양도종은 별수 없이 엽현을 찾아야 할 것이오. 그럼 나는 가서 성주를 뵙고 올 테니, 그동안 독단적으로 엽현을 추격하는 일은 삼가시오. 또한, 당족의 움직임도 계속 주시해야 하오. 설령 우리가 보물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당족 손에 들어가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 하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진천과 무인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 * *
질서성 동쪽에서 수십만 리 떨어진 어느 산속.
산속 깊은 곳에 형성된 자그마한 연못은 마치 주전자가 끓듯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는 주변 지대가 화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었다.
연못 사방은 투명한 광막으로 덮여 있었는데, 광막 사방이 시시때때로 번뜩이는 것이 진법인 듯했다.
연못 중앙에는 한 여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폭포수처럼 허리까지 곧게 떨어졌고, 눈썹은 잘 벼린 검처럼 날카로웠다.
여기에 입가의 난 작은 점은 여인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연못의 물은 뜨겁게 끓고 있건만, 여인은 제자리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지면에서 어떤 신비한 기운이 그녀를 향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그녀의 육신이 기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전신이 떨림과 함께 긴 눈썹이 갈지자로 휘어졌다.
아마도 절정에 이른 것이리라.
바로 이때, 갑자기 하늘에서 사람의 형체가 여인의 앞으로 뚝 떨어졌다.
풍덩-!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물보라.
“푸흡-!”
순간 여인이 붉은 선혈을 한 움큼 뿜어내더니,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약관쯤 돼 보이는 젊은 남자.
옅은 하늘색 장포를 입고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남자의 정체는…
엽현이었다.
겨우 뭍으로 올라온 엽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송석을 쓴 순간에 마치 하늘이 뒤집힌 것 같은 기분과 함께 속까지 뒤집혀 버린 것이다,
‘토할 것 같아!’
바로 이때, 막 이물질을 내뿜으려던 엽현의 눈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들어왔다.
‘아, 아름답다!’
이것이 여인을 본 엽현의 첫 감정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여인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와…….”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매끈한 피부와 봉긋한 가슴, 그리고 복숭아와 같은 농익은 둔부까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완벽에 가까운 몸매 아닌가!
이때 엽현이 돌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하늘이 주신 천재일우의 기연이라 할지라도, 아녀자의 벗은 몸을 계속 주시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이 오해를 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엽현이 눈을 감은 채 말을 꺼냈다.
“흠흠… 낭자, 지금 이 상황이 사고라 한다면 과연 믿겠소?”
여인은 가만히 엽현을 바라보며 아무런 대답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전신의 혈맥에서 혈류가 거꾸로 솟구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엽현이 재차 말을 걸었다.
“낭자, 일단 뭐라도 좀 걸치는 게 좋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결코 눈을 뜰 생각이 없으니까. 믿어도 좋소. 나 엽현 결코 거짓말은 하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