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61
561화 사실대로 고하거라
엽현이 또다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의 신형이 날아가는 순간, 몇 자루의 비검이 계옥탑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비검이 탑에 닿는 순간, 이들 비검은 순식간에 탑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방적인 구타.
퍼퍼퍼퍼퍼퍽…….
엽현은 미친 듯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정신을 놓아버렸다.
그렇게 일각 여를 두들겨 맞던 중, 막 바닥에 처박힌 엽현이 벌떡 일어나더니, 양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 그만… 그만 때려……. 불만 있으면 대화로 해결하자구…….”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계옥탑은 더 이상 출수하지 않고 엽현의 몸 안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엽현은 코피가 흐르는 코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마치 몸이 조각 조각난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엽현은 비로소 계옥탑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몸소 체험한 결과 초범검성보다도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이때 숨을 헐떡이고 있는 엽현 앞에 당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엽현을 내려다보는 당청.
“이길 수 있으면 냅다 들이받고 질 거 같으면 말로 하자고 하니, 그대와 같이 뻔뻔한 사람은 정말 처음이에요.”
“…….”
“그나저나 이 탑이 정말로 그대를 주인으로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지금 이 꼴을 보고도 내가 주인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오?”
콧구멍에 가득 찬 피를 풀어내며 대꾸하는 엽현.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로 궁금해요. 도대체 왜 당신 같은 사람을 주인으로 삼은 건지.”
“그대 눈엔 내가 그리도 형편없는 사람이오?”
엽현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물론 엽 공자의 지혜와 실력, 결단력은 일반 무인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긴 하죠. 지금 같은 나이 또래에 그대만 한 무인이 얼마나 될까요?”
“오호라! 이 엽현, 살면서 한 번도 남을 인정해 본 적 없건만, 오늘만큼은 그대에게 탄복을 금할 수 없을 것 같소!”
“내게 탄복을? 어떤 점에서 말이죠?”
“그야 당연히…….”
당청의 호기심 어린 눈에 엽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나와 같은 인재를 알아보는 그 안목에 감탄했다는 말이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당청이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엽 공자, 그대 낯가죽은 정말이지 무쇠만큼 질긴 게 틀림없어요.”
“하하하! 낯가죽은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것 아니오? 겉으론 웃는 모습이어도 속으로는 울고 있을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어도 속으로는 기뻐할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믿지 못할 물건이 어디 있겠소?”
“그래서 엽 공자는 아예 체면을 포기하기로 작정한 것이군요. 그런가요?”
“하하하하!”
당청의 대답에 엽현이 소리 내 웃었다.
“당 소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구려. 이제 다 떨쳐 버린 것이오?”
“떨치고 말고 할 게 있던가요? 그저 한 알의 바둑알 같은 인생, 운명의 손놀림에 따라 이리 놓이고 저리 놓이는 것이지.”
문득 당청이 엽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엽 공자는 혹시 이런 기분이 든 적 없나요?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이에 엽현이 웃으며 답했다.
“나는 그저 만사에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오. 만약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엽현을 빤히 바라보는 당청.
그녀의 눈빛이 복잡하다.
잠시 후, 당청이 입을 뗐다.
“엽 공자, 이제 놔 주지 않을 건가요?”
“…….”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가고 싶다면 가보도록 하시오.”
당청이 눈을 크게 뜨고 엽현을 바라본 순간, 엽현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당청의 미간에서 옅은 백광이 빠져나오더니 그녀의 몸을 옭아매고 있던 금제가 풀려 버렸다.
“엽 공자… 어째서……?”
잠시 생각하며 답변을 준비하는 엽현.
“당 소저, 그대를 놓아주는 것은 내가 여인에 약하거나 그대를 가여워해서가 아니오.”
“그럼 뭔가요?”
“당족은 이미 그대를 포기했소. 더 이상 그대를 묶어 두어 봤자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오. 어쩌면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그대에게 부탁할 수도 있고. 게다가 자유를 얻은 그대는 더 이상 당족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당족에게 칼을 겨눌지도 모르오. 간단히 말해 그대가 떠나는 것은 내게는 이득이라는 소리요.”
“그렇군요……. 고마워요.”
“뭐가 고맙소?”
당청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대로 말 해 줘서 고맙다고요. 짧은 시간 동안 그대와 지내면서, 이 남자는 얼굴은 두껍지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언젠가 검종은 그대를 놓친 것을 후회하는 날이 올 거예요.”
말을 마친 당청이 그대로 돌아섰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엽 공자, 항상 여인을 조심하세요. 그들의 말을 쉽게 믿으면 안 돼요.”
“명심하겠소. 나 역시 훗날 그대와 적으로 만나는 일이 없길 빌겠소. 물론 적으로 나타난다 해도 걱정 마시오. 내 검은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니까.”
엽현의 말에 당청이 가볍게 미소 짓고는 그대로 떠나갔다.
잠시 후,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엽현의 머릿속에 제견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 계집이 마음에 드는가 보군?]“글쎄?”
[내가 볼 땐 저 계집도 네게 마음이 있는 것 같다.]그 말에 엽현이 가볍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그동안 잘 쉰 거야?”
[그래. 덕분에 예전의 실력을 조금 찾을 수 있었어.]“얼마나?”
[인간으로 치면 증도경쯤 될까?]증도경!
“그렇게나 강해졌다고!?”
[흥! 이게 강한 걸로 보인단 말이냐? 잘 들어. 만약 내가 전성기의 힘을 되찾으면 네 앞에 얼쩡거리는 놈들은 한 발로 다 쓸어버릴 수 있다!]“하하하! 그러면 나중에 좀 신세 좀 져야겠군!”
이때, 제견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이번에 운 좋게 진가인지 하는 놈들을 속일 순 있었지만, 저들도 바보가 아니란 걸 명심해야 한다. 한두 번 속는 놈은 있지만, 일평생 속는 놈은 없으니까!]“명심하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서, 앞으로 계획이 뭐야?]엽현이 무어라 대답하려 할 때, 갑자기 계옥탑이 엽현 앞으로 튀어 나왔다. 그러더니 몸을 떨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엽현이 묻자 계옥탑이 더욱 격렬히 진동하더니 갑작스레 엽현에게로 몸을 부딪쳐 왔다.
다급한 표정으로 엽현은 검을 들어 막아보려 했다.
퍽-!
하지만 방어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신형은 백 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익-! 한 번만 더 공격해봐! 네 놈의 벽돌 하나하나를 다 부숴버릴…….”
엽현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 계옥탑이 한 줄기 검은빛으로 변해 날아들었다.
쾅-!
재차 멀리 튕겨 나간 엽현.
잠시 후, 바닥에 엎어져 있던 엽현이 기다시피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때 계옥탑이 엽현 앞에 나타나더니 방방 뛰며 오두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이 눈가를 실룩거렸다.
그가 이런 수모를 겪을 짓을 했던가?
[혹시 탑령(塔靈)이 깨어난 건가?]제견의 말에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몰라! 하지만 진짜로 깨어났다면 이렇게 유치한 짓은 안 하지 않을까?”
엽현 눈에 비친 탑의 행동은 마치 갓 유아기를 맞은 아기와 같았다.
[깨어나긴 했지만, 예전에 입었던 충격 때문에 머리가 모자라 진 게 아닐까?]“음, 일리가 있어.”
제견의 말에 엽현은 격하게 공감했다.
“아무튼 방금 전 네게 뭔가 표현하려 했던 것 같은데, 짐작 가는 게 없어?”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하려는 순간, 그의 앞에 소령이 나타났다.
“나 무슨 뜻인지 알아!”
“탑이 뭘 원하는지 이해했단 말이야?”
“응! 너한테 무슨 물건을 찾아오라고 했어!”
“무슨 물건?”
그러자 소령이 계옥탑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탑을 향해 뭔가 중얼중얼거리는데, 탑은 그때마다 성난 원숭이처럼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를 반복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엽현의 표정은 점점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제견, 쟤들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하겠어?”
[높으신 분들의 대화를 어찌 우리 같은 우매한 자들이 이해하리오.]“…….”
얼마 후, 소령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도… 어쩌구를 찾아오라는데?”
“도…칙?”
“맞아, 그거야! 또 얘가 말하길 너더러 게을러터져서 도칙도 안 찾으러 가는…….”
“안 찾으러 가는?”
“멍청이래! 그리고 바보같이 육층에 있는 영감도 안 쫓아낸다고…….”
“잠깐, 잠깐. 그건 그냥 네가 원하는 거 아냐?”
소령의 두 눈동자가 순간적이었지만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니, 분명히 탑이 그렇게 말했어!”
“…진짜?”
“…….”
소령이 더 이상 거짓말은 못 하겠던지 ‘헤헤’ 웃고는 오른편을 가리켰다.
“저쪽, 저쪽에 도칙이 있다고 빨리 가라고 하네.”
잠시 소령이 가리킨 방향을 보며 생각을 하던 엽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한 번 가보자.”
엽현은 소령과 계옥탑을 다시 몸 안에 집어넣었다.
도칙.
계옥탑의 힘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도칙을 찾는 게 중요했다.
게다가 도칙은 계옥탑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엽현에게도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는 하나의 무기라도 더 손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고 덤벼드는 질서문과 당족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내 엽현은 계옥탑이 이끄는 대로 신형을 옮겼다.
* * *
만산성(萬山城).
만산성은 이미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수십 명의 도경 강자들이 얽혀서 싸우는데 버틸 수 있는 성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는 와중에 당족과 질서문 무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철저히 진가 무인들만을 공격했다.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은 진가 무인은 진소, 진명 그리고 진봉뿐이었다.
진봉과 진명은 공동의 적을 위해 연합한 상황이었다.
잠시 거친 숨을 들이쉬던 진소가 임목을 향해 소리쳤다.
“임 형,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흥! 그대들이 우리 등에 칼을 꽂으려 했던 건 잊은 것이오? 다시 말하건대, 보물을 내놓지 않으면 오늘 진가는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오!”
“이익! 뭣들 하는 게요? 어서 보물을 내주지 않고?”
진소가 진명과 진봉을 향해 거칠게 쏘아붙이자, 진봉이 진명을 향해 말했다.
“어서 사실대로 고하거라! 이러다간 너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들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다!”
“…….”
잠시 침묵하던 진명이 어두운 표정으로 임목 등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오. 그때 분명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려 하긴 했었소.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소. 내 생각에는 엽현에게로 돌아간 것이 틀림없소.”
“쯧쯧쯧…….”
진명이 말을 마치자, 임목이 진명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끝까지 염치를 모르는구려. 이런 상황에서까지 엽현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다니. 그대들은 양심이 찔리지도 않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