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62
562화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임목의 말을 들은 진소 등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상대는 전혀 자신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진가 무인들 역시 자신들이 하는 말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는 동안 임목의 표정은 점점 차가워져 갔다.
“그래서,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거요? 정녕 진가 일족이 모두 합장 당하는 꼴을 보고 싶은 게요?”
“보물은 이미 엽현의 손안에 돌아갔다고 몇 번을 말하오!”
진명이 대꾸하자, 곁에 있던 진소가 오히려 호통을 쳤다.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스스로 생각해보아라!”
“…….”
진명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은 이미 그의 개인적 일탈을 뛰어넘어 진가 전체의 존폐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진가는 당족과 질서문을 당해낼 수 없고, 저들 역시 진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진가는 진명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니, 진명을 지키는 걸 고사하고 종문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퇴로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인가.’
이러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진명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탐욕, 언제나 탐욕이 문제로구나!”
진명은 스스로의 탐욕이 이와 같은 화를 불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이때,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엽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엽현은 자신의 탐욕을 이용해 질서문과 당족의 주의를 돌리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엽현!
그를 떠올리는 순간 진명의 표정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다시 한번 말하겠소! 보물은 이미 엽현에게로 돌아갔소!”
“아직도 헛소리를…….”
바로 이때, 진명의 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장내 무인들의 눈이 일순간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진명이 자살을 선택하다니.
임목과 질서문의 흑의노인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진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완전히 불길에 휩싸인 진명은 마치 하나의 광인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엽현… 감히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다니… 내 죽어서도 너를 저주하리라! 하하하하하!”
이때, 진명이 웃음을 뚝 그치고는 임목과 흑의노인을 바라보았다.
“질서문, 당족. 잘 들으시오! 엽현은 천질이 뛰어날 뿐 아니라, 잔꾀도 많은 놈이오. 미리 제거해 놓지 않으면 훗날 큰 화를 입게 될 것…….”
그가 채 말을 끝맺지 못했을 때, 화염이 진명의 전신을 삼켜 버렸다.
잠시 후, 진명이 있던 자리엔 검은 재가 남아 공중에 흩뿌려졌다.
순간 정적이 흐르는 장내.
진소와 진봉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설마하니 진명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은 몰랐다. 비록 진명을 포함한 세 사람이 죽을 위기에 빠져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싸우다 죽을망정 자살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진명이 굳이 자살을 한 목적은 하나였다. 모든 화살을 진가에게로 향하게 하고 자신만 몸을 빼려는 엽현의 계략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진소가 임목을 향해 말했다.
“임목, 만약 우리 중 하나가 정말로 보물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진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를 구원하러 달려오거나, 보물을 내주도록 명령했을 것이오. 하지만 진가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소.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소? 그대들과 우리 모두 간악한 엽현의 계략에 걸려든 것이란 말이오!”
엽현!
임목과 악로가 입을 굳게 닫고서 서로의 안색을 살폈다.
엽현이 얼마나 간사한지는 신무성 때의 경험으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검수이긴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시정잡배와 같은 뻔뻔한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자가 엽현인 것이다.
게다가 그 실력마저 약하지 않으니, 그를 상대하는 자마다 골치가 아파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악로가 임목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보물의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저 둘은 살려 보내면 안 된다.]그 말을 들은 순간, 임목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쳤다.
“죽여라!”
당족은 진가 외에도 많은 세력들에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배신을 행한 진가를 처단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될 수도 있다. 악로는 이와 같은 일을 경계한 것이다.
게다가 이미 진가 무인들의 말은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녕 진가에게 보물이 없는지는 진소와 진봉을 죽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임목의 명령이 떨어짐과 함께, 당족기병이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진소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오냐! 기왕 살려주지 않을 거라면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가겠다!”
순간 진소가 잔상을 남기며 당족기병들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팔짱을 낀 채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흑의노인.
“우리도 출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무인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지켜본다.”
바로 이때, 장내에 참혹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흑의노인이 고개를 돌리자 소리가 난 곳에서 진봉의 머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었다.
아홉 당족 기병들의 실력을 확인하자, 흑의노인의 안색이 다소 어둡게 변했다.
당족기병들은 땅에서만큼은 정말이지 전율이 흐를 만큼 강했던 것이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진소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의 왼팔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족기병 중 하나가 진소를 쫓아 날아올랐다.
곧 두 사람의 일대일 대결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는 대결이라 부르기도 무색할 만큼 일방적인 전투였다.
상대의 공격을 힘겹게 받아내던 진소가 문득 먼 쪽 하늘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 노인이 두 사람의 전투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 자가 바로 진가 가주, 진중(秦仲)이었다.
그는 한참 전에 도착했지만, 어쩐 일인지 상황을 그저 주시하고만 있는 중이었다.
진중과 눈이 마주친 진소가 소리쳤다.
“가주! 나는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소! 그저 내 가족들을 잘 돌봐 주길 바라오!”
말을 마친 진소가 정면의 당족기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찰나의 순간, 그의 복부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더니 엄청난 기운과 함께 폭발했다.
콰쾅-!
이 폭발로 반경 수천 장의 공간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균열을 일으켰다.
진소를 상대하던 당족기병은 들고 있던 도를 방패 삼아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신형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백여 장 튕겨 나간 상태였다.
잠시 후, 폭음이 잦아들고 갈라졌던 공간이 회복됐다.
그리고 진소와 진봉은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두 사람 주변의 어디서도 보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때, 굳은 표정의 임목 앞에 진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됐소?”
진중의 물음에 임목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진 가주, 이 일을 겨우 이 정도로 덮으려 생각했소?”
“그럴 줄 알았소. 다만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소. 엽현이 보물을 일부러 내어준 것은 처음부터 그대들의 주의를 진가에 옮겨 놓기 위함이었소. 우리가 여기서 아옹다옹하는 동안 과연 엽현은 놀고 있겠소? 만약 놈이 초범검성에 도달하기라도 한다면? 놈의 암살능력을 생각할 때, 우리 중 대부분은 놈의 손에 죽게 될 것이오!”
그가 말을 마치자 임목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엽현.
그의 존재는 당족에게 있어 매우 껄끄러운 것이었다.
엽현은 아직 대검선에 불과하지만, 검성, 더 나아가 초범검성에 이른다면 매우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바로 이때, 장내에 웬 여인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허면, 진가의 가주께서 당족의 시선을 엽현에게로 돌리려는 저의는 무엇입니까?”
장내 무인들이 일제히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꼿꼿한 자세로 진중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
당청이었다.
당청의 등장에 진중의 눈빛이 다소 흔들렸다.
이때 당청이 진중을 향해 웃으며 다가갔다.
“진중 가주, 우리가 지금 논해야 할 것은 보물도, 엽현도 아닌 바로 그대들 진가의 행위입니다. 당시 진가가 당족의 보호를 받겠다고 했을 때, 무어라 했습니까? 그때의 맹세는 모두 잊은 것입니까?”
진중은 대꾸 없이 당청을 바라보았다.
이에 당청이 말을 이어갔다.
“그대들이 저지른 행위는 반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요?”
“그럼 그대가 말해 보시오. 어찌해야 하겠소?”
진중의 물음에 당청이 가볍게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하늘 끝까지 솟구치더니, 당청의 앞쪽에 사람의 환영이 나타났다.
이 환영이 등장한 순간, 장내 모든 당족기병들은 물론 임목과 악로까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환영의 정체는 다름 아닌 당족 족장, 당염(唐閻)이었던 것이다.
“당청이 족장을 뵈옵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당염의 말에 당청이 예를 갖춰 말했다.
“진가가 배신을 하였습니다. 소녀, 감히 족장께 진가를 제거해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건의 드립니다.”
그 말을 들은 진중이 말없이 당청을 바라보았다.
이때, 당염이 당청을 향해 물었다.
“너는 언제 탈출한 것이더냐?”
“탈출한 것이 아니라 그가 놓아 주었습니다.”
“어째서?”
“그는 당족이 이미 소녀를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의미 없이 더 데리고 있는 바에야, 차라리 풀어주어 제가 당족에게 복수하길 바랐던 것입니다.”
“네 생각은 어떠한가?”
“저는 분명 당족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당염이 당청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에 당청이 양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물론 그보다 훨씬 큰 것은 바로 저에 대한 분노입니다. 멍청하게도 엽현의 인질이 되어 종문 전체에 폐를 끼친 것에 대한 분노 말입니다!”
당청이 고개를 돌려 당염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저는 당족이 두 번 다시 저를 내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할 것입니다. 당시 저를 포기했던 선택이 옳은 것이 아니었음을 모든 당족 무인들에게 확실히 알려 줄 것입니다!”
장내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멀리서 당청을 지켜보던 흑의노인의 눈에서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저 계집애…….”
이때, 침묵하던 당염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소리쳤다.
“지금 이 시간 부로 당청을 당족기병 부통령(副統領)에 임명한다. 당족기병 삼십 기를 통솔할 것이며, 증도경 강자 두 명을 부관으로 둘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구룡옥패(九龍玉佩)와 신정 백만 개를 하사하고 천장각(天藏閣), 신기각(神技閣) 그리고 동천성지(洞天聖地)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할 것이며, 스스로의 사병을 키우는 것도 허락한다!”
당염이 말을 마치자 아홉 명의 당족기병들이 동시에 당청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부총통을 뵈옵니다!”
동시에 임목과 악로 두 사람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 당염이 말한 것들은 당족의 몇몇 공자들, 그것도 차기 가주 자리를 다투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그리고 당청이 그 특권을 받았다는 것은 그녀 역시 차기 가주 후보가 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한 마디로 미운 오리 새끼에서 한순간에 당족 권력의 핵심이 된 것이었다.
순간 임목과 악로 두 사람이 당청을 향해 황급히 예를 올렸다.
“부총통을 뵈옵니다!”
당족기병 부통령이란 직명은 그녀의 예전 신분에 비하면 굉장히 무게감이 있는 것이었다.
사실 당족 큰 소저라는 것은 그저 허명에 불과한 것 아니던가.
당청이 몸을 굽혀 당염을 향해 예를 차렸다.
“족장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가의 일은 네 아홉 동생들과 상의하여 알아서 결정하도록 하거라. 또한, 최대한 빨리 엽현의 행방을 찾도록 해라. 위험요소는 속히 제거해야 한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때, 그녀의 손에 들어갔던 힘이 서서히 풀렸다. 평온해 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그녀의 눈 속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