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64
564화 이건 꿈일 거야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진 검명 소리는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마치 엽현의 마음을 대변하듯.
엽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진혼검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식심(識心).
이 순간 그는 자신의 내면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 그 누구를 속일지라도, 자기 자신만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은 곧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거울이니까.
잠시 후, 몸을 일으킨 엽현의 손에 한 자루 검이 들렸다.
검안에서 두 종류의 검의가 느껴졌다.
선악검의(善惡劍意).
이때의 선악검의는 예전과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이와 함께 진혼검 자체에도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인, 감축드립니다. 막 검성에 도달하셨습니다.]검성?
오랜만에 들리는 소혼의 음성에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소혼, 검성과 검선은 뭐가 틀린 거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검의를 느껴 보십시오.]그 말에 엽현이 검 속에 깃든 검의를 개방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두 개의 검의가 전신을 뒤덮었다. 이때 엽현은 검의 중에 예전에 없던 무언가가 생겨난 것을 발견했다.
[주인의 검의에는 이제 영지(靈智)를 갖게 되었습니다.]“영지? 그게 무슨 뜻이지?”
[천하 만물과 마찬가지로 검의에도 영이 깃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주인의 경지에 달린 것입니다. 주인의 심경이 성장하고 자신과 검에 대한 투명한 이해가 있다면, 검의 역시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바로 생령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생령을 갖게 된 검의는 이전에 비해 족히 오 할 이상의 공력을 더 발휘하게 됩니다. 물론 검성에 든 주인의 실력 역시 마찬가지겠지요.]‘예전보다 오 할이나 더 강해진다고!?’
엽현이 황급히 손을 펼쳐 검을 날렸다.
그러자 검이 마치 번개처럼 상공으로 솟구쳤다.
이 속도는 확실히 예전에 비해 최소 오 할 이상 빨라진 것이다!
엽현은 이와 같은 속도라면 능히 지도경 강자를 죽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만약 암습이라면 증도경 강자와도 충분히 해 볼만했다.
엽현의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주인, 우쭐해 할 것 없습니다. 입성(入聖)은 고작 시작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검성이 된 것은 시도경의 경지와 마찬가지로 이제 ‘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도’란 매우 크고 방대한지라 하루아침에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물론이지!”
고개를 끄덕인 엽현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소혼, 그런데 여기가 도대체 어딘지 알겠느냐?”
[처음 와 보는 곳입니다. 매우 낯설고 이상한 곳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쳇, 유식한 척은 다 하더니…….”
[…….]엽현은 검을 들고 천천히 전진했다. 이때, 그의 검의가 빠르게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용혼의 힘까지 더해지자 매우 강성한 검의가 순식간에 사방을 뒤덮었다.
잠시 후, 엽현은 자신의 검의가 어떤 신비한 힘에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느낀 엽현이 차가운 눈빛을 내보내는 순간 그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암흑 속에 끝도 없이 많은 검광이 어둠을 잘라내 버릴 기세로 쏟아져 내렸다.
쉬쉬쉬쉭…….
한동안 어둠 속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때, 장내에 갑자기 기이하게 생긴 백광이 떠올랐다.
이를 본 엽현은 서둘러 백광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빛을 통과한 순간, 엽현은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결국 다시 원래 있던 해역으로 돌아온 것이다.
엽현은 탐욕스럽게 주변의 모든 것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후아… 역시 잃었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아는 것이로구나!”
정말이지 방금 전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순간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던 엽현이었다.
이런 느낌은 수십 명의 도경 강자를 홀로 상대하는 것에 비견될 정도로 암담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의 그 공포란…….
“네가 새 주인인가?”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
엽현이 눈을 부릅뜨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웬 여인 하나가 그를 향해 서 있었다.
칠흑처럼 검은 치마를 입은 여인은 채 이십 세가 안 돼 보였고, 미간 사이에는 작고 영롱한 붉은 점이 박혀 있었다.
“도칙…?”
엽현을 차갑게 바라보기만 할 뿐 여인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엽현이 갑자기 자신의 단전 부위를 툭툭 건드렸다.
“나와!”
아무 반응도 없는 계옥탑.
엽현의 미간이 꿈틀댔다.
‘안 나와?’
그는 다시 몸 안의 계옥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탑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갑자기 왜 이래?’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눈앞의 여인에게 겁을 먹고 나오지 않는 건가?
이 생각이 드는 순간, 등 뒤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상황만 놓고 보자면 불가능할 일도 아닌 것이다.
물론 계옥탑이 대단한 존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한 마디로 말해 반신불수 상태가 아닌가.
그에 반해 만약 도칙이 원래 강한 데다, 온전한 상태라면 계옥탑이 겁먹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검은 치마의 여인이 엽현을 응시하며 말을 걸어왔다.
“너처럼 약한 자를 왜 주인으로 선택했을까? 뭔가 다른 특별한 점이라도 있는 건가?”
“왜 나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엽현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그러자 여인이 대답 대신 가볍게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엽현이 깜짝 놀라 검으로 눈앞을 틀어막았다.
쾅-!
찰나의 순간, 엽현의 신형이 무려 수백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게다가 그의 앞으로 거의 천 장의 가까운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흑암으로 변했고, 검을 잡고 있던 오른손엔 이미 감각이 없어진 상태였다.
엽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이때, 칠흑으로 변한 공간 가운데서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느덧 엽현 근처까지 다가와 멈춰선 여인.
“아직도 약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
엽현은 침묵했다.
그는 이제야 계옥탑이 왜 나타나길 꺼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힘을 되찾지 못한 탑은 여인을 이길 자신이 없던 것이다. 게다가 여인의 말투를 볼 때, 그녀는 이미 엽현에게 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등 두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꺼내!”
여인의 말에 엽현이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네가 들어오는 게 더 쉽지 않겠어?”
순간 여인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내가 그렇게 멍청하게 보이나?”
“…….”
“말해라. 탑이 어째서 너를 택한 거지?”
여인의 질문에 엽현이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이봐, 아직 내가 그리 강하지 않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앞으로 최강의 검수가 될 잠재력은 충분하지. 그렇게 보이지 않나?”
“잠재력?”
여인이 코웃음을 쳤다.
“잠재력은 쥐똥만큼도 없는 놈이 무슨 헛소리냐?”
“쥐, 쥐똥? 너, 막말!?”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하지만 여인의 표정은 점점 더 차가워질 뿐이었다.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놈을 내보내라. 너처럼 허약한 놈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들어야겠다!”
이에 표정이 어두워진 엽현이 계옥탑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저 여자가 하는 말 안 들려? 빨리 나와! 빨리 나와서 혼쭐을 내버리라고!”
여전히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계옥탑.
이때, 소령이 말했다.
[탑이 그러길 너보고 싸워 달래.]“뭐라고!? 자기가 못 이길 거 같으니까 나한테 떠넘기겠다는 거냐?”
[응. 아니면 내가 좀 도와줄까?]“그래! 좋은 생각이야!”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탑의 검을 휘두르는 소령이라면 기대를 걸어볼 만했던 것이다.
엽현이 대답하자마자, 장내에 소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그녀의 품 안에는 탑의 검이 들려 있었다.
곧바로 눈앞의 여인과 마주하게 된 소령.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소령이 갑자기 여인의 눈을 슬금슬금 피하더니, 갑자기 배를 부여잡는 게 아닌가!
“미, 미안한데, 아까 영과를 너무 많이 먹었나 봐. 미안해, 나갈게!”
엽현이 채 붙잡기도 전에 사라진 소령.
순간 엽현은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가만 서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은데…….’
바로 이 순간, 검은 치마의 여인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에 안색이 변한 엽현이 황급히 검 끝을 쭉 내밀었다. 그러자 차가운 검광이 번개처럼 튀어 나갔다.
쾅-!
폭음과 함께 엽현의 신형이 수백 장 뒤로 튕겨 나갔다.
다시 지면에 발을 디딘 엽현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다.
‘제길,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어금니를 꽉 물은 엽현은 용혼과 용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두 줄기 검의가 몸 밖으로 방출됐다.
“참(斬)!”
그의 음성과 함께, 한 줄기 검광이 우악스럽게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쉭-!
콰쾅-!
검광이 방출된 순간, 엽현의 신형이 다시 한번 멀리 날아갔다.
이번에는 무려 천 장 너머로.
겨우 자리에 멈춰선 엽현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손등으로 피를 닦아내는 엽현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
검성이 되고 나서 첫 번째 전투가 이렇게 참혹할 줄이야.
“죽기 전에 당장 놈을 내놓거라!”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여인이 엽현을 향해 차갑게 소리쳤다.
그 말을 듣자 엽현이 얼굴을 붉히며 계옥탑에게 분을 표출했다.
“도칙을 찾으라 해서 찾아 왔잖아! 도대체 왜 숨어 있는 거냐!?”
잠시 후 들려오는 소령의 목소리.
[도칙을 찾으라 한 건 맞는데, 얻어맞으라 한 적은 없대! 이건 제삼자인 내가 봐도 일리가 있는 말이야!]“…….”
이때, 여인이 또다시 출수하려는 모양새를 갖췄다.
그러자 엽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속도가 어찌나 빠르던지. 눈 깜빡할 사이에 구름 너머로 사라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살짝 당황했다.
설마 엽현이 도망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이내 엽현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시각 엽현은 어검을 타고 미친 듯이 날아가고 있었다.
이때 들려오는 소령의 목소리.
[도망가지 말고 후드려 팬 다음 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래! 그때 다 같이 본때를 보여 주면 된다고!]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놈한테 물어봐,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응, 근데 지금 도망치면 널 혼내주겠다는데?]“이익! 오유계의 보물씩이나 돼 가지고 왜 이리 기개가 없어? 숨어 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울 순 없는 거냐?”
[음… 탑이 그러는데 네가 왜 저 여자를 이기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러네?]“그건 나도 궁금한 바다!”
바로 이때, 뒤편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아오더니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바로 검은 치마의 여인이었다.
“감히 내 앞에서 도망을 치다니, 간이 부었구나!”
엽현이 안색이 창백해져 뭐라고 대꾸하려는 찰나, 그의 오른편 공간이 일렁임과 함께 웬 여인 하나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당시 엽현이 실수로 알몸을 훔쳐봤던 조목이었다.
조목이 출현하자 엽현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졌다.
왜 하필 이런 때에.
엽현을 발견한 조목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이때, 또다시 수십 장 떨어진 공간에서 한 무리의 흑의인들이 튀어 나왔다. 그들의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질서문의 흑의노인이었다.
흑의노인 뒤로 보이는 아홉 명의 흑의인들 또한 죄다 지도경의 강자들뿐이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의 좌측에서 한 줄기 백광이 번뜩이더니, 열 명의 무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임목과 아홉 명의 당족기병들!
“…….”
엽현은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게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