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죽여!
갑자기 엽현이 무서운 표정을 짓자 구 공주는 심히 당황했다. 한참을 엽현을 바라보다 이내 자조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네가 욕심을 낼만한 물건이긴 하지. 하지만, 나와 그 아이의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되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구 공주는 자신의 품 안에서 한 권의 검은 책자를 꺼내 엽현의 앞에 떨어뜨렸다.
엽현은 매끈매끈하고 빛이 나는 재질로 이루어진 책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책의 가장 앞면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지계상품: 적멸지(寂滅指)’
엽현은 책자를 갈무리하고서 그대로 대나무 집을 떠났다.
구 공주는 그런 엽현의 뒷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품안에서 현기(玄氣)가 가득한 검은 색 돌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구 공주는 두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란수, 그 사람은 믿을 수 없어.”
같은 시각, 양계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한 백의를 입은 여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손에 검은 돌 하나를 쥐고 있었다. 그 돌을 잠시 바라보던 여인은 감자기 반대 방향으로 신형을 돌렸다.
“아가씨? 비무하러 가다 말고 어딜 가십니까?”
누군가 뒤에서 소리 쳤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었다.
* * *
대나무 집을 빠져나온 엽현은, 궁전의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손에 든 책자를 보며 소리쳤다.
“하하하, 결국 내 손에 들어오고 말았구나!”
말을 끝낸 그가 지붕 아래로 내려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갔다.
“지계 무기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외치자, 수많은 그림자가 나타나 엽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서 달리고 있는 것은 북신이었다. 그 뒤를 한 쌍의 남녀가 뒤쫓고 있었다. 그 남녀는 북신마저도 두려워하는 실력자였다.
순식간에 검주동부를 빠져나온 엽현은 그대로 빽빽한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뒤를 한 무리의 무인들이 미친 듯이 뒤쫓았다.
이미 구 공주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계 무기는 이제 엽현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산악지형을 달리는 것에 익숙한 엽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그러나 북신 등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미친 듯이 엽현을 추격했다.
엽현은 그들 사이에서 마치 한 마리의 영활한 사자같이 밀림 속을 이리 저리 도망쳤다. 결코 그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산속에는 깜깜한 밤이 찾아왔다.
엽현은 웃고 있었다. 밤이 깊은 까닭에 그의 손가락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야산을 타는 것은 그에게 있어 식은 죽 먹기와 마찬가지였다.
반면, 다른 무인들의 표정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비록 그들이 산에서 수련한 적이 있다곤 해도, 엽현처럼 산에서 살다시피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장내의 무인들은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두려움은 비단 엽현을 향한 것만이 아닌, 서로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의 등을 찌르는 것은 무인들에게 있어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울창한 고목 속에 위에 몸을 숨긴 엽현은 엽령의 인형을 꺼내들고 미소 짓고 있었다.
“오빠 금방 돌아갈게!”
“그렇겐 안 될 거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엽현의 근처에서 울려 퍼졌다.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나무 아래쪽에 웬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바로 북신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그 남녀도 함께 있었다.
엽현이 어두워진 표정으로 외쳤다.
“어떻게 날 찾을 수 있었지?”
“우리에겐 배후 세력이 있다. 그리고 네게는 없지. 이 차이를 알겠느냐?”
바로 이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짝-!
경쾌한 타구성과 함께 북신의 신형이 십여 장을 날았다. 그녀가 벌떡 일어섰을 때, 그녀의 뺨에는 붉은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
잠시 당황하던 엽현이 바로 정색하며 외쳤다.
“사실, 내 위에도 누군가 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무인 남녀의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뒷걸음질 쳤다.
왜냐하면 그들은 북신이 어떻게 공격을 당했는지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않는 공격을 하는 상대를 대적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북신의 표정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출수한 거지!?’
북신이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엽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복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너희가 생각하기에 내 뒤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나?”
엽현이 검지를 치켜들고 좌우로 까딱거렸다.
“이런 곳에 오면서 배후도 없이 얼쩡거릴 정도로 내가…….”
짝-!
그때, 장내에 다시 한번 경쾌한 소리가 울리면서 여지없이 한 사람의 신형이 하늘을 날았다.
그런데!
이번에 날아간 것은 북신이 아닌, 바로 엽현이었다!
북신 등 세 사람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엽현 역시 자신의 뺨을 만지면서 얼떨떨함을 떨치지 못했다.
‘이 자는 자기 맘에 안 드는 자는 다 때리는 건가? 그래도 그렇지 아무도 없을 때 때리면 어디 좀 덧나나!?’
천천히 일어나는 엽현의 한쪽 얼굴에는 어김없이 짐승의 발톱에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순간, 장내에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묘해졌다.
이때, 엽현이 괜히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입을 뗐다.
“자자, 우리가 이 곳에 온 것도 모두 기연을 찾기 위함이오. 그러니 우리…….”
“‘그러니 우리 앉아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로 풀어 나갑시다.’ 이 말을 하려는 건가?”
북신이 가볍게 웃으며 엽현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엽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흠흠…. 그대의 의견이 나와 일치할 줄은 미처 몰랐었군. 우리…….”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북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까진 네 머리가 조금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정말로 정상이 아니…….”
북신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눈앞에 있던 엽현의 신형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순간, 북신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묵백색 장포를 입은 남자가 북신을 째려보더니, 여자와 함께 황급히 엽현을 쫓았다.
북신의 얼굴이 포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내 그들의 뒤를 따라 신형을 날랐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낙엽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엽현은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 그는 북신과의 대화 중, 하나의 정보를 얻었다.
누군가가 북신 등에게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규칙을 어기고 있었다!
그들의 배후가 규칙을 어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건 바로 엽현에게는 배후 세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안란수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들은 감히 이런 속임수를 사용하지 못했으리라!
엽현은 주먹을 힘껏 쥐었다. 엽현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매우 커다란 것이었다. 그가 어디로 숨든지 북신과 일행들은 자신을 다시 찾아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맞서 싸우자니, 자신의 실력으로는 결코 저 세명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갑자기 엽현이 걸음을 멈췄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듯한 모양이었다. 재빨리 주변을 살펴본 그는, 작은 언덕 위를 재빨리 올라갔다. 그가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그는 별안간 산 아래를 향해 구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구르는 중에, 그 지계 무기가 담긴 책자가 나뭇잎 사이로 숨어 들어갔다.
엽현이 일부러 책자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구르던 기세를 이용해 전방을 향해 달려가던 엽현은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걸음을 멈췄다. 얼마되지 않아, 그의 눈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북신이었다.
엽현은 숨도 쉬지 않고 그대로 북신을 향해 돌진했다. 이에 북신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엽현의 가슴을 향해 그대로 일 장을 뻗었다.
그녀의 이 일장은 상대의 간을 보기 위함이었다. 결코 전력을 다한 공격이 아니었다. 그러나 엽현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정면으로 그녀의 일장을 받았다.
쾅-!
엽현의 신형이 활처럼 구부러져 수 장 뒤로 날아가더니, 큰 나무에 부딪쳐 땅에 떨어졌다.
북신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또 무슨 수작이냐!”
바로 이때, 장내에 도착한 무인 남녀가 이 장면을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땅을 움켜쥐고 겨우 일어난 엽현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미 네게 무기를 넘겼는데, 왜 날 죽이려 하느냐!”
북신의 얼굴이 순간 황당해졌다.
무인 남녀가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북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현이 다시 피를 쏟으며 분노한듯 북신에게 눈빛을 쏘아붙였다.
“이 악독한 계집애…. 분명 무기를 넘기면 날 풀어주기로 했으면서, 이제 와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날 죽이려 하다니……. 참으로 독하기 그지없구나!”
북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꿍꿍이냐!? 네가 이런다고 저들이 믿을 것 같아!?”
북신이 남녀를 바라보자,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바로 이때, 엽현이 섬을 풀더니, 순식간에 속옷만 남긴 알몸이 되었다.
이를 보고는 무인 남녀가 눈썹을 치켜떴다.
엽현이 자신의 몸을 가리켰다.
“내 몸에 뭐가 있는가?”
엽현이 이번엔 북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런데 너는? 만약 네가 정말로 결백하다면 네 손가락에 낀 납계(納誡)를 보여라!”
그러자 옆에 있던 두 남녀의 시선이 모두 북신의 손에 있는 납계로 향했다.
북신이 마치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것 같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대검수라는 자가 겨우 이런 거짓말이나 해 대다니, 이제 보니 쓰레기가 따로 없구나!”
북신의 몸에서 갑자기 강대한 기운이 솟구쳐 엽현의 주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 쪽에 서 있던 두 남녀가 분노의 기운을 내뿜었다. 이 기운은 북신의 기운을 압도했다.
이에 엽현이 몰래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북신이 남녀를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은 멍청이냐!? 저 놈의 말을 믿는 것이냐?”
남자가 피를 흘리고 있는 엽현을 바라보며,
“그는 어쨌든 검수다. 나는 거짓말하는 검수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너의 납계를 한 번 볼 수 있을까?”
그의 말에 북신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함부로 상대의 납계를 봐서는 안 된다. 이 것은 무인들에게 있어 불문율로 통용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남자의 요구는 북신에게 있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북신이 자신의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이를 본 남녀가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바로 이때, 엽현이 말했다.
“이제 곧 창목학원의 무인들이 도착할 거요! 방금 저 자가 구원 신호를 보낸 것을 보았소. 저 여자는 지금 단지 시간을 끌고 있을 뿐이오!”
그 말에 남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원군을 요청하고 시간을 끌고 있다고!?’
이때, 두 사람의 주변에 한 줄기 신비한 기운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북신이 증오의 눈으로 엽현을 한 번 바라보았다. 만약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엽현은 이미 수백 번은 죽었을 것이다!
“죽여!”
엽현이 소리치며, 북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두 무인 역시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