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82
582화 이 선을 넘으면 죽는다
엽현이 시무룩해 있을 때, 아월이 심드렁하니 말했다.
“밖으로 따라 나와, 어떻게 공간도칙을 사용하는지 알려줄 테니까.”
“저, 정말? 좋아!”
아월은 엽현을 데리고 어느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이곳에선 폐허가 된 신무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월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실 사유계는 살기엔 아주 괜찮은 곳이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다들 오유계로 가려고 발악하는지 모르겠구나.”
“오유계는 별로인가?”
“별로라기보다는 굳이 살던 곳을 버리고 다른 미지의 차원으로 갈 필요가 있느냐는 거지. 너희들은 모두 오유계가 사유계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건가?”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 나만 해도 사유계가 참 좋으니까.”
아월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보면 세상이란 참 이상하지. 누구는 나가고 싶고, 누구는 들어오고 싶어 하고. 각자가 있는 곳이 다른 이에게는 천국이 될 수 있음을 왜 모르는 건지…….”
엽현은 아월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녀 말대로 오유계는 특별히 좋은 곳은 아닐지도 몰랐다.
만약 정말로 훌륭한 곳이라면 이 빌어먹을 탑은 왜 그곳에서 도망쳐 나왔겠는가? 어떻게든 그곳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겠는가?
이때, 아월이 엽현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엽현 안에 있던 공간도칙이 빠져나와, 천천히 그녀의 손으로 내려앉았다.
공간도칙을 마주하자 아월은 갑자기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두 다 이 빌어먹을 탑 때문이야, 모두다!”
“…….”
아월이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공간을 이용할 줄 아느냐?”
“조금, 그러나 분명 너보다는 아닐 거야.”
아월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골이긴 해도 아주 멍청한 것만은 아니군. 자, 지금부터 잘 보거라.”
말을 마친 아월이 소매를 휘저었다.
엽현 주변의 공간이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건…?”
“너는 공간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음… 공간이 공간이지 다른 설명이 필요한가?”
그 말에 아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
아월이 하늘 쪽으로 오른손을 뒤집자 손바닥 위에 책 한 권이 나타났다. 아월이 잠시 책을 뒤적이며 운을 뗐다.
“공간은 시간과 상반된 형식을 띠고 있다. 물론 두 존재는 불가분의 관계이긴 하지만. 우주이론에 따르면 원래 하나였던 우주는 커다란 폭발로 인해 각기 다른 모습의 물질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때 물질과 물질 사이의 위치 차이를 측량한 것이 ‘공간’, 위치의 변화를 측량한 것을 ‘시간’이라 한다. 공간은 길이 넓이 높이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하면 상하좌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 아월이 문득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현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쯧쯧… 한심하구나. 그러니까 평소 책 좀 읽어 두었어야지.”
엽현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아월은 손안의 책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공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너도 알고 있는 우주 공간, 차원 공간 그리고 사념공간이 공간의 범주에 속한다. 네가 위치한 곳은 바로 차원 공간으로, 이차원 공간도 절대공간과 상대공간으로 나뉜다.
상대공간은 공간 간의 관계를 통하여 규정되는 공간이다. 실체적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절대공간과 대비되는 개념이지. 상대공간 속의 공간은 여러 개의 각기 다른 선으로 이루어진다. 이 선들이 모여 다른 형태의 형상을 즉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지. 이처럼 공간은 때때로 사물의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하기도 한다.”
이때 엽현이 숨이 막히려는 듯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아월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네가 이해하고 있는 공간의 수준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그저 단순한 힘으로 공간을 잠시 ‘붕괴’시키는 것이 전부지. 이는 공간을 이해했다고 보기엔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아월이 책장을 덮으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 모두 이해했느냐?”
이때 무언가 생각하던 엽현이 물었다.
“방금 전 공간이 각기 다른 선으로 구성된다 했는데, 그렇다면 선들을 재배치하면 공간에 혼란을 주거나 재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단 말인가?”
“……자, 잠깐. 다시 보고 알려주마.”
아월이 황급히 다시 책을 펴들고 뒤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이론상으로는 네 말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단하지도 않지. 공간을 구성하는 선은 법칙과 도칙에 의해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파괴된 이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도칙과 법칙을 넘어서 공간을 어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너는 천도보다 약하니까. 다만 오유계에서 온 공간도칙을 이용하면 사유계의 도칙에 영향을 받지 않기에 공간을 변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헌데 오유계의 공간도칙이 사유계의 공간에 관여하는 것은 월권행위가 아닌가? 혹여 문제가 생기거나 하진 않는 건가?”
아월이 잠시 엽현을 바라보며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결국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다시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
잠시 후, 아월이 책을 덮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월권이라 할 순 없다고 한… 없다!”
“어째서?”
“사유계든 오유계든 모두 우주에 속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오유계의 공간도칙은 사유계의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위치에 있지. 이 때문에 오유계 공간도칙이 사유계 공간도칙에 영향을 주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네가 아무리 오유계의 도칙을 사용한다 해도, 사유계를 지배하는 천도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는 마치… 남의 집 부인을 탐하다 걸리면 남편에게 죽을 때까지 맞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순간 엽현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정말로 저 비유가 적합한 것인가?’
“어쨌든 학술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 주변 공간의 선을 통제해서 그것들을 재구성하면 된다.”
“공간을 재구성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엽현이 질문하자 아월이 책을 덮으며 대답했다.
“공간절할(空間切割)!”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월이 백 장 밖에 있는 거목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쉭-!
엽현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목이 있던 공간이 층층이 변형을 일으켰다. 이와 동시에 나무가 수천, 수만 갈래로 갈라지더니 종국에는 깨끗하게 소멸되고 말았다.
아월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엽현을 향해 말했다.
“재건공간, 절단공간, 공간전송. 이 세 가지만 장악할 수만 있다면, 사람 하나쯤 공간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매우 간단할 일이다. 먼저 재건공간부터 시작하거라.”
“재건공간이라… 정확히 어떻게 하는 건데?”
“…….”
아월이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이때 엽현이 손을 내밀었다.
“그 책 한 번 볼 수 있을까?”
엽현의 부탁에 아월은 시원하게 책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책을 보는 엽현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하나도 못 알아먹겠어!’
고서 안에 쓰여 있는 것은 엽현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대 문자였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책이야? 누가 쓴 거지?”
“, 저자는 탑의 전 주인이다.”
“역시! 그리고 또 다른 책은 쓰지 않았어?”
“음… 그가 쓴 책은 꽤나 많았지. 그중에서도 그… 뭐였더라? 아! 이란 책은 정말 대단했지!”
“우주론이라…….”
이때 아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거 물어볼 시간에 빨리 공부나 해! 내가 대신 읽어주마!”
아월은 엽현의 손에 있던 책을 뺏어 들고는 손으로 짚어가며 읽기 시작했다.
“에… 그러니까, 공간의 선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순 있다. 의념(意念)을 공간에 주입하면 선을 느낄 수 있는데…….”
그렇게 엽현은 아월을 따라서 공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 * *
남황계, 진가.
진가가 당족에 속해 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진가가 당족을 배신했으니, 원래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의외로 진가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이날, 진가의 상공에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당족의 족장인 당염이었다.
잠시 진가를 바라보던 당염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일장을 방출했다.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거대한 기운이 진가를 집어삼킬 듯 떨어졌다.
하지만 이 기운은 진가 상공에 닿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이때, 진가의 어느 장원으로부터 진가 가주인 진중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당 족장, 기왕 왔으니 내려와서 차라도 한잔하는 게 어떻소?”
당염이 장원 안에 태연히 앉아있는 진중을 잠시 노려보더니, 순식간에 장내를 떠나갔다.
진중 역시 잠시 당염이 있던 허공을 바라본 후, 그대로 몸을 돌려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 * *
동황계, 장신원(葬神原).
이곳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진 곳 중에 하나였다.
근 천 년 동안 이곳을 찾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장신원은 매우 황폐한 땅이었다. 하늘은 잿빛을 띠고, 영기는 희박하니, 개미조차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장신원의 정중앙, 우뚝 솟은 천 장 높이의 철 기둥 위엔 한 남자가 몸이 묶인 채로 매달려 있었다.
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까닭에 그의 용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바로 이때, 대략 열여섯쯤 돼 보이는 소녀 하나가 중년인이 있는 철 기둥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단조로운 비단옷 차림의 소녀는 마치 그림에나 나올 법한 용모를 지녔다.
비록 어린 나이긴 하지만 경국지색의 풍모를 타고난 듯했다.
그러면서도 그 눈빛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자신감과 세상을 오시하는 듯한 기운이 짙게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철 기둥 앞에 도착한 소녀는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 자가 바로 당시 신국의 진공을 저지한 고답천인가?”
이때, 뒤편에 있던 노인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꼭 그자가 그리 한 것은 아닙니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먼 곳의 지면을 가리켰다. 그곳엔 장신원 전체를 관통하는 기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그 단면은 흡사 날카로운 검으로 종이를 벤 듯 매우 매끈했다.
이어 노인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로 수정구슬 하나가 떠올랐다. 이때, 구슬에서 파란 광선을 뿜어져 나가더니, 이내 하늘 위에 하나의 수막(水幕)이 펼쳐졌다.
이윽고 수막 안에는 장신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른편에는 한 명의 자색 갑옷을 입은 중년인이 별빛과 같은 눈빛으로 한 손에는 창을 들고 정면을 향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족히 백만은 될 법한 수의 신국 대군이 서 있었다.
왼쪽에는 작고 검은 탑 하나가 공중에 떠 있었다. 탑의 위편에는 소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소복을 입은 여인이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지면을 향해 베었다. 찰나의 순간, 양 진영 사이의 지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흔이 생겨났다.
여인이 검으로 검흔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 선을 넘는 자는 죽는다!”
이에 오른편에 있던 중년 남자가 표정 없는 얼굴로 창을 들어 올렸다. 그의 창끝이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철 기둥 위에 매여 있는 고답천이었다.
“저것이 바로 그대의 미래가 될 것이오! 죽여라!”
음성이 떨어진 순간, 백만 대군이 일제히 여인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