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86
586화 그간 안녕들 하셨습니까?
신국!
엽현은 신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천 년 전에 혼돈우주를 집어삼키려 했다는 것만 빼고.
신국이 얼마나 강한지,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검은 그림자 하나가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엽 종주, 성주께서 그대를 등천성으로 초청하셨소. 신국의 일을 상의하길 원하시오.”
‘성주의 초청이라고?’
“일단 알겠다고 전해 주시오.”
엽현이 대답하자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떠난 후, 엽현이 백지를 바라보았다.
“백 소저, 내가 없는 동안 신무성을 잘 살펴주시오.”
“성주 앞에서도 제멋대로 굴진 마시오.”
“내가 어디 그럴 사람으로 보이시오? 하하하……”
엽현은 곧 등천성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백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쩐지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얼마 후, 엽현은 등천성에 도착했다.
등천성에 내려선 엽현은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강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강자들!
엽현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들의 기운은 모두 성주와 비교해서 절대 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엽현은 애써 평정을 유지한 채, 등천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전에 들어서기 전, 그는 낯이 익은 한 여인을 마주치게 되었다.
조목이었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있는 조목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엽현이 조목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아는 체를 했다.
“조목 소저도 왔었구려! 옷을 입고 있는 바람에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소!”
“…….”
정적이 흐르는 장내.
엽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바로 이때, 잠잠히 있던 조목이 눈을 번쩍 뜸과 동시에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엽현이 깜짝 놀라며 양팔을 교차해 앞을 막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엽현의 신형이 백 장 밖으로 밀려났다.
조목이 눈에 불을 켜도 다시 달려들려는 찰나, 대전 안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녀석아, 밖에 웬 소란이냐?”
그러자 조목이 제자리에 멈추더니 엽현을 바라보며 주먹을 툭툭 털어냈다.
이때, 엽현이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다시 대전 앞으로 나아왔다.
“조 소저, 오해요 오해. 별 뜻이 있던 것은 아니고, 그저 내가 입이 가벼웠을 뿐이오.”
조목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벽에 기댔다.
이때였다.
“네가 엽현이란 놈인가?”
‘놈?’
뒤에서 난 소리에 엽현이 뒤돌아보자, 그곳엔 백택처럼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근육으로 가득했다.
“내가 엽현이다. 무슨 일이지?”
남자는 대답 대신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보기엔 그저 샌님에 불과한데, 왜 다들 널 그렇게 띄워주는지 모르겠군?”
‘샌님? 내가?’
엽현이 얼토당토않은 말에 반박하려 할 때, 대전 안에서 또다시 힘 있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오너라!”
이에 엽현이 눈앞에 거한을 한 번 쳐다보고는 대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내에는 총 다섯 사람이 있었다.
상석에 앉은 성주 외에도 그가 아는 얼굴이 있었으니, 바로 당염이었다.
나머지는 요족의 요왕, 남파무사 그리고 마찬가지로 육대 강자 중 하나인 초진인이었다.
대전 앞으로 나아온 엽현은 당염 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간 안녕들 하셨습니까?”
엽현이 예를 차리는 모습을 본 순간, 성주와 당염은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엽현과 그들이 언제부터 예를 차리는 사이였던가?
성주가 말없이 엽현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파무사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리 어린 나이에 과연 대단한 실력을 갖췄구나!”
“과찬이십니다.”
엽현이 다시 한번 공손히 예를 차리자 남파무사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겸손하기까지!”
이때 반대편에 있던 초진인이 입을 열었다.
“신국이 진공해 온다고 하는데, 네게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느냐?”
순간, 장내의 모든 시선이 엽현에게로 집중됐다.
그와 동시에 장내 분위기도 기묘해지기 시작했다.
초진인의 질문 속에는 엽현을 떠보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백지의 말대로 그들은 엽현이 오래전의 맹세를 지키길 바라고 있었다.
질서문과의 갈등으로 인해서 신국에 협력할지도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엽현을 매우 경계하고 있던 것이다.
일단 엽현이 신국에 붙어버리면 상황은 매우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들로서는 엽현의 태도에 따라 그를 살려두든지, 죽여서 후환을 없애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대답했다.
“신국이 당장 코앞에 다가왔는데 무슨 생각을 더 하겠습니까? 목숨을 걸고 맞서는 수밖에!”
초진인이 말없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아시겠지만, 저 또한 무원과 검종, 그리고 신무성의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둥지가 사라지면 알도 부화할 수 없는 법! 때문에 힘을 합쳐 신국을 몰아내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다만…….”
“다만?”
초진인이 물었다.
“걱정스럽습니다!”
“걱정스럽다니, 신국을 말하는 것이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신국이 아니라 질서문이 걱정스럽습니다!”
그 말의 초진인 등이 상석의 성주를 바라보았다.
성주는 평온한 안색으로 엽현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엽현이 말을 이어갔다.
“저와 질서문의 관계는 모두가 아시리라 믿습니다. 만약 제가 신국과 싸우고 있을 때, 질서문이 제 배후를 노린다면 저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입니다!”
이에 초진인이 웃으며 말했다.
“신국이 없을 때야 각자의 사정에 관여하진 않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것이 옳다.”
초진인이 성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성주도 같은 생각이라 믿소만?”
그러자 성주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사실 여러분은 엽현이 혹여 신국에 투항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것이오. 만약 엽현이 신국 편에 서서 그의 장기인 암습을 펼친다면…….”
암습!
그 말을 듣자 몇몇 무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혼돈우주에서 엽현의 암습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자리에 있는 다섯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게다가 엽현에게는 수십의 도경강자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신물도 있지 않은가!
이때 엽현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웃긴 것이냐?”
요왕이 묻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습지 않습니까? 신국은 아직 쳐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우리끼리 벌써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 것이!”
엽현이 표정이 굳은 무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다.
“질서문과 나 사이에 은원의 골이 깊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헌데 질서문은 나 엽현을 잡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고 제 하나뿐인 동생을 인질로 삼고자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동생이 몇 살이나 됐는지 아십니까?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질서문은 그와 같은 비열한 짓을 저질렀단 말입니다!”
분을 참지 못한 엽현이 성주를 향해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네가 그러고도 혼돈우주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느냐! 네가 한 행동은 바로 개만도 못한 짓이었다!”
그 말에 성주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순간, 강대한 압력이 엽현의 전신을 휘감으며 날아들었다.
이에 엽현이 냉소를 지으며 천주검을 꺼내 휘둘렀다.
쉭-!
성주의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엽현 역시 대전 입구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이때 막 엽현에게 출수하려던 성주가 문득 동작을 멈추고 초진인을 바라보았다.
“초 형, 방금 보았소? 녀석이 대국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것을? 저놈을 남겨 두었다간 분명 큰 후환이 될 것이오!”
초진인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총명한 아이라 여겨왔건만, 지금 보니 노부의 눈이 틀린 것 같구나!”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대들이 나를 이 자리에 부른 것은 나를 한 번 가늠해 보기 위함이었을 것이오. 그래서 내가 충분히 총명하다면 그대들의 검으로 만들어 전쟁의 선봉장으로 세우려 했을 것이고, 그저 그런 멍청이로 보였다면 나를 죽여 후환을 없애려 했을 테지.”
엽현이 말을 멈추고 초진인을 쳐다보았다.
“만약 나를 이용하고 싶다면, 나 역시 요구가 있소. 첫째, 당시 내 누이를 노리고 신무성을 공격했던 질서문 무인들은 반드시 죽어야 하오. 둘째, 성주는 전쟁에 앞서 전대 검종 종주와 무원 원장의 무덤을 찾아 사죄를 해야 하오. 이 요구를 들어준다면야 질서문과의 은원은 잠시 내려놓고 협력하도록 하겠소!”
그 말을 듣고도 성주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지만, 그 눈 속에는 가당치 않다는 기색이 만연했다.
한쪽에 있던 당염도 고개를 저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때 초진인이 엽현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너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말하는 초진인의 표정에는 이미 살의가 드러나 있었다.
이에 엽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하시구려.”
말을 마친 엽현이 고개를 들더니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부, 제자가 곧 죽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오유계로 넘어가 사부의 얼굴을 뵙기는 그른 것 같습니다.”
오유계!
그 말을 듣자 장내 무인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성주 등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오유계라 함은 그들이 그토록 들어가 보기를 소망하는 고차원의 세계 아닌가!
혼돈우주 최강자라는 그들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
오유계는 그들에게 그런 존재였다.
“엽현, 네 사부께서는 오유계의 존재신가?”
당염의 질문에 엽현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오유계에서 오셨다 하셨소. 다만 그게 진짜인지는 나도 모르오.”
“그렇다면 그 보물 역시 네 사부에게서…….”
당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시 조그마한 세가의 제자였던 내 앞에 사부가 나타나시더니, 내 근골과 자질이 검도를 위해 태어남은 물론, 오유계의 혈겁을 막기에 적합한 자라 하셨소. 그때부터 주먹 대신 검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오.”
“…….”
당염이 잠시 엽현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엽현의 말이 왠지 허풍처럼 들렸던 것이다.
이때, 요왕이 끼어들었다.
“네 사부가 오유계 사람이란 걸 증명할 수 있느냐?”
“오유계의 보물로는 믿지 못하는 것이오?”
“음… 그게 정말 오유계 물건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다른 증거는 없는 게냐?”
엽현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줄 수 있겠느냐?”
그 말에 엽현이 성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좋소. 그러나 먼저… 성주를 내보내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