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88
588화 내가 너무 잘난 걸 어찌하겠소?
엽현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들여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 그 너머엔 광활한 우주가 존재한다.
청성에 있을 때, 강국은 그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청창계를 떠난 후에야 그는 비로소 강국이, 청창계가 작은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넓고 넓은 우주.
이 가운데 ‘혼돈우주’만이 과연 유일한 우주일까?
혼돈우주 밖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오유계?
그럼 오유계 밖은?
엽현에게 있어 우주는 ‘매우 큰’ 무언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크다’라는 말 이외에는 형용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우주와 비교하면 인간은 너무나 작았다.
마치 사람 눈에 비친 개미들 마냥.
사실 이 말도 사람의 입장이 과도하게 들어간 것에 불과했다.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사람이든 개미든 모두 티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테니까.
엽현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들이 바둑알들이라면, 이다음에 어디로 갈지, 어떻게 움직일지 이미 모두 정해진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생은 대개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어려서는 공부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일과 가정을 꾸리다가 천수에 따라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낳은 아이는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한다.
무인의 경우에는 강해지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대도(大道)와 장생(長生)을 얻기 위해 수련을 계속한다.
이들 중 죽지 않고 장생이 이르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되는가?
대도, 장생.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들인가?
일생을 발버둥 치며 살아보아야 결국 먼지로 혹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인 것을.
결국 ‘운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이때, 엽현이 피식 웃었다.
“갑자기 왜 웃는 건가요? 신국이 무서워서 실성이라도 한 건가요?”
“그대는 우습지 않소?”
엽현이 당청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세상이 얼마나 크든 간에,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든 간에,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가 아니겠소? 비록 하루아침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하루하루를 멋지게 살 필요가 있다 이 말이오. 노력하고, 분투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이걸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말이오.”
엽현이 말을 마치자 당청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어딘가 아리송한 부분이 있던 것이다.
바로 이때, 엽현의 눈앞에 아월이 나타났다. 갑작스런 아월의 등장에 엽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가 왜 갑자기 튀어 나왔지?’
아월은 엽현의 얼굴을 뚫어져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다소 어색했던 엽현이 뭔가 말하려는 찰나, 아월이 입을 뗐다.
“예전 주인이 썼던 책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인생의 진정한 의의는 매일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있다’고. 아무래도 네가 한 말과 흡사한 것 같군.”
아월의 말에 엽현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들은 원래 비슷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 뭐, 옛 주인을 그리워하는 것이라면, 나와 함께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를 주인으로 생각해도 좋아.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고, 하하하!”
퍽-!
순식간에 날아든 아월의 주먹에 엽현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군.”
아월이 가볍게 손을 털더니, 이내 계옥탑 안으로 사라졌다.
“…….”
산에서 내려온 엽현은 나머지 시간을 검종과 무원의 행정을 돌보는데 할애했다. 조만간 장신원으로 떠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아니, 애당초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만약 가지 않으면 그와 신무성은 성주 등의 보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와 함께 가게 된 것은 막사뿐이었다.
안란수와 연만리가 빠져버리면 성을 지킬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엽현은 막사 그리고 당청과 함께 신무성을 떠나 장신원으로 향했다.
엽현이 신무성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성주 등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엽현을 후방에 남겨놓고 전쟁을 치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었다.
만약 그들이 신국과 싸우고 있을 때, 엽현이 자신들의 종문에 들이닥친다면 이를 막을 자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엽현이 장신원으로 향한 것은 그들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질서문과 당족 그리고 요족의 독려하에, 혼돈우주의 수많은 강자들이 장신원으로 향했다.
물론 질서문을 포함한 삼대 세력들이 강요하지 않았더라도 이들은 자발적으로 전투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 세력들의 보복을 감당할 자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세력은 전공을 세운 자에게 후한 보상을 약속했는데, 그중에 공법, 무기 그리고 조화경 급 보물 등은 많은 무인들의 마음을 혹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많은 무인들이 머릿속에 오직 보상만을 떠올리며 장신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 중 신국에 대해 제대로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 * *
진가.
이 시각, 진가의 상공에 성주 등 다섯 사람이 나타났다.
공중에서 바라보니 진가는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흠… 아무래도 이들의 배후는 신국이었던 것 같소.”
진가를 내려다보고 있던 초진인의 말에 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국에 동조하는 세력이 더 있을지도 모르니 만전을 기해야만 하오.”
“이만 갑시다. 장신원으로!”
초진인의 말과 함께, 다섯 사람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장신원.
장신원을 기준으로 동쪽 편엔 신국이 위치했다. 그리고 서쪽엔 만산장성(萬山長城)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만산장성은 수백 개나 되는 산을 연결해 쌓아 올린 성이었다. 그 높이만 무려 백 장에 이르렀으며, 멀리 신국의 동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국이 나머지 세계 황계를 정복하기 위해 첫 번째로 돌파해야 하는 관문, 그것이 바로 만산장성인 것이다.
엽현과 막사는 신무성을 떠난 지 하루 만에 만산장성에 도착했다.
그들이 장성에 막 올랐을 때, 신도병 하나가 거룡을 타고서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거룡을 공중에 멈춰 세운 신도병이 엽현과 막사를 굽어보며 물었다.
“신분을 밝히시오.”
“신무성 성주, 엽현.”
‘신무성?’
“이렇게 젊은 성주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엽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신도병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너무 잘나게 태어나서 어쩔 수 없었소.”
그 말을 들은 막사가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돌렸다. 뻔뻔한 걸로만 따지면 엽현은 천하무적이었다.
신도병 역시 당황하는 것을 보니 미처 이런 대답을 예상 못 한 모양이었다. 신도병은 다시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거룡의 등을 가리켰다.
“타시오, 안내하겠소.”
엽현과 막사는 거절하지 않고 거룡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거룡이 순식간에 하늘 높이 솟구쳤다.
공중에 오르자 만산장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때 아래쪽의 풍광을 바라보던 엽현에게 막사가 말을 걸었다.
“이봐,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말이야.”
엽현이 고개를 돌려 막사를 바라보았다.
“그게 말이야. 네가 허락한다면 마가족 중 쓸 만한 무인 몇 명을 신무성으로 데려오고 싶은데. 그들이 신맥이 흐르는 곳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말이야.”
“하하, 그렇게 해! 뭐 어려운 일이라고.”
“고맙군!”
“고맙긴, 형제간에는 서로 돕고 살아야지.”
형제!
막사가 엽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 같은 친구를 둬서 참 다행이다.”
“그걸 이제 알았어?”
엽현이 웃으며 말하자, 막사 역시 따라서 웃고 말았다.
이때, 엽현이 막사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이봐, 너는 꿈이 뭐야?”
“꿈? 글쎄…… 굳이 말하자면 마가족이 좋은 곳에서 싸울 필요 없이 사는 게 아닐까?”
“매우 어렵군.”
“매우 어렵지.”
바로 이때, 앞쪽에 타고 있던 신도병이 거룡을 멈춰 세웠다.
“도착했소.”
신도병이 손으로 앞쪽에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답천봉(踏天峰)이라 하오. 오래전 죽은 고답천 성주의 이름을 딴 것으로, 만산장성의 주봉(主峰) 역할을 하고 있소. 답천봉 꼭대기에 가면 답천전이 나올 것인데, 처음 이곳에 온 사람은 예외 없이 그곳에 들러 부통령(副統領)께 보고해야 하오. 그럼 나는 할 일이 있으니 물러가 보겠소.”
말을 마친 신도병은 곧바로 거룡을 이끌고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엽현과 막사는 곧바로 답천봉을 올랐다. 그들이 막 정상에 도착했을 때, 감옷과 검을 찬 남자 하나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기별을 넣어주시오. 신무성 성주 엽현이 부통령을 만나러 왔다고.”
남자는 엽현을 잠시 살펴보고는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다시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시오!”
‘기다려?’
“얼마나 말이오?”
“기다리시오!”
엽현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별수 있나,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
엽현과 막사는 절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름에 닿을 듯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만산장성이 마치 용처럼 구비 치고 있는 것이 매우 장관이었다.
여기서 시선을 앞쪽으로 이동시키니 끝없이 펼쳐진 장신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장신원이 끝나는 경계선에는 바로 전설 속의 신국이 위치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막사가 선수를 쳤다.
“가서 한 번 볼까?”
‘본다고?’
“신국을?”
막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못할 건 없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그냥… 얼마나 강한지 보고 싶으니까!”
막사의 확실한 태도에 엽현은 그저 웃고 말았다.
“나도 궁금하기는 해. 그런데 괜히 갔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아무리 엽현이지만 신국을 앞에 두고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이었다.
그들은 무려 혼돈우주를 통일할 뻔한, 성주 등조차 감히 얕잡아보지 못하는 전설 속의 신국 아닌가!
그런 신국을 상대로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몰래 살짝만 보고 오는 건 괜찮겠지?”
엽현의 말에 막사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별문제 있겠어?”
말없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친 엽현과 막사.
그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엽현과 막사가 떠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초진인 등 오인이 답천전 앞에 나타났다. 다섯 사람은 엽현과는 달리 아무런 제지 없이 대전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검은 갑옷을 입은 중년인이 나와 그들을 반겼다.
“신도군 부통령 초광(楚狂)이 인사 올립니다.”
인사를 받은 초진인이 초광을 향해 물었다.
“그래, 엽현은 이미 도착했는가?”
‘엽현?’
초광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문밖을 바라보았다.
“보위!”
그의 부름에 대전 밖에 있던 무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엽현이란 자가 아직 밖에 있느냐?”
“두 사람은 조금 전 떠났습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이 향한 곳은 장신원 쪽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초진인 등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분명 신국으로 간 것이오! 아주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초진인의 말에 당염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돌적인 녀석이오.”
요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젊어서 그런가, 혈기가 넘치는군.”
“뭐하러 걱정들 하는 것이오?”
그 말에 모두가 성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성주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놈은 지옥 끝에 던져 놓아도 뻔뻔하게 살아올 놈이니까. 그보다 먼 길 왔는데 일단 차나 한잔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