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89
589화 정말 괜찮겠어?
황량함.
처음 장신원과 마주한 엽현과 막사의 인상은 바로 황량함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척박한 땅에 회색빛 하늘.
이 두 가지가 혼재하는 장신원은 마지 저승에 떨어진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장신원의 경계를 넘어선 두 사람은 이미 혼돈지기로 몸을 감싸고 있었기에 웬만한 무인이 아니라면 들킬 염려가 없는 상태였다.
한참을 전진하는 중에 불현듯 막사가 물었다.
“이봐 엽현, 너는 신국이 혼돈우주를 통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게 정말로 나쁜 일일까?”
“…….”
신국의 의해 통일된 혼돈우주.
과연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글쎄… 일단 우리 세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분명 나쁜 일이 맞아. 일단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기적으로 변할 테니까. 하지만 후손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좋은 일 아니면 매우 나쁜 일이 되겠지.”
막사가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하, 만약 혼돈우주가 통일된다면 최소한 얼마간은 전쟁이 없을 것 아닌가? 게다가 신국의 주인이 영민한 자라면 후대에게 있어 매우 좋은 전환점이 되겠지. 하지만 그가 폭군이라면 결과는 천하에 다시없을 대재앙이 떨어지는 격이지.”
가만히 듣던 막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신족의 주인이 영민한 자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엽현이 웃으며 답했다.
“아마도 답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왕이 있을까? 설령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왕이라 할지라도 다 자신의 야심을 채우기 위함이겠지. 게다가 신국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신국 내부의 세력들이 이쪽의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 거야. 만약 그들이 마가족이나 신무성을 내놓으라 한다면 과연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차라리 죽을 때까지 싸우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다른 이의 손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
엽현이 문득 눈을 들어 장신원 끝자락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문명이 생긴 이래로 전쟁에서 패한 쪽은 항상 비참한 삶을 맞이해야만 했지. 그렇지 않아?”
만약 엽현이 홀몸이었더라면 신국이 쳐들어오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는 그렇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는 신무성의 성주 아닌가!
무문과 월무진이 죽어가면서 맡긴 신무성을 결코 쉽게 저버릴 순 없는 것이다.
비록 이런저런 세속적인 상황에 발목이 잡힌 감이 있긴 하지만, 사내대장부로서 책임질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엽현의 생각이었다.
결국 세상은 혼자만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바로 이때, 막사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길 봐!”
엽현은 막사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철 기둥 위에 묶여 있는 듯한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긴 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다면, 질서문의 고답천이 분명해.”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변에는 철 기둥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엽현은 보이는 것을 믿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진즉에 질서문이 고답천의 시체를 회수했었을 것이기에.
“계속 전진해 볼까?”
막사의 말에 엽현이 멀리 지평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신국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엽현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돌아간다.”
현재 엽현의 실력은 성주 정도의 무인이 아니고서야 누군가에게 큰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자만심은 금물이란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얌전히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 엽현이었다.
누군가에게 추격당하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했던 것이다.
막사 역시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엽현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막 장내를 떠나려는 순간, 우측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엽현과 막사가 인상을 쓰며 돌아보자, 그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웬 노인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빼빼 마른 몸에 허리가 굽은 노인은 머리숱이 많이 없었고 손에는 검은 나무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이때, 노인이 걸음을 멈추더니 두 사람의 눈을 응시했다.
“만산장성 놈들인가?”
마치 가래가 끓는 듯한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막사가 그렇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엽현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우리는 신국 사람들이오.”
“…….”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라.”
엽현이 노인이 시킨 대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지만, 못생긴 것 빼고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자세히 보긴 했는데… 별 특별한 점은…”
“내가 그렇게 멍청이로 보이느냐?”
“…….”
이때, 노인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이 막 출수하려는 찰나, 막사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내가 맡는다!”
음성이 떨어짐과 함께 막사가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쉭-!
공간을 길게 가르며 날아간 막사가 공중에서 노인과 격돌한 순간.
쾅-!
폭음과 함께 동시에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이때, 막사가 손을 들어 노인을 점지하자, 백 장 밖에 있던 노인의 주변 공간이 그대로 뜯겨 나갔다.
이 순간, 막사는 이미 노인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쾅-!
다시 한번 땅이 울리면서, 노인이 수백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막사, 강해졌구나!’
엽현은 막사의 전투력을 눈앞에서 보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막사는 과연 미앙성역에서 마지막으로 겨뤘을 때와 비교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냈던 것이다.
엽현의 눈에 비친 막사의 전투력은 증도경 강자보다도 더 강했다.
과연,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다른 이들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엽현은 생각을 접어두고서 눈앞의 전투에 집중했다. 노인의 경지는 최소 증도경 절정이었다. 헌데 막사는 노인을 상대로 결코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바로 이때, 강렬한 충돌과 함께 두 사람이 각각 백 장씩 뒤로 물러났다. 막사가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공중으로 솟구치며 손바닥을 뻗어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안에 검은 소용돌이가 생성되더니, 이내 반경 천 장 이내의 공간이 떨어져 나갈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래쪽에 있던 노인은 두 눈을 가늘게 뜸과 동시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자 그의 주먹 위로 강대한 기운이 응집됐다.
공중에 있는 막사의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자, 그의 손바닥 안에 응집된 강대한 기운이 공간을 기이한 형태로 왜곡시키며 맹렬히 떨어졌다.
반대쪽에 노인 역시 괴성을 지르며 일권을 뻗어냈다.
강대 강의 격돌!
콰쾅-!
두 사람 주변의 공간이 크게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그 사이에서 한 인영이 미친 듯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는 다름 아닌 노인이었다.
족히 수백 장을 날아가서야 자리에 멈춘 노인. 이때 그의 입가에서 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노인이 막사를 노려보며 재차 공격을 하려 할 때, 노인의 뒤편에서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지나갔다. 그림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막사의 바로 앞이었다. 이에 막사가 깜짝 놀라며 황급히 일장을 뻗어냈다.
콰쾅-!
폭음이 울려 퍼진 가운데 막사의 신형이 공중에 붕 떠서 날아갔다. 이 순간, 그림자는 마치 막사와 한 몸이라도 된 것 마냥 빠르고 부드럽게 막사를 추격하며 무수한 공격을 퍼부었다.
계속되는 공격에 무려 천 장 밖까지 밀려나고 만 막사.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 방어만 하고 있던 막사의 양손에서 곧장 장력이 방출됐다.
콰쾅-!
공간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막사의 신형이 뒤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반면, 그림자는 어느새 노인의 앞까지 물러난 상태였다.
그림자가 멈췄을 때, 엽현은 비로소 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상대는 하얀 장포를 걸친 소년이었다. 체구가 다소 왜소하고, 입가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새로 나타난 무인을 바라보는 엽현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소년의 움직임은 엽현의 눈에 너무나도 빨라 보였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소년의 속도는 한순간이지만 막사가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신국의 천재 무인이었다.
바로 이때, 소년이 엽현과 막사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서쪽에서 온 자들은 하나 같이 너희처럼 약한가?”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엽현이 되묻자 소년이 옷매무새를 바로잡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신국 안에서라면 내 실력은 삼류에 불과하지만, 너희 앞에 서니 천하무적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너희는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그냥 느낀 그대로 말한 것이니 너무 노여워하진 말거라.”
“헛소리! 네가 나의 검을 막아내기 전까진 믿을 수 없다!”
소년이 엽현을 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검수였어?”
“그렇다. 우리 쪽의 검수 중에서는 내 실력이 아홉 번째 정도 될 것이다. 어떠냐? 만약 감히 내 검을 받아넘길 수 있다면, 네가 강하다는 걸 인정 하겠다!”
“…그럼 제일 강한 자는 누군데?”
엽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엽현!”
“엽현? 그가 그렇게 강한가?”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엔 경외심까지 깃들어 있었다.
“그냥 강한 게 아니라 어마무시하게 강하다. 게다가 그 풍채와 아름다운 용모는 가히 혼돈우주 최강이라 할 수 있지.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그의 집 반경 십 리 안에 항상 여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노숙자가 되었을 정도지.”
이때 엽현 곁에 서 있던 막사가 자신도 모르게 엽현에게서 멀찌감치 거리를 벌렸다. 엽현은 그의 좋은 친구였지만 가끔씩 매우 부끄럽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한편, 엽현의 말을 들은 소년은 연신 눈썹을 튕겨댔다.
“엽현… 초범검성 쯤 되는 건가? 아니면 검신(劍神)?”
순간 엽현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오년 전 이미 그는 초범검신에 올랐지. 그리고 현재는…….”
고의로 말끝을 흐리는 엽현이었다.
“…초범검신(超凡劍神)!”
그 말에 소년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나 대단한가?”
“그럼, 이미 대단한 정도가 아니지.”
이때, 엽현이 소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때, 내 검을 받아 볼 테냐? 만약 견뎌낸다면 남자답게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겠다.”
“나를 자극하겠다는 건가?”
엽현이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소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후후, 아무래도 상관없다. 자, 서쪽에서 아홉 번째로 강한 검수의 실력이 어떤 것인지 어서 보고 싶구나!”
바로 이때, 소년의 뒤편에 서 있던 노인이 그를 만류했다.
“충동적으로 나설 필요 없습니다!”
“걱정할 것 없다. 일등도 아니고 겨우 구등이라 하지 않느냐?”
소년이 여유롭게 대답할 때, 엽현이 주춤주춤 소년을 향해 다가섰다.
“분명 말하는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
“하하, 재밌군! 그러니까 더 궁금하구나. 어서 시작하거라!”
이에 엽현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일검을 내리쳤다.
엽현의 검을 본 순간, 소년이 대경실색하여 몸을 빼려 했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나 가까운 탓에 피하는 대신 양손을 들어 얼굴을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썩은 무처럼 잘려나가는 소년의 양팔!
이에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터져나가는 그의 육신!
엽현이 사용한 검은 다름 아닌 천주검이었다.
인간의 몸이 어찌 천주검을 정면으로 견딜 수 있으랴!
소년은 이내 육신이 완전히 파괴되어 영혼만 남게 되었다.
이때, 엽현이 진중한 표정으로 영혼체가 된 소년에게 말했다.
“정말로 내 검을 순수 육신만으로 막으려 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너의 용기에 백 번, 천 번 탄복해 마지않는 바이다! 오늘은 내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가마!”
말을 마친 엽현은 그대로 뒤로 돌아 줄행랑쳤다.
이때, 그의 등 뒤로 소년의 분노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도경급 검을 사용하다니! 치사한 놈! 후안무치 한 놈! 결혼하기도 전에 대머리가 될 놈! 으아아아아아아-!”
소년의 마지막 말에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쓱 만져보는 엽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