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저 음흉한 놈!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야!
양계성 성문 앞에 서 있던 흰 옷을 입은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비틀거리면서 성을 향해 다가오는 한 신형을 발견했다.
그녀의 백옥 같은 손이 살짝 떨려왔다.
그녀의 뒤에 있던 구 공주 역시 그를 발견하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내, 두 사람 앞에 도착한 엽현은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을 보고 잠시 당황했다. 이내 지계 상품 무기를 꺼내 구 공주 앞에 내팽개치고는 백의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하하……. 여기까지 어쩐 일이오!?”
그때, 엽현이 입에서 선혈을 토해내며 그대로 땅으로 고꾸라졌다.
백의 여인이 급히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부드럽다…….’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그녀의 가슴에 파묻었다.
여인은 순간 몸이 뻣뻣해졌지만 그를 밀어내진 않았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아가씨, 그… 그 놈을 밀어내십시오. 어서! 저 음흉한 놈! 저거 일부러 저러는 거야!”
그러나 여인은 자신의 품을 허락한 채, 결코 엽현을 밀어내지 않았다.
노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가 언제 남자에게 저렇게 친밀하게 대한 적이 있단 말인가?
바로 이때, 세 명의 무인들이 성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북신과 무인 남녀였다.
그들을 발견한 안란수가 구 공주에게 조심스레 엽현을 넘겨주고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이 안란수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저들의 배후가 규칙을 어겼습니다.”
안란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북신 등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자 무슨 말을 하려던 노인이 이내 단념했다. 그는 이미 안란수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안란수의 등장에 북신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강국 내에서 안란수를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북신의 표정엔 두려움마저 드리웠다.
북신은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일전에 창목학원의 원장이 그녀를 직접 창목학원의 학생으로 초청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안란수의 대답은 서른이 되지 않은 무인들 중에 자신을 꺾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창목학원에 가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창목학원을 대표한 두 명의 학생이 그녀를 상대하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북신 자신이었다.
그리고, 안란수는 창목학원에 가입하지 않았다.
안란수 존재 자체가 북신에게는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북신은 지계 상품 무기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았다. 그리고는 후퇴를 결심했다.
바로 그때, 안란수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북신이 깜짝 놀라며 손을 들어 수인(手印)을 맺었다.
“어풍무극(禦風無極)”
북신의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몸 주변에서 광풍이 불어 그녀를 감쌌다.
이때, 안란수가 손에 든 창의 창신(槍身)을 가볍게 발로 차 올렸다.
퍽-!
그녀의 창이 매섭게 쏘아져 나갔다.
쾅-!
창이 회오리를 찢어발겼다. 그때, 하나의 잔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신형이 그 자리에서 수십 장을 날아갔다.
그것은 바로 북신이었다!
겨우 멈춰선 그녀의 뒤로 지면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져 나갔다. 북신의 입가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본 무인 남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북신을 단 일 격에 중상을 입힌 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안란수를 향한 그들의 눈빛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북신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안란수의 은빛 창이 포효하는 용과 같이 그녀를 덮쳤다.
이에 북신이 어금니를 깨물며 두 손을 모아 재차 인을 맺었다.
“수혼인(兽魂印)!”
그러자 북신의 체내에서 강대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뒤로 하나의 짐승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거대한 무형의 기운이 장내에 들이닥치며 지면을 마구 요동치게 했다.
안란수를 향해 크게 한 번 울부짖은 수영(兽影)은 그대로 그녀의 창을 향해 돌진했다.
이때, 은빛 창끝에 작은 한망(寒芒)이 반짝였다.
쾅-!
거대한 폭발성과 함께 수영은 사라졌다. 북신의 신형은 무려 수십 장이나 뒤로 날아갔다.
바로 이때, 약속이라도 한 듯, 두 명의 남녀 무인이 동시에 안란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란수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그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이 한 번의 공격엔 가히 천군만마와 같은 위력이 담겨 있었다.
쾅-!
두 남녀는 안란수의 근처도 가보지 못한 채, 창의 위력에 밀려 거칠게 뒤로 밀려났다.
이때, 안란수의 신형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순식간에 북신의 앞에 나타났다.
펑-!
안란수가 어떻게 출수했는지도 모른 채, 북신은 또 다시 수십 장을 날아 땅에 내팽개쳐졌다. 이때, 어느새 나타난 안란수가 발을 들어 북신의 복부를 가격했다.
퍽-!
북신의 신형이 활처럼 굽으며 날아갔다. 십여 장 뒤에 있던 커다란 돌에 부딪쳤다.
안란수가 다시 출수를 하려는 순간, 웬 백발노인 하나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바로 창목학원의 세 부원장 중 하나인, 막송이었다.
안란수는 개의치 않고 그대로 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막송이 미간을 찌푸리며 장삼을 펄럭이자, 강대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땅-!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치자, 막송은 급히 몇 발자국 뒤로 후퇴했다. 반면, 안란수는 원래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막송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안란수가 다시 출수하려는 바로 그 때, 막송이 황망히 소리쳤다.
“안 국사, 그를 다치게 한 건 우리 창목학원이 아니라 저국(貯國)의 후야(侯爷) 오운산(吴雲山)이오!”
안란수가 손을 멈췄다. 막송은 뒤편에 있던 남녀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들 또한 저국이 보낸 자들이오!”
안란수가 두 남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안란수의 신분을 알아차린 두 사람 역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안란수!
천지의 총아를 입은 자!
안란수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의 창에 힘을 주었다. 바로 이때, 미세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안 소저….”
안란수가 즉시 엽현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겨우 정신을 차린 엽현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만하면 됐소……. 가게 내버려 두시오…. 오늘의 복수는 훗날 내 손으로 처리할 것이오…….”
안란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은 엽현이었다. 그는 결코 그녀에게만큼은 기대고 싶지 않았다.
이에 안란수가 엽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러자 막송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만약 안란수와 끝까지 갔더라면, 굉장히 곤란해졌을 것이 분명했다.
두 남녀 역시 얼굴빛이 풀렸다. 안란수와 결코 손을 섞고 싶지 않은 듯했다.
막송이 엽현을 한 번 바라보고는 북신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두 남녀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엽현이 막 입을 열려 할 때, 구 공주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말하지 마. 지금까지 흘린 피로는 모자란 거야?”
안란수가 엽현 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영로가 그녀의 곁으로 와서 말했다.
“아가씨, 진정 저 자가 죽는 걸 보고 싶으십니까?”
그 말을 들은 구 공주와 엽현이 영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영로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그대는 우리에게 있어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인입니다. 수많은 종문들과 세력들이 아가씨와 혼인관계를 맺으려 하는 때에, 그들이 만약 아가씨와 저 아이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그들이 가만있으려 하겠습니까? 그들의 손은 결코 아가씨가 아닌 저 소년에게로 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 아이는 소리 소문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단 말입니다!”
영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아가씨를 향한 가주(家主)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아가씨도 사람을 좋아할 순 있지만, 평범한 자들은 결코 안 됩니다! 엽현의 자질이 훌륭하다는 것은 인정하겠습니다. 그래도, 아가씨와 함께 할 자격을 갖추려면 적어도 삼십 세 이전에 검황(劍皇)이나 검주(劍主)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란 말입니다! 아가씨가 기어이 저 아이와 가까이하고자 한다면, 저 아이의 수명 역시 그만큼 짧아 지리라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크진 않았지만, 엽현과 구 공주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일부러 엽현이 자신의 말을 듣도록 한 것 같았다.
안란수는 침묵했다.
“아가씨,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입니다! 아가씨와 저 아이는 사는 세계가 다를뿐더러, 저 아이는 아가씨의 세계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안란수가 고개를 돌려 엽현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엽현이 안란수의 눈을 응시했다.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시오?”
안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엽현이 살포시 웃었다.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그의 말에 안란수가 웃었다. 그러자 엽현은 잠시 넋을 잃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란수가 엽현에게로 다가왔다. 품 안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낸 그녀가 엽현의 입가에 흐르고 있는 선혈을 정성스레 닦아 내었다.
“다음에 만날 때도 지금처럼 멋진 남자이길 바라겠소.”
안란수가 몸을 돌려 엽현에게서 멀어졌다.
“다음엔 내가 찾아가도 되겠소?”
엽현이 그녀의 뒤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안란수가 걸음을 멈췄다.
“중토신주(中土神洲)로 날 찾으러 오시오. 기다리겠소.”
말을 마친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엽현에게서 멀어졌다.
이때, 영로가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아가씨를 찾아와서 어쩌려고?”
“하하, 이야기나 좀 나누려고 말입니다. 인생에 대하여, 혹은 이상에 대하여.”
그의 말에 영로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스스로 화를 자초하지 말거라!”
말을 마친 영로가 안란수의 뒤를 쫓았다.
엽현은 안란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뭘 아직도 쳐다보고 있느냐, 이제 사라지고 없는데.”
그러자 엽현이 시선을 거두고 몸을 움직여 보았다. 갑자기 가슴으로부터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참나, 이제야 아픈 줄 알겠느냐?”
이때, 엽현이 한쪽 팔로 구 공주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를 향해 쓰러졌다. 구 공주가 당황하며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엽현의 상처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의 가슴에 난 상처는 처음보다 훨씬 악화되어 있었다. 상처에선 끊임없이 선혈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엽현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저 좀 의원에게로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의원은 무슨 의원? 방금 란수하고 있을 때는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아 보이 더만. 이제 보니, 미인을 보면 상처가 낫는 모양이구나!”
말은 그렇게 모질게 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구 공주는 천천히 엽현을 성 안으로 부축했다.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 더, 더는 못 걷겠습니다. 좀 업어 주십시오!”
“그렇게 아프면 그냥 죽을래?”
“아, 아닙니다. 조금 더 걸어도 될 것 같습니다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