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90
590화 뻔뻔한 검수 같으니!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달은 소년은 표정이 귀신처럼 바뀌었다.
엽현이 사용한 검은 못 해도 최소 도경 급이었다. 이런 검이라면 육신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소년의 뒤에 있던 노인 역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뱉었다. 세상에 저렇게 음흉하고 악랄한 검수는 그의 인생에서도 처음이었다.
바로 이때, 두 사람이 동시에 오른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한 소녀가 백마를 탄 채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탄 말의 발 쪽에는 성광이 빛나고 있었다.
성하구(星河駒)!
그녀의 말은 도경 급 요수인 성하구였다.
소녀는 꽃무늬가 수 놓인 치마를 입고 있었다. 말총으로 단정하게 동여맨 가운데, 두 가닥의 머리가 양쪽 이마에 늘어져 있었다. 왼쪽 허리춤에는 한 자루 도, 왼편에는 호리병을 차고 있었다.
소녀를 본 순간, 소년의 안색이 순식간에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호리병에 든 술을 두어 모금 들이키더니, 소년을 향해 엄지를 치켜 보이고는 그대로 말머리를 돌렸다.
“…….”
소년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소녀를 태운 성하구가 쏜살같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장내에서 사라진 성하구의 뒤편에는 마치 은하수처럼 보이는 성광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같은 시각.
엽현과 막사는 황폐한 대지 위를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장신원에 머무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신국의 영역인 데다, 강대한 기운이 이미 그들 근처까지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싸워 줄 이유는 없었다.
이때, 한참 만산장성으로 달리고 있던 엽현의 머릿속에 아월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신국인지 뭔지에 가봐야 할 필요가 있다.”
“어째서?”
“그곳에서 육층의 도칙이 느껴진다.”
‘육층 도칙?’
엽현은 잠시 망설여졌다. 아무리 그가 은신술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는 신국 아닌가!
그곳에 어떠한 강자가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아는가?
“뭘 망설이고 있는 게냐? 지난번 네가 질서문을 상대로 탑을 사용했을 때, 탑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만약 빨리 도칙을 찾아 안정화시키지 않는다면 너나 탑이나 모두 끝장날 수밖에 없다!”
계옥탑!
엽현은 어쩐지 항상 까불거리던 계옥탑이 최근에 잠잠한 것을 떠올렸다.
“육층의 도칙은 네게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얻기만 한다면 네 육신의 부족함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게다.”
“무슨 도칙이기에?”
“나중에 자연히 알게 될 것을 왜 항상 꼬치꼬치 캐묻는 게냐?”
“…….”
“서두르는 게 좋을 게다. 도칙이 다른 자의 손에 떨어지기 전에. 찾기만 하면 탑의 상태가 호전되는 것은 물론, 네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신국!
도칙이 있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호랑이굴이라도 뛰어 들어가야만 한다. 탑이 붕괴되면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엽현 자신일 테니까!
“도칙을 찾은 다음에는 경지를 끌어 올리도록 해라. 지금 볼품없는 네 경지로는 도칙의 위력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으니. 만약 네가 도경 정도에만 오를 수 있다면 도칙의 진정한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검종은 조화경급 검을 몇 자루 보유 중이지만, 엽현은 결코 그것들을 흡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검종은 연이은 전쟁으로 이미 너무나도 가난해진 상태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비상금까지 털어먹자니 나머지 검종 제자들에게 면이 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여, 검을 구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하는 엽현이었다.
잠시 후, 엽현과 막사는 만산장성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 성문 안으로 들어서려던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어느샌가 그들 눈앞으로 날아오고 있는 한 줄기 도광(刀光)!
찰나의 순간, 엽현의 검이 번뜩였다.
동시에 막사 역시 일권을 방출했다.
콰쾅-!
도광을 물리치긴 했지만, 이 충격으로 인해 막사와 엽현은 무려 백 장 뒤까지 튕겨 나갔다.
제자리에 멈춰 선 두 사람의 안색이 매우 딱딱해졌다.
엽현이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자, 이백 장 밖에 말 위에 탄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의 나이는 열일곱이나 됐을까?
겉보기에는 신국의 무인인 듯했다.
이때, 성벽 위로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여러 황계(荒界)에서 몰려든 고수들이었다.
엽현의 정면에서 소녀가 갑자기 엽현과 막사를 가리키더니, 덤비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건방진!’
막사가 참지 못하고 출수하려 할 때, 엽현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번엔 내게 맡겨.”
막사가 엽현을 바라보며 승낙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은 곧 소녀의 앞까지 다가갔다.
“신국의 무인, 어디 내 일검을 한 번 받아볼 텐가? 제자리에 서서 견뎌낸다면 패배를 인정하지.”
멀리서 이 말을 들은 막사가 순간 비틀거렸다. 또다시 수작을 부리는 엽현이 부끄러워졌다.
이때, 소녀가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마든지.”
“그럼, 사양하지 않겠다.”
말이 떨어지기도 전, 소녀의 앞에 나타난 엽현.
그러나 엽현이 아직 발검을 하기도 전, 소녀의 도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죽어라!”
그 순간, 엽현이 깜짝 놀라 황급히 신형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이미 소녀의 도는 이미 엽현의 가슴을 길게 찢어 놓은 상태였다.
엽현의 전신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엽현은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며 안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방금 전 조금만 더 늦게 발을 뺐더라면 몸뚱이가 두 동강 날 뻔한 것이다.
빛처럼 빠른 도!
엽현이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 검을 받아본다고 하지 않았더냐! 어찌 사람이 이리도 신뢰가 없단 말인가!”
소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말에서 뛰어오르며 재차 도를 휘둘렀다.
엽현은 이번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녀의 도광이 떨어지는 순간, 엽현이 한 발 내디디며 일검을 올려쳤다.
천주검!
천주검이 번뜩인 순간, 엽현 앞으로 날아오던 도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도광 뒤에는 소녀의 도가 숨어 있었다.
그러자 도를 향해 비스듬히 떨어지는 엽현의 검!
땅-!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소녀는 이미 말 위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리고 소녀의 도는 반쪽밖에 남지 않았다.
성벽 위에 모여든 무인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엽현의 검으로 향했다.
“저렇게 예리한 검이라니!”
“신병이다!”
“엽현이 강한 것은 모두 저 검 때문이었구나!”
“저 검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겠군!”
“…….”
성벽 아래, 소녀 역시 엽현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수, 그 검은 반칙인 것 같은데. 조금 더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게 어때?”
엽현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그냥은 재미없으니까, 내기를 하자.”
“무슨 내기?”
“검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나를 삼 초 이내에 죽이지 못한다면, 네가 타고 있는 말은 내 것으로 하기로.”
“나도 내기를 제안하지. 네가 삼 초 이내에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네가 들고 있는 검을 넘기기로.”
엽현의 입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갔다.
소녀는 천주검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것 같군. 이건 어때? 서로 일 초식씩 번갈아 가면서 주고받되 제자리에서 피하지 않기로. 만약 물러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진 것으로. 어때?”
소녀가 잠시 엽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좋아, 받아들이겠다.”
“보기보다 배짱이 두둑하군. 네가 여자니까 먼저 들어와라.”
이때, 소녀가 문득 물었다.
“도를 써도 되는가?”
소녀가 자신의 부러진 도를 흔들며 말했다.
“으음… 그냥 맨손으로 하면 안 될까?”
“그건 안 돼. 그럼 나는 도를 쓰고, 너는 다른 검을 써라. 그러면 서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안 그런가?”
엽현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작하지!”
소녀는 성하구에서 내려와 천천히 엽현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의 도에 강대한 기운이 집중되더니, 순식간에 엽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도성(刀聖)!
이를 보자 장내 무인들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저 어려 보이는 소녀일 뿐인데 도성이라고?
엽현 역시 속으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나이에 비해 그 경지가 터무니없이 높았던 것이다.
엽현 앞에 멈춰선 소녀.
찰나의 순간, 소녀가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간다!”
그녀의 음성이 떨어지자, 한 줄기 두꺼운 반달 모양의 도광이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패도 넘치는 힘에 속도까지 더해지자, 엽현의 신형은 순식간에 삼백 장 이상 밀려나 버렸다.
엽현이 제자리에 멈춰 선 순간, 엽현이 들고 있던 조화경 급 검이 산산 조각나 바닥에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엽현의 팔엔 언제 당한 것인지 깊은 도흔까지 패여 있어, 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이를 본 엽현의 안색이 순간 굳었다.
바로 앞에서 겪은 소녀의 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던 것이다.
엽현은 상대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방어를 했을 뿐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상처를 입고 만 상태였다.
엽현은 그제야 하늘 위에 하늘이 무엇인지 똑똑히 깨닫게 되었다.
“이제 네 차례다.”
“…공평한 대결을 위해 먼저 치료를 좀 하겠다.”
“얼마든지.”
소녀가 동의하자 엽현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 신정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소녀 역시 급할 것 없다는 듯, 한쪽에 서서 성하구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성하구는 그녀의 손길에 매우 온순했다.
반 시진 후, 치료를 마친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천주검이 들려 있었다.
“이 검을 쓰면 안 된다는 거지?”
“그렇다. 그 검만 아니면 어떤 검이라도 상관없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소리쳤다.
“소령아, 검 들고 와라!”
음성이 떨어진 순간, 웬 자그마한 소녀가 한 자루 검을 품에 안고서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그 검을 본 순간, 소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새로 나타난 검은 천주검보다도 훨씬 위험해 보였던 것이다.
이때, 검을 보고 놀란 성하구가 사방으로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저건 위험하다!
소녀가 엽현을 노려보자, 엽현이 정색하며 말했다.
“이 건 사용해도 괜찮겠지?”
그 말에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어찌 이 정도까지 치사할 수 있는 건가. 오늘은 내가 난생처음으로 진정한 ‘뻔뻔함’이 뭔지 깨달은 날이 될 것이다.”
“…….”
“정 원한다면 그 검을 사용해라! 뻔뻔한 검수 같으니!”
그 말에 엽현이 소령을 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소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신국의 무인, 잘 봐두거라. 나는 검 없이도 강하다.”
검을 쓰지 않는다고?
순간 장내가 웅성거렸다.
검수가 검을 쓰지 않고 싸운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흥! 그거 흥미롭군. 시간 끌지 말고 어서어서 들어와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