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91
591화 나도 죽기 싫다!
말을 마친 소녀가 방어태세를 취했다.
이를 본 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의 미간 사이에 ‘空(공)’이란 글자가 나타났다.
공간도칙!
공간도칙이 출현한 순간, 소녀의 주변 공간이 일순 희미하게 변했다.
그다음 순간, 그녀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녀의 신형은 어느새 천 장 밖으로 이동해 있었다.
성벽 위의 무인들이 입을 떡 벌렸다.
소녀 역시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공간의 위치가 바뀌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던 소녀의 귓가에 엽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졌다!”
패배!
소녀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다.
정당한 공격이 아닌, 이상한 방식으로 패배했으니, 이를 인정할 리가 만무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왜, 대단하신 신국의 무인이라서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건가? 그러면 할 수 없지. 상관하지 않을 테니 당장 말을 타고 떠나거라. 더 이상 구차한 자를 상대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정, 그렇게 말한다면야.”
엽현의 말에 소녀는 주저하지 않고 말에 올라탔다.
거의 눈 깜짝할 사이, 소녀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상황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엽현이었다.
이렇게 가버리다니?
빈말과 진담을 구분 못 하는 건가?
신국은 자존심도 없나?
엽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소녀의 행위는 일반적인 상식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바로 이때, 성벽 위에서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말로만 듣던 천재 검성이 고작 외물에 의지하는 자였다니, 매우 실망이군.”
엽현이 말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증도경 강자였다.
남자는 겉보기에 이십 대 초중반 정도로 젊어 보였다. 그 나이에 벌써 증도경에 이른 것은 그가 결코 평범한 무인이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엽현은 화를 내는 대신 웃음으로 대꾸했다.
“외물도 실력이다. 이런 말 못 들어봤나?”
“흥! 너는 부끄러움도 없는 게냐? 신국 무인을 상대로 그런 치졸한 방식을 사용하다니, 보는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자신 있다면, 방금 전 왜 내려오지 않았느냐? 너라면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그녀를 무찔렀을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러려고 했지. 그러나 그 전에 네 재롱을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 순간,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자의 눈동자가 움츠러드는 동시에, 그의 주먹이 정면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이때,
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팔 하나가 피를 흩뿌리며 하늘을 날았다.
바로 남자의 팔이었다.
이와 동시에 남자가 수십 장 뒤로 뒷걸음질 쳤다.
남자가 원래 있던 자리에 나타난 엽현.
순간 엽현의 눈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살아서 내 재롱을 보고 싶다면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다.”
“너…”
“닥쳐! 한 마디만 더 하면 그땐 팔이 아니라 목이다!”
“으… 엽현, 자신 있다면 그 검을 사용하지 말고……”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 한 자루 비검이 장내를 뚫고 날아갔다.
남자는 그 속도에 결코 반응하지 못했고, 그걸로 남자는 목이 잘려나갔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죽였다.
정말 죽였다고??
성벽 위, 남자의 시체에서 뜨거운 피가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이때, 흘러나온 피가 엽현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엽현의 몸에도 떨림이 일었다.
“누가 이곳에서 함부로 살인하는 것이냐!”
한쪽에서 들려온 음성.
이에 엽현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안하지만… 더 죽이고 싶어……”
말을 마치자, 엽현의 몸에서 한 줄기 붉은 기운이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아직 흡수하지 못한 남자의 피가 들끓기 시작했다.
계옥탑 안에서 아월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멍청한 놈, 혈맥에 사로잡혔군.]혈맥!
방금 전, 남자를 죽이고 난 후, 엽현의 혈맥은 천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엽현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남게 되었다.
살인!
엽현 안에 있는 두 개의 검의는 그의 이러한 살념을 억제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엽현의 정면에서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 했던 중년인은 엽현이 한 말에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 순간 엽현의 상태가 다소 이상했다.
“빠, 빨리… 도망쳐… 주, 죽이고 싶지 않아… 빨리……”
바로 이때, 엽현이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다짜고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이에 깜짝 놀란 중년인이 들고 있던 창으로 정면을 찔렀다.
서걱-!
중년인의 창은 천주검에 의해 허망하게 잘려나가고 말았다.
이를 본 중년인이 대경실색하여 황급히 뒤로 후퇴했다. 바로 이때, 엽현이 돌연 경로를 변경해 우측에 있던 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엽현이 미쳤다!”
엽현이 검을 들고 아무에게나 달려들자, 성벽 위는 곧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이때의 엽현은 분명 신지(神智)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엽현 손에 들린 역천의 검을 보고도 감히 그를 막아설 자는 없었다.
바로 이때, 노인 하나가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바로 초진인이었다.
엽현은 마치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것처럼 초진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에 초진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엽현의 검을 피해냈다. 그와 동시에 초진인의 손가락이 엽현의 미간에 닿았다.
엽현의 체내 혈맥으로 신비한 기운이 들어오는 순간, 엽현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엽현의 혈맥이 마치 물이 끓듯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쾅-!
기이한 붉은 기운이 엽현의 백회혈을 통해 방출되자, 그 강대한 힘에 초진인이 수 장 뒤로 뒷걸음질 쳤다.
이에 안색이 변한 초진인이 한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혼자서는 무리요!”
그 순간, 당염이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당염과 초진인이 동시에 엽현의 이마에 손을 댄 순간, 화산처럼 방출하려던 기운이 순식간의 엽현의 몸으로 밀려들어 갔다.
하지만 엽현의 혈맥은 멈출 의사가 없는 듯 여전히 들끓고 있었다.
“엽현! 정신 차리고 우리와 보조를 맞춰라!”
아직 의식이 가물가물하게 남아있던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세 사람의 합심 하에 엽현의 체내에서 들끓던 혈맥은 천천히 안정을 찾아갔다.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자 당염 등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잠시 후, 원래 상태로 돌아온 엽현은 자신의 혈맥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혈맥인가!?”
무슨 혈맥이냐고?
초진인의 물음에 엽현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나도 모르오.”
“너의 혈맥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게다가 이미 각성한 상태로, 너의 감정 상태에 따라 언제든지 발작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반드시 감정을 잘 다스려야만 할 것이다. 알겠느냐?”
엽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 역시 혈맥이 감정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상태였다. 방금 전 그가 살인 충동을 느끼자마자 혈맥이 격렬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야.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엽현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비록 혈맥이 깨어난 후에 강한 힘을 얻을 순 있겠지만, 그 힘을 통제할 수 없다면, 혈맥의 노예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때, 초진인이 엽현을 향해 말했다.
“상의할 일이 있으니, 따라오너라.”
말을 마친 초진인은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엽현은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막사를 향해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걱정마, 이제 멀쩡하니까.”
막사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방금 전 엽현의 모습에서 받은 충격을 쉽사리 지울 순 없었다.
엽현은 초진인과 당염을 따라 답천전 안으로 들어섰다.
전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다.
세 사람은 이미 그가 아는 얼굴들인 성주, 요왕 그리고 남파무사였다.
나머지 한 중년 남자는 바로 신도군의 부통령인 초광이었다.
신도군에는 초광 외에도 두 명의 부통령이 더 존재했다.
초광이 막 들어선 엽현을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왜냐하면 초진인 등이 만법경에 불과한 엽현을 거의 동일 경지의 무인을 대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검성이란 경지가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여러모로 혼돈우주 최강의 무인들과 같이 자리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초광은 별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통령이 폐관 중인 관계로 불참한 점, 미리 양해를 구하겠소.”
“상관없으니 시작하시오.”
초진인의 말에 초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신국의 신주(神主)가 모든 병력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 하오.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필시 작진 않을 것이오. 신국의 무도문명의 발달 정도를 볼 때, 그 실력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소.”
“신국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소.”
엽현의 말에 모두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쟁이 코앞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시피 하오. 반면 저들은 이쪽의 전력을 꿰뚫고 있을 테니, 싸우기도 전에 승기를 빼앗긴 셈이오.”
엽현이 장내 인물들과 차례로 눈을 맞춘 후, 말을 이어갔다.
“우선 정탐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소?”
이때, 초광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우리 쪽 무인 중 신국에 잠입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신도군은 몰라도 엽 성주는 가능할 거라 보이는데? 그렇지 않은가?”
성주의 말에 엽현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싸우기도 전에 나를 위험에 몰아넣으려는 속셈인가?”
“특별히 너를 견제하는 게 아니다. 너의 은신술은 자타공인 천하무적이니, 아무리 신국이라 할지라도 네가 잠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느냐?”
엽현이 성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의 실력도 나 못지않으니, 네가 나 대신 정보를 물어오면 되겠구나.”
“후후, 저들은 아직 너의 정체를 모른다. 반면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곧바로 꼬리가 붙을 것이다.”
“만약 내가 잠입에 성공했다 쳐도 발각될 수도 있지 않느냐?”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설령 발각됐다 쳐도 네 실력이면 금방 빠져나올 수 있지 않느냐?”
성주의 말에 엽현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그러면 본인이 직접 그 위험을 감수해 보는 건 어떤지?”
“…….”
이때, 요왕이 말했다.
“어쨌거나 정보를 빼내려면 누군가는 신족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요왕의 시선이 엽현에게 향하고 있을 때, 당염이 말했다.
“비록 엽 성주의 은신술이 대단하긴 하지만, 신국 역시 만만치 않은 만큼 발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소.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염이 말끝을 흐릴 때, 성주가 끼어들었다.
“어쩌면 엽 성주의 실력을 높이 산 신국이 그를 등용하려 할지도 모르겠구려.”
그 말에 초진인 등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엽현이 신국에 투항하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도 가장 걱정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쓰럽다, 안쓰러워.”
무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엽현이 성주를 향해 말했다.
“성주, 미안하지만 너희 질서문은 이간질 말고 잘하는 게 없는 것이냐?”
“건방진!”
순간, 초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엽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이곳은 너의 신무성이 아니니, 언행을 삼가 거라!”
초광, 그 역시 질서문에서 파견된 무인이었다.
“후후, 언행을 삼가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더냐?”
이때, 엽현의 천주검이 어느새 초광의 목을 향해 있었다.
“너희는 원통하지도 않느냐? 질서문의 대선배의 시체가 지금까지 장신원에 걸려 있건만, 너희는 시체를 회수할 생각은 없고, 이곳에 앉아 어떻게 하면 나를 죽일 수 있는지만 연구하고 있구나! 특히 너!”
엽현의 검 끝이 이번에는 성주를 가리켰다.
“성주, 남을 괴롭히는 것은 너희들의 특기 아니더냐? 신국에 가서 너희가 잘하는 것을 마음껏 펼쳐 보거라! 나는 너희 선조를 죽인 자도 아닌데 왜 나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인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