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92
592화 그놈은 건들지 말거라
엽현의 폭주에 성주는 말없이 엽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흉흉한 살기마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에 굴할 엽현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더욱 거친 언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선조의 시체가 적진에 걸려 있는데 어떻게 천 년이 넘게 참을 수 있었단 말이냐? 만약 내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날로 신국과 결판을 냈을 것이다!”
이때 지켜보고 있던 남파무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엽 성주, 신국은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니다. 진정하고 우선 자리에 좀 앉도록 해라.”
“진정? 성주가 나를 죽이려 머리를 굴리는 게 뻔히 보이는데, 진정하게 됐소!?”
“우리가 너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하거라.”
“오호라, 이제 보니 이렇게 다섯이서 짜고 날 함정에 빠뜨리려 했구나. 왜, 내 말이 틀렸나?”
“…….”
이때, 보다 못한 초진인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엽현, 네 뜻은 잘 알겠다. 우선 진정 좀 하거라.”
“좋소, 진정하지.”
말을 마친 엽현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의 검은 검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초진인이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엽 성주, 우리 여섯 사람은 이미 신국의 주요 인물로 낙인찍혀져 있다. 보나 마나 그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을 거란 말이다. 그러나 신족은 너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너 역시 충분히 강하니…….”
“싫소! 나도 죽기 싫소!”
“…….”
초진인을 포함한 여섯 무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괴팍해진 엽현의 성격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반전이 일어났다. 엽현이 조용히 말했다.
“물론 죽는 것은 싫으나, 신국으로 갈 용의가 없는 것은 아니오.”
장중 인물들이 기이한 눈으로 엽현을 쳐다보았다.
“신국을 상대로 승리하려면 우리 모두 단결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소. 다만 나 역시 조건이 있소. 만약 이 조건을 들어 주겠다 하면, 두말없이 신국으로 떠나겠소!”
“말해 보거라!”
초진인의 말에 엽현이 곧장 대답했다.
“첫째, 조화경 급 검 스무 자루. 물론 도경 급이면 더 좋소. 둘째, 웬만한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도경 급 방어구. 셋째, 발각되었을 시 나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 이상이오.”
말을 마친 엽현이 천천히 초진인 등을 바라보았다.
“모두를 위해 목숨을 거는 나를 위해 이 정도 조건은 들어줄 수 있지 않겠소?”
“…….”
대전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실 도경급 방어구를 제외하면 엽현의 요구는 그리 과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엽현을 제외한 모두의 마음은 전혀 편치 않았다.
왜냐하면 엽현은 정탐을 구실삼아 자신들을 뜯어먹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엽현이 그들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다시 말을 꺼냈다.
“표정들을 보니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오. 좋소, 그러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도록 합시다. 신국으로의 잠입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 만큼, 나도 꺼려지는 게 사실이니까.”
이때, 요왕이 말했다.
“엽 성주, 신국을 막기 위해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거늘, 어찌 이런 식으로…….”
“아아, 무슨 말 하는 줄 대충 알겠소. 듣자 하니 요족에도 도경 급, 아니 그 이상의 고수들도 있다던데, 그들을 보내는 건 어떻겠소? 만약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조화경급 검 두 자루를 내어줄 용의가 있소.”
그 말에 요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들은 은신술에 능하지 않다!”
“흥! 변명, 죄다 변명뿐이구려. 그대는 그저 요족의 고수의 안위가 걱정돼서 그리 말하는 것 아니오? 어찌, 요족의 목숨은 귀하고 내 목숨은 똥이란 말이오?”
이에 요왕이 입을 닫고 엽현을 응시했다.
장내 분위기가 다시 싸늘해지려 할 때, 초진인이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엽 성주,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도경 급 신물을 갑자기 어디서…….”
“내가 이미 다 알아보았으니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소. 질서문에 천신갑(天神甲)이라는 도경급 지보가 있다던데, 그거라면 내게 잘 어울릴 것 같소.”
그러자 성주가 두 눈을 부릅뜨고 엽현을 쳐다보았다.
“너, 너…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천신갑이 어떤 물건인 줄 알고…….”
천신갑이란 말에 당염 등이 고개를 저었다.
천신갑은 성제현상방에 등재된, 그것도 무려 여섯 번째 줄에 있는 보물 중의 보물이 아닌가!
모두가 아연실색하고 있을 때, 엽현이 말했다.
“그냥 주는 게 싫다면 거래를 할 수도 있다.”
“헛소리!”
성주는 엽현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엽현의 뻔뻔함을 여러 번 겪은 성주로서는 그에 대한 경계심이 극에 달해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만약 내가 고답천의 시체를 찾아와 준다고 해도?”
고답천!
엽현의 말에 성주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받아들일 텐가? 만약 성공하면 천신갑을 내게 주면 된다.”
“너는 그럴 능력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지 여부는 네가 신경 쓸 바 아니고. 거래할 건지만 말해라.”
“……만약 정말로 그분의 시체를 찾아온다면 네게 천신갑을 주겠다.”
이때, 엽현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이봐, 내가 멍청이로 보이나? 내가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온다 한들, 네가 고답천이 아니라고 부정하면 말짱 꽝이지 않느냐? 거래는 추후에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겠다.”
엽현이 초진인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경 급 지보는 필요 없소. 만약 그대들이 조화경 검 이십 자루를 구해 준다면, 목숨을 걸고 잠입해서 신국의 실력을 파악해 보겠소. 만약 이것도 원치 않겠다면 모두 없던 일로 하시오!”
순간 장내가 고요해졌다.
결국 엽현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의 목숨값을 쥐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남파무사가 입을 열었다.
“엽현의 요구를 들어 주십시다! 신국 같이 위험한 곳을 가면서 아무런 보상도 없다는 건 맥 빠지는 일 아니겠소?”
엽현은 자리에 있는 무인들 중 남파무사만이 유일하게 그의 편을 들어주고 있음을 기억했다.
초진인의 태도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이때 초진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검 스무 자루는 크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오.”
초진인의 소매를 펄럭이자, 네 자루의 검이 엽현 앞에 떨어졌다.
네 자루 모두 조화경 급이었다. 매 자루마다 깊은 검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냥 조화경 급 검이 아니었다.
“그동안 모아온 것인데, 네게 모두 주마.”
남파무사 역시 엽현 앞에 네 자루 검을 올려놓았다.
뒤이어, 당염과 요왕 역시 마찬가지로 검을 내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성주뿐.
엽현이 성주를 바라보자, 성주가 주저 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네 자루 검이 둥둥 떠서 엽현 앞으로 날아왔다.
총 스무 자루의 조화경 검!
눈앞에 검들을 보며 엽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역시나 이 노괴들은 보통 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초진인이 주먹만 한 돌 하나를 엽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공간전송석이다. 위기의 순간에 돌을 부수면 곧바로 우리에게 소식이 전해질 거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과 공간전송석을 갈무리했다.
뒤이어 엽현이 자리에 일어나 모두에게 포권을 취했다.
“지금부터 사흘간 폐관에 들어갈 것이오. 폐관이 끝난 후, 신국으로 갈 것이니 부디 기밀을 꼭 유지해주기 바라오.”
초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더 할 말이 없는 엽현은 그대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엽현이 떠난 후, 성주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보셨다시피, 놈은 검수라기보다는 도둑놈에 가까운 놈이오. 저런 놈을 정말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이오?”
초진인이 성주를 보며 대꾸했다.
“그럼 그 대신 질서문의 무인을 신국으로 보내면 되겠구려.”
그 말에 성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닫았다.
이에 초진인이 고개를 저었다.
“성주, 엽현과 질서문 사이의 원한을 우리가 어찌 모르겠소.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오. 엽현은 이미 우리와 한배를 탄 몸, 그가 우리 쪽에 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시오?”
남파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초진인의 말씀이 옳소. 엽현의 전투력은 약하지 않을뿐더러, 대규모 전투 시, 그의 장기인 암습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오. 게다가 중견을 담당해줄 무인들이 부족하게 되면 실력이 약한 젋은 무인들은 우후죽순으로 죽어 나갈 것이오. 하지만 엽현이 버티고 있으면 그들이 받는 압박을 상당히 줄여줄 수 있소.”
성주가 침묵하고 있을 때, 당염이 거들고 나섰다.
“이 시기에 신국에 잠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긴 하오. 그러니 이 정도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소. 어쨌거나 당장 급한 것은 신국을 몰아내는 일 아니겠소? 놈과 질서문 간의 원한이라면, 전쟁이 끝난 후에 어떻게 해도 우린 상관하지 않을 것이오.”
초진인이 초광을 향해 말했다.
“부통령, 방금 보았듯이 엽현의 성격은 매우 좋지 않소. 신도병들에게 괜히 그를 건들지 말라고 이르는 게 좋을 것이오.”
“신도병들 역시 성격이 나쁜 것은 피차일반입니다.”
초진인이 초광의 앞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말했다.
“초 통령, 그대가 모르는 게 있는데… 엽현은 단숨에 삼십 명의 도경 강자를 죽인 적이 있네. 게다가 놈의 혈맥에는 문제가 있어서 살심이 드는 순간 미치광이로 변하고 말지. 제발 부탁인데, 엽현을 건들지 말게. 노부는 그대의 똥이나 치우자고 여기 온 게 아니니까!”
말을 마친 초진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때 곁에 있던 남파무사도 초광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 미친놈을 건들지 말아 주게나. 한 번 돌아버리면 수습하는데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까.”
남파무사 역시 장내를 떠났다.
이번엔 요왕의 차례였다.
“나는 오히려 그대들 신도군이 녀석의 콧대를 꺾어주었으면 하네만.”
요왕 역시 사라지고, 이제 장내에는 성주와 초광만이 남았다.
초광이 성주를 바라보자, 성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분간은 놈을 건들지 말거라.”
“놈이 그렇게나 강하단 말입니까?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놈이 두려운 점은 실력이 아니라, 바로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빈다는 점이다. 뒷일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손이 움직이는 미친놈이지. 그러니 내 명령대로 당분간은 놈을 놔두거라.”
이 말을 끝으로 성주가 대전을 떠났다.
대전에 홀로 남은 초광은 멍하니 앉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한편, 일찌감치 답천전을 떠난 엽현은 한적한 곳을 찾은 후, 계옥탑으로 들어왔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엽현은 곧바로 조화경 급 검 한 자루를 자신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흡수!
잠시 후, 검에서 흘러나온 정순한 기운들이 엽현의 전신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