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93
593화 네 몸만 주면 된다
흡수!
계옥탑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엽현, 검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그의 전신이 조금씩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월이었다.
엽현을 바라보는 아월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이렇게 검을 흡수해서 경지를 올리는 방식은 난생처음이었던 것이다.
대략 한 시진이 더 지났다.
엽현이 또 한 자루의 검을 복부에 쑤셔 넣었다.
쾅-!
한 줄기 강대한 기운이 엽현의 체내로 무섭게 흘러 들어갔다.
이내 흥미를 잃은 아월은 제견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엽현과 마찬가지로 제견 역시 수련에 임하는 중이었다.
당시 백색 아이에게서 기연을 얻은 제견은 곧바로 폐관에 들어갔다.
그의 기운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중이었다.
“이 녀석은 곧 전성기 때의 실력을 회복하겠구나. 아니, 그 하얀 아이의 자기(紫氣)를 받은 후 녀석의 혈맥이 바뀌고 있어. 설마… 진화하는 건가?”
진화!
고대 이래로 요수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혈맥이었다. 강한 혈맥을 이어받은 요수가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혈맥이란 요수에게 있어 전부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혈맥이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주어진 혈맥을 뚫고 더욱 고등한 요수로 진화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연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얀 아이에게서 기운을 받은 제견은 이미 진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던 것이다.
‘도대체 그 하얀 아이는 어떤 존재인 거지?’
아월이 아이를 떠올리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만약 자신 역시 그 아이의 자기를 받았더라면 진화할 수 있었을까?
도칙 역시 기연을 얻는다면 더 높은 차원에 이르는 것이 가능했기에, 아월에게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다.
‘내 얼굴이 조금만 더 두꺼웠더라면 지금쯤 몸을 완전히 회복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탑의 오층으로 이동했다. 오층에 들어서자 영과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소령이 보였다.
소령은 아월을 향해 한 번씩 웃더니, 물주는 일을 계속해 나갔다.
소령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아월은 점점 표정이 굳어갔다.
소령 역시 예전과는 뭔가 달라진 듯했던 것이다.
‘이 아이도 진화하려는 건가?’
아월은 소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못 했다. 그녀의 입에서 마침내 한숨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부터 나도 좀 뻔뻔하게 살아야겠다……”
사흘이 흘렀다. 계옥탑 바닥에 앉아있던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난 순간, 강대한 기운이 그의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어법경(御法境).
삼일의 시간 동안 그는 총 열다섯 자루의 조화경 검을 흡수했다.
그 결과 만법경과 진만법경을 지나 어법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엽현이 가볍게 눈을 감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안에 천주검이 둥실 떠올랐다.
이때의 엽현은 다소 어두운 표정이었다. 만법경에서 어법경에 이르는데 열다섯 자루의 조화경 검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검이 더 필요한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게다가 앞으로는 경지를 올릴 때 조화경 급 검은 크게 효과가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어디 가서 그 많은 도경급 검을 구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이때, 아월이 엽현 앞에 나타났다.
“기분이 어때?”
“예전과는 매우 달라진 것 같다. 게다가 신식이 원래보다 훨씬 강해졌군.”
“더 높은 경지에 이른 만큼 각 방면에서 진전이 있던 것이지. 그러나 아직 육층 도칙에 대적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그럼 어쩌지?”
“내가 있는데 뭘 걱정하느냐?”
아월의 말에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네가 있는 한 아무 문제도 없겠지?”
“그건 둘째 치고, 도칙이 이미 다른 자의 손에 넘어갔을까 걱정되는군.”
“그럼 어쩌지?”
“만약 강제로 복속 당한 거라면 다시 뺏으면 그만이다. 도칙 스스로 그자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한다 해도 거짓말로 살살 꼬드기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네가 전문이지.”
“…….”
“아무튼 빨리 가 보거라. 지금부터 나는 휴식을 취할 것이니 별일 아닌 걸로 깨우면 목을 비틀어버릴 것이다.”
아월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때, 엽현이 문득 물었다.
“아월, 육층 도칙을 찾으면 칠층에 들어갈 수 있나?”
탑의 칠층.
엽현은 칠층에서 보았던 상자와 광세무학을 잊지 않고 있었다.
광세무학!
만약 광세무학 중에 있는 일검무량을 배운다면 성주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었다.
이때 귀찮은 듯한 아월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육층 도칙의 도움을 얻는다면 칠층에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칠층 도칙이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들어가는 것이니만큼 위험이 따를 것이다.]“아월, 그런데 계옥탑은 왜 스스로 칠층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지?”
[흥! 놈이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탓이지. 누차 말하지만 네게는 큰 행운인 것이다.]이를 마지막으로 아월의 음성이 뚝 끊겼다.
잠시 후, 엽현은 계옥탑을 빠져나와 신국으로 향했다.
현재 엽현은 가능한 많은 도칙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첫째는 탑의 안정을 위해, 둘째는 자신의 실력 증진을 위해.
실력이 있어야만 자신과 주변 사람을 지킬 수 있다.
엽현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코 다른 이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엽현이 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주가 돌연 엽현의 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성주가 엽현의 눈을 응시했다.
“…정말 고 성주의 시체를 찾아올 수 있느냐?”
“못 믿겠으면 말고.”
이때 성주가 손을 튕겼다. 그러자 납계 하나가 엽현에게로 향했다.
납계 안에는 도경 급 갑옷이 한 점 들어 있었다.
천신갑이었다.
성주가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약은 수작을 부리려 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내가 약속하지.”
말을 마치자 성주가 엽현 앞에서 사라졌다.
“…….”
엽현은 일단 천신갑을 계옥탑에 던져 놓았다.
“아월, 이 갑옷 어때? 혹시 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니겠지?”
오층에 있던 아월이 천신갑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런 쓰레기를 왜 받아 왔느냐? 여기가 무슨 쓰레기장인 줄 아느냐?]“…….”
바로 이때, 천신갑이 몸을 마구 떨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흑광으로 변해 오층에 있는 아월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보자 아월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바로 일장을 날렸다.
쾅-!
흑광이 순식간에 흩어지고, 아월은 천신갑을 붙잡고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덤벼도 아월한테 덤비다니…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한참 후, 매타작이 끝나고 탑 안이 잠잠해졌다.
이때 들려오는 아월의 음성.
[이 갑옷은 별문제가 없어. 다만 교육은 좀 필요하겠군.]아윌이 천신갑을 내동댕이쳤다.
잠시 후, 천신갑은 그대로 일층까지 굴러떨어졌다.
일층에 도착한 천신갑은 소령이 기르던 영과 나무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흑광으로 변해 영과 나무에 달려들었다. 그러자 나무에 달려있던 수많은 영과가 순식간에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첫 번째 나무를 해치운 천신갑이 다른 나무로 옮겨가려는 순간, 그 앞에 소령이 나타났다!
이때의 소령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상태였는데, 천신갑을 바라보는 두 눈에서는 모든 걸 얼려버릴 듯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소령이 두 주먹을 쥔 채로 천신갑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아아! 이리와 이 도둑놈 자식아아아아아아!”
곧, 계옥탑 일층은 도망치는 천신갑과 소령의 추격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물론 천신갑도 반항을 해 보려 하긴 했으나, 소령이 탑의 검을 들고 온 후부터는 그저 도망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에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령이 탑의 검까지 들고 왔으니, 그로서는 천신갑을 구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엽현은 탑의 일은 모른 척 한 채,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목표는 신국이었다.
잠시 후, 엽현은 고답천의 시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고답천의 앞으로 날아갔다. 가까이서 본 고답천은 굵은 쇠사슬로 칭칭 묶여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사이로 한 가닥의 붉은 실선이 존재했다.
엽현은 곧바로 쇠사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이때였다.
“너는 이 금제를 풀 수 없다.”
갑작스레 들려온 음성에 엽현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지? 방금 누가 말한 거지?’
어지럽게 움직이던 시선이 순간 정면의 고답천에게로 향했다.
“설마…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바로 이때, 돌연 고답천이 고개를 들었다. 엽현은 고답천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고답천이 고개를 저었다.
“천 년 전, 나는 이미 죽었다.”
“그럼 귀신이란 소리요?”
“…….”
엽현은 고답천을 바라보며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질서문의 무인이지 않은가.
“나는… 그의 한 가닥 신혼(神魂)일 뿐이다.”
고답천이 천천히 엽현을 훑어보며 물었다.
“너는 검종의 아이인가?”
“그러니까…….”
“이 나이에 벌써 검성이라니, 상당하구나.”
“과찬의 말씀.”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어찌, 신국은 여전히 침공할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이냐?”
“그렇소.”
“질서문은? 질서문에 봉제자(封帝者)가 나타났느냐?”
‘봉제?’
“그게 무슨 뜻이오?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오.”
“증도경을 넘어서면 장도경(掌道境), 그 후에 천도경(天道境), 천도경을 지나면 비로소 봉제(封帝)가 되는 것이지.”
고답천의 설명을 듣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 정도 무인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엽현은 성주를 포함한 육대 강자의 경지가 기껏해야 천도경을 넘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봉제도 하나 없으면서 어찌 신국에 대항한단 말이냐?”
“그렇게 말이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일단 이곳에서 벗어납시다.”
“잠깐, 그 전에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갑작스런 고답천의 말에 엽현은 잠시 망설였다.
“한 번 들어나 보지요.”
고답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에 천 년 동안 묶여 있으면서 나의 육신은 모진 풍파를 전부 견뎌야만 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게다가 신국이 재차 침공하려는 이때 내가 없다면 과연 누가 그들을 막겠느냐? 그러니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다.”
“하지만 내겐 그대 육신을 부활시킬 능력이 없소.”
“부활은 필요 없다. 그저 네 몸을 내게 주면 될 일이다.”
말을 마친 순간, 한 가닥의 검은 빛이 엽현의 미간으로 쑥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