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597
597화 너 맘에 안 들어
모두 몰살시켜 버리시오!
엽현이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엽현이 만산장성으로 온 까닭은 두 가지였다.
첫째, 협력하지 않으면 성주 등이 반드시 신무성을 공격하려 할 것이기에.
둘째, 만약 질서문과 당족 등이 무너지면 신무성 역시 신국에 피해를 입을 것이기에.
이 두 가지 이유로 엽현은 그들에게 협력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질서문 등이 탐욕스럽게 먼저 신국을 공격하려 한다면 엽현으로서는 결코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신무성이 피해를 입는 것도 참을 수 없지만, 반대로 가만있는 상대를 먼저 치는 것 역시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다.
남궁원은 엽현의 말을 듣고 속으로 다소 놀란 상태였다.
엽현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잠시 후, 남궁원이 침묵을 깼다.
“엽 성주, 그대는 조금… 특별한 것 같군요.”
엽현이 웃으며 뭐라 대꾸하려 할 때, 두 사람의 근처에서 누군가 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자, 과연 서른 명 남짓한 학생들이 손에 책을 들고 열심히 낭독하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 곁에 있던 소 학사가 말했다.
“남궁 국사, 엽 성주가 기왕 멀리서 오셨으니, 학생들에게 조금 가르침을 내려주도록 부탁하면 어떻겠습니까?”
남궁원이 웃으며 말했다.
“소 학사, 엽 성주 본인에게 물어보도록 하시오.”
소 학사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누구를 가르칠 정도는 아니오. 토론이라면 한번 해 보겠소.”
이에 소 학사가 눈으로 감사를 표시한 후, 멀리 서 있던 여학생 한 명을 불러냈다.
여인은 엽현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다. 청초하고 지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검은색 긴 치마를 입은 여인은 두꺼운 서적 한 권을 품 안에 소중히 안고 있는 상태였다.
엽현 일행 앞에 도착한 여인이 먼저 남궁원을 향해 예를 차렸다.
“국사를 뵈옵니다.”
“오늘은 개인적인 방문이니 너무 예 차릴 것 없다.”
이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인 후,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 성주, 평안하신지요. 창해학원 수석학사 문청(文青)이 가르침을 청해 듣겠습니다.”
“하하, 엽 성주는 무슨. 엽현이라 부르시오.”
문청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엽 공자께서는 신국과 그대들의 관계를 어찌 보시는지요?”
“적대적이오. 전쟁 직전이지.”
“다소 부정적이시군요. 하지만 제가 볼 때 오히려 희망적이라 생각됩니다. 그대들 세 개 황계에는 무수한 백성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지요.”
“어려운 환경이라니?”
엽현이 묻자 문청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신국 내부에서도 다툼은 있습니다만, 큰 살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게다가 백성들은 스스로 원하기만 한다면 학자가 될 수도, 무공을 연마할 수도 있지요. 게다가 신국에는 오래전부터 과거제를 통해 실력만 있다면 신분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조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문청이 남궁원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외람되지만, 예를 들어 여기 남궁 국주께서는 평민의 신분으로서,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수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국사에 오르신 분이십니다.”
남궁원이 말없이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문청이 엽현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만약 신국이 그대들 세상으로 진공한다면, 확실히 몇몇 거대 세력들은 큰 손실을 입을 것입니다. 다만 일반 백성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이고, 그 평화는 먼 후대까지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엽현이 잠시 침묵한 후, 문청의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한 남자가 새장을 들고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엽현이 남자를 향해 다가가더니, 웃으며 새장을 가리켰다.
“내가 좀 빌려도 되겠소?”
그러자 남자가 별 의심 없이 엽현에게 새장을 건네주었다.
“엽 성주, 이는 제가 매우 아끼는 새이니 부디 다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물론이오!”
엽현은 새장을 들고서 문청 쪽을 바라보았다.
“문청 소저, 여기 이 새장이 보이시오? 새장 안에 든 이 새는 좋은 먹이를 주고, 제때 자리를 갈아주기만 한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할 것이오. 그런데 정말로 그렇소?”
말을 하던 엽현이 갑자기 새장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새장 안에 갇혀 있던 새가 문밖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이에 엽현 곁에 있던 남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손을 뻗었다. 새를 붙잡은 남자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엽현을 노려보더니, 손에 있던 새를 새장 안에 도로 가뒀다. 그러자 새장 안의 새가 온 새장을 부술 듯이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다.
이때 엽현이 문청을 보며 말했다.
“문 소저, 보았소? 그대는 전쟁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오히려 우리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는 행위에 불과하오. 게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반드시 약탈이 이어지기 마련이오. 그대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신국의 세력이 우리 쪽 백성들을 약탈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소?
만약 그대들이 진정으로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면 어찌하여 문을 열고 교류하지 않는 것이오? 우리에게 그대들이 가진 장점들을 배우도록 허락만 해 준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신국으로 몰려올 것이오. 그런데 그런 평화적인 방법은 아예 제쳐둔 채, 전쟁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시오?”
엽현이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전쟁은 참혹한 것이오. 어떠한 명분을 앞세운다고 하더라도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결코 용인될 수 없소.”
“고통은 잠시뿐일 것입니다.”
문청의 말에 엽현이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이 돌연 검을 뽑아 문청의 목을 겨누었다. 너무나 빠른 동작이었기에 장내에 있던 아무도 이에 반응할 수 없었다.
이에 학생들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문청은 오히려 두려움 없이 엽현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문 소저, 그대는 매우 아름답군. 어찌, 내 신부가 될 생각이 없소?”
“엽 공자, 그게 무슨 말인가요?”
“후후, 나의 신분을 보시오. 나와 함께 간다면 평생토록 좋은 집에 좋은 옷을 입고 살 수 있소. 설령 그대가 동의하지 않고, 다소 비인간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 상관없소. 어쨌든 고통은 잠시뿐일 테니까.”
문청이 침묵한 채 엽현을 응시했다.
엽현의 말뜻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신의 사상을 남에게 강제로 주입하는 것은 매우 잔인하고 부도덕한 일이란 걸 알아야 하오.”
엽현은 곧장 검을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멋쩍은지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나는 원래 검에만 의지하고 살아온 사람이라, 도리나 이치에 대해 따지는 것을 잘하진 못하오. 왜냐하면 내가 볼 때 이 세상은 열 마디 말보다 검 한 번 뽑는 것이 더 유용하기 때문이오.”
말을 마친 엽현이 남궁원 쪽으로 빙글 돌아섰다.
“토론은 끝난 것 같으니 이제 다른 곳으로 안내해 주겠소?”
남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렇게 두 사람이 장내를 빠져나가려 할 때,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 남자가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그대에게 대결을 신청하오!”
그러자 이를 본 문청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막림(莫林),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막림이라 불린 남자는 그녀를 무시한 채, 엽현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엽 성주, 대결을 받아들이겠소?”
“이유는?”
“굳이 이유라 한다면… 그대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막림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그의 한쪽 팔이 피를 쏟으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막림의 얼굴!
장내에 있던 학생들은 완전히 굳어버렸고, 소 학사의 안색 역시 시체처럼 어두워졌다.
엽현의 검이 너무나 빨랐기에 그의 능력으론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 팔이 잘려나간 막림은 얼굴이 매우 창백해져 있었다. 하지만 두 눈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할 수 있거든 죽여 보시지?”
이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봐, 방금 전에 당신이 그랬지.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그 말은 도대체 뭘 믿고 한 거지? 그 잘난 주둥이? 네가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도 함부로 지껄인 것은 분명 네 놈 뒤에 있는 창해서원을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창해서원에 있는 한 내가 널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내가 틀렸나?”
막림은 그 눈빛만으로도 사람 하나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눈으로 엽현을 노려보았다.
이에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화는 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무능한 자들의 변명이지. 자,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으니, 어서 덤벼봐라. 어서!”
막림은 안색이 시퍼렇게 변할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엽현의 도발에 막림의 손이 몇 번이나 움찔했지만, 그는 결국 출수하지 못했다. 엽현의 손짓 한 번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가 조절된 것이다.
“그런데 있잖아…….”
엽현이 낮게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다.
“사실 나도 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쩌억-!
말과 동시에 엽현이 막림의 뺨을 거하게 올려붙였다. 순간, 목림의 신형이 한 마리 새처럼 날아 멀찌감치 떨어졌다.
막림 역시 육신을 단련한 무인이었던 터라, 뺨 한 대 맞았다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수모를 당했다는 것에 분노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출수하려는 순간, 지켜보고 있던 소 학사가 소리쳤다.
“놈을 데려가서, 산문 밖으로 쫓아내거라!”
그 말에 몇몇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막림을 끌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막림과 학생들이 사라진 후, 소 학사가 엽현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우스운 꼴을 보였소.”
“나 역시 충동적으로 소란을 피운 점 사과드리오.”
엽현이 웃으며 말하자, 소 학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젊은 녀석이오. 팔 한쪽으로 평생의 교훈을 새길 수 있다면 손해 본 것은 아닐 것이오.”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남궁원을 바라보았다.
“남궁 소저, 이제 황궁을 좀 보여주시겠소?”
이에 남궁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는 신궁이라 합니다.”
“아, 신궁을 좀 볼 수 있겠소?”
“그러시지요. 다만 현재는 외곽의 일부만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하오.”
그렇게 두 사람은 소 학사와 인사를 나눈 뒤, 황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참 걷던 중, 남궁원이 웃으며 물었다.
“막림이 왜 엽 성주에게 시비를 걸었는지 아시나요?”
“그자는 문청이란 여인에게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오.”
“맞아요. 엽 성주가 문청에게 칼을 겨눈 것을 보고 화가 난 것이지요.”
“하하, 결코 악의는 없었소.”
“후후, 그럼요. 그저 앞날 창창한 젊은이의 팔 하나 날려버린 것뿐인걸요.”
“…….”
잠시 후, 남궁원과 엽현은 신도의 신궁에 도착했다.
신궁 입구, 엽현이 무안녕의 조각상 앞에 걸음을 멈췄다.
“이 사람이 신국을 만든 사람이오?”
“신국 초대 신주(神主)시지요.”
조각상을 보며 뭔가 더 질문하려던 엽현이 돌연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언제 등장했는지 모를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엽현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가득 찼다.
“너, 네가 어찌 이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