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03
603화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엽현은 물론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굴욕적인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자 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누군가의 발아래 개처럼 엎드린 순간,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자폭을 하겠다는 것이 엽현의 심정이었다.
한편, 엽현이 자폭을 시도하자 장내 모든 이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성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엽현의 자폭을 예상한 이는 없었던 것이다.
저 미친놈은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가!
성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미친 듯이 기운이 증폭되고 있는 엽현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 그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
무릎을 꿇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자.
성주의 입장에서는 엽현은 결코 살려둬선 안 되는 존재였다.
다행히 그 엽현은 조만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엽현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곧 하늘을 뚫을 듯 팽창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손이 엽현의 어깨를 짚었다.
그 순간, 그 화산 같던 기운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출수한 이는 다름 아닌 남파무사였다.
결국 그는 엽현의 죽음을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본 초진인과 성주 그리고 요왕이 의아한 표정으로 남파무사를 바라보았다.
“모두 이쯤하면 됐소.”
남파무사가 엽현의 미간으로 손을 옮기며 말했다. 그런데 이때, 그가 손을 대자마자 엽현의 전신에서 들끓던 혈맥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이를 본 순간, 초진인과 성주의 표정에 다소 변화가 일었다.
특히 초진인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 역시 엽현이 발작했을 때, 그를 진정시켜 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어 당염의 도움을 빌어야만 했다. 그런데 남파무사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엽현의 혈맥을 진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순간, 남파무사를 바라보는 초진인의 눈에 경계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엽현의 상태를 진정시킨 남파무사가 순식간에 엽현과 막사를 어깨에 들쳐 멨다.
“이놈들은 내가 데려가겠소!”
이 말을 끝으로 남파무사는 엽현과 막사를 데리고 사라졌다.
“엽현을 이대로 놔둬선 안 되오!”
성주가 목소리를 높이자, 곁에 있던 당염이 성주를 향해 말했다.
“성주, 마음은 알겠으나 지금 상황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소. 우리의 눈앞에 놈보다 더 큰 적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이에 곁에 있던 요왕이 말했다.
“한 번 부딪쳐 본바, 신국의 전력이 생각 외로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러니 우리도 더 많은 강자들을 불러 모아야만 하오!”
이에 초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오. 지금 당장 각 세력에게 도움을 구하는 공문을 보내겠소. 부디 요왕도 더 많은 요수들을 데려와 주길 바라오.”
“물론이오!”
잠시 후, 장내에 모여 있던 무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그 자리엔 성주만 홀로 남았다.
성주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조금 전 엽현이 초범검성이 된 것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초범검성!
엽현이 어법경임을 고려할 때,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의 경지가 더욱 높아진다면, 설령 성주 자신이라 할지라도 위험할지 몰랐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고민하던 성주는 결국 어두운 표정으로 장내를 떠나갔다.
* * *
어느 깊은 산속.
엽현과 막사가 바닥에 누워있고, 그 앞에는 남파무사와 조목이 서 있었다.
조목은 시시때때로 엽현을 쳐다보며 호의적이지 않은 눈빛을 발산했다.
이때, 두 사람의 상태를 살피던 남파무사가 조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아, 가만 서 있지만 말고 답천봉에 가서 영단을 좀 얻어 오거라.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남파무사는 엽현과 막사를 두고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그가 떠나는 순간 두 사람의 목숨은 승냥이 앞에 놓인 물고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조목은 마지막으로 엽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염이 웃는 얼굴로 남파무사를 향해 다가왔다.
“무 형, 성주와 초진인이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쳤소.”
남파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당염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대 역시 엽현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을 것이오. 신족은 정말로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강했소.”
“아무래도 성주는 두려운 것 같소.”
당염이 말을 하며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젊지만 강하오. 이대로 죽지 않고 성장한다면 언젠간 우리 늙은이들도 어쩔 수 없는 강자가 될 것이오. 그리고 이 녀석의 성질로 봤을 때, 그때 가서 질서문을 내버려 둘 리가 없소.”
당염 역시 엽현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엽현의 성장속도는 누가 보더라도 말이 되지 않게 빨랐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동생을 노린 것이 질서문이 아닌 당족이었더라면…….
바로 이때, 갑자기 소령이 튀어나와 엽현의 곁에 섰다. 갑작스런 등장에 남파무사와 당염의 시선이 소령에게로 쏠렸다.
소령은 잠시 경계의 눈빛으로 두 사람을 살피고는 정신을 잃은 엽현을 들쳐 업고 순식간에 계옥탑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이 입을 뻐끔거리고 있을 때, 소령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두 사람 앞에 영과 한 무더기를 쏟아내더니, 누워있는 막사를 가리키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
잠시 후,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당염이었다.
“무 형, 이런데도 엽현의 보물이 탐나지 않소?”
당염의 질문에 남파무사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 형, 그대가 지금 경지에 오를 때까지 의지한 것이 무엇이오?”
“…….”
“보물이니 하는 것들은 물론 있으면 나쁘지 않소. 다만 외물에 온전히 의존하는 상황은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니 경계해야만 하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구려.”
남파무사가 가볍게 웃고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나저나 이곳에 당족기병이 와 있소?”
“물론이오. 신국을 상대로 어찌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겠소? 우리 당족 뿐 아니라, 질서문, 요족, 기타 다른 세력들 또한 정예들을 보내왔소.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승리하게 되면…….”
당염은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남파무사 역시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무 형, 어쨌든 엽현은 성주 등에게 불안요소임이 틀림없소. 만약 그들에게 상응하는 편의를 봐 주지 않으면 그들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고맙소. 이 일은 내가 잘 처리해 보도록 하겠소.”
고개를 끄덕인 당염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떠나갔다.
계옥탑.
소령은 아직 누워있는 엽현에게 영과를 과즙 내어 먹이는 중이었다. 소령의 정성 덕분인지 창백했던 엽현의 안색은 점차 원래 색을 띠기 시작했다. 이에 소령이 기뻐하며 다시 한 무더기나 되는 영과를 엽현 곁에 쌓아 놓았다.
대략 반 시진쯤 후, 의식을 회복한 엽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를 본 소령이 영과를 내팽개치고 달려와 엽현의 머리맡에 앉았다.
“깼…어?”
소령의 말에 엽현이 가볍게 씩 미소를 지었다.
“응, 깨어났어. 참, 내 옆에 있던 친구는?”
“그 사람은 밖에 있어. 그 사람에게도 영과를 잔뜩 줬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 말이 엽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소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소령아.”
엽현이 곧바로 탑을 떠나려 할 때, 소령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소령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지? 나 무서워…….”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청주에서 알게 되어 지금까지 함께 지내면서, 소령은 자신도 모르게 엽현을 가족처럼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소령의 말에 마음이 뭉클해진 엽현이 다시 한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마. 앞으로 네가 걱정하지 않게끔 조심할게!”
“…알았어.”
잠시 후, 계옥탑을 빠져나온 엽현은 남파무사, 조목 그리고 정신을 차린 막사를 볼 수 있었다.
간신히 돌에 기대어 있는 막사는 겉보기에 여전히 회복하지 못한 듯했다.
“막사, 괜찮은 거야?”
“다행히 죽지는 않을 것 같아.”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남파무사를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이 남파무사에게 공손히 예를 차렸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무례했던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에 남파무사가 엽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선 한 가지 일을 약속 하거라.”
“말씀하십시오.”
“당장은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접어두거라.”
“…….”
“강대한 적을 앞두고 내홍을 일으킬 만큼 좋은 상황이 아니다. 너와 성주가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면 승리는 물 건너갈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말을 하며 남파무사가 엽현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젊을 때 혈기가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먼저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 능력 밖의 일을 억지로 하려다가는 오히려 화를 입고 만다. 그렇다고 영원히 복수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당장 급한 불을 끈 후에 천천히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리하겠습니다.”
엽현이 승낙하자 남파무사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참, 내 미처 물어보지 못했는데, 신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였느냐?”
“그것이… 우리 쪽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었습니다.”
“훨씬 말이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신주의 이름 아래 모두가 하나로 통일돼 있다는 것입니다. 안정된 체제 속에서 신주의 권력은 매우 공고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신국 내에도 무수히 많은 세력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실력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신국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조심해서 상대해야 합니다.”
남파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신국을 상대로 결코 방심할 순 없는 법이지!”
이때 엽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이를 본 남파무사가 웃으며 물었다.
“혹시 우리에게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이쪽 진영에도 저들이 모르는 비장의 무기들이 존재하니까.”
엽현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신국에게 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느 쪽이 이기든 이제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당분간 너희 둘은 이곳에서 조용히 몸을 돌보고 있거라. 여론이 너희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질서문이 나 엽현이 배반하고 신국 쪽에 붙었다고 소문을 낸 것이군요.”
남파무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엽현도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파무사가 무언가 이야기하려던 이때, 그가 갑자기 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웬 노인 하나가 허공을 밟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신국의 무인이었다.
노인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쳐 곧장 성문을 향했다. 잠시 후, 성문 앞에 멈춰 선 노인이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펼치고 무표정하게 읽어 내려갔다.
“본 신주는 관대하다. 너희들의 피가 강이 되어 흐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투항하는 자는 기꺼이 나의 신민으로 삼을 것이나, 불복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노인이 읽기를 멈춘 순간,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꺼져라!”
“신국이 무어라고 투항하라는 게냐! 우리 집 개도 웃겠다!”
“신국 따위는 조만간 우리 발아래 있을 것이다!”
“신국을 멸하자!”
“신국을 멸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