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1
61화 그냥 튀어!
엽현이 구 공주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역시 청성에 있을 때 무수히 많은 자들을 죽여 왔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구 공주에 비해서 자신은 그저 조무래기일 뿐이었다.
한 군대의 통수(統帥)인 그녀는 한 번 전쟁을 일으킬 때 마다 죽이는 사람의 수가 일반적인 상상을 벗어난다.
이때, 구 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너를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 되지…….”
엽현이 발걸음을 옮기는 구 공주를 재빨리 따라잡으며 물었다.
“만약 공주께서 필요하시다면…….”
구 공주가 그의 말을 단 칼에 잘랐다.
“당국, 저국, 그리고 수많은 세력들이 나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강국 최고의 정예병들이 나를 호위하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지. 그런데 너를 지켜줄 사람은 없지 않느냐? 그러니 너는 이번 일에 참여해선 안 된다.”
“…….”
그렇게 두 사람은 어느덧 취선루에 도착했다.
허름하기 그지없는 양계성에 비해, 휘황찬란한 취선루는 주변의 건물들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취선루 안으로 들어가자 아름다운 여인이 그들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공주님. 객실이 준비되어 있으니, 절 따라 오시기 바랍니다.”
여인의 안내를 받으며, 두 사람은 한 화려한 방에 도착했다. 방 전체에는 온갖 장식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바닥에도 두터운 가죽이 깔려 있었다. 방 가운데는 수정으로 된 책상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역시 수정으로 된 벽이 있었다.
여인이 구 공주에게 예를 올렸다.
“시작되려면 아직 반 시진 정도가 남았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물러나자, 두 명의 여인이 다과를 들고 들어왔다.
“두고 가거라!”
구 공주의 말에 두 여인들은 떠났다. 이제 방 안에는 엽현과 구 공주만이 남았다.
“구 공주, 우리…….”
“강구(姜九)! 너도 란수처럼 나를 그렇게 불러라! 그리고 이제 우린 친구니 날 편하게 대해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편하게 말을 꺼냈다.
“강구, 저들의 배후에 있다는 자들이 정녕 우리가 지계 상품 무기를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까?”
“너는 진짜 순진하구나!”
“…….”
“그 늙은이들이 검주동부를 개발하면서 아무렴 아무 소득도 없었겠니? 검주동부가 위치한 양계산은 더 이상 우리 강국의 땅이 아니야.”
“왜?”
엽현이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검주가 그 곳에 동부를 세운 이유는 그 일대가 천연 영맥(靈脉)이기 때문이야. 영맥이 있다는 것은 바로 영광(靈礦)이 존재하다는 뜻이지. 만약 그 영맥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그 가치는 지계 무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각 세력들에게 기연을 찾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은 그들에게 조금의 보상을 주어 불만을 없애고자 하는 거야.”
강구가 숨을 한 번 들이키고는 말을 이어갔다.
“엄밀히 말해서 영광의 위치는 우리 강국 내에 있긴 해.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부친께서 그 지역을 모두에게 개방하겠다고 선포하셨지. 보물을 찾는데 동참할 자격을 얻는 대신 말이야.”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동부에 관련된 사정은 자신의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전쟁이야말로 잔혹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당시 검주동부를 발견했을 때, 세 명의 통유경 강자들이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내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최소 십여 명의 통유경 강자가 더 있었어. 심지어 그들보다 높은 경지의 무인들 또한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이때, 구 공주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너희 창란학원의 원장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다. 창란학원이 겉으로 보기엔 금방이라도 문을 닫을 것처럼 보이지만, 기 원장이 살아있는 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침묵하던 그가 너를 포함한 원생들을 모집한 것을 보면, 분명 어떤 움직임을 보이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긴, 당시 창란학원의 학생들 대부분이 그렇게 참혹하게 살해당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자신의 두 아들과 손자 또한 마찬가지고…….”
엽현이 강구를 바라보았다.
“왜 나에게 다 말해 주는 거야?”
엽현의 질문에 구 공주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저 네가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
엽현이 뭐라 말을 꺼내려는 그 때, 그들의 앞에 있던 수정 벽이 번쩍였다. 그리고는 어떤 무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대 위에는 빼어난 몸매의 여인이 붉은 치마를 입고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오늘 경매를 진행하게 될 취선루 양계성 지부의 지배인, 서청이라 합니다.”
자신을 서청이라 소개한 여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경매에 올라온 품목은 세 점입니다. 여러분의 발걸음을 헛되지 않게 구성해 보았습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한편에서 한 여인이 아름다운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녀는 서청 앞에 있는 원탁에 상자를 올려놓고 퇴장했다.
이어, 서청이 상자를 여니, 그 안에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녹색 단약이 들어 있었다.
“파공단(破空丹)!”
강구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엽현 역시 원탁 위의 단약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네 여러분, 첫 번째 물건은 팔 할의 확률로 어기경을 능공경의 경지에 올려놓을 수 있는 파공단입니다. 강국에서는 보기 드문 물건인데요, 황금 백만 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호가의 단위는 최소 20만 냥입니다.”
‘백만 냥!?’
그 말을 들은 엽현의 두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득했다. 청성 전체의 반년동안 수입은 백만 냥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작은 단약 한 알이 최소 백만 냥이라니!
그 사이에 황금 가치가 어마어마하게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엄청!!”
구 공주의 물음에 엽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구 공주는 가볍게 웃었다.
“세상의 대부분의 부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있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겠지만, 부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를 가지고 있지.”
엽현이 허리춤의 전대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거지 중의 거지야!”
그의 말에 구 공주가 입 꼬리를 들썩이며 웃음 지었다.
그때, 누군가가 삼백육십만 냥을 불렀다. 단약은 바로 낙찰되었다.
‘삼백육십만 냥…….’
엽현이 쓴 웃음을 지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돈 이로군…….”
이때, 또 다른 여인이 나와서 탁자에 다른 상자를 올려놓았다. 상자 안에는 작고 얇은 한 자루의 단도가 나왔다. 칠흑같이 어두운 단도 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짐승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 단도의 이름은 양영(惊影)입니다. 극상의 영기(靈器)라 할 수 있죠. 우리 강국에선 오직 구 공주님의 금도만이 이 도에 필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초가는 이백만 냥부터, 삼십만 냥 단위로 올라가겠습니다.”
‘황금 이백만 냥!’
엽현이 입을 뻥긋거리며 구 공주를 바라보았다. 구 공주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저 찻잔을 홀짝일 뿐이었다.
엽현이 자신의 허리춤에 차져 있던 금도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렇게나 귀한 것을!”
구 공주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자 엽현이 우물쭈물 그녀에게 말했다.
“고, 고마워.”
“만약 돌려주겠다느니 따위의 말을 한다면, 걸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패 버릴 거야.”
엽현이 입을 삐죽거렸지만, 마음 한켠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으휴…, 이 멍청이…….”
구 공주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사이, 단도는 오백만 냥에 낙찰되었다.
‘오백만 냥!’
엽현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그는 탐욕이 가득한 눈으로 허리춤의 금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구 공주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만약 그걸 팔기라도 하면, 당장에 거기(?)를 토막 내버린 후에 환관으로 삼아버릴 거야.”
“…….”
바로 이때, 단상 위의 서청이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그 기운이 좌중을 압도했다. 이내 청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여러분. 다음으로 보실 물건이야 말로 오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단상 위에는 현철로 된 상자가 놓였다. 그러자 그 안에서 검은색의 책이 나왔다.
“지계 상품 무기, 적멸지! 만약 이 무공을 능공경 강자가 익히면, 단숨에 통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만약 통유경인 무인이라면, 이 강국에서 그와 겨룰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의 고수가 될 것입니다. 심지어 통유경 강자라 할지라도 이 적멸지를 익힌다면 본신의 실력의 사할이나 증가하게 됩니다.”
서청이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계 상급 무기, 황금 천 오백만 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최소 단위는 이백만 냥입니다.”
“이천만 냥!”
서청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누군가 소리쳤다.
객실에서 그 소리를 들은 엽현은 거의 숨이 넘어 갈 지경이었다.
‘이, 이천만!? 아니, 방금 누군가 삼천만을 불렀다!’
강구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엽현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맞아, 너는 그날 땅바닥에 수천 만 냥을 내팽개쳤던 거야.”
엽현이 강구를 향해 입 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그녀가 준 금도로 향했다.
“저 무공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우리의 우정만큼의 값어치는 아닐 거야. 안 그래?”
엽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 사이의 우정, 혈육 간의 정, 이런 것들은 억만금을 준다 하더라도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흥, 눈물 나게 감동 적인 언사로군!”
강구는 얼른 엽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깊게 패인 미소를 숨길 순 없었다.
그러는 사이, 경매가는 사천육백만 냥을 갱신했다.
바로 이때, 장내의 분위기를 망치는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화 한 개에 가져가겠다.”
순간, 어느 틈엔가 엽현과 강구의 뒤편에 몇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근엄하기 그지없었다.
강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취선루를 건드리는 자들이 있긴 하구나…….”
한편, 엽현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반가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튀어!]엽현이 그 음성을 듣고는 잠시 주춤한 뒤, 이내 강구의 손을 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방금 엽현의 머릿속을 울린 목소리는 다름 아닌 오랫동안 사라졌던 천녀의 것이었다!
엽현은 천녀의 말에 결코 의심을 품지 않고, 그대로 강구를 데리고 내달렸다. 뒤편에 서 있던 강구의 호위들이 순간 당황하여 엽현을 막아섰다.
엽현이 강구를 바라보자, 그녀가 소리쳤다.
“철수!”
그제야 그들 일행은 신속히 취선루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취선루를 빠져나가는 그 순간, 상공으로부터 거대한 기운이 취선루 건물에 작렬했다.
쾅-!
취선루가 순식간에 붕괴되는 와중에, 하나의 신형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선 취선루 내부에서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졌다.
이 장면을 본 엽현과 강구는 어두운 표정으로 급히 뒷걸음질 쳤다.
이때, 폐허가 된 취선루 지붕에 검은 장포를 입은 무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지계 상품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가 자리를 뜨려는 순간, 누군가의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건방진!”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하늘로부터 무인의 몸으로 떨어졌다. 이때, 흑포인이 손을 번쩍 들자, 그의 손바닥으로부터 번개 같은 기운이 방출됐다.
쾅-!
그러자 천지간에 천둥소리가 울렸다. 온 천하가 대낮처럼 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