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11
611화 쟤를 저한테 주시면 안 되나요?
노인은 엽현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도 더 없이 침착했다.
혈맥지력이 폭주하고 있는 엽현의 기세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봉제경 강자인 노인은 성주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경지면 경지, 검도면 검도, 노인은 엽현을 압도하고 있던 것이다.
이 순간, 엽현 역시 어떻게든 멈추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다만 그의 몸은 이미 자신의 명령을 듣질 않았다. 다시 말해, 머릿속에 꿈틀대는 살념은 이미 그의 이성을 마비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통제 불능의 상황이었다.
엽현은 검을 든 채, 빠르게 노인 앞에 도착했다.
이때, 노인이 움직였다.
윙-!
검명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진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소리보다 빠르게 엽현에게 도달했다.
쾅-!
엽현이 채 검을 휘둘러보기도 전, 그의 몸은 검과 함께 이미 수백 장 밖을 날고 있었다.
엽현은 잔해에 파묻혀 잠시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다시 천천히 일어나 노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은 매우 느렸지만, 전신에서 풍기는 살기는 더욱 강해져 있었다.
이에 노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에 살의가 번뜩인 순간, 다시 한번 검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로 이때, 노인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좌청이었다.
좌성이 막 출수하려던 노인을 향해 가볍게 예를 차렸다.
“상경(向擎)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네가 여긴 웬일이냐?”
상구라 불린 노인이 묻자 좌청이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저자를 제게 주시면 안 될까요?”
“저놈?”
“네!”
“안 된다. 위험한 놈이야.”
“아이, 이미 폐인이나 다름없는데 위험하긴요. 게다가 제 도를 죄다 망가뜨려 놓은 복수를 해야 한다구요!”
좌청이 떼를 쓰자, 상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간악한 마음을 품지만 않았더라면 일찌감치 신무방에 들어갔을 것을…….”
“신무방에 제 이름이 없나요?”
좌청이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참 내, 네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단 말이냐?”
“이상하다? 나는 계속 내 이름이 있는 줄 알았는데?”
“…….”
“에이, 그런 건 상관없어요. 신국에서 이 좌청 여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좌청의 익살스러움에 상경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녀석아, 여기서 너랑 말장난할 시간 없다. 노부가 오늘 얼마나 바쁜 줄 아느냐? 아무튼 위험한 놈이니 최대한 조심하거라!”
그렇게 상경은 엽현을 넘겨주고는 금세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할아버지! 그 검은 탑은 원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검수가 검 한 자루면 족하지, 보물 따위가 왜 필요하겠느냐?”
구름 너머로 들려온 음성에 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수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군.”
좌청이 문득 엽현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느릿느릿 걷던 엽현은 어느새 좌청 근처까지 도달해 있었다.
엽현을 보던 좌청이 갑자기 사악한 웃음을 지더니, 갑자기 엽현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퍽-!
무참하게 바닥에 쓰러진 엽현.
좌청에게 맞은 뺨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다.
몸을 부르르 떨며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엽현.
이때 좌청이 엽현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는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엽현의 얼굴이 바닥에 긁혀 피가 철철 흘러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씩 사악한 미소를 지을 뿐……
* * *
질서성 성문 앞.
신국의 신주가 성문을 향해 잠잠히 서 있다.
그녀의 뒤에는 수많은 신국의 강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질서성을 응시하고 있던 신주가 입을 열었다.
“당분간 이곳을 거점으로 삼는다.”
이때, 남궁원이 신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전하, 질서맹과 당족 무인들은 이미 미천해역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요족과 신무성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내 척살하라.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
“어찌, 대답이 없느냐?”
이에 남궁원이 황급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전하, 신국은 이미 세 개 황계를 모두 점령했습니다. 더 이상의 살육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남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제는 인심을 챙겨야 할 때입니다. 만약 계속해서 피를 흘리게 되면 이곳의 사람들, 특히 작은 성역의 세력들은 위기를 느낄 것입니다. 물론 질서문과 같은 완고한 세력은 반드시 척결해야 하겠지만, 항복하는 자들은 너그러이 받아 주어야 합니다. 궁지에 물린 쥐처럼 저항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신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하, 피를 흘리기는 쉬우나 통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나 혼돈우주와 같이 넓은 우주를 다스릴 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니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공포를 심었으니, 이제 인자함을 보여줄 때가 된 것입니다.”
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신주의 대답에 남궁원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제가 방법을 강구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참, 신무성으로 병력을 보내시겠습니까?”
“신무성엔 내가 직접 간다.”
신주가 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예전에 사부께서 검종의 조사가 굉장한 인물이라 한 적이 있다. 그러니 내가 직접 한번 보고 싶구나.”
“그리하시지요.”
남궁원은 곧 장내를 빠져나갔다.
“누가 가서 유가의 노로(魯老), 병가의 한로(韓老) 그리고 종횡가의 왕로(王老)를 불러오너라.”
신주의 말에 무인 하나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신주는 성 안으로 들어섰다. 성 안의 거리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사람들은 모두 집에 숨어 벌벌 떨고 있었다.
신주는 곧 질서성의 성주부에 도착했다. 성주부 역시 마찬가지로 무덤가처럼 고요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신주는 성주부로 나 있는 돌계단 위에 앉았다.
이때, 세 명의 노인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각각 유원의 노부자, 병가의 한유자 그리고 종횡가의 왕경지였다.
그들은 신주를 보자마자 깍듯이 예를 갖췄다. 그러자 신주 역시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이는 세 사람에 대한 신주의 존중이었다.
신주는 세 사람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도록 했다.
“말 해 보시오.”
신주의 말에 유원의 노부자가 공손히 말했다.
“혼돈우주 각 지역에 거점을 세우고 싶습니다.”
“자칫 혼란스러워질 수 있소. 이 점 분명히 알고 있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쪽 세상에서도 질서를 지키고자 할 것입니다.”
신주가 노부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라가 있어야 집안이 바로 설 수 있는 법이오. 앞으로 세를 넓히더라도 이 점을 항상 명심하시오.”
이 말을 끝으로 신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활짝 웃었다.
“신주는 아직 어리지만 마음 씀씀이만큼은 확실히 넓은 것 같소.”
노부자의 말에 한유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역대 신국의 신주 중에 대단하지 않은 인물이 있었소?”
왕경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는 결코 좋다고만 볼 순 없지 않소?”
노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신주가 힘을 잃게 되면 이 혼돈우주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오.”
왕경지와 한유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신주가 충분히 강하지 않으면 신국은 순식간에 사분오열될 것이 분명하다. 일단 나라가 갈라지게 되면 혼돈우주 전체는 끝나지 않는 전란에 갇히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이때, 보위 하나가 세 사람에게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우리에겐 아직 해결해야 할 적이 있으니, 아직 방심하지 말라는 전하의 말씀입니다.”
그 말을 듣자 세 사람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신국에게는 아직 해결해야 할 강대한 적이 남아있던 것이다!
* * *
깊은 밀림 속, 좌청이 엽현을 질질 끌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오늘의 좌청은 특별히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드디어 이 후안무치한 검수 놈을 잡았다.
엽현을 데리고 끝도 없이 숲속을 헤매던 좌청은 마침내 한 연못가에 멈췄다. 그리고는 곧장 엽현의 옷고름을 푸는데…….
“보물? 보물은??”
좌청은 기어이 엽현을 나체로 만들었다. 그러나 온갖 곳을 다 뒤져 보아도 엽현의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좌청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엽현을 앞에 두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결국 좌청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엽현의 엉덩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이봐, 사기꾼. 보물은 어디에 숨겼어?”
“…….”
엽현이 반응이 없자 좌청의 발길질은 더욱 강해졌다. 엽현의 볼기짝이 시뻘겋게 부어올랐건만 엽현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좌청은 아예 엽현의 머리맡에 쭈그려 앉아 그의 뺨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봐!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좌청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우선 정신이 들 만큼이라도 치료를 해 줘야겠군.”
좌청은 엽현을 들쳐 업고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날아올랐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도착한 곳은 신국의 한 종문이었다.
약왕종(藥王宗).
약왕종은 신국에서 가장 강하다고는 할 순 없지만, 나름 재주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뛰어난 단약 제조기술이었다.
그들의 단약은 치료나 영혼, 그리고 육신을 보양하는데 주로 사용됐다. 조금 더 좋은 단약은 경지를 올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어떤 것은 사람의 체질 자체를 아예 바꿀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약왕종의 지위는 매우 특이했다. 수많은 세력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단약을 제공 받기 위해 몸부림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왕종의 종주는 신국 황실의 어의도 겸하고 있으니, 비록 전력이 강하지 않더라도 함부로 그들을 건드리는 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좌청은 엽현을 질질 끌며 약왕종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중 약왕종의 여 제자 몇이 엽현의 벗은 몸을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달아났다.
곧 약왕종이 발칵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것이, 약왕종의 제자들은 대부분 여인이었다. 그런데 좌청이 발가벗은 사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때, 한 여인이 좌청의 앞을 막아섰다. 좌청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이 매우 못마땅해 보였다.
“좌청 소저,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사기 잘 치는 검수에요.”
여인이 엽현을 한 번 흘깃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왜 옷은 입히지 않는 것입니까? 망측한(?) 것이 덜렁거리지 않습니까?”
“귀찮은데…….”
좌청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려다 멈춰 섰다.
“참, 그 지지배는 어디 있나요?”
“채(蔡) 사제를 말씀하는 것이라면, 산에서 영초를 심고 계십니다.”
“음, 고마워요.”
좌청이 다시 엽현을 끌고 길을 나섰다.
이때, 여인이 좌청의 옆으로 다가왔다.
“좌 소저, 뭐라도 좀 입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저 남자가 깨어난 후, 자신이 알몸이란 걸 알게 되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좌청이 여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낯가죽이 두꺼운 놈이니 전혀 개의치 않아도 돼요.”
“…….”
“그리고 난 벗길 줄만 알지 입힐 줄은 몰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