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13
613화 나 죽은 거야?
엽현은 우물 가까이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대략 반 장 정도 되는 높이에 떠 있는 붉은 도 한 자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도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넓이였고 도신에는 동그란 구멍에 파여 있었다. 이 구멍 안에는 매우 작은 붉은 연꽃이 천천히 나부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전체적으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도는 네 개의 쇠사슬로 우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신물이군!
“무슨 물건인 줄 알아?”
엽현이 고개를 젓자 좌청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업화도(業火刀)라는 거야. 도 안에 이령방(異靈榜) 칠 위에 해당하는 홍련업화(紅蓮業火)가 심어져 있지. 신기방 오 위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라구!”
“이것보다 대단해?”
엽현이 좌청의 눈앞에 천주검을 흔들어 보였다.
“야 이 망할 놈아! 지금 나 약 올려!?”
“하하하…….”
업화도는 확실히 강해 보였다. 하지만 천주검과 부딪혀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계옥탑을 제외하고는 천주검에 대항할 만한 무기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검수, 나 좀 도와줘. 먼저 저 쇠사슬부터 끊어야 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엽현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며 말했다.
“저 도는 너희 도종의 것 아냐?”
“맞아. 우리 종문의 신물이지.”
“그런데 왜 저렇게 꽁꽁 묶어 놓은 걸까?”
“뭐 유래가 어쨌든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도만 손에 넣으면 되니까.”
“음… 아무래도 먼저 도종 사람들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업화도를 봉인해 놓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별로 물어보고 싶지 않아.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사람도 없고. 아무튼 저 쇠사슬만 끊어주면 그다음 일은 모두 내가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마!”
“…….”
“만약 네가 하기 싫으면 내가 할 테니까 그 검만 한 번 빌려줘. 저 쇠사슬에는 봉인이 걸려 있어서 일반 무기로는 흠집도 낼 수 없으니까.”
엽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우물 아래를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
순간, 네 줄기 검광이 쏘아져 나가 업화도를 붙들고 있던 쇠사들을 모조리 끊어냈다.
이때, 자유의 몸이 된 업화도가 불꽃을 일으키며 우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우물을 빠져나온 업화도는 그대로 지상을 향해 솟구쳤다.
“도망친다! 어서 잡아!”
이에 엽현이 손을 놓자 천주검이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순식간에 업화검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업화검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천주검을 날아들었다.
이를 본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아니나 다를까.
업화도가 천주검에 부딪친 순간,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검신에 실금이 일었다!
이를 보자 좌청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야!! 망가뜨리지 마!!”
말과 동시에 좌청이 직접 업화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때 천주검이 위협이라도 하듯 업화도에 가까이 다가갔다. 업화도는 겁에 질렸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진정해! 내가 말로 잘 타이를게!”
빠르게 날아온 좌청이 업화도의 손잡이를 덥석 잡았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놓았다. 이때 그녀의 손은 반쯤 투명해져 있었다!
다시 업화도가 도망치려 하자, 천주검이 그 앞을 막았다.
“…….”
이때 엽현이 좌청의 곁으로 다가왔다.
“먼저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너를 해치지 않을 거다.”
그 말에 좌청이 업화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테 복종 좀 해줄래?”
그러자 업화도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몸을 마구 떨었다.
분명한 거절의 의사 표현이었다.
이를 보자 좌청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그냥 때려죽여 버려.”
“…….”
이때 천주검이 정말로 업화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업화도가 황급히 좌청 앞으로 날아와서는 바들바들 떨며 구슬픈 검명 소리를 내었다.
“왜, 나 따위한테는 복종하기 싫은 거 아니었어? 네가 부서지든 말든 상관 안 할 테니까, 마음대로 해.”
그러자 업화도가 몸을 격렬히 떨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업화도가 다소 진정하자 좌청이 다시 한번 손잡이를 잡았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달리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
좌청은 자신의 손 안에 얌전히 있는 업화도를 바라보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바로 이때, 붉은 우물 아래쪽에서 격렬한 진동이 일기 시작했다.
엽현이 황급히 우물 아래를 바라보자, 용암이 부글부글 끓으며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놀란 엽현은 주저함 없이 좌청을 데리고 왔던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이 막 지상에 도착했을 때, 발밑이 마구 요동치더니 그들의 눈앞에서 용암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엽현이 좌청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좌청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그런 거야?”
“…아마 그렇지 않을까?”
바로 이때, 두 사람 앞에 웬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노인을 본 순간, 좌청이 안색이 변하여 황급히 엽현의 뒤로 몸을 숨겼다.
“놈! 어째서 업화도의 봉인을 풀어버린 것이냐!”
노인이 좌청에게 호통치자, 좌청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도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몰라요…….”
“이 망할 계집애! 그 도는 이곳의 지령지력(地靈之力)을 억제하고 있었단 말이다! 이제 네가 봉인을 풀었으니, 지령지력이 폭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십만 리의 땅이 모두 잿더미로 변하고 말 것이다!”
지령지력(地靈之力)?
엽현은 예전 아월의 말을 떠올렸다. 그녀에 따르면 대지도칙은 지령지력 역시 흡수할 수 있다. 다만 지령지력은 대지지력에 비해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한 번도 흡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이곳에서 마주하게 되다니!
한편, 노인의 말을 들은 좌청은 입을 떡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업화도를 훔친 결과가 이렇게 엄중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십만 리의 땅이 잿더미가 된다니, 이는 도종 역시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이에 생각이 미친 좌청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어르신, 이곳의 일은 제가 해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엽현이 노인을 향해 말하자, 노인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 성주, 이곳은 그대가 있을 곳이 아니오!”
신무성 역대 최연소 성주인 엽현을 노인은 쉽게 알아봤다.
“어르신, 이번 일은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나 엽현은 누구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니, 제가 처리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대가 뭘 어떻게 처리한단 말이오?”
“제게 지령지력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다소 위험하기는 하나…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순간, 엽현의 미간에 대지도칙이 나타났다. 그러자 지하에 있던 지령지력이 순식간에 엽현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용암 역시 그를 향해 밀려 들어왔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아아악! 이거 너무 뜨거워! 타 버리겠어!”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달리 엽현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령지력을 흡수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기까지 했다.
이를 알 리 없는 좌청은 고통에 휩싸인 엽현의 얼굴을 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엉엉… 미안해…….”
도종 노인은 엽현을 보며 다소 당황했다.
전혀 관계도 없는 도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엽현에게로 몰려든 지령지력은 곧바로 대지도칙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지령지력은 엽현의 몸을 통과하며 신체 구석구석에 변화를 주었을 뿐 아니라,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
대지의 존재하는 모든 기운은 대지도칙에 호의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나자, 지하에 있던 모든 지령지력이 사라졌고, 엽현은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그러자 한쪽에서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던 좌청이 황급히 달려왔다.
“이봐, 괜찮아? 괜찮은 거지?”
크게 요동치는 좌청의 음성.
하지만 엽현은 풍에 걸린 사람처럼 움찔거리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떡해… 안 움직여… 대(大) 할아버지, 빨리 좀 도와주세요!”
좌청이 다급하게 노인을 불렀다. 이때 엽현을 바라보는 노인의 표정이 다소 기이했다.
“그 녀석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구나.”
“아니,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요? 우리 도종을 구원해 준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인가요? 할아버지가 이렇게 나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지금부터 대 할아버지가 아니라, 대머리라고 부를 거예요. 대머리!”
그러자 노인이 다소 억울한 표정으로 좌청에게 백옥병 하나를 건넸다.
좌청에 황급히 옥병을 열고서 안에 있는 단약을 엽현에게 복용시켰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엽현이 드디어 눈을 떴다.
“나… 죽은 거야?”
다소 흐리멍덩한 눈으로 좌청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아직 살아있어!”
“그…래? 다행이다…….”
이때 좌청이 고개를 떨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죽을 뻔했어…….”
“이봐, 우리 사이에 미안할 게 뭐 있어. 친구끼리 돕고 사는 거지.”
“친구?”
좌청이 고개를 벌떡 들고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엽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친구. 뭘 그리 놀래?”
“나는… 나는… 지금까지 널 적으로만 생각했는데… 난 정말 나쁜 아이야……. 흑흑…….”
“…….”
이때, 뒤에 서 있던 노인이 소리쳤다.
“좌청, 이리 오너라!”
“흑흑흑…….”
“어허!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좌청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다쳤잖아요! 좀 가만있어 보세요!”
이에 노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짓더니 엽현을 향해 말했다.
“엽 성주, 내가 알기로는 전하께서 친히 신무성으로 향하고 계시다 들었소. 그대도 빨리 가 봐야 하지 않겠소?”
그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좌청과 노닥거리느라 신무성의 일을 깜빡 했던 것이다.
‘이 멍청이!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가 있지?’
“좌청, 나는 신무성에 가 봐야겠어. 기회가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나자!”
엽현은 곧바로 어검을 타고서 순식간에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어… 그냥 이렇게 가버리는 거야?”
좌청이 멍하니 엽현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서 노인이 말했다.
“이 녀석아. 앞으로 저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정상인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아.”
이에 좌청이 고개를 홱 돌려 노인을 째려보았다.
“할아버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할아버지 정말 나빴어요!”
좌청은 엽화도를 품에 안고서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
“…….”
엽현은 어검을 타고 빠른 속도로 신무성으로 향했다.
이때 그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신국의 신주는 그들에게 군신의 관계를 요구할게 뻔한데, 그렇게 되면 신무성의 처지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엽현은 그런 상황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은 신무성의 힘으로 신국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떡하지?’
머리를 쥐어뜯던 엽현은 결국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말은 섞어봐야 할 것 아닌가!
결심이 선 엽현은 검에 속도를 내서 더 빨리 신무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