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21
621화 인간이 사라져야 우주가 계속된다
백발 여인이 자신 곁에 있는 노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혼돈우주는 이미 너를 잊은 모양이로구나.”
“그런 건 상관없다. 나는 네게 빚진 것만 갚으면 된다.”
노인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패와 상관없이 이번 일로 우리 사이에 빚은 사라질 것이다.”
이에 노인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겨우 십 대의 나이에 이런 정도라니…….”
바로 이때, 공중에서 남궁원의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전하, 저자는 시원제(始元帝)입니다! 신족 시대 이후에 최초로 봉제에 등극한 시원제 말입니다!”
시원제!
신족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 혼돈우주의 무도문명이 끝없이 추락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당시 강자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시원제는 암흑시기에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무인으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었다.
그는 신족 시대 이후, 최초로 봉제경에 도달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덤벼 보거라.”
시원제의 말에 소칠이 고개를 저었다.
이에 시원제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너와 싸울 자격이 없다는 것이냐?”
“확실히 많이 부족하다.”
소칠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그녀의 뒤에 중년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은 한 손에 부채를 들고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생, 고장무(顧長武)라 하오. 신국의 일개 무사(武師)를 맡고 있소.”
무사!
물론 고장무는 일개 무사가 아니었다. 그는 신비에 싸여 있는 신무군과 암위군을 포함한 신국국 전체를 가르치는 무사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바로 소칠의 스승이라는 점이었다.
시원제가 고장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짓했다.
“장소를 옮기지!”
그 말과 함께 시원제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전하, 부디 보중하십시오.”
고장무 역시 곧장 시원제의 뒤를 따랐다.
이제 장내에는 엽현과 소칠 그리고 백발 여인만이 남게 되었다.
백발 여인이 잠시 엽현을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에게 한 수 배워보겠느냐?”
“…….”
“어찌, 두려운 게냐?”
“두렵다니. 너는 내가 그리 만만한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엽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 내가 만만하게 보인다면 자리를 옮기지.”
“어디로 말이냐?”
“계옥탑! 자신 있다면 들어와 보거라. 탑 안에서만큼은 나는 천하무적이니까!”
“…….”
계옥탑으로 따라와!
엽현의 말을 듣고 잠시 멍청히 있던 여인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엽현, 과연 듣던 대로 낯짝이 매우 두껍구나!”
뒤이어 백발 여인은 엽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나 역시 한 번 들어가 보고 싶긴 하구나.”
“…….”
엽현은 다소 당황했다.
여인이 정말로 탑에 들어가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는 실력에 대한 자신감일까? 아니면 무지에서 오는 오만함일까?
아무래도 전자의 가능성이 높았다.
엽현에 보기에 눈앞의 여인은 결코 어리석지 않았기 때문이다.
엽현의 침묵이 길어지자 백발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왜, 내가 막상 들어가겠다고 하니 무서운 게냐?”
“흥! 누가 무섭다는 거냐? 바로 들어가자!”
“나도 간다!”
소칠이 외치자 엽현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같이 들어간다!”
그 말과 동시에 세 사람의 모습이 장내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계옥탑 안.
탑에 들어온 여인은 연신 고개를 돌리며 탑을 살펴보았다.
“이게 바로 오유계에서 온 물건이란 말이냐?”
소칠 역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쁘게 탑을 살폈다.
이때, 백발 여인의 시선이 나무에 물을 주고 있던 소령에게 멈췄다. 소령 역시 여인과 눈을 마주치며 경계의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너는… 본원지령…….”
“넌 사람이 아니구나!”
소령이 갑자기 소리치자, 여인이 가볍게 웃었다.
“인간이 아니긴 하지.”
“그런데… 너희들 다른 곳에 가서 싸우면 안 돼?”
소령은 탑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영과 나무들이 다칠까 걱정이 되었다.
“다른 곳에서 싸우면 네 친구의 승산이 완전히 없어지는데도?”
이에 소령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엽현을 돌아보았다.
“정말 싸울 거야? 너는 절대 저 여자를 이길 수 없어.”
백발 여인과 같은 영체인 소령은 여인의 강함을 누구보다 더 명확히 느끼고 있었다.
이때, 여인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그와 싸울 생각은 있지도 않았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인이 손바닥을 펼쳤다. 순간, 계옥탑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강제로 탑을 복종시키려는 건가!?
바로 이때, 웬 여인 하나가 백발 여인 앞에 나타났다.
아월이었다.
“여기서 당장 꺼져!”
“후후, 그렇게는 안 되지.”
“귀위(歸位)!”
아월이 소리친 순간, 대지도칙과 몽지도칙 그리고 공간도칙이 일순간 엽현의 미간으로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아월 자신 역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엽현이 두 눈을 부릅뜬 순간, 아월의 음성이 들려왔다.
“계옥탑 개방!”
그 말을 듣고 엽현이 황급히 계옥탑의 힘을 개방했다. 그러자 백발 여인의 이마 위에 붉은 글씨로 ‘囚(수)’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그러자 여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황급히 계옥탑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마에 있는 글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
엽현 역시 곧장 계옥탑을 빠져나갔다. 여인을 앞에 두고 선 엽현은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전신에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무엇이라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절대적인 힘이었다.
엽현이 여인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천도라 할지라도 해볼 만하리라!
하지만 바로 이때, 몸에 있던 힘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와 함께 아월 등의 도칙도 도로 탑 안으로 돌아가 버렸다!
“어, 어… 이봐! 가지 마! 같이 저 여자를 해치우자고!”
하지만 이미 원래 자리로 돌아간 아월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어쩐지, 탑이 이미 너를 주인으로 삼고 있었구나!”
여인의 외침에 엽현이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때 그녀의 표정에서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을뿐더러, 당혹감마저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소칠, 더 이상 저 여자와 말을 주고받을 필요가 있을까?”
엽현의 말에 소칠이 고개를 끄덕이며 백발 여인을 바라보았다.
쉭-!
소칠이 자리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한 줄기 검망이 공간을 뚫고 날아갔다.
이와 거의 동시에 백발 여인이 단숨에 신형을 천 장 뒤로 물렸다. 하지만 검망은 여전히 그녀의 눈앞에 날아들고 있었다.
여인이 양손을 뻗어 검망을 붙잡았다.
그러나 이때였다.
쾅-!
검망이 폭발하며 여인이 수천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장내 공간이 갑자기 희미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들이 서 있는 섬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 이 공간은 결코 소칠의 일검을 감당해 낼 수 없던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이 있던 섬은 빠르게 사라졌고, 모든 무인들은 성공 중에 둥둥 뜬 상태가 되었다.
이때, 백발 여인은 소칠에게서 멀지 않은 곳으로 돌아와 있었다.
“대단한 위력이군.”
말과 동시에 여인이 소칠을 향해 일권을 뻗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주먹질.
단,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멸천의 힘이었다.
정면에서 이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소칠.
그녀의 신형이 순간 잔상을 남기며 사라진 순간, 여인이 방출해 낸 기운이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이와 동시에 백발 여인이 다시 한번 수천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백발 여인이 막 멈춰 섰을 때, 소칠이 검을 높이 들었다.
쉭-!
한 줄기 검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다.
마치 성공의 모든 것을 양분할 듯 뻗어져 나가는 검기!
빠르게 날아오는 검기를 바라보며 백발 여인이 정면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만물취(萬物聚)!”
콰쾅-!
여인의 앞 공간에 일어난 엄청난 폭발이 소칠의 검기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분(分)!”
뒤이어 여인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검기가 순식간에 분열되며 완전히 소멸됐다.
멀리, 소칠이 여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백발 여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역천(逆天)을 하고자 한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 순간, 소칠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백발 여인의 웃음도 사라지고, 그녀의 육신도 동시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소칠은 이미 여인의 뒤에 표정 없이 서 있었다.
‘해치웠나?’
사라지는 여인을 보며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설마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바로 이때, 백발 여인이 멀쩡한 상태로 소칠이 원래 있었던 공간에 나타났다.
소칠이 뒤를 돌아보자,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군, 내 분신을 이리 간단히 처리하다니.”
그 말을 들은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소칠이 해치운 것이 단지 하나의 분신에 불과할 줄이야!
그렇다면!
‘지금 저기 서 있는 여인은 본체일까 아니면 또 다른 분신일까?’
이때, 백발 여인이 소칠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혼돈우주가 존재한 이래로 가장 재능 있는 검수라 할 수 있군. 지금 당장 신족의 시대에 갖다 놓아도 그들을 가볍게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야!”
“…이 세상에 천도는 필요 없다.”
“하하하! 내가 없어진대도 또 다른 천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 예를 들면 바로 너. 내가 지게 되면 네가 다음 천도가 될 것이다.”
소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천도 따위에 관심 없다.”
“네가 원하지 않아도 관심이 생기게 될걸? 너는 인간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모르는 것이냐? 지금도 무수한 세계가 인간에 의해 멸망하고 있다. 만약 내가 통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혼돈우주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겠지.”
“인간 또한 생존하려 발버둥 치는 것뿐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수련을 해야 하고, 수련을 위해 영기를 흡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흥! 그것을 위해 이 우주가 희생되는 게 당연하단 말이냐?”
소칠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옳고 그름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게다가 인간과 다른 생령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우주는 어차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돼 있다.”
“그러나 너희 인간이 사라지면 이 우주는 훨씬 오래 지속될 것이다.”
“너 역시 혼돈우주의 본원을 소모하고 있는 존재, 그렇기에 인간을 향해 비난할 자격은 없다. 아니, 오히려 동류로 보는 것이 옳겠지.”
“내가 본원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힘이 없으면 너희 인간들이 언제라도 날 죽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힘이 없으면 너희 앞에서 파리 목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때 여인을 응시하는 소칠의 눈빛이 변했다.
“나는 인간이자 신족의 신주다. 신국의 모든 백성과 인간 전체를 위해 단 한 발도 물러날 수 없다!”
말을 마친 순간, 소칠이 검을 뽑아 들었다.
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