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37
637화 부자로구나!
아주 오래전.
계옥탑이 천녀와 싸우게 되었을 때 탑의 도칙들 역시 전투에 참여했었다.
그때는 비단 계옥탑은 물론 도칙들 역시 자신들의 강함에 도취돼 있던 시절이었다. 왜냐하면 사유계에서 만큼은 그들의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전투에서 계옥탑과 열 개의 도칙들은 모두 소멸될 뻔했었다.
얼마간의 침묵 후, 염가가 문득 말을 꺼냈다.
“나는 정말이지 그 녀석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저 녀석?”
아월이 턱으로 위층을 가리키자, 염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내력은 정말이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알고 있어. 하지만 놈의 신분이 어쨌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놈이 탑을 장악한 후, 약속대로 우리를 풀어주면 그걸로 끝이다.”
아월의 말에 염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탑이 결코 동의하지 않겠지. 놈이 완전히 회복하면 그 세 사람이 오기 전에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저 녀석이 비록 약해 보이긴 하나 잔머리 하나만큼은 비상한 놈이니까. 게다가 그녀가 있는 한, 탑도 마음대로 날뛰진 못할 거다.”
염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건 그렇게 걱정되진 않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탑의 위치가 노출된 탓에 온갖 강자들이 이리로 몰려들고 있다는 거지.”
“그건 나 역시 걱정스럽다. 그저 녀석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길 바라는 수밖에.”
이때 염가가 물었다.
“혹시 팔층과 구층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나?”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평범한 존재는 아니겠지.”
아월의 대답에 염가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안이고 밖이고 온통 목숨을 노리는 자들뿐이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용하군…….”
“…….”
탑의 이 층.
영과 나무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소령. 그녀의 앞에는 두 개의 상자가 놓여있다.
두 상자 모두 그 ‘하얀 아이’에게서 받은 것들이었다.
소령은 당장 상자를 열어보진 않았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닥쳤을 때에는 주저 없이 열어젖힐 것이다.
소령은 한동안 상자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다시 영과 나무를 돌보러 일어났다.
지난번 엽현이 구해다 준 영과와 영초들은 그 품질이 이전 것보다 매우 우수한 것들이었다. 소령은 이들을 심을 생각에 벌써부터 매우 기분이 좋았다.
탑의 칠 층.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엽현. 그의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정보가 입력된다.
일검무량(一劍無量).
이 검기에 대해 이해하면 할수록, 엽현은 경외를 뛰어넘은 공포심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엄청난 검기였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일검무량을 사용한다면, 엽현은 결코 막을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어느덧 삼일의 시간이 지났을 때, 잠잠히 앉아 있던 엽현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그의 두 눈동자 속에서 두 줄기 검망이 마치 번개처럼 번뜩였다.
이때 엽현 앞에 나타난 아월과 염가.
아월이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성공했느냐?”
“거의.”
“거의?”
아월이 되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봐야겠어.”
엽현은 곧장 계옥탑을 벗어나 검종 뒤편에 있는 산 정상에 올랐다. 엽현은 산 아래를 바라보며 이내 사념에 빠져들었다.
일검무량.
사실 엽현은 이미 일검무량을 완성한 상태였다.
단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을 뿐.
무량이라는 단어 안에는 무수한 의미가 담겨있다.
희, 노, 애, 락, 원한, 증오, 살심, 인(仁) 등등…….
엽현은 탁 트인 신무성을 내려다보고 청성에서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시절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이 어울릴까?
고난.
그 당시, 암투가 난무하는 엽가에서 두 어린 남매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뻔한 적도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청성에서 떠난 후로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다.
이러한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 엽현은 인생이란 참 고달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즐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런 순간은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삶이란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로구나!
얼마 후, 엽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시 그가 청성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지금에 비하면 그저 어린애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심지어 어쩔 땐 청성에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때는 엽가와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온 우주와 싸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의 이런 고난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지금 그가 청성 시절을 생각하며 미소 짓는 것처럼.
세상에 넘지 못할 고비란 없다.
잠시 후, 엽현은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바람과 함께 홀연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신국.
어느 대전 안, 소칠이 상석에 앉아 있고, 그녀의 앞에는 상관선아가 서 있다.
“전하, 준비가 끝났습니다.”
“부족한 것은 없느냐?”
“빈틈없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다만 현황대세계에서 몇이나 건너올지가 미지수입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반드시 기선제압을 해야 한다.”
상관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전투에서 이기게 되면 자연 우리 측의 사기는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저들도 더 강하게 나올 테지요.”
상관선아는 곧 예를 차린 후,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막 대전 밖을 나섰을 때, 정면에서 다가오는 한 남자를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상대는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엽 성주, 평안하셨는지요.”
“음? 뉘시오?”
엽현이 묻자 상관선아가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새로이 전하의 책사가 된 상관선아라 합니다.”
“남궁 국사는 어찌 된 것이오?”
“…그분께서는 동황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대신 온 것이로군.”
상관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엽 성주를 많이 번거롭게 할 것인데, 미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하하, 상관 소저께서는 괘념치 마시오. 신국과 신무성은 친구 사이가 아니겠소?”
“그리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폐하께서는 안에 계시니 들어가 보시지요.”
상관선아가 떠나고, 엽현은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에는 소칠 한 사람뿐이었다.
이때 엽현을 본 소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또 뭔가 변화가 있었구나?”
“후후, 너 역시 초범검신이 된 건가?”
소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엽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여인은 너무 괴물 같았던 것이다.
“지금쯤 그들은 거의 도착했을 것이다.”
“음… 아무래도 그렇겠…….”
바로 이때, 두 사람이 동시에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양반 되기는 글렀군. 이미 도착해 있었다니.”
“소칠, 내가 먼저 가서 인사나 나눠보지.”
이 말을 남기고서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소칠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시작하거라.”
그녀의 말에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스치듯 사라졌다.
엽현이 도착한 곳은 현황대세계의 비석이 위치한 성공이었다.
그가 막 비석 앞에 섰을 때, 멀지 않은 곳에 천도가 나타났다.
천도는 엽현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엽현 역시 천도를 무시한 채, 비석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비석 안의 공간에서 여섯 개의 그림자가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봉제경을 뛰어넘는 강자들이었다.
이에 엽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옥탑의 힘을 개방했다. 그러자 거대한 비석은 순식간에 계옥탑 안으로 사라졌다.
엽현 역시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트리고는 제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비석이 사라진 공간에는 천도만이 증인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음흉한 놈…….”
음흉한 놈!
천도는 알고 있었다. 현황대세계에서 온 자들의 목숨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계옥탑 안.
탑의 일 층에 돌연 여섯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미간 가운데 검은 인장이 박혀 있는 흑의 노인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던 흑의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조심해라!”
바로 이때, 엽현이 탑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네가 바로 엽현이로구나!”
“후후, 내 이름이 이미 그 멀리까지 알려진 건가?”
엽현의 정체를 확인하자 흑의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곳은 어디냐? 설마 그 오유계 보물의 안쪽인가?”
“말해 주지 않아도 잘 아는군. 점쟁이라 해도 믿겠어.”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이곳에 끌어들이다니. 꽤나 자신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엽현이 가볍게 웃었다.
“이번엔 내가 질문할 차례인 것 같군.”
“좋다. 말 해 보거라.”
“너희는 어떻게 내게 그 물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현황대세계는 분명 지극히 멀리 떨어진 곳일 텐데?”
“우리 쪽에 있는 어느 신법사가 점을 쳐서 알아냈다. 하지만 그는 너의 위치를 알아내자마자 큰 대가를 치르고 말았지. 오유계의 물건을 차지한 걸로 보아 너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겠지만, 그런 걸로 우리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왜냐하면 사유계 내에서라면 우리는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누구도 두렵지 않다!
엽현은 노인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자신감.
노인은 자신들이 가진 힘에 대한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또 질문할 것이 이느냐?”
노인이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만약 너희가 여기서 다 죽어버리면 다음엔 어떤 자들이 오게 돼 있느냐?”
“그야, 우리보다 더 강한 자들이겠지.”
“당연한 걸 물어봤군.”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육층에 가면 고인 한 분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거절하지 않겠다. 나 역시 이쪽 세계의 강자들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인을 포함한 육인의 무인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엽현을 향해 소령이 눈을 깜빡이며 다가왔다.
“이번에도 좋은 걸 얻을 수 있겠지? 그치?”
“…….”
바로 이때,
“끄아아악!”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컥!”
탑 안에 참혹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잠시 후 여섯 구의 시신이 엽현의 발밑에 떨어졌다.
시체들은 하나 같이 어디 한 군데 상한 곳도 없이 얌전히 죽어 있었다.
이때 엽현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자, 순식간에 그의 손안에 여섯 개의 납계가 들어왔다.
납계를 살펴보던 엽현의 표정이 점점 환해졌다.
이번에도 대박이로구나!
여섯 개의 납계에는 신정만 무려 이억 개 가까이가 들어있었다. 그뿐 아니라, 도경 급 보물도 여섯 점, 단약이 들은 듯한 약병도 오십여 개가 발견됐다. 단약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진 못했지만, 분명 보통 진귀한 것은 아니리라!
이로써 엽현이 가진 신정은 삼억 천만 개 정도로 늘어났다. 도경 급 보물은 서른네 점, 단약은 칠십여 병에 이르렀으며, 그 외 잡다한 물건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