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39
639화 원래 친구는 그런거야
엽현은 소칠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현황대세계를 압도할 만한 무력을 가진 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봉제경 이상의 무인들은 단칼에 처리할 수 없는데?”
“…가능하다. 처음부터 모든 비기를 꺼낸 상태로 싸운다면.”
소칠이 걸음을 옮겨 원래 있던 자리에 착석했다.
“현황대세계는 그간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왔다. 그만큼 원한을 진 세력들도 많겠지. 만약 이번에 압도적인 힘으로 그들의 선봉을 꺾는다면, 현황대세계에 악감정이 있는 세력들이 하나둘 우리 쪽으로 붙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기선제압이다.”
기선제압!
“…그래, 네 말이 맞아. 초반부터 확실히 콧대를 꺾어 놓을 필요가 있지.”
엽현 역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성격은 되지 못했다. 기왕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선수를 치는 것이 유리했다.
“그럼 조율이 다 된 것 같으니, 출발하자.”
소칠에 말에 엽현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벌써?”
“그들은 이미 병력을 파견했을 테니, 통로 안에서 막으려면 지금 가야 한다.”
“좋아, 출발하자!”
이때 잠자코 있던 상관선아가 입을 열었다.
“전하, 암위들도 데려가는 것입니까?”
소칠이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남는다.”
이에 상관선아가 소칠을 향해 정중히 예를 올리며 말했다.
“전하, 감히 아뢰건대, 전하의 안위는 신국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만약 전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혼돈우주는 순식간에 사분오열될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못 이길 것 같으면 도망치면 그만이니.”
“…….”
“…….”
잠시 후, 엽현과 소칠 두 사람은 질서성을 떠났다.
성 안에서는 상관선아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보기에 소칠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있었다.
많은 강자들의 패배 요인은 이 자신감과 관련 있지 않던가.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상관선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남자, 염도가 서 있었다.
“전설상의 미지경 강자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전하를 어쩌진 못할 것이다.”
“헌데 전하께선 왜 엽 성주를 데려가신 걸까요? 실력만 놓고 보자면 충분하지만, 그리 적임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니, 그가 적임자다.”
상관선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말인가요?”
“전하는 차갑고 엽현은 뻔뻔하니, 두 사람의 궁합이 잘 들어맞지 않느냐?”
“…….”
* * *
혼돈우주의 외진 성공.
엽현과 소칠은 그 백의 남자가 만들어낸 ‘갈라진 틈’ 앞에 도착했다. 길게 갈라진 공간 안에는 한 줄기의 통로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소칠과 눈이 마주친 순간, 엽현이 씩 웃었다.
“가볼까?”
두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통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천도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그녀는 두 사람이 사라진 통로 안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귓가에 달콤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혼돈우주는 다시 네 것이 되는 거다…….”
이에 천도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저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혼돈우주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한다.”
상대의 음성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천도가 다시 갈라진 공간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살아나올 수 있겠지?”
* * *
공간의 틈 사이로 이어진 통로.
머리 하나 차이 나는 엽현과 소칠이 나란히 길을 걷고 있다. 두 사람은 각자 한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공간도칙을 지닌 덕분인지 두 사람 주위의 공간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소칠, 우리 만약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소칠이 통로 끝자락을 응시한 채 대꾸했다.
“그럼… 못 돌아가는 거지.”
공간의 통로.
엽현과 소칠은 어검을 타고 빠르게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소칠은 정신을 가다듬는 듯, 두 눈을 감고 있다.
두 사람이 혼돈우주를 떠난 지 벌써 반나절이 됐건만, 현황대세계의 무인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만날 수 없었다.
엽현은 고개를 들어 멀리 통로의 끝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만나게 될 자들은 분명 지난번보다 더욱 강하리라.
이런 그의 마음을 알고 있던 것일까.
“걱정할 필요 없다.”
소칠의 말에 엽현이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런 걱정을 하는 게 아니야. 단지 내게 운명처럼 달려있는 이 인과가 언제쯤 떨어져 나갈지 궁금한 것뿐이지.”
인과(因果).
운명이니 하늘의 뜻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건에 휘말리고 난 후, 엽현은 어떤 인과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계옥탑, 알 수 없는 자신의 핏줄…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네 검은 왜 나를 배척하는 걸까?”
소칠의 말에 엽현이 손 안에 검을 들어 보였다.
“아직도 그래?”
“…아직도.”
“흠,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엽현이 몹시 궁금한 표정으로 천주검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검은 그저 잠잠하기만 했다.
이때 소칠이 말했다.
“내 검과 너의 검은 서로 구면인 듯하다.”
그 말에 엽현이 손을 뻗자, 소칠의 검이 그에게로 딸려 들어왔다.
“너, 천주와 아는 사이야?”
윙-!
검의 대답을 들은 엽현은 천주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천주검은 대답은커녕 아예 계옥탑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버렸다.
“…….”
“네 검은 어쩐지 의기소침해 보이는군. 아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게 아닐까?”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나가려 할 때, 정면의 공간에서 강한 떨림이 일었다. 잠시 후, 십여 명의 무인이 소칠과 엽현 앞에 등장했다.
이들을 마주한 엽현은 다소 의아했다. 왜냐하면 십여 명 모두 대단히 젊은 무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상대들 역시 엽현과 소칠과 마주친 후, 다소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그들 중 화려한 복식을 갖춘 남자가 한 걸음 걸어 나왔다.
“혼돈우주에서 온 자들인가?”
엽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의 표정이 다소 기괴하게 변했다.
이때, 남자 뒤편에 있던 한 흑의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헤헤… 듣자 하니 너희 혼돈우주는 부자라던데, 사실이냐?”
“그냥 평범할 걸?”
엽현이 퉁명스레 대답하자, 흑의남자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겨우 평범한 수준이라고? 한 달 반을 달려서 겨우 도착했건만, 그저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 손해잖아!”
그 말에 엽현이 갑자기 다소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서, 설마 혼돈우주를 털러 왔단 말이냐?”
“으헤헤, 이제 알아보겠느냐? 순순히 가진 걸 내놓는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강도질은 나쁜 거라구. 설마 그런 것도 모르는 거야!?”
“으하하하! 이것 보소. 혼돈우주의 무인이 이다지 순수한 줄 미처 몰랐구나! 하하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흑의남자가 미소를 머금은 채 엽현을 바라보았다.
“설마 한 번도 남의 물건을 뺏어본 적 없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순진한 척하는 건가?”
“이익… 강도질이라니… 어떻게 그런 흉악하고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느냐! 나 엽현은 누구보다도 더 정직하게 살아왔단 말이다!”
“…….”
소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엽현을 바라보았지만, 엽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하하! 정직? 그거 좋지!”
이때 흑의남자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엽현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척 봐도 가진 게 별로 없어 보이는군. 기왕 정직하다고 했으니, 정직하게 혼돈우주에서 가장 부유한 곳으로 안내해 주는 게 어떤가?”
“그, 그럼 내게 뭐가 떨어지는데?”
“떨어지는 거? 네 하찮은 목숨 하나 살려주는 거면 충분…….”
푹-!
순간, 날카로운 검 끝이 남자의 목을 뚫고 튀어 나왔다.
이 모습을 보자 십여 명의 무인이 모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출수한 이는 다름 아닌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엽현이었던 것이다.
엽현이 아직 숨이 붙어있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방금 바람이 불어서 잘 못 들었는데… 다시 한번 말해 줄래?”
“…….”
엽현을 바라보는 흑의무인의 눈동자에는 공포심이 깃들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상대의 검은 단숨에 그의 영혼마저 꿰뚫어버렸던 것이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무리의 대장 격으로 보이는 남자의 음성에 엽현이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바로 혼돈우주 최강 엽…….”
엽현이 아직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소칠의 모습이 사라졌다.
상대 무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출수하려는 순간, 거대한 검광이 빛보다 빠르게 그들을 덮쳤다.
엽현이 두 번 정도 숨을 들이마셨을 때, 검광이 사그라들면서 소칠이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때 바닥에는 한 무더기의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시체 더미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우두머리로 보이는 화려한 복식의 남자였다.
이때 남자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으며, 두 다리는 덜덜 떨고 있었다.
“너희 말고 뒤에 따라오는 자가 있느냐?”
“너, 너희는 누구냐!”
“쯧, 묻는 말에나 대답할 것이지.”
음성이 떨어진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장내에 번뜩였다.
서걱-!
소칠의 검에 남자의 목이 피를 흩뿌리며 멀리 날아갔다.
“…….”
“가자!”
“잠깐 기다려!”
엽현은 숙련된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십여 개의 납계를 쓸어 담았다. 납계 안에는 과연 무수히 많은 신정이 들어있는 반면, 도경 급 보물은 단 세 점뿐이었다. 보아하니 현황대세계라 해도 도경 급 보물이 썩어나진 않는 듯했다.
게걸스럽게 납계를 쓸어 담던 엽현이 문득 소칠을 바라보았다.
“너도 좀 줄까?”
“필요 없어.”
소칠의 대답에 엽현의 얼굴이 돌연 환해졌다.
흡수할 검도 구하고 신무성도 발전시켜야 했던 그였기에 신정이 아무리 많아도 항상 부족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돈이 그렇게나 필요한 건가?”
소칠의 물음에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너는 상관없어?”
“나는… 딱히 돈이 부족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런!”
“…당시 남궁을 시켜서 내 수련실에 있던 검을 가져가게 하라고 시켰는데… 필요하면 나중에라도 가져가도 좋다.”
소칠의 말에 엽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내 살길은 내가 알아서 개척하는 편이라서.”
제안을 거절한 엽현은 문득 소칠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느낀 건데, 왜 나한테 이리 잘 해주는 거지?”
“왜냐하면…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게 겁먹지 않으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소칠이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신국에서 나는 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나를 신처럼 모시려고만 했지. 그런데 너는…….”
소칠이 엽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과는 다르게 존경이 아닌 존중을 해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느냐?”
“후후, 친구니까 그렇게 대하는 게 당연하지.”
이에 소칠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가보자.”
이 말을 끝으로 소칠은 다시 앞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