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이만 죽이고 떠나자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엔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폭풍을 맞은 것 마냥 휘청 이던 작은 나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아침을 맞았다.
그 나무 아래로 바닥에 대자로 뻗은 엽현이 있었다. 흑포녀는 옷이 나무에 매달려 축 늘어져 있었다.
여인은 한 숨도 못잔 것 마냥 몹시 초췌한 몰골이었다.
이때, 엽현의 몸이 움찔하더니, 천천히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윽, 머리야…….”
심한 두통을 느낀 엽현이 연신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러자 두통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그가 문득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그녀의 몸과 뜨거웠던 전날 밤의 잔재가 눈에 들어왔다.
엽현이 시선을 거두고 급히 천녀를 찾았다.
“천녀님? 어째서 절 멈추지 않은 것입니까?”
이때, 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수로 멈춘단 말이냐? 해독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말이냐?]“혹시 해독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까?”
[있다.]엽현이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천녀가 말을 잘랐다.
[너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아느냐? 바로 신의가 없는 자다. 저 여자는 자기 말에 신의를 지키기 않았으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것도 자업자득이다!]“천녀님…, 그러나 저는…….”
[도대체 뭐가 불만인게냐?]“…….”
[이만 죽이고 떠나자.]‘죽이라고?’
엽현이 입을 뻐끔거리자 천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면? 저 아이의 손에 벌레만도 못한 모습으로 죽고 싶은 게냐? 미리 말하는데, 나에게 기댈 생각은 하지 마라. 지난번 출수했을 때, 이미 많은 힘을 소모했다. 다시 한번 함부로 출수했다간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리고 내게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 정도다. 그 후에 나는 깊은 숙면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도칙을 찾아야만 한다!]엽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천녀님, 괜찮으십니까?”
[도칙만 찾으면 좀 좋아질 것이다!]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 여인은 고개를 똑바로 들고 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눈에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엽현이 머뭇거리며 여인의 앞으로 다가서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대에게 내가 처음이었고, 나 역시 그대가 처음이었소. 그러니 우리는 서로 빚진 것이 없소…….”
엽현이 걸레짝이 되어 있는 그녀의 옷을 집어 들고는, 그녀에게 천천히 입혀 주었다. 이때, 여인의 몸에 눈이 스치자,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체의 일부가 꿈틀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에 어떤 충동이 일어났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아있는 것인가?’
엽현이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했다. 지금의 반응은 자신이 아닌, 약 기운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틀림없었다!
[체내의 약 성분은 이미 오래전에 빠져나갔다.]“…….”
천녀의 말에 민망해진 엽현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여인의 옷을 마저 입혀 주었다.
하지만 옷은 이미 엽현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였다. 옷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옷을 입혀도 그녀의 맨살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엽현은 자신의 장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고는 몸을 돌렸다.
“날 죽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그의 뒤에서 여인이 일말의 감정도 묻어있지 않은 음성으로 외쳤다.
이에 엽현이 걸음을 멈췄다.
“나를 죽인다 해도, 내가 너의 첫 남자인 것은 변함없을 것이다……하하…….”
엽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달아났다.
잠시 후, 엽현이 시야에서 멀리 사라지자, 여인의 몸을 옥죄고 있던 두 자루의 검광 역시 홀연히 사라졌다.
자유를 되찾은 여인은 곧바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쾅-!
순간 그녀의 몸에서 번개가 일었다. 그녀의 반경 수십 장에 있던 산림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여인이 공중으로 신형을 솟구쳐 주위를 샅샅이 뒤졌으나, 엽현의 기운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여인의 얼굴이 흉측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잠시 후, 여인의 신형이 움찔하더니 순식간에 어느 성문 밖에 도착했다. 그 곳은 바로 저국의 황성이었다.
성벽 위에서 그녀를 발견한 병사들이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전하를 뵈옵니다!”
“전하를 뵈옵니다!”
여인의 신형이 다시 흔들리더니 어느 새 황궁 안으로 진입했다. 그녀와 마주친 병사들마다 무릎을 꿇으며 예를 올렸다.
여인은 마침내 황궁 깊숙한 곳의 어느 대전에 이른 그녀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용의(龍椅)에 앉더니 뭔가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종이에 한 남자의 초상이 나타났다.
그 것은 바로 엽현이었다!
“금오위(金吾卫)에게 전해라! 삼일 안에 강국으로 가서 이 자를 찾고,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 오거라!”
그때, 대전 한 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여도 좋습니까?”
여인은 대답 없이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 * *
엽현은 깊은 산속을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천녀님, 혹시 제가 너무 마음이 약한 것 아닙니까?”
[만약 네가 정말로 그 아이를 죽였다면, 나는 네가 꼴도 보기 싫었을 것이다.]“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애초에 죽이라고 한 건 천녀님이였지 않습니까?”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대를 죽인다는 것은, 그자를 두려워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검수가 가장 멀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두려움이다. 네가 그녀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았거나, 훗날 그보다 더 강해질 것을 믿기 때문이었을 거다. 이 점은 칭찬할만하다.]엽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천녀님, 사실 저는 그 정도까지 생각하진 않았습니다만…….”
“…….”
아차, 싶었던 엽현이 서둘러 다시 말을 꺼냈다.
“무, 물론 천녀님의 말이 백번 옳습니다. 대장부가 되어서 어찌 여자에게 겁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나중에 검선이 되고 나면 그 여자는 저와 하룻밤을 보낸 것을 인생 최대의 업적이라고 여기게 될 것입니…….”
[그만! 더 이상 말하면 나도 모르게 네 목을 따버릴 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엽현은 겨우 양계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천녀님, 결국 그 여자가 어디서 대지지력을 느꼈는지 알아내지 못했…….”
[내가 말하는 대로 가거라!]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빨리 옮겼다.
천녀의 말을 따라 도착한 곳은 또 다시 검주동부였다. 동굴 안이 익숙한 엽현은 금세 지하 궁전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지 말고 우회전!”
엽현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막다른 벽이 나타났다.
[부셔!]쾅-!
엽현의 일 권에 벽이 무너졌다. 그 뒤에 또 다른 벽이 나타났다.
[다 때려 부셔!]그렇게 반 각 정도 벽을 때려 부수던 엽현의 앞에 돌계단으로 이뤄진 작은 길이 나타났다.
‘별천지가 따로 없구나!’
엽현이 그 길을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내려가자.]엽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동굴은 족히 한 시진을 걸었음에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다시 반 시진 후, 엽현은 주위가 갑자기 뜨거워짐을 느꼈다.
[계속 가!]천녀의 재촉에 엽현이 묵묵히 계단을 내려섰다. 다시 반 시진이 지나자, 이제는 얼굴이 붉게 익을 정도로 열기가 강해졌다.
“천녀님, 이거 너무 뜨겁습니다!”
잠시 후, 천녀의 말이 들려왔다.
[검망을 펼쳐서 몸에 둘러라.]엽현이 그 즉시 영수검을 꺼내, 검망으로 몸을 덮었다. 그러자 방금 전보다 훨씬 열기가 줄어들었다.
[서둘러라!]천녀의 말에 엽현이 걸음을 재촉했다. 주위의 온도는 더욱 오르고 있었지만, 엽현은 억지로 참아냈다.
도칙!
그는 이전에 천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도칙을 하나 찾을 때마다 실력이 엄청 향상된다고 했다.
사실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2층에 있는 녀석이었다. 어떻게든 도칙을 찾아 그 놈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그 녀석에게 뺨을 맞을지 몰랐다.
그리고 그 놈이 때릴 때 마다, 너무 아팠다…….
한 시진 후, 엽현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었다. 그는 어느새 용암이 흐르는 곳까지 내려온 것이었다!
그때, 엽현의 눈에 용암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갈색 물건이 들어왔다.
엽현이 눈을 찡그리고 자세히 보니 그 물건은 ‘土(토)’ 라는 글자였다. 놀라운 것은 용암이 그 글자를 덮치려고 할 때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천녀님!? 저게 바로 그…….”
[도칙!]천녀가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엽현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떻게 굴복시킵니까?”
[흥분하지 마라. 비록 도칙이 많이 손상되긴 했지만, 본능적으로 반항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르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잠시 고통스러운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럼 좋다! 너는 지금부터 마음속으로 내 지시를 따르거라. 먼저 천천히 계옥탑을 느끼도록 노력해라. 그런 다음 그것을 불러내라…….]엽현이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눈을 떴을 때, 그의 미간 사이에 작은 탑의 형상이 나타났다.
쾅-!
일순간에 그의 발아래 흐르던 용암이 사라졌다. 그때, 눈앞에 있던 ‘土(토)’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한 줄기 갈색 빛으로 변해 엽현의 미간 사이로 빨려 들어왔다.
우지끈!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엽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의 눈동자에 붉은 실핏줄들이 드러났다.
“으…….”
순간, 엽현의 몸 전체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더니, 그 사이로 선혈이 솟구쳐 흘렀다.
“천녀님…, 이…, 이건 그냥 고통이 아니라…, 그냥 죽을 것 같은데요…….”
[음, 아마도 내가 널 과대평가했던 것 같구나…….]“…….”
끝장이다!
이는 엽현이 속으로 외쳤다. 그의 전신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그의 미간에 있던 계옥탑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한 줄기 갈색 기체가 그의 전신을 감쌌다.
쿵-!
엽현의 몸이 큰 충격에 비틀거렸다. 순간, 갈색 기체가 그의 사방에서 끝도 없이 몰려들더니 그의 발을 통해 체내로 유입됐다.
잠시 후, 그의 몸에 생겼던 균열은 거짓말처럼 점차 아물어가고 있었다.
회복!
그의 몸으로 흡수된 도칙이 그의 몸의 회복을 돕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전신에서 올라오는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심했다.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하자면, 마치 천군만마가 자신의 몸을 묶어 사방팔방으로 달려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사지가 모두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엽현은 거의 기절할뻔 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이겨냈다.
이런 상황에서 기절한다면 그 결과는 비참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